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가치를 제고하기

Yeon-Hyeong Yang
DC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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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Aug 22, 2018

(이것은 출사표인가?)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기술에 근거한 암호화폐들은 목적과 계획에 맞게 구현되고 운영될 경우 기존의 화폐를 대체하거나 적어도 기존의 결제 체계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암호화폐의 시장가치는 점차 높아졌으며, 급기야는 투기심리까지 요동치면서 2017년과 2018년을 지나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직도 사회 전반적으로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선은 차가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가 내포하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은 대단한 것이다. 블록체인을 건전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대로 상황이 흐른다면 현재의 금융 및 경제 구조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며 유통 및 상업 분야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산업계 일반에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분야라고 할 법한 것들이 딱히 없는 지경이다. 다만, 기존의 기술로 충분한가,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 더 개선되는가, 또는 암호화폐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가에 따라서 적용되는 곳도 있고 적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분야가 가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기술적, 경제적 미래 가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의 아름다운 모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난관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기술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노드들이 과연 여러가지 백서에 등장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운영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블록체인, 분산원장기술, 마이닝 노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자료를 찾아 볼 것) 두번째는 막대한 자원과 자금을 투입하여 생산해 내는 암호화폐들의 가치를 과연 일반 대중에게도 보증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첫번째 문제는 이미 여러가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쪽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두번째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암호화폐는 그 자체로는 가치를 보증하기 어렵다. 생산해 낸 사람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미래 가치를 기대하고 선점하기 위한 비용으로 취급해야지 이 생산 자금 자체로 현재 가치를 보증한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 비트코인으로 치킨을 사 먹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누군가가 천만원을 들여서 획득한 비트코인을 아무 관심도 없던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금전이나 재화를 받고 넘기겠다고 하면 이 사람이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 사람을 고발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비율이 아주 낮을 것이며 이 사람들도 비트코인의 현재가치보다는 미래 가치를 기대하거나 거래소의 출렁거리는 시세에라도 팔아 넘겨서 현금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은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들의 시세가 수일 사이에도 10–20%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암호화폐들의 불안한 지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의 가치는 무엇으로 보증해야 하며 그 지위는 어떤 방식으로 안정화될 것인가. 이는 현실의 화폐를 보면서 풀어 볼 수 밖에 없다.

달러화의 경우는 행정부가 아닌 민간 기관에서 보증하고, 원화의 경우도 엄밀하게는 정부가 직접 보증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쉽게 끌어가기 위해서 정부(혹은 그와 비견할 만큼 공신력이 있는 주체)가 보증한다고 하자.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화폐의 가치를 정부가 보증했으므로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 화폐의 가치가 효력을 가진다. 그런데 실은 틀렸다. 달러화가 금본위제였을 때는 달러화를 가져가면 그에 상응하는 금을 내준다고 보증했을 테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으며, 원화의 경우에도 해당하는 지폐나 동전에 100원이라고 표시돼 있다면 대한민국의 경제 주체들은 이것을 모두 100원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만을 보증한다. 치킨 한 마리가 만원인 것을 보증하지 않으며 원화 대비 금의 비율을 공시하고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이 100원 동전은 위조되지 않은 것이며 이 동전을 가져다가 누군가에게 주면 그 누구든 안심하고 100원이라는 액면가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도 100원의 액면가치를 보증하지 않는다. 숫자와 단위가 믿을 수 있는 것일 뿐 이것이 현실에서의 가치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는 원화나 암호화폐나 처지가 비슷하다.

정부가 화폐의 액면가가 아닌 가치 자체를 보증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원화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가치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투입되는 자금의 양도 전체 화폐 규모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편이다.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방법 외에도 중앙은행과 공조하여 이자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량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이 때 조정되는 이자율도 갑자기 2–30%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이다. 전체 화폐 규모에 비해서 작은 비율의 조정으로 화폐 경제를 뒤흔드는 마법 같지만 실제로 변화도 작다. 경제 주체들이 이 조정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원가나 인건비나 시중 은행 이자율이나 유통 마진에 연쇄적으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인데 경제 정책이 막장이 아닌 이상 실제 원화 가치를 이리저리 뒤흔드는 것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화폐 가치를 안정화하는 모양은 흡사 inverted pendulum을 다루는 것과 같다. 막대의 위쪽 끝에는 꽤 큰 질량의 물체가 달려 있고 막대의 반대쪽을 세밀하게 조정해서 막대를 곧게 선 자세로 유지하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면 막대가 본래 서 있던 위치로부터 많이 이동할 수도 있지만 넘어지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다. 막대 끝에 달린 물체가 무거울 수록 조정이 용이하다. 오히려 막대 자체의 질량에 비해 막대 끝에 달린 물체가 가볍다면 곤란하다. 아래쪽에서 작은 조정만 해도 막대의 위치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이 현재의 암호화폐의 거래소 시세와 닮아 있다. 작은 소문 하나에도 며칠 새에 10–20%는 우습게 요동친다. 막대 끝의 질량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27일 기준 암호화폐 전체 발행 규모는 약 4천억 달러이지만 대한민국 2016년 GDP인 1.2조 달러보다도 작은 규모이고, 거래로 시세가 아니라 실제 이 암호화폐들이 지탱하고 있는 GDP는 도대체 얼마일지 추정하기도 힘들고 과연 GDP라고 부를 수 있는 실체가 있는지도 의문인 상태이다. 미래가치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현재가치는 너무나 부실하다. 그런데도 거래소 시세 기준으로 이정도 규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현재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 inverted pendulum 상황에서 막대 끝에 달린 물체란 결국 암호화폐가 지탱하는 실물경제이다. 그 물체의 질량이라는 것은 실물경제에서의 GDP가 될 것이다. 암호화폐가 실물경제에 대대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 현재의 거래소 시세는 그저 한여름 정자 그늘에서 즐기는 달콤한 낮잠 속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는다.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433

현재 암호화폐를 실물경제와 연결시키기 위한 시도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주로 결제(payment) 시스템에 집중되어 있다. 당장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전체 결제 규모에서 신용카드나 기타 다른 수단을 통한 전자적 결제는 그 비율이 상당하다. 이미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지폐나 동전이 아닌 이상 암호화폐를 이용 결제도 전자적 결제라는 점에서 기술적인 장벽은 크지 않을 것이다(물론 거래 처리 속도 문제는 해결되어야 함). 이것이 미래에는 궁극적인 해결이 되겠지만 당장 암호화폐로 결제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것을 받아줄 경제 주체가 많이 있진 않을 것이다. 지불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어차피 원화 결제이지만 중간 단계에만 암호화폐가 잠시 사용되는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암호화폐의 가치가 실물경제에 투영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암호화폐가 실물 경제에 긴밀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지불하는 쪽도 보유하고 있던 암호화폐로 지불하고 받는 쪽도 거래의 끝에 획득하는 것이 암호화폐여야 한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 시스템을 구현하려는 시도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VAN, PG, POS 등으로 연결된 중간에 들어가 위해서 고군분투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있다. 이들은 기존 결제 시스템의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에 굳이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 수 있다. 암호화폐 보유자들이 전체 경제활동 가능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또는 투기)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상거래에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기존의 VAN, PG, POS 업체들을 우회하는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원화를 두고 굳이 암호화폐로 상거래를 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비켜가지 못한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중간 기착지들은 만들 수 있다. 기존에는 연결 고리가 없던 원화 기준 상거래 시스템에 암호화폐 결제를 밀어 넣기보다는 암호화폐가 거래 수단이 되는 별도의 상거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단, 주의해야 할 것은, 암호화폐를 일상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일반 대중의 규모가 크지 않다면 기존의 원화 기반 상거래 시스템으로부터 옮겨와서 암호화폐를 이용한 거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게 DCGraph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한데…) 따라서 암호화폐를 이용한 이 새로운 상거래 시스템은 단지 암호화폐로 상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서 기존의 상거래 방식에는 없는 새로운 특장점이 있거나 기존에는 번잡한 방식으로 처리하던 것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등의 비교우위가 있어야 한다.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해결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 자체가 경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경제적인 문제를 풀게 될 수 있어서 해결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정치적인 해결은 인내와 설득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암호화폐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남는 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 암호화폐 상거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이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상거래의 특장점으로 첫번째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암호화폐가 기반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의 특장점 자체이다. 흔히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탈중앙화된 거래 체계라는 것인데, 탈중앙화 자체가 장점이 될 수는 없다. 중앙화된 솔루션으로 충분히 문제가 해결된다면 말이다. 탈중앙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강력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중앙화된 솔루션은 신뢰할 수 있는 중앙화된 하나의, 또는 소수의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시스템인데, 탈중앙화된 솔루션은 이런 하나 또는 소수의 플레이어가 없는 문제에서 강점을 가진다. 매번 신뢰할 수 있는 강력한 플레이어 하나를 선정할 수 없거나(존재하지 않거나 선정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소수의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않거나 하는 상황에서 탈중앙화된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다. (일반 대중이 강력한 소수의 플레이어들의 영향력을 달갑지 않아 하는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경향은 다분히 정치적인 견해에 좌우되므로 일단은 이 이야기에서 배제하도록 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탈중앙화라는 구호 자체보다는 풀기 어려운 신뢰의 문제를 비교적 무리 없는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거래 기록을 신뢰하기 위해서 특정한 블록 생성자 하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에 퍼져 있는 다수의 잠재적 블록 생성자들을 집단적으로 신뢰하는 시스템이다. 이 상황이 되면 애초에 시스템을 통제하던 강력한 플레이어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된다.

또하나의 특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소수의 강력한 플레이어들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특성을 갖는 상거래 시스템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금을 받고 도망가는 판매자를 걱정한다면 에스크로 매커니즘이 기본 지원되는 상거래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고, 선매 방식으로 대금을 미리 지급받는 바우처 방식이 필요하다면 이런 특성이 근본적으로 반영된 시스템을 신뢰기반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래 처리에 소요되는 수수료가 걱정이라면 저렴한 비용으로도 운영 가능한 상거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꼭 특정한 기업의 수익 사업이 되지 않더라도 협동 조합 형태의 거래 처리 시스템도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상거래 시스템 구축을 위해 거대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가능할 수 있다. 기득권을 굳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은 대체로 자체적으로 재화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며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하여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태의 서비스는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거래 기록 시스템이다. 하지만 거래 기록 시스템이 블록체인을 사용했다거나, 혹은 탈중앙화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험난한 앞날만이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가 만들어졌다고 그 자체로 가치가 창출된다고 순진하게 믿는다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반의 서비스가 모든 경제 활동에서 중추로서 작용하겠지만 그런 미래를 (더 빨리) 불러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암호화폐와 실물경제를 연결하려는 보다 대담한 시도들이 필요하고, 기존의 틀에 구애받지 않으면 가능성에 제한이 있을 리 없다. 미래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오늘 새로운 물건을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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