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은행 — 1부

Min Young Kang
Decipher Media |디사이퍼 미디어
33 min readDec 11, 2023

Disclaimer: 서울대학교 블록체인 학회 디사이퍼(Decipher)에서 ‘미래의 은행’이라는 주제로 Weekly Session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본 아티클은 비즈니스 모델로써의 ‘은행’과 새로운 기술로써의 ‘블록체인’이 합쳐졌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에 대해 상상해보고 그 변화를 살펴보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포함된 어떠한 내용도 투자 조언이 아니며, 투자 조언으로 해석되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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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강민영, 최원재 of Decipher

Seoul Nat’l Univ. Blockchain Academy Decipher(@decipher-media)

Reviewed By 디사이퍼 미디어팀

목차

1.은행의 사업 모델

  • 역할과 기능
  • 은행 관련 규제
  • 은행 재무제표 분석

2.이미 일어난 변화

  • 스테이블코인
  • CBDC
  • 소결론

블록체인은 그 등장부터 기존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 등장 이후로 실제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기술의 효용과 가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 변화 중에서 특히나, 블록체인 기술이 은행이라는 기존 사업 모델과 합쳐져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등장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전통적인 은행 사업의 본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고 새롭게 등장한 은행의 모습과 비교해봅니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원천인 블록체인 기술이 새로운 은행의 등장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기능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1. 은행의 사업 모델

1–1. 역할과 기능

본 섹션에서는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 은행의 역할을 정리해보고 한국의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수익모델을 살펴보며 은행‘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은행이 맡은 세 가지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은행의 역할1: 돈을 빌려주는 곳

고대 메소포타미아 때부터 재화를 빌려주고 그 결과물로 농산물을 교환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점토판을 소지한 사람이 추수철이 되면 얼마만큼의 보리를 받을 수 있는지 적혀 있거나 만기가 되면 일정 수준의 은화를 지급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이런 점토판은 왕궁이나 사원을 통해서만 발행되어서 중앙화된 권력을 통해 당위성과 공신력을 부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은행의 역할2: 돈을 보관해주는 곳

돈을 보관해주는 역할은 현대 대중들이 은행에 기대하는 기본 역할로서, 어떤 면에서는 가장 원천적인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예금이나 증서로 더 친숙한 기존 ‘은행권’의 개념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도시국가별 전쟁이 빈번했는데 이때 교환가치를 지닌 귀금속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은 종교 신전이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신전에 대한 공신력을 갖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신의 노여움을 받는다’라는 ‘종교적 믿음’이었습니다. 이 때에도 신전에 귀금속을 맡기기 위해서는 보관료를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13세기까지 시간이 흘러 중세 유럽에서는 귀금속을 금세공업자들에게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금세공업자들은 그들의 영업상 재료(금, 은)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튼튼한 금고를 이미 갖추고 있었고, 이들은 귀금속의 순도를 판별할 능력도 있었기에 공신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귀금속 보관의 증서로 보관증을 발급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귀금속을 보관 할수록 실물 귀금속을 교환하지 않고 보관증만을 교환하는 행위가 활발해졌습니다. 보관증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금세공업자 입장에서는 보관하고 있는 실물 금을 찾아가는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찾아가지 않고 남는 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빌려주기 시작하면서 ‘대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금을 찾아가는 비율 10%는 현대 은행의 ‘지급준비율’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본인들이 맡긴 금으로 금세공업자들이 부를 쌓는다는 것을 금의 실제 주인들이 알게 되면서 항의하자 금세공업자들의 대출이자 수익을 실제 주인들과 일정 부분 나누면서 현재의 ‘예금이자’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은행의 역할3: 돈을 교환해주는 곳

은행의 기원을 따져보면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빠지지 않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는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였는데 각 도시국가들이 서로 다른 화폐제도를 갖고 있어 서로 교역하기 위해서는 중간에서 환전해주는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전문 환전상들은 귀금속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과 벤치를 두고 상인들과 거래를 했는데 이 때 벤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Banco를 어원으로 해서 Bank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여담으로, 환전 사업이 성행하면서 파산하는 환전상들도 생겨났는데 이 때 부서진 탁자를 의미하는 Banco rotto 어원을 따 파산을 의미하는 Bankruptcy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위와 같이 필요에 의해 인류가 개발해온 ‘은행’이라는 존재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다음과 같은 5가지 기능으로 조금 더 세분화되고 다듬어졌습니다.

은행의 기능 5가지

  1. 수신업무 — 예금의 수입
  2. 여신업무 — 수입된 예금을 재원으로 한 자금의 공급
  3. 자금의 중개 — 예금의 수입과 자금의 공급을 통하여 단기 신용을 장기로 전환,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
  4. 신용창조 — 본원적 예금을 기초로 파생적 예금을 창출
  5. 교환업무 — 환업무를 통한 자금결제의 원활화

위와 같은 은행의 기능은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서로 다른 목적에 특화된 은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한국을 기준으로 은행의 종류를 구분해보면 먼저 화폐를 관리하는 중앙은행과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접할 수 있는 예금은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금은행은 세부 적용법에 따라 ‘은행법’을 따르는 시중은행, 지방은행, 외국은행과 ‘특수은행법’을 따르는 특수은행, ‘인터넷전문은행법’을 따르는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나뉩니다. 조금 더 우리 생활에 와닿고 세부적인 방식으로는 한국은행 웹사이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금융기관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 중앙은행: 한국은행
  • 시중은행: KEB하나은행, SC제일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외환은행, 우리은행, 한국시티은행
  • 지방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부산은행, 전북은행, 대구은행, 제주은행
  • 특수은행: 기업은행, 농협, 수협,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이하)
  • >> 종합금융회사: 우리종합금융
  • >> 상호저축회사: SBI저축은행, 애큐온저축은행, 키움YES저축은행, 푸른저축은행
  • >> 투자신탁운용회사: DB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대신투자신탁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 >> 우체국예금: 우체국예금보험
  • 증권회사, 보험회사, 기타금융회사 등등

1–2. 은행 관련 규제

위에서 나열된 은행들만 보아도 일반 대중 입장에서 은행은 항상 거대한 존재이고, 중앙 정부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주체만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은행이 강력한 규제를 적용받는 대표적인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각 은행에 적용되는 법률의 주요 내용을 비교해보면 은행을 ‘창업’한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울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

  • 근거법 : <은행법>
  • 최소 자본금 요건 : 1,000억원 (지방은행의 경우 250억원)
  • 자기자본비율(BIS): 8% 이상 유지
  • 지급준비율 : 7%(기타예금), 2%(정기예금, 정기적금, 상호부금 등)
  • 금감원 규제 기준 : 보통주 자본비율 7.0%, 기본자본비율 8.5%, 총자본비율 10.5%

특수은행

  • 근거법 : 한국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한국산업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
  • 최소 자본금 요건 : 기업은행(10조원), 수출입은행(15조원), 산업은행(30조 이내)

저축은행

  • 근거법 : <상호저축은행법>
  • 최소 자본금 요건 : 120억원(특별시 본점 소재인 경우), 80억원(광역시 본점 소재인 경우), 40억원(도 단위 본점 소재인 경우)
  • 자기자본비율(BIS) : 4% 이상 유지

인터넷전문은행

  • 근거법 :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 최소 자본금 요건 : 250억원

비은행 전자금융 계열(예시: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페이, 삼성페이 등)

  • 근거법 : <전자금융거래법>
  • 자본금 요건 : 20억원
  • 해당 업종 : 자금이체업, 대금결제업, 결제대행업, 지급지시업

이러한 법률들은 예금자 보호와 은행의 자본시장 순기능 사이에서 은행의 적절한 역할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변화한 법률과 규제 또한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은행업 자체의 성장이 정체되는 지점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기존 은행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은행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스몰라이센스(인가 세분화), 챌린저뱅크 등의 자발적인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챌린저뱅크는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존 은행업의 변화로, 특정 금융 서비스에 특화된 소규모의 고객을 대상으로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은행을 의미합니다. 쉽게 생각해보면, 거대한 은행업을 ‘자영업’처럼 작게도 꾸려볼 수 있도록 규제가 뒷받침한 개념이 챌린저뱅크입니다. 뒤에서 살펴볼 ‘이미 일어난 변화’에서는 이제 새로운 작은 조직도 은행을 창업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리서치 내용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은행 창업’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실제로 자영업처럼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해외 챌린저뱅크 사례 두 가지를 아래와 같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챌린저뱅크 사례1: 오크우드 스테이트 은행(The Oakwood State Bank)

오크우드 스테이트 은행은 미국 텍사스주의 시골 마을, 오크우드에 있는 은행입니다. 1900년에 시작한 이 은행은 인터넷뱅킹은 고사하고 현금자동지급기(ATM)도 없습니다. 오크우드 은행은 2008년 기준, 약 600명의 소규모 고객이 있으며 모두 마을 사람들로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고객을 구분할 정도입니다. 2014년말 기준, 이 은행의 총자산은 약 600만 달러에 순이익이 10만 달러 정도로 소규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대한 은행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미국 은행들의 자산수익률(Return on assets) 평균인 1%보다 높은 수준으로, 일반 은행보다 더 높은 안정성과 건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챌린저뱅크 사례2: 라이파이젠 가메스펠트 협동조합 은행(Raiffeisen Gammesfeld)

라이파이젠 가메스펠트 은행은 독일의 가장 작은 은행 중 하나입니다. 전통적인 소매은행 업무만 취급하는 이 은행은 상근직원이 1명뿐입니다. 대표이자 직원인 피터는 고객 응대에서부터 청소까지 모든 일을 혼자하고, 아직도 많은 업무에 타자기를 이용합니다. 약 400명의 고객과 거래하며 연간 약 4만 유로의 이익을 꾸준히 내고 있는 이 은행은 가메스펠트의 주민이 아니면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때 큰 은행들이 부실에 빠지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돈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마을 사람이 아니므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사례만 보아도 기존에 생각하던 거대한 은행 사업을 조금은 더 가볍게 생각해볼 수 있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연 은행을 ‘창업’한다는 생각까지 해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위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 은행의 기능 중 몇 가지를 지속 가능하게 구현하고 이러한 서비스에 만족하는 고객들만 있다면 누구나 은행을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1–3. 은행 재무제표 분석

앞에서는 은행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고, 은행의 사업에 대해 보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재무제표를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특정 종류의 은행에 국한하기 보다는 각 은행 종류별로 원화예금 규모가 가장 크고 시장점유율 1위인 한국의 은행 세 곳의 사업 모델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중앙은행은 한국은행, 시중은행으로는 국민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은 카카오뱅크의 재무제표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각 은행의 재무제표를 살펴보기 앞서, 기본적으로 은행이 수익을 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이자이익’ 입니다. 흔히 우리가 예대마진이라고 부르는 성격의 수익이 대부분이며, 은행이 대출고객에게 받는 대출금리와 예금고객에게 주는 예금금리의 차익입니다. 또한 은행이 수신업무를 통해 확보한 자산을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여 수취하는 이자 또한 이자이익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비이자이익’ 입니다. 이는 카드, 신탁, 보험 등의 금융 상품을 판매하고 얻는 수수료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얻는 매도 차익인 투자 수익으로 구성됩니다.

은행은 보편적으로 이렇게 두 가지 유형의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은행들은 2019년 기준으로 총이익 대비해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86.2%로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 13.8%에 비해 높은 상황입니다. 해외의 은행들은 이자이익이 총이익 대비 50.1%~63.7% 정도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해 한국의 은행들은 이자이익으로 수익 구조가 편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자이익은 ‘금리’와 같은 거시적인 경제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수익으로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거나 정책방향에 따라 순이자마진(NIM)이 축소될 여지가 많습니다. 반면 비이자이익은 은행이 금융 상품을 기획하기에 따라 수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사업 관점에서 한국의 은행들은 비이자이익 비중을 증가시켜야 더 건강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의 은행 수익 구조에 대해 실제 현업에서는 해외 진출, 규제 완화, 금융 상품화 등을 타개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처: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미래와 시사점> 논고 (2020.4)

한국은행 재무제표

한국은행은 한국의 중앙은행으로서 화폐를 유통시키는 특수한 설립 목적 때문에 수익-비용 구조가 일반 은행이나 기업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약대차대조표는 2023년 9월 기준으로 최신 자료를 살펴보았고 요약손익계산서는 2021년, 2022년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요약대차대조표>

자료 출처: 한국은행

일반적인 은행은 대출고객에게 빌려준 돈인 ‘대출채권’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예금고객에게 받은 돈인 ‘예수부채’가 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보면 대출채권과 예수부채 항목은 찾을 수 없고 ‘유가증권’과 ‘화폐발행’, ‘통화안정증권발행’이 자산과 부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스스로가 발행한 화폐로 미국 채권, 은행채 등의 유가증권을 매수하여 ‘유가증권’ 형태의 자산을 높은 비중으로 확보하고 있고, 화폐를 새롭게 발행(화폐발행)하거나 한국은행 자체의 채권(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여 부채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차대조표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자산과 부채의 성격을 통해 한국은행은 화폐를 발행하거나 회수하여 시장에서 통화 공급량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약손익계산서>

자료 출처: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에서는 자산의 성격 관점에서 살펴보았다면, 손익계산서를 통해서는 수익과 비용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주된 수익은 앞에서 살펴본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유가증권(미 재무부 채권이 대표적)에서 나오는 수입이자와 유가증권 매매차익 입니다. 이러한 주된 수익원 구조 때문에 미국 국채 금리와 가격에 따라 한국은행의 손익은 1조원대로 출렁거리게 됩니다. 비용은 2021년 기준, 일반 경상운영비는 4,300억원 밖에 되지 않지만 정책비용 명목으로 10조 7,817억원을 사용했습니다. 정책비용은 한국은행의 특수성이 반영되는 비용인데, 앞서 부채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통화안정증권’에 지불하는 이자비용(1조 4,635억원)과 외화자산 운용비용(유가증권매매손실 2조 7,674억원), 화폐제조비(1,284억원)가 정책비용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손익구조로 한국은행은 연간 2조~7조원 가량의 세후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으며, 세후 순이익에서 법정적립금 30%를 제외하고 남은 잉여금은 국고에 납입되어 나라의 곳간을 채우게 됩니다. 사실 한국은행이 내는 법인세 또한 국고에 납입되는 것이므로 한국은행이 해마다 2조~6조원 정도를 나라 곳간에 순수하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보았을 때 한국은행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약 600조에 이르는 자산을 운용하는 거대한 국립 자산운용사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은행 재무제표

시중은행 중 시장점유율 1위인 국민은행은 2022년 기준 517조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어 자산, 부채, 자본의 규모와 비중만 봐서는 한국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산, 부채의 성격과 손익계산서 세부사항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약대차대조표>

자료 출처: 국민은행 사업보고서

국민은행의 손익계산서는 예대마진에 해당하는 ‘순이자이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발행한 화폐로 사들인 유가증권의 이자손익, 매매차익이 주된 수익-비용 구조였지만, 국민은행은 이러한 특수성이 없기 때문에 순이자이익으로 전체 영업수익의 90% 가까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비용 또한 정책비용이 대부분이었던 한국은행과 다르게 국민은행은 일반관리비 비중이 가장 크다는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거대한 자산운용사 모습을 가지고 있어 거시경제의 변동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당기순이익의 변동폭(2조~7조)이 큰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국민은행과 같은 시중은행은 예금이자, 대출이자가 모두 동일하게 금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차이인 순이자이익은 비교적 안정적인 변동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중은행은 대출채권으로 대부분의 자산을 구성하기 때문에, 자산 포트폴리오로 수익을 얻는 자산운용사보다는 예대마진이라는 한가지 특정한 수익구조를 영위하는 사업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뱅크 재무제표

기존 은행업계 안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사례로 인터넷전문은행을 비교해봄으로써 혹시 차별적인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를 통해 시중은행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인터넷전문은행은 짧은 업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규모에서만 시중은행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만, 비용 부문에서는 국민은행은 영업수익 대비 일반관리비 비중이 45%가 넘는 것에 비해 카카오뱅크의 판매관리비 비중은 24%로 인터넷전문은행의 특화된 목적에 맞게 고정비 비율이 확연히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대차대조표>

자료 출처: 카카오뱅크 사업보고서

<요약손익계산서>

자료 출처: 카카오뱅크 사업보고서

2. 이미 일어난 변화

일반 기업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의 규모가 전체 자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면 매우 부실한 기업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행은 다른 산업과는 차별화되는 사업 구조로 인해 자산의 대부분이 부채에 해당하고 이러한 성격의 자산을 시장에서 이자 수취나 매매 차익을 통해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익 구조는 법률을 통해서 규제받기도 하지만 그 법률의 틀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수익을 보장받기도 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은행은 거대한 자산운용사, 시중은행은 예대마진을 규모의 경제로 풀어낸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때, 기존 은행의 사업 모델은 현 블록체인 산업의 스테이블코인 사업 모델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고객의 법정 화폐를 입금(예금)하거나 출금하여 가상화폐와 교환하는 구조에서 은행의 ‘수신업무’, ‘자금의 중개’, ‘신용의 창조’ 기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출처: COIN98 Insights 테더 서비스 플로우

2–1. 스테이블코인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생겨난 가상화폐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은행과 어떠한 면에서 비슷하고 어떠한 면에서 다른지 살펴보기 위해 현 시점 기준 1위, 2위 유통량을 가진 스테이블코인 $USDT, $USDC의 자산 구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처: 코인마켓캡 기준 상위 3개 스테이블코인 유통량(2023.11.17)
출처: Curve 3 pool reserves 현황(2023.11.19)

Tether Ltd. 회사의 $USDT

Tether Ltd.(이하 테더)는 BVI(British Virgin Islands)에 설립된 회사로 규제 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반 기업의 감사보고서와 동일한 형태의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없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본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를 직접 비교해보기는 힘들어 이들이 확보한 미국 달러를 어떤 형태의 자산으로 보유하고 운용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자산의 구성>

출처: Tether Independent Auditors’ Report

테더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9월 30일 기준 총 자산은 약 863억 달러, 2022년 9월 30일 기준 약 680억 달러로 총 자산 규모가 1년 만에 26.9% 성장했습니다. 단순 자산 규모의 성장만 보아도 전통적인 은행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 변동성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테더는 자산의 대부분을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금성 자산 중에서도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자 유가증권인 미국 국채(단기국채 T-bill)와 환매조건부채권으로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어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살펴본 ‘유가증권’ 자산의 구성과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가상자산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이한 자산 구성은 바로 테더가 올해부터 ‘비트코인’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테더는 공식 발표에서 새로운 투자 전략의 일환으로 2023년 5월부터 수익의 최대 15%를 사용해 비트코인을 정기적으로 매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 분기별 공개하는 자산 보고서를 통해, 2023년 9월 30일 기준 1 BTC = 약 USD 27,000이므로 61,518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5월에 발표한 비트코인 매수 전략 소식 이후로 9월까지 약 4개월동안 매월 약 15,000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매수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수익 추정>

출처: T-bill 금리, 역레포 금리 등 공개 자료를 통한 자체 추정

테더 회사의 수익 또한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자료는 없고 대략적인 추정만 해볼 수 있습니다. 배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테더 수익은 약 60억달러로 예상되며 9조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예상 수익인 55억달러보다 큰 규모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테더의 수익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산 운용 수익이며 두 번째는 법정화폐 미국 달러와 가상화폐 USDT 사이의 입금, 출금 수수료 입니다. 자산 운용 수익은 현금성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T-bill의 1년 평균 금리 1.05%(2021년 9월~2022년 9월)와 4.73%(2022년 9월~2023년 9월)를 22년 9월, 23년 9월 시점에서의 T-bill 자산 액수에 단순 곱을 했습니다. 역레포 또한 공시되어 있는 1년 평균 금리 0.77%(2021년 9월~2022년 9월), 4.58%(2022년 9월~2023년 9월)를 역레포 자산 액수에 단순 곱하여 구하였습니다. 다른 자산의 경우, 예를 들어 비트코인 자산의 경우 매각차익을 실현했다고 생각할만큼의 자산 변동이 없어 수익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입출금 수수료의 경우, 테더의 수수료 체계(최소 금액 10만달러, 수수료 0.1%)는 공개되어 있지만 온체인 상에서 실제 고객의 입출금 수량과 테더사에서 일단 발행만 해둔 수량을 가려내기 힘들어 수수료 수익을 정확히 계산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자산 운용 수익만 굉장히 보수적으로 계산해보아도 34억달러의 자산 운용 수익을 얻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비용 측면에서는 시중은행과 테더의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테더는 법정화폐에 대한 대가로 USDT를 발행할 뿐 USDT 홀더들에게 그들이 맡긴 법정화폐에 대한 예금이자를 지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홀더들이 입출금 과정에서 수수료를 내야만 합니다. 또한 테더는 어떠한 오프라인 지점이나 인프라를 갖출 필요가 없으므로 회사 인건비 외의 비용은 유의미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테더는 약 10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여 최소 4.5조원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사업 구조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테더가 공식 사이트에서 공개한 2023년 1분기 순수익은 14억달러이며 2분기는 순수익이 아닌 영업이익이 10억달러입니다. 이러한 보도자료를 참고해볼 때 올해 4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입니다.

Circle 회사의 $USDC

$USDC는 P2P 페이먼트 회사인 Circle과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인 Coinbase가 합작으로 설립한 Centre에서 발행/소각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USDC는 테더와 다르게 미국 정부의 엄격한 규제 아래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회계 법인에서 검증한 Reserve의 담보 자산 가치를 매달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명성을 장점으로 하여 뒤늦게 나온 USDC가 USDT의 시장 점유율을 따라잡기에 이르렀지만, USDC Reserve 중 타기관에 예탁해둔 현금의 비중(20%) 중 상당 부분이 작년에 은행 파산 사건이 일어났던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예치되어 있어 USDC를 뒷받침하는 자산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고 이후 USDC의 점유율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산의 구성>

출처: Circle USDC monthly assurance and transparency report

USDC를 뒷받침하는 자산은 현금성자산이 80~95%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USDT와 유사하며, 미국 단기국채(T-bill)보다 환매조건부채권의 비중이 높은 것은 USDT와 조금 차이나는 점입니다. 자산 운용 관점에서 각 자산을 어떠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할지는 자산 운용 회사마다 차이가 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사업 모델 관점에서는 USDT와 USDC가 서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익 추정>

출처: T-bill 금리, 역레포 금리 등 공개 자료를 통한 자체 추정

USDC의 수익 또한 테더와 같이 투명하게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단순 추정을 해볼 수 있을텐데, USDC는 현재 기준으로 입출금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USDC의 수익 구조는 자산 운용 수익 뿐이라고 추정됩니다. 위에서 테더의 수익을 추정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1년 T-bill 금리, 역레포 금리를 각각 자산의 양에 단순 곱하여 위의 표와 같은 수익을 추정해보았습니다. 굉장히 보수적인 기준에서 USDC는 2023년 9월까지 1년간 최소 1.3조원의 수익을 올렸을거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보도된 소식에 따르면 서클사의 2022년 반기 매출은 7.8억달러로 2022년 1년 총 매출액으로 예상했던 7.7억달러를 반기만에 상회하는 수익을 기록했다 합니다. 2023년의 자산 총액이 2022년에 비해 줄어들고 자산 포트폴리오도 달라졌지만 보도된 자료를 통해 추정해보면 1.3조원의 2023년 추정 수익이 비현실적인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USDC 또한 테더처럼 USDC 홀더들에게 지급하는 이자가 없습니다. 수익을 통해 추정되는 액수가 순수익에 굉장히 근접할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서클사는 USDC를 통해 약 3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여 최소 1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사업 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2. CBDC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과 함께 위기감과 기회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기존 은행권에서 가상화폐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은 바로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입니다. CBDC는 2015년 이후 학계와 민간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주요 금융기관의 증권 결제나 거액결제에서 분산원장기술을 사용하자는 논의에 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당시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디엠(Diem)이 기폭제가 되어 각국 중앙은행들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100개 이상의 중앙은행이 현재 CBDC 개발 및 도입을 실험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실제로 CBDC는 앞에서 한국은행 손익계산서에서 확인했던 ‘화폐제조비’가 들지 않는 당장의 이점을 가집니다. CBDC는 개념상으로 보면 기존 중앙은행에서 디지털화폐의 형태로 화폐를 발행하고 유통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기존의 화폐 유통과 다른 특징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있습니다.

  1. 은행권 밸류체인에서 중개자들의 기능이 축소될 수 있습니다. 화폐 사용자들이 중앙은행과 직접 CBDC를 거래함으로써 현재 중앙은행과 화폐 사용자 사이에 있는 시중은행이나 여러 결제 서비스 및 자금중개 기관들의 의미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2. 시중은행의 예금 보유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들이 수신예금을 주된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기업이나 사람들이 현금보다 CBDC로 화폐 가치를 보관하기 시작하면 시중은행의 예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는 특징이자 우려인데, 중앙은행의 기능을 더 비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에서 화폐 조정자 역할을 맡아온 중앙은행이 CBDC를 직접 발행, 유통까지 하게 된다면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금융 서비스들까지 중앙은행의 몫이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럴 경우에 중앙은행의 기능을 비대하게 만들면서 효율적인 금융 생태계를 만드는 데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CBDC를 가장 많이 진전시켰다고 하는 중국의 CBDC인 e-CNY를 살펴보면, 중국 인민은행을 포함해 많은 중앙은행이 CBDC로 돈이 몰리지 않도록 예금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e-CNY 보유 금액에 상한선을 두고, 중앙은행에서 발행은 하지만 유통은 시중은행이 하도록 하여 일종의 기존 시장 지키기에 나선 모습도 보입니다.

이렇게 CBDC가 가져올 수 있는 변화는 어떤 면에서 보았을 때 기존 은행업이 갖고 있는 자금 중개 역할을 축소시키고 수익 원천을 없앨 수도 있는 파괴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탄생부터 가상자산이었던 스테이블코인이나 기타 가상화폐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금융권에서 제시한 대안이 CBDC이지만, 과연 자기파괴적인 힘을 가진 CBDC를 단순 방어용이 아닌 제대로 된 공격용으로 힘을 실어 추진할 수 있을지는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는 모습들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2–3. 소결론

역사적으로 정립되어온 은행의 역할과 기능, 규제에 이어, 현재의 은행들이 가진 사업 모델을 재무제표를 통해 파악해보았고,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서 가능해진 완전히 새로운 시도로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사업 모델 또한 추정 및 비교해보았습니다. 특히 기존 은행과 스테이블코인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살펴보며, 블록체인 기술로 가능해진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제언으로 소결론을 지어보고자 합니다.

유사점: 시장 유동성 공급

먼저 기존 은행과 스테이블코인의 유사점으로 시장 유동성 공급이 있습니다. 실제로 중앙은행은 화폐를 찍어내서 만들어낸 ‘본원통화’의 공급량을 그 다음 여러 곳의 시중은행을 통해 ‘광의유동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중앙은행에서 실제로 찍어낸 100만원만 시장에 유통되는 것이 아니고 100만원이 그 다음 시중은행으로 넘어가서는 지급준비율만큼만 시중은행 금고에 쌓아두고 나머지는 또 다른 시중은행으로 넘어가는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제로 시장에는 500만원, 1000만원 가치의 화폐가 유통되게 됩니다. 2023년 9월 기준, 한국의 본원통화는 265조원이지만 광의유동성은 6,641조원 입니다. 이를 역산해보면 한국의 은행들의 평균적인 지급준비율이 4%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유동성 공급 역할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과 현금으로 Reserve에 넣어둔 자산을 지급준비율로 고려하여 광의유동성을 추정해보겠습니다. 2023년 11월 기준,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은1,271억 달러(약 165조원) 상당입니다. USDT와 USDC의 평균 현금 자산비중이 87%이므로 이를 지급준비율로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이 가상화폐 시장에 유발하고 있는 광의유동성은 유통량의 1.14배(1 / 0.87)로 1,448억 달러(약 188조원) 상당입니다. 2022년 암호화폐 시장의 규모가 약 2,600조원이라고 하니 스테이블코인이 전체 암호화폐 시장의 약 7%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각 나라의 화폐는 중앙은행에서 독점적으로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과 다르게 스테이블코인은 가상화폐 시장의 10% 이내로 일부 유동성만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급준비율이 높을수록 해당 은행이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기존 시중은행들의 5% 이내인 지급준비율과 스테이블코인의 85% 이상에 달하는 지급준비율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시중은행보다 뱅크런에 더 안정적인 구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차이점

기존 은행과 스테이블코인의 차이점은 아래의 비교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비교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중에서도 화폐 발행을 담당하는 중앙은행과 유사한 구조이며 자산운용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꽤 높은 지급준비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과 은행 사업모델을 결합해보는 상상을 해보았을 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우리는 국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가는 자연 발생적인 관점에서는 같은 화폐를 쓰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해당 화폐를 통한 경제활동을 영위하며 발전해왔습니다. 실제로 한 암호화폐 분석가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23년 10월 기준, 세계적으로 16번째로 많은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거시경제의 유의미한 지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비교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찌보면 단순 지표이지만 스테이블코인이 전혀 새로운 유형의 국가 개념을 도입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게끔 합니다.

출처: The Block, US Treasury Data

두 번째로 상상해볼 수 있는 새로운 미래는 ‘블록체인 기술로 은행을 창업할 수 있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USDT는 10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여 최소 4.5조원의 연 수익을 만들고 있으며, USDC는 3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여 최소 1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각각 2014년, 2018년에 시작하여 10년도 채 안된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수익 구조로는 인상적인 성과입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체를 살펴보면 크게 에너지, IT, 은행으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기존 사업모델의 특성과 함께 위에서 살펴본 스테이블코인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보았을 때, 가까운 시일내에 스테이블코인 운영사가 이 순위 안에 들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출처: 포브스 글로벌 2000, Statistica

미래의 은행은 어떠한 과거를 반복할 것인가

블록체인 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생각보다 기존 시스템이 굳건하여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미래가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역사 속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살펴보며 균형잡힌 제언으로 1부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가까운 과거에 미국에서는 1837년 자유은행시대(Free Banking Era; FBE)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주립은행 뿐 아니라 민간 은행에서도 주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담보로 민간 화폐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모습은 현재 민간 조직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모습과도 닮았는데, 결과적으로 자유은행시대는 25년 정도에 그치고 1863년에 통과된 국립은행법(National Bank Act)을 통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스테이블코인도 짧게 유행한 뒤 그칠 것인지 아니면 국경없는 법정화폐(?)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즐거운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자유은행시대가 실패한 이유에 대한 여러 해석들 중 자주 받아들여지는 이유로는, 화폐로써 인정받기 위해 만족해야하는 원칙인 NQA(No-Questions-Asked)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화폐의 가치에 아무런 의문이 제기되지 않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00원짜리 생수 한 병을 팔아서 얻은 1,000원짜리 지폐는 1,000원짜리 과자를 거래할 때에도 아무 문제없이 사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은행시대에는 민간 은행이 발행한 민간 화폐들이 은행마다 거래 지역, 유통 시기 등의 다양한 변수에 의해 할인된 가치로 거래되었는데 이러한 가치 변동의 영향력 때문에 NQA 원칙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돈 상황을 그 당시에는 국립은행법 제정을 통해 국가 화폐를 발행하고 국가 화폐 이외의 화폐로 매개되는 거래에는 세금 10%를 부과하는 식으로 중앙화되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화폐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Bunk History

중앙화되고 강제적인 힘으로 통일된 화폐를 만들었다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에서 강조하는 탈중앙화에 비추어보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립은행법 제정과 함께 진행된 중앙화된 국가 화폐 발행의 효용또한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팀은 국가 화폐가 유통되던 지역과 그렇지 않고 민간 화폐가 유통되던 지역의 실물경제 변수를 비교하였고, 결과적으로 국가 화폐의 유통이 교역재 생산을 빠르게 증가하도록 만들어 교역 산업이 촉진되어 교역재 가격이 낮아지고 총생산성과 혁신성이 증가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비추어 미래 시나리오를 두 가지 정반대 방향으로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첫 시나리오는,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초월하여 통용되는 세계 화폐가 되어, 미국의 국가 화폐가 실물경제에 가치를 더했듯이 새로운 화폐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스테이블코인이 자유은행시대의 민간 화폐처럼 외부요인으로 인해 화폐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고 화폐로 인정받는 문턱을 넘지 못해 또 하나의 짧은 기간 혜성처럼 등장했던 화폐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미래가 올지는 감히 단언할 수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새로운 변화들이 생겨날 기회를 얻고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래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영광으로 느껴집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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