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곧 악마가 찾아갈 것이다. 과연 당신은 이 악마를 피할 수 있을까?
프롤로그
악마: 자, 게임을 시작하자.
당신은 삼거리 가판에서 당신만의 비법으로 만든 음료수를 팔고 있다. 지난 2달 동안 장사가 꽤 잘 됐다. 그런데 근처 카페들이 구청에 신고하는 바람에 더는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마침 돈도 좀 모였고 사업도 확장하고 싶었던 참이다.
이 삼거리에서 뒤로 가면 빌라촌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잦지 않고 1) 오른쪽 길로 가면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가 나오고 2) 왼쪽 길로 가면 회사들이 많아서 직장인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이 나온다.
당신의 선택은?
- 오른쪽 길로 간다: 지금까지 손님들을 관찰했을 때 젊은 학생들이 많았다. 오른쪽 길로 가서 가게를 열자.
- 왼쪽 길로 간다: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많이 왔다. 직장인들이 구매력도 더 크고 회사들이 많으니 유리할 거다. 왼쪽 길로 가서 가게를 열자.
어차피 다 망한다.
당신이 어떠한 선택을 했든 그건 중요치 않다. 어차피 다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어디선가 악마가 나타났다. 이 악마는 사악한 마음과 전지전능함으로 무장하고 당신의 소중한 음료수 가게를 한 방에 망하게 하려 한다. 그렇다고 치사하게 번개를 쏘거나 심장마비 같은 걸로 가련한 자영업자인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 (market)의 특성만 살짝 바꾸는 걸로도 충분하다. 그것도 디테일하게. 악마는 디테일에 강하니까…
악마: 흐흐흐…
악마는 디테일에 강하다.
자, 먼저 ‘오른쪽 길로 간 당신’을 만나보자.
당신은 오른쪽 길로 가서 길가에 음료수 카페를 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옷도 좀 젊게 입고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뽑았다. 가게 전면으로 테이크 아웃을 위한 큰 창문도 달았고 내부에는 4개 테이블에 8석 정도 공간이 나온다. 당신이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다.
‘아자아자!!!’
한 보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더운 여름에 학생들이 음료수 빨리 달라고 칭얼거리는 소리가 천사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밤에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몸은 녹초였지만 너무 행복했다.
‘이대로만 쭉 가면 된다.’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자 손님이 확 줄었다. 알고 보니 지난 여름 낮시간에 꽤나 많던 학생들은 방학이라 근처 학원을 다녔던 거였다. 이제 개학을 하고 나니 낮시간에 오는 학생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저녁 시간에도 학원에 오기는 하지만 쌀쌀한 가을 날씨 탓인지 아니면 부모들이 데리러 와서 그런지 예전만큼 매출이 나진 않는다.
가격을 500원 씩 내렸다. 여긴 대로변이라 임대료가 꽤 세서 부담스럽지만 손님 수를 늘리려면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겨울 방학이 오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버텼는데 새로 출시한 따뜻한 음료에 대한 반응이 미지근하다. 게다가 길 건너편에 공차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미어터지네, 아주 미어터져… 난 미쳐버리겠는데…’
‘아… 어쩌지…’악마: 쟤는 저렇게 버티다 망할테니 이제 신경 꺼도 되겠다…
이제 ‘왼쪽 길로 간 당신’ 차례다.
당신은 왼쪽 길로 갔다. 마침 회사들이 많은 빌딩에 작은 공간이 임대로 나와 있어 음료수 테이크 아웃점을 열었다. 가격도 기존보다 500원을 올렸고 젊은 직장인들을 타겟으로 해서 대형 프랜차이즈만큼은 아니지만 인테리어나 패키지 디자인에도 꽤나 신경을 썼다. 오픈하면서 쿠폰 이벤트와 더불어 전단지를 돌리니 손님이 꽤 많이 몰렸다.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다. 아싸!
오픈 후 4주쯤 지나니 장사가 생각보다 잘 안된다. 주변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오긴 하는데 그 수가 많지 않다. 분명 홍보는 충분히 된 거 같은데… 우리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심 시간에 나갔다가 한결 같이 손에 음료수를 들고 돌아온다.
‘어, 뭐지?’
일단 가격을 내렸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서 시음용 음료를 나눠줬다. 약간의 반응이 있었지만 겨우 알바비를 충당할 정도인 것 같다. 매출은 겨우 연명이나 할 정도다.
‘이런 걸 바라고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닌데…’
조금 살펴 보니 우리 빌딩 주변에는 식당이 많지 않았다. 큰 건물 지하에 몇개가 있을 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내가 원래 가판을 했던 삼거리 쪽까지 걸어가서 식사를 하고 그 근처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테이크 아웃을 해서 돌아왔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악마: 너도 이제 끝이다…
악마를 이길 순 없다.
인간 따위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악마를 이길 순 없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겁도 없이.
이 악마가 바로 시장(market)이다. 처음에는 마치 천사와 같았던 시장이 기회를 엿보다 한순간에 악마로 돌변해서 당신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당신은 망했다.
우리는 악마를, 아니 시장을 너무 우습게 본다. 당신이 무심코 지나쳤던 고객들의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들의 이동 경로, 꼭 해야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상권 조사 등등 그 허술한 당신의 빈틈을 악마는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이렇게 시장이라는 이름의 악마는 그 특성을 아주 살짝만 바꿔서 어떤 사업이든 쉽게 망하게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아무리 좋은 상품이 있고 아무리 좋은 팀이 있어도, 당신이 아무리 운영을 잘해도 시장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시장을 이해하고 시장에 순응해서 결코 악마가 마수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장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결코 당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악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타겟 시장 (Target Market)은 우리 사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타겟 시장이라는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은 타겟 고객 (Target Customer)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해서 누가 진정한 우리의 타겟 고객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또한 타겟 고객은 사업 초기에 한 번 정의한 다음 계속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타겟 고객은 수시로 변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속적으로 관찰과 실험을 반복하여 그들의 변화를 포착하고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Product-Market Fit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타겟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상품 (또는 서비스)을 제공할 때만 우리는 악마의 손을 피해 가까스로 살아 남을 수 있다. 만약 그 여정을 멈추는 순간, 당신은 악마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에게 이런 악마가 찾아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가?
맺음말
만약 당신이 다시 맨 처음 음료수 가판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신의 고객이 누군지 안다면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장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결코 당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악마다.
- 언제나 시장이 이긴다. (Market always wins!)
- 고객이 곧 시장이다.
-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당신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에필로그
왜 굳이 악마를?
이미 세상에 시장과 고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들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창업자는 여전히 시장과 고객보다는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상품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시장이 자신에게만큼은 따뜻할 거라는 막연한 낙관론 속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시장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왜 우리가 시장에 순응해야 하는지를 악마라는 존재를 이용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창업자는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결승점이 정해진 자전거 경주에서 멋지게 달리는 그런 자전거가 아니라 좌우로 흔들리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찾아 헤매는 자전거다. 그녀가 찾아야 하는 방향은 목표 시장이, 목표 고객이 알려 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볼지, 얼마나 멀리 볼지, 얼마나 페달을 밟을지, 얼마나 균형을 잡는 데 신경을 쓸지 등등은 온전히 그녀의 선택이고 팀의 선택이다. 결코 모든 빈틈을 완벽하게 메꿔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넘어지지 않고 계속 목표 시장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안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 힘내자.
그로스 해킹과는 어떤 관계가?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로스 해킹은 눈을 가리고 로켓을 쏘아 대는 것과 같다. 그로스 해킹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지표’(Metric That Matters 또는 North Star Metric)는 북극성처럼 우리가 목표 시장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목표 시장을 모르고 그로스 해킹을 한다는 건 열심히 암세포를 키우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