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 공포와 고립의 사회

Keywon
Designers S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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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in readMar 24, 2017

1073일 만에 인양되는 세월호를 보며 <디자인 말하기> 팟캐스트 멤버들이 챗방에서 나눈 이야기들. 단군 이래 최대로 잘 살고 있으니 재 뿌리지 말라는 게 사실일까? 우리들은 집단 신경쇠약 직전인 것 같은데 왜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까?

잘 살고 있으니까 재 뿌리지 말아라

기원:

세월호 인양을 보면서 어제 선미샘이 얘기 해주신 일제시대의 잡지 <삼천리> 생각이 다시 나네요.

우리는 구한말과 일제시대가 ‘완전 어둡고 우울한 시대이자 주권을 빼앗기고 고문당하고 수탈당하는 시대’ 였다고 배웠고, 현재의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고 번영’ 상태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삼천리> 같은 잡지를 보면 일제시대 상황이 요즘 매체나 글에 나오는 것 보다 딱히 어두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에 놀랐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분단국가나 지리적으로 고립된 상황도 아니라 러시아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유학/여행 다니는 흐름이 있었고, 지금처럼 진보/보수/빨갱이 이런 고정 프레임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워낙 국제 정세 자체가 급변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사상과 문화가 들고 나는 입체적인 경험들이 많았다고.

물론 식민지라는 시스템적인 한계는 있었지만. 워낙 몇 년 단위로 새로운 사상와 문화가 들어왔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을 걸쳤다 벗었다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는 얘기인데요.

일제시대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고요. 무조건 ‘옛날은 나빴고 지금은 좋은 거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1929–1941년 발행된 <삼천리>의 영인본 (YTN Science 갈무리)

‘우리 민족의 역사는 구제불능의 괴로움 뿐이었는데 지금 처음으로 자유 민주주의 번영상태이니, 모두 감사하고 경제성장을 위해 조용히 희생하고 빨갱이가 되지 않도록 하라’ 는 강요를 받고 있는 건 아닌가. ‘5천년 만에 겨우 잘 살게 되었는데 재 뿌리지 말라’ 라는 사회적 압박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이 최고의 시절이라는 전제가 얼마나 사실인지도 의문이 생겼고요. ‘이제 겨우 잘 살게 되었으니까 아프다고 말하지 말하라, 혼자 조용히 희생돼라’고 강요하는 잔인성이 세월호 사건을 통해 터진 게 아닌가 하고…

세월호 유가족 모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그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무섭고 이상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론, 길, 이동 같은것을 다 통제당한 경험들도 얘기해 주시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희생되고 있고, 내가 살아있는게 당연한 게 아니라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주변에서 죽어나가고 있는데 잘 모르고 있고요.

저는 이런 사회적 불안과 동요가 상당히 누적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높으신 분들은 잘 모르고 있고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공포속에 서로를 고립시키는 우리

선미:

네, 저도 공감합니다.

시인이나 작가들은 꾸준히 그런 것들을 같이 위로해주는 일종의 무당의 푸닥거리같은 일을 해왔는데요. 가령 세월호 희생된 학생들 생일이 되면 시인 한 명이 그 아이가 되어 시를 읊고 그 아이들의 친구, 가족들을 모아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요.

이게 그냥 객체화되어서 뉴스처럼 바라보는 사건 사고들이 아니라,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도 그렇고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이게 정말 나일 수도 있는 선연한 일들이라 사람들이 느낀 현실감, 공포감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보이지 않게 희생되었던 어떤 순간들이 그 도를 넘어 버리게 된 거죠.

기원:

저도 요 몇년 간 그 현실감과 공포감에 어느정도 사로잡혀서 사람이 좀 변해버린 것 같아요. 미국사회에서 이런 걸 못 느껴본 남편하고 저 사이에 간극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기도 해요.

정말 한국사회는 집단적인 신경쇠약 직전…? 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미:

그 현실감과 공포감이 무서운 게, ‘원인에 대해 분노하고 개선하자’로 목소리가 모아지면 좋은데, ‘최대한 내가 그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로 기제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한 발짝씩만 움직여도 그 반대편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거죠.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님이라고 서울시 인권 스토리텔링하며 만난 인권 활동가 분이 계신데. 그 분과 이야기나누면서 보다 근본적이고 자발적인 연대, 지속가능한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엄청 많이 들었어요. 소수의 활동가들에게 그 역할을 전가하고 대중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랄까.

기원:

맞아요 세월호때도 왜 우리나라는 사회운동의 중간층이 없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왜 무조건 ‘운동가’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일당백을 하는 모습이어야 하지?

사건 정보가 사라지고 있다

선미:

작년에 서울시 인권 스토리텔링 작업을 진행했었어요. 100가지의 서울시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의 현장, 인권 개선의 현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그에 대한 도보 여행 코스를 만드는 일이었는데요.

이런 일이 실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큰 사건들이었는데 아예 정보도 없고(대부분 쉬쉬하며 묻힌) 심지어 왜곡되어서 문화적인 현장으로 탈바꿈한 공간들도 많더라고요.

기원:

ㅠㅠ

스타트업계, 디자인계, 예술계에서 일어난 성추행이나 병크들도 언론에 실린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페북 트위터 네이버 등의 링크는 다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선미:

가치 판단은 각자가 하되 적어도 정보의 노출이나 팩트의 공유는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정보부터 차단된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되니 담론이 얇고 허상으로 형성될 수 밖에요.

기원:

비슷한 얘기네요! 저도 스타트업이나 디자인계 병크들의 팩트/사건일지 저장소가 필요하다, 최소한 링크를 걸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최근에 몇몇 분들과 했었어요. 그냥 없던 일이 되니까.

선미:

가령 남산의 안기부 시설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남산 터널을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행되었던 일들을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누군가(무고한 고문 피해자)는 그 터널에만 가면 온몸이 마비되어서 멀고 먼 길을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고문을 자행하고 또 조장했던 공간들은 <문학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또는 <예술센터>로 포장되어 과거의 얼굴을 교묘히 감춘 채 사람들에게 그 공간의 역사를 자발적으로 왜곡하도록 돕죠.

이런 거 보면 우리가 모른 채 흘러가고 있는 무참한 광경들이 얼마나 많을까, 불안해져요. 이 불안감이 집단 신경쇠약을 일으키는 핵심 요소일테고요.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는 게 첫번째이고, 정보를 가진 사람은 중간자가 되어 쉽게 각자의 삶에 적용 가능하게 이야기해주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보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바보같이 분노하지 않냐고 말할 게 아니라요.

동요하는 다수, 관심 없는 소수

볼 때 마다 충격을 주는 세월호 선체의 모습 (JTBC 방송 갈무리)

기원:

신경쇠약 상태의 사람들, 그 고립의 잔인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어떤 리액션을 할지 두렵기도 해요. 저 스스로만 봐도 세월호 선체를 다시 보는 순간 원초적인 무력감 + 슬픔 + 분노로 일종의 마비현상 같은 걸 겪거든요. 이게 위험한 조합인 것 같아요. 트리거를 잘못 만나면 눈앞이 안보일 수 있달까요.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저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것 같은데 정부, 검찰, 입법부, 사법부, 언론 다 모른체 하고 있는 게 불안하고요. 일부 ‘가스통 할배’로 불리는 분들이 계엄령 얘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감을 채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선미: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고등학생들, 그러니까 먼저 보낸 자기의 자식과 같은 또래들에게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들이 주기적으로 있었어요. 그 고등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내 친구의, 내 언니의 이야기인거죠. 이게 집단적인 문제가 분명히 될 수 있는 게, 세월호 사건 이후 그 같은 해 전국에 꽤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대요. 그 아이들은 이미 그 경험으로 평생 세월호를 인식하게 되는 거죠.

여경:

제 블로그 글 하나 보내드릴게요. 현대사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한 거예요.

기원:

어제 선미샘이 공포 얘기도 하셨고, 여경샘 글과 맥락이 좀 통할 지 모르겠는데요. ‘사람들에게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통치하는 것’ 이 바로 청산해야 할 적폐의 본질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여경:

제가 생각하는 개벽은 경직화된 수직사회에서 유연한 수평사회로의 전환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수직적 지배구조가 오랜 역사에 걸쳐 형성된 적폐라 쉽지 않아요. 그래도 많이 바뀌었는데 앞으로 10년은 더 걸리겠다는 생각이예요.

공포 얘기를 좀 보태면, 정치는 본래 공포에서 기인해요. 문제는 지배층이 공포를 활용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득을 주냐의 문제죠.

기원:

고립과 공포로 통치하는 건 이미 임계치에 온 것 같은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하다간 큰일날 것 같아요.

선미:

이 공포 정치가 (사실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사람의 본성을 건드리는 일인지… 그러니까 ‘그 공포를 느끼지 말고 당당해져라’ 라고 하기에는 불가능하고. 그 공포가 허상이었다는 경험, 그 공포를 느끼게 되면 더 큰 공포를 대면하게 된다는 경험 등등의 사례가 공유되고 인지되고 체화되어야 할 듯요.

기원:

네, 공포는 피하는 것이 아니고 극복의 경험 또는 무효화 경험이 생겨야 하는 것 같던데.

여경:

두려움은 두가지로 나눠져요. 두려움의 대상을 알면 공포고, 대상을 알 수 없으면 불안이라고 말해요. 공포는 대상을 제거하면 사라지지만, 불안은 대상을 모르기 때문에 제거가 불가능하죠.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는 인간이예요.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체제가 형성되곤 해요. 주로 전쟁을 목적으로 하죠. 근대 국가 체제도 본래 공포를 근본으로 만든 체제중 하나예요. 자본주의는 폭력의 공포를 비폭력의 돈으로 이동시킨 경우고요. 이렇듯 공포가 우리 사회의 기본 전제가 되었죠. 사실 인류의 모든 체제가 그랬어요.

불안을 기본으로 만든 체제가 종교인데 근대에 와서 신을 버려서 그런지 현대인의 가장 큰 질병이 불안이에요. 신을 버린 결과가 참 안타깝죠. 아무튼 근대 사회학을 정초 한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악마가 바로 폭력에 대한 공포에요.

현대 뇌과학도 이런 입장을 뒷받침해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에 편도체와 해마라는 중요한 조직이 있어요. 편도체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포착하는 뇌의 영역이예요. 그리고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영역이예요. 그런데 해마에 편도체가 바로 붙어 있죠. 변연계의 이 구조가 우리 감정의 기초 세팅이죠. 즉 생존을 위한 최적 시스템이죠. 이렇듯 두려움을 기초로 인간은 집단이 되고, 종교와 국가를 형성시켰는데, 문제는 소수가 이를 악용해 권력을 독점해왔다는데 있죠.

현재 새누리당은 1%의 계층이 독점.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노총은 10%의 계층이 독점한 상태라고 보시면 돼요.

양반사회, 귀족사회의 경우 10% 권력 독점 수직사회였어요. 부르주아 사회도 그렇고. 동학운동, 기독교, 맑스 운동이 이 10% 지배구조를 깨려는 시도였죠. 다 실패했지만. 반전. 생태. 여성. 평화 운동이 바로 동학인 셈이죠.

자유는 반드시 노예가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자유주의 운동은 노예를 요구하는 시스템이예요. 그래서 제로섬 게임이죠. 자유민 10% vs. 부자유 노예 90%. 이 구조가 근대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어요.

발언권의 비대칭성

기원:

좀 우스운 말이지만 요즘 저보다 순탄한/운좋은 분들을 만날 때 가끔 드는 생각인데, 그분들은 자기 경험에 대한 확신이 저보다 훨씬 크고 얘기도 훨씬 크고 신나고 명확하게 해요. 그럴 때 제 목소린 잦아들고 조용해지더군요. 목소리의 크기와 대화 점유율에서 팍 비대칭이 생기더라는.

아주 미시적인 예이지만 이런 게 쌓여서 사회적으로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독점하는 거겠죠.

저랑 얘기할 때 그런 느낌이 드는 분들이 더 많으셨을테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보면서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부지기수겠죠. ㅠㅠ

여경:

네에 그렇죠….

선미:

ㅎㅎㅎ 기원샘.

기원:

ㅎㅎㅎ 왜염.

선미:

귀…귀여워서요.

기원:

왜… 🙀

여경:

그래서 서로 삼가하는 도덕률이 생기는데… 이 두려움에 의지한 도덕률이 수직사회를 만드는 기반이더라고요. 현재 시민 지향 사회는 서로 삼가할 것을 요구하는데, 완전 모순이죠. 저는 여기서 생각이 멈췄어요.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게 숙제인듯 싶어요.

기원:

그러네요. 불안에 기반하고 계층적 소속감에 이용되는 종교도 역지사지를 강조하는 부분도 있으니…

딱히 해결책을 나눈 건 아니지만 오늘 인양 장면을 보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같이 얘기하다보니 공감이 되고, 선생님들 말씀 들으면서 제 생각도 조금 더 구조화 되는 것 같네요.

디자인 말하기 블로그 있으면 이런 대화내용 올리면 좋겠다. 브런치는 승인도 받아야 하고 인용하기도 어려우니 미디엄 같은 데 하나 만들까요? ㅋㅋ 디자인 학교나 디자인 읽기에 올리면 되나?

여경:

네에 어디든 ^^

대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약간의 보충과 윤문 작업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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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n
Designers Speak

Full-stack designer based in San Francisco and Seoul, Korea. Past: Cofounder of http://hellomoney.co, MIT @MediaLab, @IDEO Palo Alto, and @Micros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