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과 야채깎이

뤽
이바닥늬우스
Published in
22 min readJul 8, 2018

몇 주 전, 나는 CES가 열리는 라스베가스였다. 약 20만 명이 모인 그 곳에는, 늘 그렇듯 상상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스마트” 버전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아예 상상조차 못할 것들이 있었다. 이에 관한 많은 의견들도 들었는데, 가령 “여기 모든 것들은 전부 넌센스다”에서부터 “이것들이 진정한 차세대 플랫폼이다. 음성 기반 AI는 우리의 가정을 바꾸고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이다”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입장이 있었다.

스마트홈이 구체적으로 무엇일지 아직 또렷하게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요즘 여러 생각들을 하며 구체화시키고 있다.

1. 사람들이 ‘스마트한 무언가’를 산다면 얼마나 살까? 모든 제품을 스마트한 것으로 사게 될까, 아니면 도어락이나 온도조절기처럼 필수적인 두어 개만 (스마트한 것으로) 사게 될까?

2. 만약 스마트제품을 여러 종류 구매하게 된다면, 이 모든 것들은 음성 인터페이스로 제어되는 단일 시스템에 통합되어 작동할까?

3.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이 알렉사(혹은 시리 또는 구글)에 연결된 여러 스마트 제품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기술 생태계를 바꾸게될까? 그리고 전에 없던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까? 이 현상은, 예컨대 아마존으로 하여금 단지 중국 심천 공단에서 생산되는 에코 시리즈의 판매를 늘리고 아마존 프라임의 구독 취소율을 줄이는 효과보다 더욱 큰 무언가의 임팩트를 주게 될까?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그렇다”, “아마도”, 그리고 “아니다”이다.

왜 그런지부터 이야기해보자.

왜?

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마도 당신들이 가진 기계에 들어있는 모든 전동모터의 수를 정확히 셀 수 있었을 것이다. 자동차에 한두개, 냉장고에 한 개, 진공 청소기에 한 개 그리고 다른 기계 몇 개를 더하면 아마 12개쯤 되지 않았을까. 반면 요즘의 우리는 몇 개의 전동모터를 가지고 있는지 (자동차 안에 있는 걸로만 세더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네트워크 연결이 되는 기기나 스마트 기기의 수를 몇 개 가지고 있는지는 셀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랩탑, 그리고 TV 정도 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식 세대들은 그들의 이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스마트 기기를 몇 개 갖고 계신가요?”라는 질문은 마치 “집에 전등을 몇 개 갖고 계신가요?”같은 질문이 될 것이다.

우리 조부모 세대가 최근 자동화된 것들의 대부분을 황당하다 생각하듯, 앞으로 우리는 인터넷에 연결되거나 스마트화 되는 기기 대부분을 웃기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 조부모에게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조정할 수 있는 버튼이나 야채를 깎는 기계가 있다고 하면, 그분들은 우리가 뭔가 모자란건가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것이 현재 신기술이 전개되는 양상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늘 그랬듯 이미 있던 기술들의 비용이 크게 낮아지며 우리 삶에 녹아들 것은 자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자동화될 것이라 생각한 것 중 다수는 자동화되지 않았고 대부분이 당연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는 여전히 구식으로 돌아가는 것들도 있다.

영국인 대부분은 전기포트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대부분 전기 밥솥이 있지만, 영국인은 아니다. 제빵을 몇 번 해본 사람은 전기 거품기를 20불 정도에 샀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육용 전기 나이프를 쓰지 않는다.

스마트홈이든, 커넥티드홈이든, 사물 인터넷이든 (세 용어의 차이는 거의 없다) 어쩌면 매우 비슷한 것이다. 이전에 전기 부품이 싸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전기를 이용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날 스마트폰과 부품 비용의 절감 역시 사람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의 스마트 실험을 가능케 하였다. 이 중 어떤 것들은 성공하고 어떤 것들은 그러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그냥 우리 자식 세대는 성공한 기술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쓰고 있을 것이다.

이 기술 도입의 운명적 양상은 전기 자동화와 유사하게 스마트 사물에도 적용될 것이나, 그 보급으로 인해 파생되는 효과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세탁기와 진공청소기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을 엄청나게 아껴주었다. 업의 개념을 완벽히 대체했으며 인류를 고된 일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TV는 좋든 싫든 사람들의 시간을 엄청나게 뺏어갔다. 전후 일본에서는 텔레비젼, 냉장고, 세탁기를 반 농담으로 “3개의 성스러운 보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에 비해 아무도 스마트 전등 스위치나 디지털 온도조절기를 보물이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는 대부분 스마트 기기가 가져오는 파급력은 이전 시대의 기술 발명에 비해 훨씬 더 소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최근의 여러 실험들을 보며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 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스마트 전등 스위치가 보물이 아니라면, 전기포트 역시 아닐테다. 사람들은 주전자를 스토브 위에 올리고 불을 켜고 끓을 때까지 기다려 불을 끈 후 차를 담는다. 물론 보통 냄비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전기포트를 쓰면 훨씬 더 빠르게 물을 끓일 수 있고, 물이 끓은 후 전원도 바로 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를 마시는 이 대부분이 전기포트를 하나씩 갖고 있는 것이다.

좀 더 확대해 유추해보면, 야채깎이도 마찬가지다. 주방칼로 과일이나 채소를 깎을 수 있다. 하지만 사과의 반을 싱크대에 떨어뜨리거나 엄지손가락을 몇 번 베이다 보면, 수퍼마켓에서 3불 정도 주고 야채깎이를 하나 장만하게 될 것이다.

전기포트도 야채깎이도 사람들의 시간을 극적으로 아껴주거나 고된 일에서 해방시켜주지는 않는다. 다만 삶에서 매일 일어나는 작은 불편함을 줄여줄 뿐이다.

오늘날, 스마트기기 제조사들은 어떤 일상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지 찾으려 한다. 이런 것들은 자동화되기 전까지는 별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사이드미러를 손으로 조절하던 것과 같이 말이다. 어떤 것은 심지어 말하기 전까지 문제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왜 사람들이 식기 세척기를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일상의 사소한 불편함들은 이런 식으로 하나씩 없어진다.

그런 불편함들은 어떤 식으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의 시간을 크게 아끼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불편함을 없앨 수 있는 일을 하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어쩌면 질문을 찾는 것이 어떤 한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답을 찾게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질문할 거리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오랜 말이 있다. 그렇다면 집 안에서의 질문은 무엇일까?

화장실에 갈 때 불이 켜지길 원할까?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일 텐데, 그렇다면 왜 매번 전등 스위치를 눌러야 할까? 현관문 쪽으로 걸어갈 때 문이 잠겨있기를 원할까? 대답은 언제나 ‘아니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늘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덩어리 뭉치를 꺼내 맞는 조각을 골라 정확히 꽂아야 할까?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면, 물이 전부 증발할 때까지 끓여야 할까? 아니라면, 불을 끌 일이다. 무언가를 구울 때, 오븐을 예열하기 위해 버튼을 직접 조작하고 싶은가, 아니면 ‘전원을 켜고 350도로 불을 올려’라고만 하고 싶은가? 커피 머신에 캡슐이 다 떨어지면, 더 주문하기를 원할까? 그렇다.

애초에 질문이 될 수 있을 일이긴 한 걸까?

이 질문들이 점점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기 시작할 수 있다. 어딘가 숨겨진 마법의 말들로 차가 움직인다고 생각할 때 자동차를 완벽히 잘 운전할 수 있다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당신의 핸드폰, 스마트 워치, 자동차 혹은 심지어 당신의 얼굴만을 기다리는 스마트 도어락은 일종의 마법이다. 오직 당신만을 출입하게 할 수 있는 지니가 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두 번째 질문으로 연결된다. 만약 수십 개의 스마트 사물이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통합된 시스템의 일부가 될 것인가? 그것들이 모두 알렉사와 소통하거나, 하나의 스마트폰 스크린에서 제어되거나, 혹은 어떤 제어도 없이 마법처럼 내가 원하는대로 알아서 작동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의 지니를 원하는가 아니면 다양한 지니를 원하는가? 어떤 쪽이 불편함이 적겠는가?

하나의 플랫폼 혹은 다수?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스마트 기기가 다른 모든 것에 명령을 내릴 수 있고,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제어되어야 할까? 쉽게 할 수 있는 답은 “당연히 모든 것은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일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 기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기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어떤 것들은 어쩌면 아무런 인터랙션도 필요가 없을 것이고, 어떤 것들은 직접 컨트롤이 필요할 것이다. 또 어떤 것은 원격 제어가 가능하고, 다른 것들은 주변의 기기와 함께 작동하는 것을 통해 큰 가치를 제공하는 반면, 전혀 그렇지 않을 것들도 있을 것이다.

많은 기기들은 이 중 몇 개에 동시에 해당할 것이다.

현관문이 저절로 잠겨 주인이 통로로 걸어 올 때 저절로 열릴 수 있게 동작된다면, 이 상황에 대한 별도의 인터페이스는 전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홈 관련 기기 상당수는 굳이 보거나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다. 다만 현관문은 당신이 집에 오는 것을 인지 했으니, 당신이 직접 잠금 해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경보기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기기와 더 정교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음성과 스크린 중 무엇이 더 알맞은 형태이고, 스크린이 맞다면 스마트 기기에 직접 달린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중 어떤 것이 더 적합한 탑재 방식일까?

당신이 요리를 도와주는 스마트 오븐이라면 직접 스크린을 필요로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의 스마트폰에 연결되어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할테고, 알렉사에게 “화씨 350도로 오븐을 예열하고, 내가 접시를 넣은 후 30분 후에 꺼지게 해줘”라고 명령까지 내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작동 방식일 것이다.

반대로, 커넥티드 카메라는 자체적인 디스플레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에코에 별도의 디스플레이가 달려있지 않은 이상 굳이 에코와 인터랙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마 그때는 스마트폰 혹은 그 안의 구글 어시스턴트 앱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식일 것이다.

아마존 알렉사는 주방가전과 연동되기 시작했다.

한편, 말로 하는 것이 다른 방법보다 훨씬 편리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알렉사, 불 켜줘” 혹은 “알렉사, 화씨 350로 오븐을 켜줘”라고 직접 말하는 것이 편한 것처럼. 그런데 “화장실 불 좀 켜줘”라고 말 하는 것과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 간단한 적외선 센서를 통해 불이 자동으로 켜지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편리할까? 스마트폰이 사람의 이동과 위치를 감지한다면, 차고 안에서 문을 열 때 차에 탑재된 시리나 구글을 쓰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주방에 있는 알렉사가 나을까?

이러한 시나리오들은 벤 다이어그램과 같이 서로 엮여 있는 듯한 개념일까, 아니면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일 것일까, 혹은 여러 기기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로 있게 될까?

이 모든 복잡성에 대한 가장 쉬운 답변은 “모든 것들을 알렉사나 시리나 구글(기반으)로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어쩌면 실제로 더 복잡하고 더 불편하며 어떤 사용성에는 잘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우리는 냉장고, 도어락, 조명이 각각 다른 회사 것이고, 서로 다른 종류의 전원 스위치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일절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또 염두에 두어야하는 점은, 모든 기기들이 스마트화되어서 출시되더라도 현존하는 집과 가전제품을 전부 스마트화 시키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아마 스마트 도어락이나 카메라, 온도 조절 장치를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명 스위치, 플러그 소켓, 잠금 장치, 블라인드 및 가전 제품을 전부 한번에 다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 어떤 것들은 교체주기가 매우 길다. 스마트폰은 2~3년마다 사게 되지만, 냉장고와 온수기는 10~20년에 하나 살까말까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구식 기기를 스마트 기기로 바꾸도록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들이 쓰는 기존 제품의 교체주기와 딱 맞거나 교체주기를 무시하게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야 할 것이다. 보통 20년을 쓰는 차고 리모컨은 보다 쉽게 스마트 리모컨으로 교체하도록 만들 수도 있겠지만, 2년된 냉장고를 단지 스마트한 기능을 원해서 교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스마트 기기가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전체적인 도입에는 매우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스마트 기기는 커다란 시스템의 일부로써가 아니라 그 자체로써도 유용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의 음성 OS로 조명, 커튼, 블라인드, 문, 오븐과 음향 시스템을 제어하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은 “알렉사로 조명과 세탁기(그러나 건조기는 제외하고)를 제어하고 싶은가?”와 다른 질문이다.

이는 유저시나리오를 더욱 어렵게 만들며, 한편으로는 수많은 스마트 제품들이 각자의 앱이나 독자 스크린을 가지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들의 이론적인 종착지는 통합 음성 이외에는 별도 인터페이스가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하지만, 현재 시점에는 조작 버튼이 없는 오븐을 팔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각 산업군에서 사물인터넷을 적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소비자 모델이 명확하지 않으면 공급자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일단 만들어 소비자에게 밀어내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원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혼재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구글, 애플, 아마존은 그들이 통제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세상을 통제하길 원할테지만 (자세한 이유는 후술), 삼성, LG, 실리콘밸리 및 중국 심천의 수 많은 제조사들의 속셈은 그와 달리 좀 더 복잡할 것이다.

빅스비를 중심으로 한 삼성의 IoT 전략

삼성의 전략은 매우 명확하다. 그들은 냉장고, 전자 레인지, 에어컨, 식기 세척기 등이 삼성의 음성 비서(빅스비)에 의해 제어되길 원하며, 그것이 삼성 냉장고를 산 사람이 삼성 전자 레인지도 구매할 이유가 되길 원한다.

여기서의 문제점은 삼성 식기 세척기 판매 팀이 LG나 서브제로 냉장고의 구매 고객도 타겟으로 삼길 원할 것이기 때문에, 식기 세척기에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하길 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그들이 이러한 업무를 상위 부서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현상들의 좋은 부작용은, 세상이 개념적으로는 알렉사 또는 구글 어시스턴트(혹은 둘 다)가 지원되는 가전 제품들로 채워져갈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제품들의 주인들은 사실 해당 기능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한번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수 년간 “스마트 TV” 대부분이 인터넷에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던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 중국 심천 업체와 스마트홈 스타트업들은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동기를 갖는다. 스마트폰 공급 체인은 매우 정교하면서 작고도, 저전력이면서 값싼 부품들을 어마어마게 많이 양산하였고, 누구나 이 부품들을 가지고 상품화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다시 말해, 이 업체들과 많은 제조사들이 스마트 기기 제조의 “캄브리아기 폭발”(5.4억년 전 갑작스럽게 동식물군이 다양한 종류로 출현한 지질학적 사건) 현상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해 하드웨어 차별화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스마트 전등 스위치라고 한다면 흔한 부품을 사용해 만들어진 흔한 상품일 뿐인 것이다. 어떤 카테고리는 50개 업체가 거의 동일한 제품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대부분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알렉사, 구글 어이스턴트, 애플 홈킷과의 연결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쉽게 모방되지 않을만한 방법을 찾을텐데, 하드웨어와 부품이 다들 유사하므로 소프트웨어에서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에서 차별화를 노린다면 네트워크 효과가 있을 것인가? 판매 채널에서의 이점이 있을까? 유저 데이터라도 쌓아서 무엇인가를 해볼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아니다”라면, 아마 스마트 기기 제조 산업 전체는 지금 잘하는 플레이어들이 계속 잘하게 될 것이다. 소형 카메라 등의 노브랜드 가전 제품 시장은 심천이 가져갈 것이고, 스마트 세탁기는 단지 하나의 새로운 하이엔드 상품으로 여겨져서 기존 세탁기 제조사들이 계속 잘 해 나갈 것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소프트웨어 차별화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를 포기하여 알렉사나 시리를 지원한다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스마트 도어락 시장을 생각해보자. 현재의 도어락 회사가 보유한 제조 능력과 시장 채널 장악력을 바탕으로 스마트 기능을 추가시키는 것이, 소프트웨어 회사가 좋은 도어락을 양산하고 시장에 진입하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어려울까? 미국의 도어락회사 예일이 새로이 도어락 시장에 진출한 스타트업들보다 어려워할만한 일이 있긴 할까?

다시 말해, 스마트 도어락은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둘러쌓인 소프트웨어인가, 아니면 예전보다 좀 더 좋은 도어락에 불과한 제품인가?

사실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어락을 열고 닫는 것이 알렉사의 대표적인 활용 시나리오로 자리잡는다면 된다면, 예일에게는 좋을 것이다. 경쟁사인 슈라지와의 경쟁 혹은 지난 십 수년간 우려해왔던 중국 업체의 진입에 대한 대응 방안만 고민하면 되고, 네트워크와 유저 경험은 아마존이나 구글이 대신해줄테니까.

이는 세 번째 질문으로 연결된다. 모든 것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또는 시리로 연결된다면 무엇이 좋은 걸까? 모든 사람이 스마트 기기를 많이 구입하게 되고 그 기기들이 어떤 특정한 지배적인 인터페이스에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런 지배적 인터페이스들이 시장에서 가질 영향력은 얼마나 클 것인가?

스마트 스피커와 생태계 가치

분명히, 아마존과 구글은 값싼 스마트 스피커를 팔면서 거의 돈을 벌고 있지 않다. 그들의 기술이 적용된 다른 스마트 기기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애플이나 구글이 350불짜리 스마트 스피커를 팔면서 약간의 마진을 남기긴 하겠지만, 아이폰 사업이나 광고사업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플레이어들은 다른 많은 것들에서도 괜찮은 마진을 남길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애플의 홈팟

좀 더 얘기하자면, 스마트홈의 허브가 된다고해서 이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얻게되는지도 명확하진 않다. 개인정보에 더 많이 아는 것에 대해 (가령, 구글은 이제 우리가 언제 설거지를 하는지도 알게된다!) 많은 사람들이 손사래를 칠 순 있다. 하지만, 이는 훨씬 구체적으로 구성된 정보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안드로이드 폰은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당신이 집에 없는 상황에서 아마존의 택배가 왔을 때 문을 알아서 열어주는 것을 예로 보자. 그러나 해당 기능은 구글 어시스턴트나 애플 홈킷으로도 가능한 일이고, 아마존은 이를 위해 알렉사를 필요로하지 스마트홈을 제어하는 사용성이 사람들이 단말을 사게 하는 동기이고, 그 단말이 애초에 스마트홈의 허브 기능을 하는 것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구글과 애플에게 있어 단말기가 갖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신경쓰는 것은 기기의 판매나 스마트홈이 아니라, 결국엔 생태계 내에서의 영향력이다.

어떠한 영향력인가? 세 단계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이 기기들은 고객의 리텐션에 영향을 주어 더 넓은 생태계로 편입시킨다. 애플의 홈팟, 애플워치, 애플 TV 그리고 에어팟은 모두 모두 당신이 가진 아이폰의 액세서리들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 효용이 있고, 마진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 제품들이 애플에게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소비자가 향후 아이폰의 사용자들이 계속하여 아이폰을 쓰게끔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마존이 현재 제공 중인 거의 모든 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가입하게끔 만들고, 해지하고 싶지 않게 만들며, 에코로 하여금 소비자들이 아마존에 더욱 결속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단계에서 구글이 가지는 전략적인 이점은 애플이나 아마존에 비해서 조금 약할 수 있다. 애플과 아마존의 것과 1:1 대응하는 직접적인 구독 비즈니스가 없어서 사용자의 이탈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비즈니스는 사실상 구독 모델이다.) 소비자는 크롬캐스트나 구글 홈을 아이폰과 함께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다.

둘째로, 이 기기들은 애플 TV와 구글 맵처럼, 기존 플레이어들이 가진 생태계와의 접점을 새로운 방식으로 늘리며, 가끔은 정말 새로운 것들을 하게 한다. 사람들이 디스플레이나 슈퍼마켓에서 비누를 고르는 대신, “알렉사, 데톨이 더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해서 수많은 글이 있다.

아마존은 사람들의 구매 행태에 대해 더욱 크고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공급상에게도 더욱 커다란 통제력을 갖게 될 것이다.

“알렉사, 치약을 더 주문해줘”에 대한 일반 명사의 기본 주문 옵션이 되려면 공급상들은 얼마를 지불해야 할 것인가?

음성으로 바로 구매주문을 할 수 있는 아마존 대시

마찬가지로, 수 년간 구글의 전략 중 많은 부분은 “상위 10개의 하이퍼링크”에서, 유저들이 찾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찾고 있는 것을 예측하기 위해 (머신 러닝도 물론 그 일부이지만) 이메일, 지도, 메시지, 모바일 그리고 스마트홈 등의 다양한 접점을 활용해 왔고, 검색으로부터 더 나아가서 인터넷 활동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사에 대한 엄청난 기대는 아마존 프라임의 해지율 감소나 끊임없는 치약 주문의 관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음성 인터페이스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플랫폼이며, 음성 인터페이스가 검색, 발견, 앱 개발 플랫폼에까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 급이라는 것이다. 음성 인터페이스가 멀티터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했듯, 나는 이에 대해 극도로 회의적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이것이 머신러닝이 우리에게 제공한 엄청난 가능성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고, 텍스트를 구조화된 쿼리로 변환할 수 있지만, 그렇게 구조화된 쿼리들을 한번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없다.

머신러닝은 우리가 목소리를 이용해 대화 상자의 답을 채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하나, 대화 상자는 여전히 어느 사무실의 개발자에 의해 한번에 하나씩 만들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음성은 통화 자동 응답기의 트리 구조(어떤 하나의 집합으로부터 하위 레벨로 가지가 나오는 집합 관계를 갖는 계층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자연어 요청을 트리의 적합한 “가지”(하위 구조)에 완벽히 매칭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에 하나씩 손으로 직접 쓰는 것 외에 스스로 가지의 수를 늘릴 방법은 없다. 만약 알렉사나, 시리 또는 구글 어시스턴트가 크리켓 경기 결과만 제공하고 럭비는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발자가 크리켓 스코어 모듈은 손수 코딩하여 넣었지만, 럭비 스코어 모듈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문제인 것은, 만약 수 백, 수 천 개의 쿼리를 손수 만든다 하더라도 (현재 Amazon이 Alexa Skills를 통해 하려고 하는 일이다), 사용자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로 하여금 알렉사에게 어떤 질문이 가능하거나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또는 어떤 기능은 가지지 못했는지를 기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시스템에서 커버할 기능의 이상적인 개수는 3개냐 혹은 무한대냐의 문제이지, 50개냐 5,000개냐 정도로 퉁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말인 즉슨, 음성 인터페이스가 사용자들이 어떤 것을 묻고 어떤 것을 묻지 않을지 아는 한정적인 영역에서는 매우 잘 작동하겠지만,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잘 동작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해당 스마트 기기들을 “액세서리”라고 본다. 이들은 스마트폰, 태블릿, 혹은 PC을 대체하는 주요 단말기가 될 수 없다.

물론 내가 여기서 완전히 틀렸을 수 있으며, 지금의 음성인식의 한계를 이겨내거나, 혹은 그 한계가 별로 상관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넓은 범위에서의 해당 기기들의 영향력을 판단하고자 할 때, 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 시점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매우 작거나 의미 없는 수준이고, 승자독식 효과도 매우 미미하거나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약, 음성 및 스마트 스피커가 매우 중요한 것일지라도, 알렉사나 그 누군가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직 아니다.

친구들이 당신의 집에 설치된 스마트 기기들을 와서 보고, 구매를 원하게 되는 “구전효과” 정도는 (잘하면) 있을 수도 있다. 개념적으로는 가장 큰 플랫폼들이 음성 명령의 형태로 머신러닝 알고리즘 트레이닝 데이터를 수집하여 데이터의 네트워크 효과를 갖게 될 것이나, 애플과 구글은 이미 다른 접점들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했다(애플은 매주 200억 개에 달하는 시리 명령어를 수집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신의 집 안에서 네트워크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은 모든 기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부터 통제되도록 하고 싶을 것이고, 구글홈으로 불을 켜고 알렉사로 가전 제품을 제어하는 용도로 분리하진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집 안의 모든 제품이 스마트 기기가 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지만.

하지만 각 집 사이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다. 친구가 어떤 기기를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그 제품이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것도 아닐 것이다. 당신이 사는 스마트 기기의 대부분은 위에서 말한 이유들로 인해 상호 연동을 지원할 것이다.

써드파티 사이에서도 어느정도 네트워크 효과가 있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다양한 써드파티 앱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만약 쓴대도 스마트폰 앱과 비교할만한 규모는 아닐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없다면, 승자독식 효과도 없다.

윈도우가 맥을 그리고 iOS와 안드로이드가 윈도우폰을 이긴 이유는,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한번이라도 떨어지면, 개발자들이 더 이상 지원을 않아서 유용함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PC와 스마트폰은 승자독식 시장이었다. 그러나 구글 홈은 그와 비슷한 다른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15%이든 85%이든 간에 상관없이, 항상 비슷한 수준으로 질문에 답하고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

구글이 만약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알렉사의 성공이 구글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며, 이는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결국 다시 액세사리 이야기로 돌아간다. 액세사리는 추가 매출과 이익을 더해줄 수 있으며, 생태계를 더욱 흡입력 있게 만든다. 한번 빠져들면, 생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게도 한다. 그러나 시장 구도를 바꾸지는 못한다.

애플 TV, 크롬캐스트, 데이드림 등은 생태계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떠나기 어렵게 하지만, 실제로 시장을 바꾸지는 못했다. 알렉사를 비롯한 스마트홈이나 스피커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지금은.

원문: 베네딕트 에반스 https://www.ben-evans.com/benedictevans/2018/1/4/smart-homes-and-vegetable-peelers

번역: 일원동트레키 / 감수: 피맥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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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이바닥늬우스

안전가옥의 집사장. 뉴스를 많이 봅니다. 가끔 번역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