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전쟁 저항성 (War-Resistance)

김인근
C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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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Feb 6, 2024

김인근 | ingeun92@naver.com | CURG

전쟁 저항성 (War-Resistance)

전쟁 = 파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나무위키

알프레드 웨이너(기자): 박사님. 다음 제3차 세계 대전에서는 어떤 무기가 주로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3차 세계 대전에서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제4차 세계 대전에서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알 것 같군요.

알프레드 웨이너: 그건 무엇입니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 물리적인 생각으로 따져보자면은 아마… 돌멩이와 나무 막대기가 쓰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49년 리버럴 유대주의(Liberal Judaism) 잡지의 기자, 알프레드 웨이너와의 인터뷰에서 ]

위의 인터뷰는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전쟁의 파괴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인터뷰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핵전쟁을 염두에 두고 조금 더 과장된 표현이 쓰인 것 같지만 어쨋든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물리적 파괴라는 속성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

전 세계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많은 작업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처리되고 있는 현 시대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도 물리적인 기계이기 때문에 물리적 파괴에 대해서는 단일 내성이 없는 개체이다. 즉, 전쟁이 일어나서 하드웨어적인 파괴의 특성이 전 세계적으로 발현된다면 디지털 세상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전쟁만 나오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자연 재해 등도 전쟁의 하드웨어적인 파괴와 유사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컴퓨터나 온라인 네트워크 그리고 디지털 세상은 이러한 전쟁 또는 물리적 파괴에 대해 벌벌 떨기만 해야하는 운명인걸까?

전쟁 저항성이란 ?

웅진주니어 제공 | 액션! 공룡퀴즈북(글 이용규·한상호·박지은, 그림 김명호) | Copyright ⓒ 어린이조선일보 & Chosun.com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

[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中 ]

공룡은 2억 5천만 년 전 거대한 덩치로 중생대의 지배자로 군림해 왔으나 소행성 충돌로 인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해버렸고 그 자리를 당시 소형 동물로 살아가던 포유류가 차지하였다.

위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파괴에 저항하거나 혹은 전쟁에 저항하는 것은 결국은 살아남는 것을 말한다.

이 내용을 조금 더 확장해서 전쟁 저항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려고 한다.

“ 살아 남는 것, 생존 하는 것, 공격 당하지 않는 것 “

터미네이터 | https://www.etnews.com/20150512000127

전쟁 저항성에 대해 정의를 내렸으나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정의처럼 보인다. 이번엔 이 정의의 적용 대상을 확장시켜보자.

전쟁 저항성을 생존으로 정의한다면, 이는 단지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나 하드웨어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시스템 또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이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비생물의 생존은 어떠한 느낌인 것일까? 만약 비생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형질이 파괴에 버티고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것은 비생물의 생존이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시스템을 예로 들자면, 컴퓨터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나 혹은 기능이 파괴를 버티고 추후에도 계속해서 작동할 수 있다면 이것은 컴퓨터 시스템이 생존했다고 보는 것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근본적 구조

P2P 구조 | https://mingrammer.com/building-blockchain-in-go-part-7/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노드들이 P2P 기반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미줄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블록체인 노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블록체인의 본체
  •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일부

블록체인의 본체인 까닭은 블록체인 노드들이 모두 같은 블록체인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에 의해 여러 가지 타입의 블록체인 노드들이 가동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 데이터의 관점에서는 블록체인 노드들이 블록체인의 일부를 형성하지만, 네트워크적인 측면에서는 각 블록체인 노드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네트워크마다 합의를 할 수 있는 합의 알고리즘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하나 이상의 블록체인 노드들끼리 상호작용하며 동작하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적 특징

블록체인의 기본적인 특징을 알아보았는데 이번엔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적 특징을 알아보자.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지리적 분산, 중복성, 탈중앙성, 백업 및 복구 계획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 분산

  •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지리적 지역에 위치한 노드들에 의해 작동
  • 이 지리적 다양성은 물리적 공격이 동시에 전체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어렵게 함

중복성

  •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노드들은 데이터들이 서로 다른 노드에 중복되어 있음
  • 하나의 노드나 일부 노드가 물리적으로 공격당하더라도 다른 노드는 여전히 네트워크의 기능과 데이터 무결성을 유지할 수 있음

탈중앙성

  • 블록체인은 P2P 네트워크로 작동하여 중앙화된 서버가 존재하지 않음
  • 이는 특정 물리적 노드가 파괴되더라도 전체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마비되지 않고 계속해서 운영될 수 있음을 의미

백업 및 복구 계획

  • 블록체인 네트워크에는 백업 및 복구 메커니즘이 있음
  • 블록체인 데이터의 정기적인 백업은 각 노드에서 자동적으로 수행되어 물리적 공격이나 기타 재난 상황에서 네트워크를 복원할 수 있도록 함

데이터 센터 vs 블록체인 네트워크

그렇다면 이번에는 기존에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거대한 공룡 같은 존재인 데이터 센터와 작디 작은 포유류 같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비교해 보자. 이 비교를 통해 현 시대에서 어떠한 시스템이 생존에 유리한 지 얼핏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하드웨어적 특징을 바탕으로 중앙형 스토리지의 대표인 데이터 센터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데이터 센터 vs 블록체인 네트워크

정규군 vs 게릴라 부대

정규군 vs 게릴라 부대 | 나무위키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324/118511326/1

비교한 특징을 바탕으로 데이터 센터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좀 더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데이터 센터는 정규군으로,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게릴라 부대로 비유할 수 있다.

정규군은 훈련이 잘 되어 있고 대규모에 전면전에서 강력하지만 병력이 집중되어 있고 다수 중심이기 때문에 운영하는데 리소스가 많이 들어가고 전체적으로 둔한 기동성을 보인다.

그에 반해, 게릴라 부대는 제각각의 구성에 소규모로 운영되고 전면전을 피하며 소규모 교전만을 노린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병력이 분산되어 있고 소수 중심으로 운영하는데 리소스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민첩한 기동성을 보인다.

두 종류 모두 일단일장은 있지만 외부에서의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파괴가 들어온다면 생존에 유리한 타입은 게릴라 부대 쪽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 시나리오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을 근거로 삼아 전쟁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현대전

현대전은 지금 당장 전쟁이 발발한다는 가정 하에 작성된 시나리오이다.

https://bitnodes.io/
  • 블록체인 네트워크: Bitcoin
  • 전 세계 Bitcoin 노드 개수: 53,059개
  • 재래식 무기 사용 및 최악의 상황 가정: 재래식 무기 1개 당 1개의 블록체인 노드 파괴 가능
현궁 | https://www.thecommoditie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1
  • 사정거리 고려 없이 국내 미사일인 현궁 사용: 현궁 발 당 약 1억원

위의 가정에 따르면, 전 세계 Bitcoin 노드를 파괴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5조 3,059억원이다.

여기서 독자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라? 5조 3천억원 정도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싹 다 날리는 것치곤 싸게 먹히는 거 아닌가요?

2024년 2월 6일 기준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이 약 1,117조원임을 감안하면 그 생각도 맞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노드 파괴 비용에는 비트코인 노드의 위치를 탐색하는 비용이 고려되지 않았다.

두 번째, 만약 비트코인 노드를 1개 빼고 모두 파괴했다고 가정했을 때 남아있는 노드가 1개 이상의 다른 컴퓨터에 블록체인 데이터를 전송하기 전에 파괴하지 못한다면 결국 노드 완전 파괴는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노드 파괴 비용도 헛물을 켠 비용이 되어 버린다.

파괴시키려는 명분과 비용이 서로 적정한 선을 지키지 못하면 파괴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 살아 남는 것, 생존 하는 것, 공격 당하지 않는 것 “을 지킬 가능성이 높다.

미래전

미래전은 약간 과장되긴 하지만, 미래에 인류가 항성계나 은하계 규모의 세계를 형성했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이다.

바투 여행자들을 위한 가이드 | 스타워즈 | https://blog.naver.com/boba0210/222465669004

이 시나리오는 비용적인 부분에 대해 산출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현대전 시나리오의 느낌에서 규모만 늘려 생각해보았다. 우선 대륙간 규모에서 행성간 또는 항성간 규모로 확대가 되기 때문에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노드들이 각 행성 또는 항성에 있다고 가정한다. 이렇게 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항성계에 속해 있는 행성 간 블록체인 노드들의 파괴에 들어가는 자원이 지구 위 대륙 간 규모에서 블록체인 노드들을 파괴시키는 자원의 행성 개수만큼 배수로 자원이 더 들 것이므로, 블록체인 노드들보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고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여기서도, 파괴시키려는 명분과 비용이 서로 적정한 선을 지키지 못하면 파괴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특정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 살아 남는 것, 생존 하는 것, 공격 당하지 않는 것 “을 지킬 가능성이 높다.

결론

무언가 글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결론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시스템 본질 상 전쟁 저항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시스템보다 “살아 남는 법, 생존 하는 법, 공격 당하지 않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넋두리를 살짝 하자면, 블록체인을 생각할 때 대부분이 코인, 토큰, NFT, 디파이(DeFi) 등을 생각하고 기술적으로 들어가도 합의 알고리즘, L2 확장성 등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새로운 관점에서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징을 조명해 보고 이에 대해 의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미명 하에 이 글이 나오게 된 까닭도 있다.

블록체인을 전쟁 저항성과 관련시키며 이 글을 쓰면서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의 블록체인은 생각보다 매력적인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았다. 다른 분들도 매번 반복되는 블록체인 토픽에 지쳤다면 이따금씩 새로운 관점에서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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