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에서 시민 실험으로

다크매터랩스
Dark Matter Stories
11 min readOct 8, 2020

“잘못 사용된 자원으로 인해 혁신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하고, 새로운 기술을 조달하고, 더 많은 시설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는 활동에 많은 돈이 쓰이기 때문이다.”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Innovation projects often fail because the resources are spent on the wrong kind of innovation. Too much money is spent on attention-grabbing activities that are straightforward to do, like hiring new people, procuring new technologies, and buying more facilities” — Harvard Business Review

©Jeswin-Thomas/Unsplash

도시의 도전

도시는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4차 산업 혁명의 자동화, 그리고 예상치못한 2020년 코로나19 상황은 도시에서의 변화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초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는 85세 인구의 100% 증가라는 구체적 현실로 다가오고, 임금 정체는 OECD 국가 중 29위로 추후 인구 대다수의 경제 수준 저하가 우려된다. 의료 접근성은 뛰어나나, 2016년 한국인의 사망 원인 80.8%가 만성질환이며, 이러한 만성질환은 예방가능하지만 아직까지 예방이나 건강 증진 중심의 투자는 부족하다. 또한 정치와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의 급락하고, 도시의 문제를 심화시킬 요소는 이미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세계적인 경제 불평등이나 자원 고갈, 기후 변화와 같은 지구적 위기는 도시 문제를 경제적 성장을 이유로 방관하거나 미뤄둘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는 물론 우리 개개인의 창의성, 독창성, 추진력, 행동력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현 혁신 모델은 무엇이 문제인가

다양한 개인과 자원이 집결하는 도시는 혁신의 주체가 되어왔다. 하지만 성공을 거둔 혁신 모델도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더이상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이뤄온 혁신 모델은 어떤가? 지금의 혁신 모델의 문제는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첫째, 과거 기술 진보 시대가 증명하듯이, 지속 가능한 성장은 무수한 경제, 제도, 공간, 문화 및 사회 생태적 조건의 산물이다. 대학과 은행, 커피하우스(Coffee house) 등은 17세기의 과학 지식을 생산해내는 사회적 산물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융합과 통합을 위한 새로운 역량을 키워야 하지만, 이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성과를 측정하기 쉬운 일(상업용 부동산 개발, 창업을 위한 단기적 자금 조달 등)에 우선 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에델만(Edelman)의 2020년 신뢰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42%로 이전에 비해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공적/사적 주체가 부재할 때, 사회적 아젠다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 합의점을 찾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편향된 의견이 맞부딪히고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는 토양이 척박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셋째, ‘빅 테크’ 회사에 대한 과도한 사회경제적 의존이다. 글로벌 단위의 기술 기업에 대한 우리 일상과 사회적 의존도는 점차 커지고 있다. 도시 혁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시 계획과 규정, 시스템은 점차 적은 수의 조직이나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구축되고 있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시의 스마트시티 계획을 추진중이던 구글 ABC 자회사인 ‘사이드워크랩스(Sidewalk Labs)’의 도시 개발 제안과 이후 계획 철회, 그리고 뉴욕시 내 아마존의 제2본사(HQ2) 백지화 후폭풍은 공공가치를 구축하고 보전하는데 독점적 기업이 어떤 도전 과제를 제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 Sidewalk Labs

고립된 혁신에서 열린 실험으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스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걸친 혁신이 요구된다. 복잡한 현실 세계를 생각하면, 대학의 연구실이나 창업 허브에서의 독립된 활동으로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 세계에서 새로운 시도가 협력적으로 구성되고 시험을 반복하여 검증하여 진화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진다. 실시간 피드백과 빠른 반복 활동, 상황별 프로토타이핑을 통한 지속적인 학습의 중요성은 이미 충분히 강조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인간의 창의성과 열정, 운전과 협력할 때 우리의 생활, 이웃과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다양하다. 그 중 몇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 바르셀로나 아이랩(Barcelona’s participatory open source iLab project): 바르셀로나시가 오픈 데이터와 기술 활용을 통해 도시 혁신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지원하며 기술과 시민 혁신 사이의 교차점을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이다.
  • 위키하우스(Wikihouse): 나만의 집을 갖고 싶은 개인의 소망을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오픈소스 주택으로, 설계부터 건설까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무료로 공개 및 제공하는 프로젝트이다.
  • 에어비앤비 사마라(AirBnb Samara): 전세계 공유 숙박업체 에어비앤비가 차세대 사업으로 ‘건축과 도시계획’에 주목하고 제품 디자이너, 건축가, 시나리오 작가 등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였다. 에어비앤비 사업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지역 사회의 미래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 파워레저(Power Ledger):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에너지 산업에 거래에 필요한 화폐 거래 플랫폼을 제공한다. 에너지 기술과 유통이 주로 공기업에 독점되어 있고 가격 결정권 또한 중앙집중화되어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에너지 시장을 형성하고자 한다.

기술과 시민 혁신의 교차점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인류에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고유성과 존재를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술을 위협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집단적 미래를 발견하며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로 볼 수 있는 관점과 대안이 필요하다.

© Hang Niu/Unsplash

기술을 우리의 창의성을 여는 사회적 도구로 보고 활용할 수 없을까? 만약 미래의 가능성을 자동 주행 자동차나 얼굴 인식과 같은 대표적인 몇 가지의 기술로 인식하는 대신에, ‘레스토랑 데이(Restaurant day)’와 같이 새로운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영감을 얻는다면 어떨까? 핀란드 헬싱키에서 1년에 한 번 누구나 레스토랑을 열고 가정식 요리를 판매하기 위해 열리는 자발적 행사처럼 모바일 기술과 소셜미디어가 열어준 기술의 혜택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주도하는 활동은 우리에게 도시를 만드는 다른 방법과 미래에 대한 모두의 의식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가능한 공원 운영, 혁신적인 커뮤니티, 시민 주도의 재생에너지 공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협업, 오픈 디지털 제작 워크숍 등은 우리를 연결하고 하나로 모으는 기술과 시민혁신이 포용적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기술은 우리를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다 진취적이고 건강하며 더욱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하는데 우리 모두가 참여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유니콘에서 시민 실험으로

유니콘 기업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혁신’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 유니콘 기술 창업과 벤처 투자라는 좁은 렌즈를 확장하고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하고 시민, 기업, 공공, 기술 전문가 간의 새로운 접점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시민 실험의 형태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내에서의 공동 행동(Collective action)이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실험’이란 도시 환경에서 구현된 거버넌스 구조, 규제 등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실제적 함의를 탐구하여 잠재적 문제를 발굴하고, 혁신의 신속한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잘 정의되고 전략적으로 프레임화된 시험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러한 실험은 중앙집중화되고 표준화되어 있으며 균질화된 혁신의 구현을 넘어 다양한 개인 및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더욱 맥락이 풍부해지고 역동적인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

시민실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이 시민들의 생각과 결합될 수 있는 플랫폼 인프라가 필요하다. 기존의 세계적 수준의 기관과 다양한 중소 규모의 경제 주체를 연결하고 시민, 평생학습자, 기업가, 공공, 투자자가 더 나은 일상과 사업을 구현할 수 있는 인프라, 그리고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함께 작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열린 실험과 도시 혁신으로 가는 길을 내기 위한 토대로 시민적 합법성(Legitimacy)이라는 기초를 구축해야 한다. 종이 문서 기반의 중앙집중적 기관은 도시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비롯해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의 규모와 속도에 부합하는 표준, 규제나 공공 정책을 적용하거나 실험을 반복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 Ryoji Iwata/Unsplash

시민 섹터

시민 섹터는 시민들과 지역 사회가 그들 자신을 조직하며 공적 아젠다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 항상 우리 사회에 존재해왔다. 오랫동안 DIY(Do It Yourself) 사회와 시민 중심의 혁신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와 공유재가 점차 사라지는 것은 이를 구현하는데 사회적 투자가 부재하다는 증거이다.

기후 변화를 넘어선 기후 파괴, 자동화, 장기적인 글로벌 경제 침체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혁신을 열기 위해서는 기술적 도전만 해결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창조하고 돌봄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우리의 역량과 실천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공공과 민간 부문의 경쟁과 긴장의 패러다임을 넘어 더욱 공정하고 민주적이며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시민 분야를 육성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일이다.

모두가 함께 만든 도시

경제학자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주장한 ‘롱테일 이론(Long tail theory)’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사회가 거대하고 전문화된 중앙집중적 기관이나 기업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수많은 소그룹과 개인들이 활발히 조정 및 연계된다는 아이디어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소수보다 다양한 다수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가능성과 이들이 만들어낼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가 지식의 저장소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법, 에어비앤비(Airbnb)가 수백만의 낯선 가정의 문을 여행자들과 연계시킨 방법의 핵심에는 디지털 인프라와 개방형 표준 모델이 있다. 이를 통해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서비스를 확장하고, 실시간으로 자금을 조달하며, 나아가 새로운 규제모델을 만든다. 결국 시민 주도의 실험은 기술력과 사회 진보 사이의 사회적 계약을 형성하는 과정이며, 다시 말해 시민 사회의 정당성과 신뢰 구조를 재구축하는 사회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글: 강은지(eunji@darkmatterlabs.org) | 다크매터랩스 전략 디자이너
도움 :
박아영(ahyoung@darkmatterlabs.org), 함주희(juhee@darkmatterlabs.org), 이효정(hyojeong@darkmatterlabs.org)
대구테크노파크 김희대 디지털융합센터장, 김수진 팀장, 윤정영 연구원

다크매터랩스 코리아는 2020년 3월부터 6월에 걸쳐 대구테크노파크와 함께 대구시의 주요 도시 아젠다를 중심으로 시민참여를 넘어 ‘시민 실험(Civic experimentation)’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시 문제 프레이밍(Framing) 및 시민행동 변화의 디자인 요소 및 도시 전략을 도출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연구 결과물을 편집해 세 편의 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

▶1.유니콘에서 시민 실험으로
2.도시 문제에서 도시 미션으로
3.도시 문제의 다층적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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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저변의 ‘암흑물질’에 주목해 지속 가능한 도시 전략을 디자인합니다. kr.darkmatterlabs.org @DarkMatter_La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