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창업자의 스타트업 창업하기 8화_기획자 없이 기획하기

Gary Kim
당근 테크 블로그
6 min readJun 9, 2018

스타트업이 2~3년을 넘어가게 되면 서비스를 계속 업데이트 하고 사용자 요구사항에 맞춰 여러 기능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서비스 복잡도가 증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전처럼 그냥 새로운 기능을 만들면 되는게 아니라 기존 기능들과 연결이 되거나 충돌나는 부분을 미리 인지하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특히 기능이 점점 많아지더라도 사용자 경험이나 플로우가(User Flow)가 복잡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써야 합니다.

또한 회사가 성장해서 구성원들이 많아지다보면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누군가는 중간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하면서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 시점이 오게 되면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제 프로젝트 매니저(PM)이나 기획자를 뽑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근마켓을 창업할 때 창업자들끼리 공감했던 부분들 중 하나가 개발자(실무자) 중심 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들자였습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아마도 실제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반영해서 만들 때 가장 재미있고 결과도 제일 좋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의 기획안을 개발하는게 아닌 본인 판단 하에 사용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개발할 때 개발속도는 비교도 안 되게 빠릅니다.

당근마켓은 현재 10명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중 개발자가 7명이나 됩니다. 비개발자는 디자이너 1명, 마케터1명 그리고 기획자 출신이면서 공동대표를 하고 있는 저 1명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원 구성이 이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규 서비스나 기능에 대한 기획을 개발자가 합니다. 기획자가 주로 기획을 하거나 비개발자가 주로 PM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전문 기획자보다 기획을 잘 할 수 있나요?”

“PM 역할은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개발자한테 PM역할도 맡기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우선,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해보려고 합니다.

‘기획을 잘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엔 기획에는 ‘감각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서비스를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라거나 ‘이 문제는 정말 불편해한다. 그러니 이런 서비스로 해결해보자’라는 기획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떤 서비스 또는 사업을 만들 지에 대한 상위 레벨의 기획입니다.

이런 기획은 통찰력, 대중심리에 대한 이해, 직관력 같은 감각적인 부분이 큽니다. 이런 감각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수년 간의 업계 경험과 꾸준한 관찰을 통해 키워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사의 모든 개발자에게 이런 기획력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이고, 개발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기획력을 가진 사람이 회사에 1명이라도 있으면 그 회사는 계속 삽질을 하다가도 어느 시점에는 좋은 서비스나 사업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실패와 삽질 끝에 시장에서 통하는 서비스를 하나 잡았다면 그때부터는 지속적인 개선이 답일 수 있습니다. 사용자 의견을 듣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어떤 기능을 새로 출시하고 개선할 지 정하게 됩니다. 서비스와 사용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는 ‘기술적’ 측면의 기획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사용자 플로우를 이렇게 만들자, 이 화면에는 이 기능을 넣자 등의 기획입니다. 사용자 플로우와 화면구성을 정리한 기획서를 스토리보드, 와이어프레임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런 기획은 몇 번의 연습만 해보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근마켓에서는 개발자들이 구글 프리젠테이션으로 기획서를 만듭니다. url로 쉽게 공유할 수 있고 구성원누구나 의견을 달거나 수정/편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획서는 정말 핵심내용만 넣고 나머지는 대충할 수록 좋습니다. 예를 들어 기획서 템플릿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화면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이 화면에 어떤 기능을 넣을지만 본인 편한 방식으로 기술하면 됩니다. )

그리고 실제로 경험 부족으로 기술적 측면이 다소 부족한 기획서를 그려오더라도 실무자간 회의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버개발자가 사용자 플로우가 매끄럽지 않다거나 불필요한 기능을 화면에 넣은 기획서를 그려오더라도 디자이너, 클라 개발자와 협의하는 과정 속에 그런 부분들은 충분히 수정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바일 시대에서 기획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커뮤니케이션 부분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관여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멤버들이 모여있다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능력에 마비가 오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 됩니다.

특히 개발자의 경우 업무 성격 상 코드와 대화하는게 일이다보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약한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디자이너도 많은 경우 개발자와 상당히 다른 코드와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발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개발자나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과 프로젝트 리딩 능력 향상은 당근마켓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을 걸쳐 공을 들이는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본인이 개선하거나 만들고 싶은 기능이 있으면 스스로 프로젝트의 오너(Project Owner)가 되어 다른 실무진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리딩 경험이 쌓이게 되면 신규 서비스 런칭 같은 좀 더 큰 사이즈의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경험도 하게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비스 리더(Service Leader)라는 역할이 생겼는데 고객 지향성, 커뮤니케이션 능력, 프로젝트 리딩의 능력이 검증된 분들은 하나의 서비스를 책임지고 리딩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을 거쳐 실무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프로젝트 진행 능력을 키우게 되고 자연스럽게 PM이나 서비스 리더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결국 당근마켓에서는 기획자가 기획을 하거나 전문 PM이 프로젝트를 리딩을 하는 것이 아닌 만드는 실무자가 직접 기획을 하고 프로젝트를 리딩을 하는 문화가 회사 내에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었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코드 개발이라는 기능적인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서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고 도전적일 수 있습니다만,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는 데에서 오는 에너지와 열정은 아직까지는 어떤 PM이나 기획자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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