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금융에서 바라본 블록체인(사례 중심으로)

Jina Park
CURG
Published in
14 min readFeb 4, 2021

2019년 6월, 당시 비트코인 시총(약 200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페이스북(약 650조 원)이 스테이블코인 리브라 자체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한 국가의 GDP 마저 압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중앙은행 고유 권한인 발권력에 도전하자 세계는 떠들썩했다. 이는 각국 중앙기관이 자국 지급결제시스템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디지털자산 재검토 논의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 현재, 지급결제분야는 격변기를 겪고 있다. 법정화폐 발권력을 독점하는 중앙은행부터 화폐를 유통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금융기관 및 지급결제사업자들까지 모두 지급결제수단 및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있다.
2020년 BIS(국제결제은행) 설문조사 결과, 중앙은행의 약 86%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이하 ‘CBDC’)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페이팔 및 비자와 같은 민간지급결제사업자들이 암호화폐(이하 ‘가상자산’)를 지급결제수단으로 편입하는 움직임 역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그 중심에 블록체인이 있다는 것이다.

제도권 금융에서 바라본 블록체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가 발간한('21.1.29) [블록체인 기반 혁신 생태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서비스의 발전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된다.

활용자산을 기준으로, 금융서비스는 먼저 법정화폐 기반의 ① 전통금융과
② 핀테크를 거쳐 ③ 가상자산 기반의 블록체인 핀테크, 더 나아가 ④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로 진화한다.

다만 가상자산만을 취급하는 디파이의 제도화를 논의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② 기존 금융에 대한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 그리고 ③ 제도권 내 편입이 가시화되는 가상자산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그 시작으로 제도권 금융에서 항상 쌍으로 논의되는 I.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Ⅱ. 스테이블코인을 다루고자 한다.

<활용자산을 구분으로 본 금융서비스, 과기부/KISA 보고서>

I. CBDC — 중앙은행의 새로운 화폐

CBDC 정의 및 특징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지준예치금,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이며 전자적 형태를 가진다. (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 BIS)

중앙은행이 발행하였기에 지준예치금, 결제성 예금과 같이 중앙은행의 직접적인 채무이며 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진다.

본원통화(M0) = 현금통화 +예금은행시재금(결제성 예금)+지급준비예치금

<한국은행,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2019.1)>

전자적 형태를 가진 CBDC는 현금 및 지준예치금과 비교하여 거래 익명성 보장 여부 선택, 이자 지급, 보유 한도 설정, 그리고 이용 가능 시간 설정이 모두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 CBDC는 목적 및 용도에 따라 프로그래밍 가능한(programmable) 화폐이다.
이번 코로나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 정부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실시하였고, 2020년 말 기준 전세계 정부, 기업, 개인의 부채는 227조 달러(30경 원)이다. 그러나 돈을 제아무리 많이 풀어도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마이너스 금리 지급 등 통화정책을 실시하는 데 있어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화폐는 아주 매력적이다.

CBDC 유형

CBDC는 발행 목적에 따라 거액결제용(wholesale)소액결제용(retail) CBDC로 구분된다. 거액결제용 CBDC는 금융기관 간 대규모 자금이체를 효율화하고, 소액결제용CBDC는 민간의 지급결제를 보완하는게 목적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국가의 법정화폐 발행 및 통화정책을 수립 및 집행하고, 상업은행을 감독하는 기관이다. 한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설립 목적인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화폐 발행, 통화신용정책 수립 및 집행, 지급결제시스템 관리 등을 담당한다.

<한국은행 주요 기능 및 역할, 한국은행 홈페이지>

우리의 논의 대상인 거액·소액결제용 CBDC는 각각 중앙은행 역할 중 지급결제시스템 개선화폐 발행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거액결제용 CBDC는 현행 지급결제시스템을 보완하려는 목적 가지며 소액결제용 CBDC는 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는 다른 형태의 화폐를 추가 발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렇듯, 중앙은행은 각국 특성에 맞춰 중앙은행 고유 역할에 블록체인(분산원장기술 및 토큰화 자산 포괄) 적용 방안을 활발히 검토 중이다.

i. 거액결제용 CBDC(도매용)

우선, 거액결제용 CBDC는 금융기관 간 결제에 분산원장기술(DLT)를 적용해 효율성 및 복원력 향상, 운영리스크 감소 등 결제시스템의 개선을 도모한다. 주로 결제시스템 고도화를 꾀하는 선진국이 검토 중인 모델이다.

대표 사례: 스위스 국립은행의 Project Helvetia 🇨🇭

Project Helvetia는 스위스 국립은행(SNB)이 BIS 혁신허브(BISIH) 스위스 센터, SIX 그룹과 협력하여 출범한 거액결제용 CBDC 프로젝트이다. 주목적은 중앙은행화폐와 DLT 기반 금융시장 인프라의 연계이다 . 지난해, 토큰화 자산(tokenised asset)의 결제(settlement)에 대한 2가지 PoC(개념증명)를 진행하였다:

  • PoC 1. 중앙은행 화폐 토큰(거액CBDC, 이하 'w-CBDC’)의 발행 실험
  • PoC 2. 기존 중앙은행 지급시스템(SIC*)과 신규 증권결제 디지털플랫폼(SDX**) 간 연계 실험
    * SIC(Swiss Interbank Clearing): 스위스 실시간총액결제(RTGS) 은행간청산시스템
    ** SDX(SIX Digital Exchange): SIX의 디지털거래소로 토큰화 자산의 발행, 상장, 거래, 결제, 서비스 및 수탁을 지원하는 Corda 기반 DLT 플랫폼

두 PoC는 증권대금동시결제(Delivery-versus-Payment Settlement)를 각각 w-CBDCRTGS-연계 방식으로 테스트하였다. PoC는 SIC의 테스트 환경 및 준-실시간(near-live)의 SDX 플랫폼에서 진행하였다.
가장 큰 차이는 w-CBDC 방식의 경우, 토큰화 자산의 발행 및 이동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반면, RTGS-연계 방식에서 중앙은행화폐는 기존 시스템과 동일하게 RTGS 시스템 상에 머무른다.

<PoC1. w-CBDC> w-CBDC를 활용한 증권대금동시결제

첫 번째 경우, 토큰화 자산(w-CBDC)의 발행, 지급, 결제 및 회수 단계까지 포함한다.

PoC1은 총 4가지 Use Case를 테스트했다 :

  • ① 발행: SIC 계정→ w-CBDC로 일대일 변환
  • ② 회수: 거액결제CBDC → RTGS(SIC) 잔고의 일대일 변환
  • ③ 지급: DLT 플랫폼 내 w-CBDC의 이동
  • ④ 결제: DLT 플랫폼 내 w-CBDC 지급 및 이전 (비용 )

<PoC2. RTGS-연계> SIC 잔고(balance)에서의 증권대금동시결제

PoC2에서는 DLT 인프라(SDX)와 스위스 실시간총액결제 시스템(SIC) 간 상호운용성을 실험한다. SDX에서 토큰화 자산이 이동하고 결제는 SIC 잔고에서 이루어진다.

w-CBDC와 RTGS-연계 방식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우선 w-CBDC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시간 지연 없는 atomic 거래 등 DLT 플랫폼의 장점을 십분 살릴 수 있다. 다만, 현행 시스템을 크게 변경하고 중대한 정책 이슈들을 해결해야 한다.
반면, RTGS-연계 방식은 현행 RTGS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아 중대한 법적·정책적 쟁점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행 시스템의 순차적 결제, 대기 메커니즘 등에 종속되기 때문에 여러 대금 간 atomic 결제 실현이 어렵다.

ii. 소액결제용 CBDC(소매용)

한편 소액결제용 CBDC는 현금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민간의 지급서비스 독점에 대응하고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또한, 은행 계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un-banked가 많고 지급결제시스템이 낙후된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금융포용 제고 및 화폐관리 비용 절감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소액CBDC 운영방식은 발행 및 유통 주체에 따라 (1) 간접형, (2) 직접형, 그리고 (3) 혼합형으로 구분된다.

  • (1) 간접형은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상업은행이 유통하는 형태이다
  • (2) 직접형은 중앙은행이 발행부터 유통 및 환수까지 모두 담당한다
  • (3) 혼합형은 상업은행(중재자)에서 KYC(고객확인의무) 및 운영을 담당하지만, CBDC의 지급 지시 승인 및 청산은 모두 중앙은행이 담당한다
<소매용 CBDC 아키텍쳐, BIS (2020.03)>

대표 사례: 중국의 DCEP (소매용-간접운영) 🇨🇳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한 CBDC의 공식 명칭은 DCEP(디지털위안, Decentralised Currency/Electronic Payment)이다.

DCEP는 일반 개인이 사용하는 소매용(소액결제) CBDC로, 인민은행이 발행하고 상업은행이 유통하는 간접 운영 모델을 따른다.

<중국 DCEP 운영모델>

중국은 온오프라인, 실물카드, ATM 등 다양한 장소 및 형태로 디지털위안을 테스트 중이다.

  • (오프라인) 2020.10월 선전시 시민 5만 명 대상 1,000만 위안(약 17억 원) 상당 발행
  • (온·오프라인) 쑤저우 시민 10만 명 대상 200위안씩 총 2000만 위안(약 33억 원) 실험
    *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동닷컴 및 쑤저우 시 1만여 개 가맹점 결제
  • (형태 다양화) ATM 입금, 인출 기능 및 실물 카드 형태 추가 지원
  • (국가 간 결제) 홍콩금융관리국(HKMA)과 디지털위안 준비단계 착수
  • (법적 기반 마련) 2020.10월 디지털화폐에 법적 지위를 부여‘중앙인민공화국 중국인민은행법(은행법)’ 개정안 초안 공개
    * 중국 은행법 개정안 제22조 : (인민은행 외에) 다른 어떤 기관 혹은 개인도 위안화 유통을 대체할 토큰을 발행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
    기타 민간 가상자산을 사실상 금지
  • (협력 확대) 화웨이 2020년 메이트40 시리즈에 디지털위안 지갑 탑재
  • (공식 사용 계획) 2022 베이징 올림픽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는 DCEP 외에도 국가 주도 블록체인 연맹 BSN(Blockchain Service Network)이 있다는 점이다.

BSN은 2020년 자국 상업용 네트워크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각각 출시하였으며, 2021년 1분기 내에 정식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2020년 말 기준, 전 세계 106개 도시에 퍼블릭 노드를 설치했으며 테조스, 이더리움, 네오 등 12개 퍼블릭 체인과의 연동을 진행하였다. 주목할만한 점은, BSN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기업용 결제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2021년 상반기 중 출시 계획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는 제도권 금융과 가상자산과의 접점을 시사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은 지금 🇰🇷

사실 한국은행은 2018년도에 CBDC를 검토한 바 있다. 다만, 이미 효율적인 지급결제시스템을 보유한 한국은 발행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격변하는 지급 결제 환경 및 CBDC 논의 글로벌 확대 추세에 따라, 2020년 1월 금융결제국 산하 디지털화폐연구팀을 신설했다. 그 후, 각국 CBDC 대응 현황에 대한 보도참고자료 발행은 물론, 2020년 4월에는 CBDC 파일럿 계획을 공개했다.

추진 계획에 따라, 지난 11월에는 EY컨소시엄(EY한영, 삼성SDS, 네이버라인 등)을 수행업체로 선정하였다. 한편 업체 선정 과정에서 두 번 유찰되어 컨설팅 일정이 본래 계획보다 지연되었다. 바뀐 일정에 따르면, 올해 3월 컨설팅 종료 후 한국은행 CBDC 파일럿 시스템의 구체적인 방향이 밝혀질 예정이다.
그리고 한국은행 CBDC 파일럿의 방향(거액·소액, 직접·간접·혼합형, 단일원장·분산원장) 및 범주에 따라 금융기관 및 지급결제 사업자의 빠른 대응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 CBDC 파일럿 시스템 일정>

Ⅱ. 스테이블코인, 어디까지 왔나?

한편, CBDC 발행 계획이 없는 국가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다. 달러(💲)는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를 가짐에 따라 위기 때 더 빛을 발한다. 그리고 미국은 달러의 패권을 활용해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실행 중이다. 이렇듯 글로벌 지급결제수단을 가진 미국은 현행 시스템을 바꿀 유인이 적다고 본다.

대신, 미국은 점차 수용력이 커지는 가상자산을 취급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미국 통화감독청(OCC, 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이 있다. OCC는 재무부 산하의 독립적 은행 감독 기구로 미국 내에서 영업하는 모든 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담당한다.

OCC는 시중은행의 가상자산 취급을 단계적으로 허가하고 있다.

  • (‘20.07) 신탁 인가 받은 모든 은행의 가상자산 수탁서비스 제공 허가
  • (‘20.09)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의 지급준비금에 대한 은행 보유 허용
  • (‘21.01) 금융기관의 블록체인 검증 노드 참여 및 관련 스테이블코인 사용 허가
    *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 망을 통한 은행 결제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해석서 공개
  • (‘21.01) 앵커리지디지털뱅크를 첫 美 전국 단위의 가상은행으로 인가
    * 동시에 은행의 가상자산 수탁서비스(custody) 제공, 블록체인 노드 참여 및 블록체인 결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함을 밝힘

새로움이 당연함이 되기까지

2009년 6월 23일, 기존에 없던 화폐가 등장했다(비트코인을 떠올렸다면 조심스레 접어두자). 바로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권이다.

한국은행은 고액권 발행이 화폐 제조 및 관리 비용 등 연간 약 3,000억 원을 절감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소비자들이 휴대하는 지폐 장수 감소와 현금 입출 및 계산에 걸리는 시간도 단축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우려도 있었다. 고액권을 뇌물수수 및 자금 세탁에 사용하는 등 지하경제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금융기관들은 위조지폐 및 오천 원권과 헷갈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직원 교육까지 실시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뒤, 2020년 1~10월 기준 5만 원권 환수율은 25.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려대로 지하경제 양성에 어느 정도 일조하였고 또 많은 이들이 오천 원권과 헷갈리지 않도록 두 번 확인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더 이상 5만 원권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명절 혹은 경조사 때 건네는 5만 원권의 편리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끝으로, 지폐보다 디지털화폐의 편리성이 높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재로써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 모두 제도권 금융에 새로 등장한 개념이다. 하지만 한 번 가시화 된 이상, 디지털자산 역시 보편 타당한 미래가 머지 않았다.

참고문헌

[1] BIS, 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2018)

[2] BIS, The technology of retail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2020.03)

[3] 한국은행 보도참고자료, 중앙은행 디지털화폐(2019.01)

[4] 한국은행 보도참고자료,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파일럿 테스트 추진(2020.04)

[5] SNB, BISIH, SIX, Project Helvetia Settling tokenised assets in central bank money(2020.12)

[6] 과기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공동 발간, 블록체인 기반 혁신 생태계 연구 보고서(2021.1.29)

[7] 조선일보, 부채(빚) 시한 폭탄 300,000,000,000,000,000원(약 30경원 ) 시대(2021.02.01)

[8] 그 많던 ‘5만원권’ 어디로…환수율, 처음 발행된 2009년 이후 최저치(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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