[Insights] 실존적 낙천주의 (1)

Emma
ClubRare Universe
Published in
5 min readJul 8, 2022

(원문) https://www.notboring.co/p/existential-optimism

필자는 철학 수업을 들은 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주말 동안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다시 읽었다. 1945년 파리의 클럽 메인테넌트 (Club Maintenant)에서 진행했던 강연 내용을 토대로 1946년에 출판된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에 대한 명확한 견해를 제시하고 실존주의에 대한 비평을 파헤쳤다. 이 책은 20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읽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초심자들을 위해서는 폴 밀러드가 추천한 사라 베이크웰의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이 좋겠다.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도의 고하를 불문하고 우리는 현재 실존주의가 특히 유용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제도가 독점하고 있던 권력이 점차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인터넷을 소유하고, 우리를 지원하는 제도를 다스리는 등 우리의 삶에 더 큰 결정권을 가지려면 그 모든 책임을 감당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치의 철학이 필요하며, 실존주의가 그 좋은 시작점이다.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언제나 필자의 가슴을 울렸다. 대학 시절 유일하게 A+를 받았던 과목도 프랑스 실존주의였다. 아마도 지금 독자들은 머릿속에서 프랑스인이 카페에서 담배를 태우는 흑백 이미지를 어렴풋이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실존주의를 모든 것을 불안하고, 절망적이고, 무의미하게 여기는 염세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또 실존주의를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믿는 허무주의로 착각하기도 한다.

출처: Know Your Meme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사르트르는 이러한 견해에 전적으로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운명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공표하는 실존주의보다 더 낙관적인 교리는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타고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본성이 먼저고 존재가 다음이라고 말한다. 반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자들이 이와 반대로 존재가 먼저고 본성이 다음이라는 신념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 존재가 될지 결정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르트르는 옛날 사람이라 영어 원문에서 인간을 지칭할 때 성 중립적인 표현 대신 ‘남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 양해 바란다)

존재가 본성보다 먼저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실존주의의 첫 번째 효과는 모든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본인이 모두 지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만 진다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실존주의는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사르트르가 철학자 최초로 실존주의자임을 밝혔던 때는 20세기였지만, 사실 실존주의 사상의 선구자는 19세기 중반의 덴마크 출신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실하고 열정적이며 진실된 삶을 살아나갈 책임은 개개인 모두에게 있다고 믿었다.

2001년 진행된 BBC 라디오 팟캐스트인 ‘실존주의, 우리 시대의 철학 (In Our Time: Philosophy: Existentialism)에서 영국 런던대학교의 철학 교수인 앤서니 그레일링은 실존주의적 사상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세기 독일 학문의 산물인 과학사는 수많은 대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전 우주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자연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실존주의적 견해로 인해 종교의 진실성과 도덕성에 대한 종교적 근원 또한 위협받았다. 그리고서 그 유명한 다윈론이 등장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19세기 일부 철학자들에게 다른 가치의 근원을 찾아야만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니체는 이를 “신은 죽었다”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깨우침은 니체가 신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신의 존재와 종교에서 모든 의미와 규칙을 찾곤 했다. 그런데 신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었을까?

실존주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가 본성보다 먼저라고 간주한다. 인간의 존재가 먼저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인간의 창조주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 글은 신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인류가 모두 심오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며, 빠른 변화로 인해 모든 것이 우리의 손을 떠나기 전에 잠깐 멈춰서서 우리의 철학적, 도덕적 기반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존적 낙천주의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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