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스 하사비스가 말하는 AI — ‘기계에 깃든 정신’ (번역)

뤽
이바닥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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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May 14, 2017

역자 주: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가 AI에 관한 그의 생각을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했다. 그 전문을 번역해 옮긴다.

원문: https://www.ft.com/content/048f418c-2487-11e7-a34a-538b4cb30025

구글에 인수된 딥마인드의 창업자이자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 현대 문명은 위대하지만, 그만큼 복잡합니다.

현대 문명이란, 과학으로 인해 가능해진 어떤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면 항상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구름 위로 솟구치는 이 엄청난 일을,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느끼게 만드는 과학기술의 힘이라니.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유전자 지도를 만들고 수퍼컴퓨터와 인터넷을 개발했으며, 행성에 탐사선을 착룩시켰고 입자가속기에서는 빛의 속도로 원자를 충돌시키며, 달에 사람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요. 1.5킬로그램이 채 되지 않은 이 자그마한 뇌가 이루어낸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적 탐구’란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해낸 것 중 가장 강력한 방법론일 것입니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이루어진 성취들은 놀랍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아주 중요한 분기점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도전들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복잡합니다. 기후변화와 글로벌 거시경제, 알츠하이머에 이르는 이 도전들을 우리가 풀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풀 수 있을지는 미래 인류 수십억 명의 삶의 질 그리고 그 우리들을 둘러싼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도전들은 너무 복잡하다는 점입니다. 이 도전을 타개하기 위한 어느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나 임상학자, 기술자들에게도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시대에 존재하는 지식 전반을 폭넓게 이해했던 지식인은,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마지막이었으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근대 이후, 지식인은 (폭을 넓히기 보다는) 하나의 전문성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천체물리학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단일 분야를 마스터하는 것에만 평생을 바쳐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 그 핵심은 데이터를 다루는 것에 있습니다.

현대 과학이 해결하고자 하는 시스템은 복잡합니다. 매우 역동적이며 비선형적인(예측 불가능한), 그리고 그 패턴과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 새로운 특성들과 내재된 의미를 알아내기 어려운 연결관계들로 가득한 데이터로 가득합니다. 케플러와 뉴튼은 행성의 움직임이나 지구 상의 역학에 대해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의 문제들 가운데, 그런 간결하고 우아한 공식들로 기술 가능한 문제는 사실 별로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학적 도전이 바로 이것입니다. 앨런 튜링, 존 뉴먼, 클로드 샤넌과 같은 컴퓨터공학의 아버지들은 ‘정보이론’을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론에 따라 데이터는 구조화와 정렬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린 배웠습니다. 생체정보공학의 발전으로 이는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이젠 유전자가 어떤 막대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효율적인 데이터베이스 스키마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조만간 데이터야말로 원천 에너지처럼 우리 사회의 어떤 근본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그 때, 비구조화된 데이터를 바로 응용 가능한 정제된 형태의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는 어떤 프로세스가 핵심이 됩니다. 우리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저는 커리어 전부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바쳐왔습니다. AI는 데이터를 조합하고 인식하는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AI는 아직 인류에게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있는 분야에 대한 데이터를 지식으로 빠르게 바꾸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죠.

// 사람의 뇌와 같은 범용 AI, 가능합니다.

요새 ‘AI 일을 한다’는 것은 뭔가 굉장히 화려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AI라고 하는 개념어는 그 맥락에 따라 의미가 매우 달라집니다. 제가 창업한 회사인 ‘딥 마인드’는 이 중 ‘학습’과 ‘범용성’의 개념에 집중해서 AI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딥 마인드는 (어떤 분야에서든) 과학 연구에 필요한 그런 AI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길 바라는 만큼, 저희는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죠.

알고리즘을 통해 어떤 작업을 스스로 마스터한다는 것은, 컴퓨터가 궁극적으로 실제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미 정제된 추상적 기호로 입력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센서를 통해 감지하게 되는 것이죠. 저희는 이런 감지를 일반화시키고자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동일한 처리 로직과 동일한 감지 파라미터를 가진 시스템이 다양한 범위의 작업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15년 ‘네이처’지에 저희가 기고한 논문에 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딥 마인드의 엔진은 화면의 픽셀과 결과 점수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엔진에게 수십가지 종류의 클래식 아타리 게임들을 플레이하게 했죠. 서로 다른 게임들을 엔진은 스스로 학습해냈습니다. 이 결과는 저희에게 어떤 핵심적인 영감이 되었습니다. 구조적인 레벨에서 뇌과학을 차용했고 새로운 알고리즘과 축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우리의 ‘뇌’야 말로 딥 마인드가 만들고자 하는 ‘범용의, 경험 기반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목표이자) 증거입니다.

// 모든 해법을 미리 예상해서 하드코딩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딥 마인드의 접근은, 우리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대단히 급진적이었습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는 게임계의 미증유의 이정표를 세웠던 두 프로그램을 볼 때 잘 드러날 것입니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던 IBM의 ‘딥 블루’, 그리고 체스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알려진 바둑에서 2016년 세계 최고의 기사 이세돌을 꺾은 저희 딥 마인드의 ‘알파고’입니다.

딥 블루의 접근 방식은 ‘전문가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개발자들과 체스 그랜드마스터들이 팀을 이루었고, 최고 전문가들의 행마법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지식을 코드화하여 복잡한 스크립트 형태로 넣은 것입니다. IBM의 수퍼컴퓨터는 이 함수를 연산하여 수 만가지 가능한 변수를 생각하고 결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마친 다음, 한 수를 두었습니다.

IBM의 딥 블루에게 패배한 유리 카스파로프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딥 블루가 이겼다는 것은, AI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그 승리는 IBM의 개발자들과 그랜드마스터들로 이루어진 팀, 그리고 당시 상식을 초월했던 성능을 보여줬던 수퍼컴퓨터의 컴퓨팅 파워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프로그램에 내재된 핵심 엔진 그 자체의 승리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 알파고는 딥 블루와 다른, ‘범용의 AI 엔진’이었습니다.

체스가 딥 블루에게 접수되고 나서, 바둑은 AI 연구자들에게 마지막 성지가 되었습니다. 약 3천 년의 역사를 가진 바둑은, 아시아 전역에서 게임 이상의 어떤 예술의 영역으로 여겨질 만큼의 문화적 의의를 갖습니다. 가로 세로 10줄로 이루어진 체스판과 달리, 바둑은 (접바둑을 포함하면) 170여가지의 판 세팅이 존재합니다. 우주에 존재 하는 원자의 수 보다도 많은 바둑의 세계에서는, (딥 블루가 했던) 물리적인 방식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바둑은 경기 종료 후 승자를 판단하는 코드를 짜는 것만 해도 매우 어렵습니다. 돌 한 점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 전체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복잡성을, 바둑 프로기사들은 직관과 감각을 훈련하면서 다룹니다. (상대적으로 경우의 수가 적은) 체스 고수들이 보다 정교한 산술적 계산에 의존하는 반면, 바둑의 최고수들은 종종 그들의 수를 맞다고 ‘느끼기 때문에’ 둡니다.

저희 딥 마인드 팀은 깨달았습니다. 이런 ‘직관’과 ‘감각’의 영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오히려 보다 급진적인 접근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이죠. 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이 직접 손으로 하드코딩하는 딥 블루의 접근법이 아닌, ‘범용의 AI’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뉴럴 네트워크를 응용해 학습 체계를 만들고, 수 천개의 기보를 학습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알파고 스스로가 ‘무엇이 합리적인 플레이인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알파고는 각기 다른 버전의 ‘알파고 자신’과 수 천번 대국했습니다. 대국 후 알파고는 스스로의 실수를 학습했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갔으며 결국은 아주 강력해졌습니다. 2016년 3월, 알파고는 최후의 도전을 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18개의 세계 타이틀을 보유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세계 최고의 기사로 널리 인정받았던 바둑계의 전설, 이세돌과의 대국이었습니다.

2억이 넘는 이들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온라인으로 지켜봤고, 알파고가 거둔 4승 1패의 승리에 놀랐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원래의 예상을 10년 앞당긴 결과라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국 중 알파고는 그간 학습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수를 두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제2국의 37수가 그랬습니다. 알파고가 학습한 수 백 년간의 지혜를 뒤집은, 놀라운 한 수 였죠. 알파고의 대국은 수 많은 바둑기사들에게 깊이 연구되었습니다. 알파고라는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던 게임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며 세계를 가르쳤던 셈이죠.

// 범용의 AI 엔진은 어디에서나 쓰일 수 있는 방법론입니다.

(알파고의 대국처럼) 알고리즘의 발전이 가져온 이런 순간들은 저희에게 어떤 영감을 줍니다. 머신러닝으로 강화된 AI가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내면 앞으로의 연구에 얼마나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말이죠. 알파고를 가능하게 했던 기술은 범용이었으며 다른 영역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특히, 뚜렷한 목적을 가진 함수의 최적화, 아주 정밀한 환경 시뮬레이션, 빠르고 효율적인 실험의 반복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에서도 이런 알고리즘을 쓸 수 있습니다. 구글의 데이터센터에서 쿨링 시스템을 최적화하는데 이 알고리즘이 쓰였고, 발열을 40%나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은 이제 모든 센터에 배포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진 비용 절감 효과는, 환경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올 수 년 동안,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이와 유사한 접근법이 필요한 여러 영역에서 다차원의 인사이트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초전도체 물질의 설계에서부터 신약의 발견이 이르기까지. 저는 범용 AI를 여러 의미에서 ‘허블 망원경’에 비유하곤 합니다. 더 먼 곳을 볼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우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도구라는 점에서 말이죠.

물론 다른 기술들처럼, AI 역시 책임감있게, 윤리적으로 그리고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쓰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AI가 가진 힘과 한계 모두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AI 엔진의 기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AI의 인풋이 되는 데이터의 질에 대해 더 많은 연구한다면 그리고 그 작업 과정의 투명성에 대해 충분히 신경쓴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AI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찾을 수 없는 데이터와 패턴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AI를.

// AI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기술 사이의 협업’, 앞으로의 수십년 동안 일어날 커다란 과학적 진보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AI는 과학자들 모두에게 배포되는 어떤 메타 솔루션의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개선하고 우리의 업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술을 널리 그리고 공정하게 배포할 수 있다면 또한 모두가 이 기술에 참여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육성해나간다면, 우리는 인류 모두를 윤택하게 그리고 진보할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느껴왔습니다. 물리학과 뇌과학이야말로 가장 원론에 가까운 과학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이루는 내적 세계에 대한 것이니 이 둘은 모든 것을 커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AI는 우리가 양쪽 모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습’이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의 뇌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오히려 인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어둠 속에 감추어져 왔던 ‘정신’이라는 이름의 미스테리에 빛을 비출 수 있게 되겠죠. 꿈을 꾸는 것, 새로운 것을 떠올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나아가 ‘의식’ 그 자체란 무엇일까에 대해.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고 병을 고치며 우주를 탐험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데 AI가 기여한다면 어떨까요. 음,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마 AI가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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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이바닥늬우스

안전가옥의 집사장. 뉴스를 많이 봅니다. 가끔 번역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