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첫 접촉’을 하게 된다면?

뤽
이바닥늬우스
Published in
28 min readNov 16, 2017

최근 세계 최대의 접시안테나를 완공한 중국이,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낼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는 훌륭한 르포. 애틀란틱 시니어 에디터 로스 앤더슨이 썼고 12월에 게시될 예정인 글을 안전가옥에서 번역했다.

원문: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7/12/what-happens-if-china-makes-first-contact/544131/

미국이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는 프로젝트를 중단할 때,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접시안테나를 만들었다. 미국이 중단한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지난 1월, SF 작가 류츠신은 중국 과학기술부의 초청으로 중국 남서부에 건설된 최첨단 전파천문대에 방문했다. 이 천문대의 접시안테나는 미국이 푸에르토 리코 정글에 만든 아레시보 천문대의 안테나보다 두 배 가량 큰, 지구상에서 가장 큰 안테나다. 전원을 끈 채로 궤도를 도는 스파이 위성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이 안테나의 주 용도는 과학 탐사다.

이곳은 오직 외계 문명의 생명체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잡아내는 목적으로 특수 제작된 최초의 천문대이기도 하다. 만약 지구에서 실제로 외계 문명의 메시지를 잡아내는 ‘첫 접촉’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그 주인공은 중국이 될 것이다.

SF 작가 류츠신이 이 천문대에 초대 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는 늘상 우주 관련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고, 정부에서도 그에게 과학 탐사임무의 자문을 구해왔다. 류츠신은 중국 SF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다른 작가들로부터 ‘류 대인’이라 불리며 존경 받는다.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과학기술부의 엔지니어들은 류츠신에게 천문대의 작업 현황을 공유하곤 했다. 그의 저작이 그들에게 미친 영감을 적은 메모와 함께.

한편으론 류츠신이 이 천문대를 찾는 것은 퍽 이례적이기도 하다. 평소 외계 문명과의 조우에 대해 그 위험성을 이야기 해온 그다. 그는 평소 ‘이방인들의 출현’이 임박했음을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종말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해왔다. 그가 작품 후기에 남긴 말이다- “우리가 올려다보는 이 별 가득한 하늘은, 어쩌면 만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처럼 넓고 고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죠.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 지구 궤도에 정박한 외계 우주선을 발견할지도요”

중국의 새로운 접시안테나는, 오로지 외계 문명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제작되었다.

지난 몇 년 사이 류츠신은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3부작 소설 <삼체>는 2015년 SF계 최고 권위의 ‘휴고 상’을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삼체>가 그의 재임기간 중 우주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었노라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측에서는 류츠신에게 아직 출간되지 않은 삼체 3권을 미리 받아볼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삼체> 2권 말미에서는 작품의 핵심 이념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떤 문명도 우주를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 존재를 알게 된 다른 문명 모두는 보통의 문명들이 그래왔듯 그것을 일종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결국 경쟁자를 제거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관적인 전망은 ‘암흑의 숲’ 이론이라 불리는데, 우주의 모든 문명을 어두운 숲 속에 숨은 채 경쟁자를 공격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잠재적 사냥꾼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삼체>는 1960년대 후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시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이 지구 인근의 행성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메시지를 받은 외계 문명이 지구를 침략할 수백년 짜리 계획에 착수하지만, 문화혁명 시기의 홍위병을 경험하고 인류의 생존에 대한 당위를 잃어버린 그녀는 외계의 침략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 외계 문명은 진군 도중 지구의 입자가속기를 파괴한다. 그래서 지난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을 만든 것과 같은 급진적인 기술의 발전은 불가능해진다.

SF소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장르지만, 곧잘 실제 역사의 은유를 담아내곤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고대 로마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고, <듄 시리즈>의 프랭크 허버트는 아라비아 지역 베두인 족의 역사를 차용했다. 류츠신은 <삼체>를 특정 역사와 연결짓는 것은 거부했지만, 역사 속의 문명들 특히 기술적으로 발전한 외부문명과 그렇지 않은 정착문명 사이의 만남들에서 영향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19세기에 그런 일이 있었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인 ‘중화’라 부르며 아시아 일대를 호령하던 중국이 어느날 갑자기 바다에 나타난 유럽 해양제국의 함대를 보게 된 그 만남이다. 그 순간, 마치 고대 로마가 몰락하던 것과 같은 추락이 중국에 시작되었다.

“그런 건 SF소설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지난 여름 새로운 천문대를 보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베이징으로 가 류츠신을 만났다.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삼체>의 영화화에 대해 물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는 “사람들은 <삼체>를 중국의 <스타워즈>처럼 기대하더군요”라고 말했다. 2015년에 이미 촬영을 끝낸 영화는 여전히 후작업 중인데, 특수효과 팀 전원이 교체된 것도 일정이 늘어진 이유 중 하나다. 그는 “SF 영화를 만들기에는 아직 중국의 시스템은 미숙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삼체>는 비영어권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했다

류츠신은 ‘첫 접촉’에 관한 중국 최고의 사상가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천문대에 대해 내게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천문대에 대한 질문을 통역사가 그에게 전달했고,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웃었다.

“그런 건 SF소설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블레이드 러너>에 나올법한 네온사인 그리고 힙한 카페와 펍으로 가득한 상하이에서 초고속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자기부상 궤도를 달리면서, 중국의 도시지역에 뻗어있는 벌집 모양의 철도망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이 지난 백 년 동안 소비한 콘크리트 양을 중국이 쓰는 데에는 딱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에도 철도를 놓기 시작했고, 베링 해협 지하를 뚫어 유럽과 북미 사이를 오가는 초고속철도를 개발 중에 있다.

열차는 점점 더 깊이 들어갔고 마천루와 타워크레인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초록빛 논과 낮게 깔린 안개는 왠지 그 옛날 아시아를 호령하던 고대 중국을 떠오르게 했다. 그 옛날 중국은 한자를 만들어 아시아에 퍼뜨렸을 뿐 아니라, 동전과 지폐 그리고 화약을 인류에게 선물한 곳이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계단식 논에 물을 가져다주는 관개 시스템 역시 중국의 작품이다.

서쪽으로 열차가 달릴 수록 논의 계단은 가파라졌다. 경사가 점점 급해지는 나머지 나중엔 창문에 기대 앉아야 할 지경이었다. 한스 짐머가 영화음악에 쓰는 것과 같은 낮은 음이 빠앙 하고 울리면, 한 쪽 창은 시속 200마일로 스쳐가는 다른 기차로 가득찼다. 마치 우주선이 옆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류츠신은, ‘첫 접촉’에 대해 많은 것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진 구이저우 성의 중심지인 구이양의 번쩍이는 동굴 같은 기차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기차에서 내린 구이양은 정부가 밀어붙이는 사회 운동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에게 실내에서 침을 뱉지 말라 써있는 표지판이 보였다. 거리의 확성기는 ‘예의를 지킵시다’라고 소리쳤다. 거리의 공안은 택시 대기줄에 끼어드는 노인을 끌어내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 로비에서 나를 천문대까지 데려다 줄 기사와 만났다. 천문대까지는 4시간 걸린다고 했다. 2시간 정도 달렸을 때, 비내리는 길에 기사는 차를 세우고 30야드의 들판을 걸어갔다. 그는 벼를 베던 농부와 (100마일이 넘게 떨어진) 천문대로 가는 길을 물으며 실랑이했다. 한참 뒤 농부는 낫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는 다시 출발했고, 작은 마을들을 차례로 지났다.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와 보행자들이 도로로 자주 튀어나왔다. 도로 옆의 건물들을은 수백년이 넘어 그 처마가 낡아있었다. 많은 주민들은 천문대 부지를 확보하려 하던 구이저우 성에 의해 강제 이주되었다. 집을 잃은 이들은 정부가 제공한 보금자리와 부실한 보상책에 대해 언론에 불만을 쏟아냈다. 서구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외계 문명에 혈안이 된 중국의 망원경, 9천 명의 주민을 몰아내다’ — 뉴욕타임즈의 헤드라인이었다.

SETI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연결과 초월에 대한 인류의 깊은 내적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SETI(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는 과학계에서도 신비주의/종교라는 비난에 종종 휩싸이곤 했다. 25년 전, 미국 의회는 네바다주 상원의원 리처드 브라이언이 제안한 예산 수정안을 승인하며 미국의 SETI 프로그램의 지원을 중단했다. 당시 브라이언은 ‘그저 화성을 탐사한다는 이유로 납세자들에게 부당한 부담을 주는 것은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과학탐사 목적의 천문대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첫 접촉’을 경험할 주인공이 중국인 이유다. 미국이 아니라.

SETI는 어떤 면에서 종교와 유사하다. SETI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연결과 초월에 대한 인류의 깊은 내적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류의 기원이나 자연의 생태적 창조력 그리고 우주적 관점에서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인 종교의 힘이 이전만 못한 지금도, 그런 물음들은 유효하다.

물론 SETI의 이런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정부가 SETI에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지 명확히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진행한 다른 과학 프로젝트들도 수억 불에 달하는 세금을 무언가 의문 속의 것들을 찾는데 써왔다. 막대한 비용과 수십 년의 세월을 투자하여 블랙홀과 중력파를 찾아낸 프로젝트도 처음엔 그 목표가 아주 미미하고 의심스러웠다. 오히려 다윈이 진화를 통해 행성에서 지적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외계 행성에서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는 어쩌면 다윈주의 입장에서는 가장 흥미로운 과학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연방 기금은 끊겼어도, SETI는 세계적인 부흥기에 있다. 현대 기술로 제작된 망원경은 외부 행성의 궤도에 올라 그 행성을 살필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SETI에서 준비 중인 차세대 천문대가 만들어지면 궤도 망원경을 통해 외부 행성의 대기를 살필 수 있게 된다. 또한 연구원들은 우주에서 생활하며 미래에 대한 물음들을 궁구해왔다. 외계 문명이 사용할 법한 기술이 무엇인지 그 기술이 우주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추론했다. 무언가 인공적인 오염물이 발생하면, 멀리서도 그 화학적 흔적을 살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초신성의 충격파로부터 개별 행성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된 거대한 성단을 찾는 방법도 알아냈다.

유리 밀너(좌)는 수억 불을 SETI에 쏟아부었다.

2015년, 러시아의 억만장자 유리 밀너는 UC버클리의 과학자들이 이끄는 새로운 SETI 프로젝트에 사재 1억 불을 쏟아부었다. 이 팀은 10년 전이라면 한 해가 꼬박 걸렸을 분량의 관측작업을 하루만에 수행한다. 밀너는 다음해 성간 탐사 프로젝트에도 1억 불을 투자했다. 칠레의 고지대 사막에 건설된 거대한 탐침에서 수십 개의 초소형 탐사선을 4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로 쏘아올리는 프로젝트다. 밀너는 이 탐사선의 카메라가 항성의 대륙 하나는 커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파 센타우리 프로젝트 팀은 그들이 우주에 쏘아보낼 방사선을 분석하던 중, 그 방사선과 기존 천문학자들이 감지해왔던 ‘라디오파열음(FRB; Fast Radio Burst)’과의 불가사의한 유사성을 발견했다. 이는 어쩌면, 외계의 다른 누군가가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탐사선을 우주로 쏘아보내고 있다는.

밀너의 SETI 프로젝트 리더 앤드류 시미온은 이 가능성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공사가 한창이던 중국의 천문대를 방문해서 공동 관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에서 연구 중인 SETI 연구진들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지난 가을 웨스트버지니아의 전파천문대에서 그의 SETI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중국의 천문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시미온은 중국의 천문대가 전파 스펙트럼의 관점에서 볼 때 ‘외계의 신호를 수신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형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내게 이야기했다.

중국으로 떠날 거라고 하자 시미온이 준 팁은, 천문대 주변은 길찾기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핸드폰 수신감도가 사라진다면 천문대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라는 것이었다. 통신기기가 내보내는 전자기파를 외계 문명의 신호라고 오인하지 않도록, 일반인의 전파 송수신은 천문대 근처에서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SETI 프로젝트 과정에서 기록된, 사람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 수십억 건의 오탐지(false positives)가 수퍼컴퓨터엔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나 긴 거리를 달린 운전 기사가 거의 쓰러지기 직전, 내 핸드폰 수신감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이양의 햇살을 등지고 달린지 다섯 시간,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온 것 같은 거대한 산 사이에 바람은 높게 일었고, 길다란 대나무 줄기엔 초록 이파리들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마침내 핸드폰의 수신감도가 사라졌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베이징에서 류츠신을 만났을 때, 그와 함께 구시가지의 특별한 장소를 찾았다.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1442년, 명 황제가 자금성 근처에 세운 천문대였다. 40피트가 넘는 높이에 우아한 성곽 모양을 한 이 구조물은, 그동안 중국의 가장 중요한 천체관측기구였다.

천문학에 있어 중국보다 오래된 전통을 가진 문명은 없다. 고대 중국의 지도자들은 하늘로부터 통치의 정당성을 받았다 여겨 스스로를 ‘천자(하늘의 자손)’라 불렀다. 3,500년 전 중국의 신관들은 거북이 등껍질(갑)이나 황소 뼈(골)에 천문 기록을 남겼다. 인류 최초의 일식에 대한 기록이 이 ‘갑골 문자’에 남겨져 있다 — 아마 그 일식은 외세의 침략과 같은 대재앙의 전조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그 천문대의 석조 정원에 있는 검정 대리석 테이블을 두고 류츠신과 앉았다. 수 백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소나무 뒤로 뿌연 황사가 해를 가렸다. 붉고 둥근 문을 나서면 포탑처럼 생긴 전망대로 가는 계단이 나왔다. 번쩍이는 용 동상이 떠받치는 거대한 지구본을 포함한 고대의 천문기구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지구본은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 열강 8국에 의해 약탈당했다. 내가 류츠신과 있던 정원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군대가 쏟아져 들어왔고 관측기구 10개를 훔쳐 달아났다.

기구들은 반환되었지만, 크고 작은 약탈들은 이어졌다. 여전히 중국 학생들은 명나라의 전성기 이후 이어진 이 추락의 시기를 ‘굴욕의 세기’라 배운다. 명나라가 천문대를 세울 때를 되돌아보면, 중국은 바빌로니아나 미케네 심지어 고대 이집트를 포함한 청동기 문명 중 유일한 생존 문명이었다.

서구에서는 오지만디아스의 증거라는 이름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폐허를 불렀지만, 중국은 실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의 천자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사회조직을 주재했다. 주변국들에게 조공을 요구했고, 황제의 기쁨을 위해 사절을 북경으로 보내 바닥에 얼굴을 대어 절할 것을 명했다.

영국의 학자 조셉 니덤은 1954년 그의 걸작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시민들의 고전 독해력을 시험으로 물을 만큼 고도의 지적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볼테르 역시도 중국의 수학이 왜 기하학에서 멈추어버렸는지, 왜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중국으로 가져온 이들이 다름아닌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는지 의문을 품었다.

니덤은 유교 전통을 이유로 들었다. 너무 안정적이었던 통치권력을 문제삼은 다른 역사가들도 있었다. 오래 지속된 단일 정부가 다스렸던 이 대륙은, 열 개 이상의 권력들이 좁은 땅에서 아웅다웅하던 유럽에 비해 기술의 역동적인 발전을 상대적으로 덜 촉진했다.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맨하탄 프로젝트가 증명하듯,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종종 경쟁으로 인해 가속되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근대 이전의 중국이 ‘경계 밖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당시의 중국엔 우주와 외계 생명에 대한 추측도 거의 없었다) 이는 왜 중국이 근대에 해상 혁신을 지속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한다. 근대에 (외부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유럽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했고, 그 옛날 그리스 아테네가 그랬듯이 바다를 차지하려 나섰다.

이유야 무엇이든, 과학기술에서 서양에 뒤쳐졌던 중국은 큰 대가를 치른다. 1793년 영국의 조지3세는 제국의 눈부신 발명품을 배에 한 가득 실어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 황제는 ‘쓸 데 없는 장신구’라며 거절했다. 50년 후 영국은 다시 중국을 찾아 아편의 교역을 제안했다. 황제는 다시 거절했고 급기야 영국 소유의 아편 200만 파운드를 바닷가에서 불태웠다.

기술에서 서양에 뒤쳐진 중국은 큰 대가를 치른다.

최신기술로 무장한 대영제국의 해군은 증기선을 타고 양쯔강에 나타나 중국의 선박을 수장시켰다. 그 결과 중국의 황제는 홍콩을 포함한 다섯 항구를 영국에 넘기는 최초의 ‘불평등 조약’의 주인공이 되었다. 베트남을 정복한 프랑스와 산둥반도를 장악한 독일도 그 조약을 보곤 ‘중국 나눠먹기’에 동참한다.

반면 그간 중국이 ‘동생’ 뻘로 생각해오던 일본은 그 대응이 빨랐다. 서양을 보며 해군을 빠르게 현대화시킨 일본은 1894년 딱 한 번의 전투로 중국 함대를 궤멸시키고 대만을 접수했다. 이는 이후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잔혹한 침탈의 전주곡이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대동아공영이라는 기치 아래 태평양 일대를 빠르게 접수해나갔다. 이후 그 자리는 핵무기를 가진 미국이 가져갔다.

미국이 이 지역의 강자로 부상하며, 중국의 굴욕은 이어졌다. 1차대전 당시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서부전선에 20만 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중국은, 종전조약을 체결할 때 배상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평등조약은 아니길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의 자리는 열강들의 테이블이 아니었다. 그들이 어른 테이블에서 지구를 주무를 때, 중국은 그리스나 캄보디아와 같이 아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중국은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국가에 큰 명성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1980년대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방정책은 중국의 지정학적 힘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당시 중국 정서상으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덩샤오핑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보였다. 덕분에 외형을 빠르게 키운 중국은 연구개발비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수준이 되었지만, 아직 그 질적 수준은 차이가 크다. 한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의 논문도 1/3은 허위거나 표절이라고 한다. 서양의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는 수만 불의 보너스를 내걸 정도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중국의 과학이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반체제 과학자에 대한 박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조차 ‘반체제적’이라 이야기하던 마오쩌둥 시대부터 있어왔다. 중국의 국가 방화벽(Great Firewall) 역시, 중국의 과학자들이 해외자료에 접근할 때 큰 장애가 된다.

하지만 중국은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국가에 큰 명성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한 때 ‘천자’가 다스리던 이 국가는 소련이 인공위성과 우주인을 우주로 쏘아올릴 때, 미국이 성조기를 달 표면에 꼽을 때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중국은 주로 응용과학에 투자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퍼컴퓨터를 만들고 의료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으며 고비사막 주변의 사막화를 막기위해 고비사막 북서쪽에 ‘거대한 녹색 벽’을 만들었다. 이제 중국은 기초과학에 그 힘을 쏟으려 하고 있다. 에테르에서 ‘신의 입자’ 힉스를 수천 개 끌어낼 수 있는 입자분쇄기를 구축할 계획이며, CERN(유럽 원자핵 공동연구소)의 거대 하드론 충돌기를 받아들였다.

또한 중국은 화성에도 손을 뻗으려 한다. 21세기의 기술사에서, 중국의 우주비행사가 화성의 붉은 표면에 발을 내딛는 고화질의 사진만큼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 ‘첫 접촉’을 제외한다면.

접시안테나에서 1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경비실에 핸드폰을 맡겼다. 보안장치에 폰을 봉인한 경비원은 나를 금속탐지기로 데려가 다른 금속기기를 가지고 있진 않은지 확인했다. 다른 경비원이 나타나 산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날 안내했다. 잠자리 모양의 푸른 구름 사이로 난 800개의 계단을 오르자, 천문대의 접시안테나가 내려다보이는 플랫폼이 나타났다.

지난 9월 사망한 전파천문학자 난 렌동은 천문대의 기술 리더이자 그 정신이었다. 이 접시안테나가 외계문명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지 확인 한 것도 그였다. 1990년대 초반 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 중국의 남방 카르스트 지역에서 고른 수 백개 후보지들의 위성사진을 검수했던 것도 역시 그였다.

빅뱅의 잔광을 구성하는 극초단파 정도를 제외하면, 전자파는 전자기 방사의 가장 약한 형태다. 지구의 천문대에서 한 해 동안 수집하는 모든 전자파의 에너지 합은 눈송이 하나가 맨 땅에 사뿐 떨어질 때 방출되는 운동에너지의 크기보다도 작다. 이런 미세한 신호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침묵’이 필요하다. 지구 어느 곳보다도 기술적으로 고요한 달의 뒷면에 중국이 언젠가는 전파천문대를 만들려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난 백 여년 동안 여러 전파천문대들이 도심 외곽의 버려진 땅에 버섯처럼 돋아난 것의 이유이기도 하며, 난 렌동이 이 오지의 카르스트 지역을 뒤져가며 전파천문대를 세울 곳을 찾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표에서 불쑥 솟아올라 크고 들쭉날쭉한데다 아열대의 식생으로 뒤덮인 석회지대 돌산은 일종의 벽을 형성한다. 이 벽은 천문대의 민감한 귀(접시안테나)를 바람과 전파간섭으로부터 막아준다.

수신기는 수십 억개의 별을 가로지르는 수십 억개의 파장 사이에서 신호를 찾으며, 그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킬 것이다.

후보지들을 한 번 더 추려 리스트를 만든 후, 난 렌동은 한 곳 한 곳 방문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그는 다오당 지대를 걷다가 융기와 침식이 반복되어 만들어진, 푸른 산들로 둘러싸인 거의 완벽한 사발 모양의 저지대를 찾아냈다. 20년의 시간과 1억 8천억 불의 비용이 들어간 후, 난 렌동은 천문학에서 말하는 ‘최초의 빛’을 관측하며 전파천문대의 관측을 시작했다. 천문대는 초신성 혹은 ‘객성’의 사라져가는 전자파를 비추었다. 천년 전 고대의 신관들이 기록한바 있는 그 빛이었다.

접시안테나의 위치 기준점을 한 번 잡은 후, 밤하늘을 크게 나누어 스캔을 시작한다. 앤드류 시미온의 SETI팀은 중국팀과 함께 이 스캔작업을 보정하는 기기를 만들고 있다. 우주의 다른 문명을 찾기 위한 어떤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으며.

시미온은 은하계 중심부의 조밀한 성단을 조사하는 것에 특히 흥미를 보였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장소죠”, 그가 말했다. 수 많은 항성과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것은 수 많은 탐사선을 은하계에 쏘아올리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시미온의 수신기는 수십 억개의 별을 가로지르는 수십 억개의 파장 사이에서 신호를 찾으며, 그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킬 것이다.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장소죠”

류츠신은 그 접시안테나가 외계 문명으로부터의 신호를 발견할 수 있을지 솔직한 의문을 보였다. 그가 상상하는 ‘암흑의 숲’ 우주에서는 그 어떤 문명도 외부에 신호를 쏘아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 문명에게 침략 당했거나 감마선 폭발로 인해 소각 되었거나 다른 자연 재해로 인해 소멸하기 직전에, 마지막 여력을 모아 행성 주변의 우호적인 곳을 향해 단말마의 비명을 쏘아보내는 ‘죽음의 징표’가 아닌 이상에야.

설령 류츠신이 옳고 중국의 천문대가 외계에서 쏘아보낸 메시지를 감지할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그 거대한 안테나는 마치 지구 상공의 항공레이더처럼 외계 문명이 희미하게 발산하는 전파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다른 문명이 실제로 ‘암흑 숲 속의 고요한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누출하는 전자파를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밤하늘의 별들도, 문명의 무선기술을 최초로 발동했을 때보다도 희미한 전파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전까지의 천문대들은 이런 전파들 중 일부만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중국의 새로운 접시안테나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수 만 개에 이른다.

베이징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류츠신에게 난 외계 신호를 잡아내리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암흑의 숲 이론은 인류의 역사를 너무 협의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중국이 서구 문명과 만났던 때를 과하게 일반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었다. 류츠신은 확신에 찬 말투로 중국이 서구 문명을 만났던 때가 일반적 패턴을 대표한다고 답했다. 역사를 통틀어, 주변 세력을 제압할 목적으로 진보된 기술을 쓰는 정복문명의 사례를 찾는 것은 쉽다. “근대 이전의 중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랜 기간 아시아 일대를 지배했던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가 말했다.

그 패턴을 기록에 남은 모든 역사로 확대한다고 해도, 원시 시대의 암흑기에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를 만나 멸종한 어떤 그 순간에도 쓴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주의 은하 문명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운 문명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일반화하기에는 턱도 없는 찰나일 뿐일지도 모른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학습하지 않는다면, 문명은 수 억년 동안 지속될 수 없다. 나는 지구 문명이 상대적으로 미숙하여 (공존이라는) 일반 패턴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했다. 은하수는 수십억 년 동안 문명이 창발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인류는 이미 종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냈는데, 수 억년을 살아남은 문명의 무기는 당연히 이보다 강력할 것이다. 아마 우리가 만나게 될 외계 문명은, 거의 확실히 우리보다는 오래되고 우리보다는 현명할 것이다.

우주의 성숙한 문명이 대외 확장을 제 1원칙으로 취급한다는 증거 같은 것 역시 없다. SETI의 연구원들은 그간 어느 한 지점에서 사방으로 메시지를 쏘아내는, 즉 모든 은하계를 정복할 때 까지 계속 성장하는 그런 문명을 찾아왔다. 만약 그들이 예상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이런 문명들은 도드라지는 적외선을 내뿜었을테지만, 밤하늘을 샅샅이 뒤진 안테나에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자가복제하는 기계가 천 억 개의 별들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며 전파를 내뿜어 데이터를 교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인류 문명이 지구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있지 않듯 은하계에도 문명들이 고르게 퍼져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은하의 1/10만 차지해도 분명히 눈에 띄었을 이런 문명은, 아직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근처의 은하계 10만 개를 뒤졌음에도.

몇몇 SETI 연구원들은 좀 더 미묘한 확장 메커니즘에 대해 고민했다. 지구의 생태학적 폭발기였던 ‘캄프리아기의 대폭발’처럼, 어느 행성에 미생물을 뿌리거나 표면의 생물체 진화를 가속시켜 생태계를 촉발시킬 수 있을 만한 ‘제네시스 탐사선’의 가능성도 생각했다. 그런 우주선이 지구를 오래전 방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증거를 찾는 이들도 있다. 과학적으로는 가장 폭발적인 정보 저장매체인 우리 DNA 안에 어떤 코딩된 메시지를 심어져있나 하는 것을.

류츠신은 이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런 신호가 없다는 것은 사냥꾼의 은닉기술이 더 뛰어나다는 것의 증거일 뿐이다. 그는 인류가 인류의 방식으로 다른 문명을 추론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했다. “수백만 혹은 수십억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이 은하계로 나아갈 때 쓰는 기술을, 인류의 기술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은 마치 거미가 인류를 보며 ‘왜 곤충을 잡을 때 거미줄을 쓰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평화적인 공존을 달성한 성숙한 문명은 오히려 더욱 사냥꾼처럼 움직일 것이라며 류츠신은 말했다. “은하의 거리만큼 떨어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해가 자칫 실존의 문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 역시도요.”

우리가 ‘첫 접촉’를 통해 만나는 상대가 생명체가 아니라 어느 행성을 장악한 생물학적 인공지능이라면 더욱 까다로워질 수 있다. 그것의 세계관은 어쩌면 이중적일 수도 있다. 지적능력의 핵심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대신 특정한 진화과정 혹은 문화 속에서 어떤 감정이 내재되어 있을 수는 있다.

그 지능의 행동 논리는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 것이다. 행성 전체를 수퍼컴퓨터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옥스포드 대학의 한 연구처럼, 그 지능은 현재의 우주가 컴퓨팅을 하기 위한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너무 따뜻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외부의 관찰로부터 스스로를 숨기고 휴면 상태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우주가 좀 더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서 좀 더 컴퓨팅하기 좋은 조건이 될 때까지.

접시안테나를 볼 수 있는 플랫폼으로 가는 걸음을 내딛었다. 산벌레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접시안테나로 인해 증폭되어 마치 지구가 커다란 수퍼컴퓨터가 된 것처럼 윙윙 거렸다. 플랫폼 꼭대기에서 처음 보인 것은 천문대가 아니라 카르스트 지대의 산맥들이었다. 모양이 제각각인 가파른 기울기의 기암괴석들. 마야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정글에 뒤덮여 기괴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방향으로 지평선까지 뻗은 기괴한 산맥은 가까이는 짙은 녹색, 멀리는 푸른 색으로 뒤덮어있었다.

이 기묘한 풍경 가운데 거대한 접시안테나가 있었다. 축구장 다섯개가 들어가는 이 안테나에 밥을 가득 담으면, 지구의 모든 인구에 밥을 두 그릇씩 줄 수 있다. 현대 과학기술이 보여줄 수 있는 이 숭고한 작품은 마치 유타 주의 빙햄 구리광산에 비견될 만큼 거대했다. (광산의 바쁘고 거친 흔적은 없었다) 탁 트인 오목한 접시는 지구가 있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이 보였다. 마치 신이 둥근 손끝으로 지표를 눌러 부드러운 은색 흔적을 남긴 것처럼.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 시간 남짓, 앉은 채로 비를 맞으며 천문대를 살폈다. 수 천 개의 삼각형 알루미늄 패널이 모자이크를 이루었다. 일부 타일은 밝은 은색, 나머지는 창백한 구릿빛으로 변했다. 먼 거리의 외계 문명이 보낸 신호가 지구에 닿으면, 그것이 다름아닌 이 움푹 들어간 곳의 금속 더미로 떨어진다는 것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접시에 떨어진 전파는 수신기로 반사되어 면밀한 조사를 거친다. 국제사회는 그간의 탐사기록에 대해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구속력은 없었다. 아마 중국은 신호 자체를 공개할 지는 모르나 회신 했을 때의 위험성을 감안하여 어디서 보내왔는지 공개하지 않고 국가기밀로 다룰 것이다. 그 때 중국의 동맹국 중 하나가 이를 공개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중국 내부의 과학자 중 하나가 마음을 먹고 그 신호를 광자 펄스로 바꾸어 국가 통신망 바깥에 쏘아보낼 수도 있다.

중국의 접시안테나는 축구장 다섯 개 크기다.

잠시만 ‘암흑의 숲’ 이론은 논외로 하고 중국의 과학기술부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신호’를 찾았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고 류츠신에게 말했다. 외계의 문명으로부터 온 메시지에는 무엇이라 답하는 것이 좋을까.

그는 인류의 역사에 대한 너무 자세한 설명은 피해야 할 것이라 했다. “너무 암울합니다. 인류를 보다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들 겁니다” 그가 답했다. ‘첫 접촉’에 대해 피터 와츠가 쓴 소설 <블라인드 사이트>에서는 개별 존재에 대한 가벼운 언급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될 수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런 문명은 지구의 대기를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원자폭탄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모든 선진 문명들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우리 문명을 감시해왔을지도 모른다고. 인류의 역사를 얼마만큼 이야기할지는 사실 우리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첫 접촉’이 세계대전 혹은 국제사회의 분열을 초래하리라 예견했다. 사실 SF에서는 단골 소재이기는 하다. 작년 아카데미 후보였던 영화 <콘택트>에서는 외계 문명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종말론적 종교들을, 그리고 외계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경쟁을 촉발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의 비관적 전망의 근거가 되는 사례도 있다. 1949년 오손 웰스의 SF소설 <우주전쟁>이 라디오 드라마로 송출될 당시, 청자들은 드라마를 실제 사건으로 착각하여 폭동을 일으켰고 6명이 사망했다. “훨씬 쉬워 보이는 문제들을 마주할 때에도, 우리는 갈등을 일으켜 왔습니다”, 그는 말했다.

지정학적 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치더라도, 인류는 급격한 문화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지구의 모든 종교들은 이 ‘첫 접촉’에 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불교는 사실 조금 쉽다. 불교는 이야기되지 않았을 뿐인 생명의 진동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무한한 우주를 상정한다. 힌디의 우주 역시 웅대하고 충만하다. 코란에는 ‘하늘과 땅의 창조, 신이 흩뿌려놓은 생명체’를 언급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야훼의 권능에 한계가 없어서, 특정 행성에만 제한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도 성간 거리를 뛰어넘어 ‘위대한 정신’과 겸허히 연결될지 모른다.

기독교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예수의 희생이 더 넓은 우주의 영혼들에게까지 적용되는지 아니면 그 행성의 원죄는 그들의 종교적 경험으로 구원받아야 하는지 현대 기독교에서는 논란이었다. 바티칸의 천주교는 무언가의 과학적 혁명이 임박했음을 감지한건지 외계 생명체를 그들의 교리 범위 내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게 교리 범위 밖의 이야기라며 가했던 부끄러운 박해는, 아직도 교단의 기억에 생생하다.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 역시 이 ‘첫 접촉'이 초래할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고 할 때에도, 다윈이 인간을 나머지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때 조차도 인류는 자연계의 정점이었다. 인류는 매우 잔혹하게 다른 ‘열등’ 생물들을 대했다. 가장 간단한 원소와 공리가 ‘인류’라는 위대한 존재가 된 것에 대해 인류는 스스로 경탄해 마지않았다. 칼 세이건이 ‘우리 자신을 통하여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듯, 우리는 우리 존재를 그 자체로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이는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의 변주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도 성간 거리를 뛰어넘어 ‘위대한 정신’과 겸허히 연결될지 모른다. 그로부터 문명의 발상과 쇠퇴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진짜 역사를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수백 만년의 전통을 가진 은하계의 위대함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수백 광년 떨어진 문명들끼리 협업해야만 하는 과학 탐사 작업에 동참할 것을 요청받을지도 모른다. 그 작업을 통해 우리가 자연에 대해 추측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형이상학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도덕관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실존적 충격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일이다. 암흑의 숲에서 우리가 만날 그 빛이 우리의 집을 환하게 비춰줄지도.

서울 성수동의 장르문학 창작자 커뮤니티, ‘안전가옥'에는 류츠신의 <삼체>가 구비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대형 프로젝트를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자문하는 이야기꾼을 만날 수 있기를.

안전가옥: http://blog.naver.com/safehousekorea

--

--

뤽
이바닥늬우스

안전가옥의 집사장. 뉴스를 많이 봅니다. 가끔 번역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