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이터를 판매하는 새로운 방법: 하버거 택스(Harberger Tax)

DongHeon Lee
DECON
Published in
16 min readMar 20, 2019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통제권을 갖고 제3자에게 데이터를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마이데이터’ 판매를 위한 프로토콜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과거 토지 시장에서 제안되었던 하버거 택스 (Harberger Tax)라는 독특한 과세 방식이 마이데이터 판매 시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소개하고, 그 이점에 대해 분석하려고 합니다.

마이데이터 시장이란 무엇인가?

마이데이터의 적정가격은 무엇일까?

적정가격에 대한 새로운 관점: 토지 시장과 하버거 택스

하버거 택스 적용방안

하버거 택스의 이점

결론

마이데이터 시장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온오프라인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현대 경제와 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생산 요소입니다. 기업은 데이터를 이용하여 전략을 설계하고, 제품을 디자인하고, 소비자를 겨냥한 타겟 마케팅을 합니다. 이처럼 데이터는 기업이 더욱 효과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데이터는 기업의 고유한 자산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브로커를 통해 상품처럼 거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과연 기업이 데이터 수익을 독차지하는 것은 정당할까요? 기업들이 수익을 얻는 데이터에는 우리의 SNS 활동 기록, 상품 구매 정보, 의료 정보, 금융 정보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 대한 정보를 사용한 대가로 우리도 기업에게 수익의 일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마이데이터 시장 프로젝트입니다. 말 그대로 참여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마이데이터 시장이라고 부릅니다. 국내에는 에어블록 프로토콜(Airbloc Protocol), 오프라인 구매 데이터를 판매하는 캐리 프로토콜(Carry Protocol), 차량 데이터를 관리하고 판매하는 AMO와 MVL, 개인 의료정보를 관리하고 판매하는 메디블록(Medibloc) 등이 대표적입니다.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데이터를 판매하는 개인을 데이터 판매자라고 부릅니다. 이 데이터를 구매하는 참여자를 데이터 구매자라고 합니다. 데이터 구매자는 일반적으로 특정 판매자의 식별자(광고ID 등 개인의 기기를 식별할 수 있는 코드)를 구매하여 타겟 마케팅에 활용할 목적으로 시장에 참여합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데이터 판매가 일어나는 절차는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1. 데이터 판매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에 동의하고 데이터 일부를 시장에 공개합니다. 이때 판매자의 식별자는 마스킹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가령 판매자는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과 아이패드를 구매했다는 사실을 공개할 수 있지만, 아직은 누구도 판매자의 식별자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2. 데이터 구매자는 구매하고자 하는 특성을 가진 데이터를 쿼리합니다. 해당 데이터를 보유한 판매자가 검색되면,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데이터 판매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3. 판매 요청을 받은 판매자가 데이터를 판매하면, 판매자의 데이터 혹은 식별자가 구매자에게 전송됩니다. 데이터 구매자는 판매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매자의 식별자를 통해 타겟 마케팅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절차는 순조로워 보이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바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판매가 요청되고 거래가 성사되는 과정입니다. 거래는 한쪽이 제시한 가격을 다른 쪽이 받아들여야만 성사됩니다. 다시말해 위 절차에는, 쌍방이 모두 인정할 만한 데이터의 가격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마이데이터의 적정가격은 무엇일까?

마이데이터의 적정가격을 발견하는 문제는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각각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판매자의 As-Is

마이데이터 판매자는 자신이 생산한 데이터가 어떤 가격에 팔리는 것이 적절한지 알지 못합니다.

통상적으로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판매자가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원가)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구매자의 지불용의금액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판매자는 두 방식 모두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데이터를 생산하는 데에는 아무 비용이 들지 않았고, 자신의 데이터가 누구에게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어 구매자의 지불용의금액을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령 A라는 구매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1000원에 구매하겠다는 요청을 했다고 해도, 판매자는 그것이 A의 최대 지불용의금액인지도 모를 뿐더러,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구매자가 존재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매자는 자신이 체감하는 데이터 공유의 기회비용을 데이터의 가격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 판매자가 데이터 공유를 꺼려할수록 판매자가 요구하는 데이터 가격은 상승할 것입니다. 콜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구매 기록이나 웹사이트 방문 기록, 소셜 네트워크 기록 등 데이터 판매자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일수록 데이터 공유를 꺼려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주로 판매되는 데이터입니다. 따라서 마이데이터 판매자들은 데이터 공유의 기회비용을 크게 인식할 것이며, 만약 이것이 구매자가 생각하는 적정가격보다 크다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데이터 종류에 따른 소비자의 Willingness to Share를 나타낸 도표. 소비자의 성향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일수록 공유를 꺼려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What is the Future of Data Sharing?”, Columbia Business School, Oct 2015)

데이터 구매자의 As-Is

데이터 구매자는 판매자의 데이터 가치가 얼마인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해당 데이터를 구매하여 마케팅에 활용하거나 가공하여 재판매함으로써 얻는 기대수익의 크기가 그 데이터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서 살펴보았듯, 판매자는 구매자가 요구하는 금액이 적정가격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체감하는 데이터 공유의 기회비용을 데이터의 가격으로 제시할 것입니다. 만약 이 가격이 구매자가 예상하는 적정가격보다 높다면, 구매자는 해당 데이터를 제 값에 구매하지 못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판매자는 자신의 데이터가 판매자에게 얼마의 가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적정가격이 아닌 자신이 느끼는 기회비용을 데이터의 가격으로 제시합니다. 이 때문에 마이데이터 시장에서는 독점(Monopoly)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독점이란 어떤 상품의 공급자가 시장에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독점은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가진 공급자가 다른 경쟁자의 진입을 차단하면서 발생하거나, 상품 자체가 유일무이한(Unique)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위 상황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독점 상황입니다. 왜 그럴까요?

데이터는 동질적인 재화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물건을 구매했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고유한 정보입니다. 내가 마이데이터를 판매하려고 할 때, 나와 똑같은 데이터를 가진 다른 판매자가 등장해 나보다 싼 가격에 해당 데이터를 판매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즉, 데이터는 유일무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판매자에 의한 독점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일무이한 재화의 독점이 발생할 때, 해당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장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재화를 획득하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이같은 현상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배 효율성(Allocative Efficiency)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데이터 시장의 분배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격결정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토지 시장(Land Market)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적정가격에 대한 새로운 관점: 토지 시장과 하버거 택스

잠시 토지 시장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동질적인 제품을 반복 생산할 수 있는 공산품이나 농작물과 달리, 토지는 위치와 면적이 고정된 유일무이한(unique) 자산입니다. ‘여의도 면적’ 에 해당하는 토지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여의도’ 라는 땅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토지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특정 토지를 공급할 수 있는 공급자 역시 시장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누군가 특정 토지를 필요로 할 때 해당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토지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소위 ‘알박기’가 이러한 토지 독점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자원이 각각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분배되는 상태가 이상적이라고 여깁니다(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분배 효율성’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토지의 독점은 사회 전체의 분배 효율성을 저하시킵니다. 만약 어떠한 땅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그 땅을 소유한 사람이 땅을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 땅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토지의 분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은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1962년에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인 아놀드 하버거가 제안한 아이디어입니다.

Arnold Harberger (1924–)

후일 ‘Harberger Tax’로 이름 붙여진 이 아이디어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1. 토지 소유자는 자기 토지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해서 가격을 정합니다. 해당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그 땅의 소유권을 넘겨야 합니다.
  2. 토지 소유자는 자기가 정한 가격의 일정 비율을 주기적으로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토지의 분배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먼저 Harberger Tax가 도입되었을 때 토지 소유자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생각해 봅시다. 어떤 제도의 효과는 개인들이 그 제도 하에서 취하는 합리적인 행동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Harberger Tax 하에서는 누구나 정해진 토지 가격을 지불하기만 하면 토지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토지의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땅을 계속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에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토지 소유자는 자신이 정한 토지 가격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만약 너무 높은 가격을 책정해 버린다면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하므로 손해가 발생하겠죠. 그래서 토지 소유자는 너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만큼의 토지 가격을 설정할 유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지의 가치라는 것은 사실 그 토지를 사용해서 창출할 수 있는 미래 가치의 현가입니다. 즉, 토지 소유자들은 자신이 그 토지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만큼을 토지의 가격으로 책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K씨는 자신이 가진 땅에 신발 공장을 지었습니다. K씨는 신발 공장이 미래에 가져다줄 수익과 비용 등을 모두 계산하여, 자신의 땅에 10억 원의 가격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P씨는 K씨의 땅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P씨는 K의 땅에 20억원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P씨는 K씨에게 10억 원을 지불하고 부지 소유권을 곧바로 넘겨받았습니다.

기존의 토지 시장이었다면 토지를 독점한 K씨가 20억 원까지 토지 가격을 올려 P씨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버거 택스가 적용된 위 상황에서는 누구도 손해를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P씨는 바가지를 쓰지 않고 원하는 부지를 구입했고, K씨는 자기 땅에서 얻을 수 있었던 미래 수익만큼을 현금으로 환산하여 가지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토지를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토지의 소유권이 돌아갔으니,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도 최상의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요약하자면, Harberger Tax는 모든 토지가 그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중에 있도록 만듭니다. 각 토지의 적정가격은 토지의 소유자가 책정한 가격이며, 누구나 이 가격을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분배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 Harberger Tax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다시 마이데이터 시장으로 돌아와 봅시다. 데이터와 토지는 유일무이한 자산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독점으로 인해 분배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지 시장에서 제안된 Harberger Tax를 데이터 시장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이데이터 시장에 하버거 택스를 적용하는 방법

물론 Harberger Tax를 토지 시장과 동일한 방법으로 마이데이터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데이터는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토지처럼 소유권을 넘긴다고 해서 원래 소유주가 소유권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이터 식별자의 소유권은 이전할 수 있습니다. 식별자는 얼마든지 재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구매자 A가 알고 있는 판매자 C의 식별자를 구매자 B가 구입하고자 한다면, 구매자 A에게 대금을 지불한 뒤 판매자 C로부터 재설정된 식별자를 받아오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구매자 A는 더 이상 C의 식별자를 알 수 없게 되고, 구매자 B는 C의 식별자를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모든 실마리가 등장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마이데이터 시장에 하버거 택스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데이터 판매자는 자신의 식별자에 대한 슬롯의 개수 N을 설정합니다. 슬롯이란 해당 판매자의 식별자를 구매하여 활용할 수 있는 구매자의 수를 나타냅니다.
  2. 데이터 구매자가 쿼리를 통해 판매자를 발견하면, 슬롯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구매 방식은 구매자가 자신의 생각하는 판매자 식별자 슬롯의 가격을 설정하고, 이 가격의 일정 비율을 주기적으로 판매자에게 지불하는 것입니다. 구매자는 슬롯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 데이터 판매자의 식별자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3. 만약 이미 판매된 슬롯을 구매하고자 하는 새로운 구매자가 등장한다면, 새로운 구매자는 기존 구매자가 설정한 데이터 가격을 지불하여 슬롯의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있습니다. 슬롯의 소유권이 이전되면 판매자의 식별자는 재설정되어 변경된 슬롯 보유자들에게 전송됩니다. 새로운 구매자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판매자 데이터의 가격을 설정하고, 이 가격의 일정 비율을 주기적으로 판매자에게 지불하여야 합니다.

이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 1. 데이터 판매자는 자신의 구매 데이터 식별자에 대해 3개의 슬롯을 열어 놓았습니다. 3명의 데이터 구매자는 각각의 슬롯에 $30, $20, $10의 가격을 책정하고 슬롯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마켓에서 Harberger Tax의 세율은 10%이고, 구매자는 매주 $3, $2, $1만큼의 금액을 판매자에게 지불합니다.

그림 2. 슬롯 3에 대해 $15의 가격을 책정한 새로운 구매자(붉은색)가 등장하자, $10을 책정했던 기존 구매자에게서 곧바로 슬롯의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슬롯 소유자의 변동에 따라 데이터 판매자의 식별자가 재설정됩니다.

이러한 방식이 실제 현실에서 사용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봅시다. 저는 강남에 살고 있는 20대 남성이고, 우동을 좋아하며, 휴일에는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저의 결제 정보는 자동으로 마켓플레이스에 업로드되기 때문에 누구든 쿼리를 통해 저에게 데이터 구매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침 강남에 우동집을 차리려는 U씨는 ‘강남 근처의 우동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는 쿼리를 통해 저라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저는 하나의 슬롯만을 열어 두었는데, 마침 비어 있었기 때문에 U씨는 그 슬롯을 구매하고 저의 식별자를 받아 갑니다. 이후 U씨는 매일 우동집 쿠폰과 광고를 저에게 푸시알림으로 보냅니다. U씨는 슬롯에 10,000원의 가격을 책정했는데, 이 마켓플레이스의 세율은 5%이기 때문에 저는 매주 그 5%에 해당하는 500원의 금액을 데이터 판매에 대한 보상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강남에 우동 배달집을 차리려는 Y씨가 등장했습니다. Y씨는 ‘강남 근처의 우동을 좋아하고 휴일에 집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쿼리를 통해 저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Y씨는 제가 훌륭한 잠재적 고객이라고 판단하고, U씨에게 10,000원을 지불하여 새로운 식별자를 받았습니다. Y씨는 슬롯에 20,000원의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이후 저는 매일 우동 배달집 광고와 포인트를 푸시알림으로 받고 20,000원의 5%에 해당하는 1,000원을 매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 U씨에서 이제 Y씨로 바뀌었다는 것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버거 택스의 이점

위에서 제안된 방식은 데이터 거래를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1대1 거래 형태가 아닌, 데이터라는 고정자산에 대한 소유권 변동의 형태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소유권 변동이 Harberger Tax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판매자와 구매자는 다음과 같은 효용을 얻게 됩니다.

판매자의 효용

구매자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책정하고 있는 가격이 데이터의 현재 적정가격이기 때문에 판매자는 자기 데이터의 적정가격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면, 판매자는 자신이 느끼는 데이터 공유의 기회비용이 아니라 데이터의 적정가격에 따라 자신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때 판매자는 식별자 슬롯의 수를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수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구매자의 효용

구매자는 판매자가 적정금액보다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데서 오는 불필요한 손실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Harberger Tax 하에서 자산 소유자는 항상 자산을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가격으로 소유하게 되므로, 구매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가격에 판매자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새로운 구매자에게 슬롯이 판매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구매자는 데이터를 계속 보유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만큼을 보전받게 되므로 손실을 입지 않습니다.

결국 참여자들의 마이데이터는 그 데이터로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구매자들에게 분배되면서, 전체 시장의 분배 효율성이 개선될 것입니다.

결론

물론 위에서 제안한 방식이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최적의 가격결정방식은 아닙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거래를 체결하는 방식 가운데에도 분배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훌륭한 거래방식이 많으며, 수많은 데이터 마켓 프로젝트들이 저마다 이를 구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가공되고 결합할수록 가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이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활발한 데이터 유통 시장이 기업을 넘어 한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정부도 공공데이터를 시작으로 데이터 유통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시장에서도 ‘분배 효율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때 데이터 생산자에게 어떻게 적절한 보상을 돌려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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