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P에 시간을 투자하라

리서처 관점에서 느꼈던 EIP의 역사 및 참여 현황을 간략히 톺아보며 다양한 참여자들에게 EIP가 블록체인 업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효과적인 리소스인 지 그 중요성을 알리는 글입니다.

Jay : : FP
Four Pillars
19 min readOct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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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Jay(Jay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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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1) 블록체인의 표준은 우리가 블록체인으로부터 꿈꾸는 가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 지와 관련이 있는데, 특히 이더리움의 표준 제안인 EIP를 살펴보는 것은 전체 블록체인 생태계의 트렌드를 톺아보고 향후 구현 방식을 논의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2) 더욱이, 점점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EIP에 참여하고 있는데 새로이 제안되는 EIP들 중 대부분은 이 신규 참여자들에 의해 제안되고 있다.

3) 이외에도 EIP는 좋은 프로토콜 거버넌스 사례로써, 혹은 특정 아이디어를 탐험하고 구체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 아티클은 리서처 관점에서 관찰하였던 EIP의 역사 및 참여 현황을 간략히 톺아보며 다양한 참여자들에게 EIP가 블록체인 업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효과적인 리소스인 지 그 중요성을 알리는 데에 1차적인 목적이 있지만, 나아가 현 EIP들의 개선을 위한 직접적인 참여 계기, 궁극적으로는 이더리움 내외에 새로운 트렌드를 전파하는 오피니언 리더로써 전향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

1. 서론

블록체인은 우리에게 분산화된 네트워크 구조를 제안하였으며, 스마트 컨트랙트의 적용은 다양한 자산들이 P2P 네트워크 상에서 프로그래밍되어 활용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데이터 주권, 검열 저항성, 보안성, 투명성 등 블록체인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일련의 가치를 설정하고 새로운 디지털 상호작용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위 가치들의 구현을 통해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하거나 보완하기에는 아직까지 블록체인 업계가 갈 길은 먼 듯 하다. 사용자들이 위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둘째치고, 사용자 혹은 어플리케이션들이 당장에 블록체인 상의 다양한 서비스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프로토콜 인프라의 세부사항을 이해해야하거나 관련된 부가적인 과정을 거치는 불편함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을 통해서가 아닌) 디지털 상호작용을 함에 있어서, 그것들이 기저하는 백엔드 혹은 네트워크의 이슈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블록체인의 UX 이슈’라고 포괄하여 표현하기도 하는데, 결국 사용자의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용자들에게 요구되는 스텝들을 인프라 단에서 떠안는 것이다. 즉, 어플리케이션들이 기본 인프라에 직접 접근할 필요없이 서비스 인터페이스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인프라 단에서 관련한 통신 표준을 잘 구성해두어야 이러한 불편함은 해소될 수 있다*.

*통신 표준에도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는데, 특히 미들웨어의 성격을 띄는 표준들이 이와 관련이 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존하는 블록체인 메인넷들의 표준들을 살펴본다면 아직까지 추상적이기만한 블록체인의 가치들이 왜 아직 이렇게까지 밖에 구현될 수 밖에 없는 지 이해를 도울 수 있고, 나아가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이 향후 ‘어떠한 방식’ 으로 서로 상호작용될 수 있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함께 촉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이더리움의 표준들을 살펴보는 것은 블록체인 전체 생태계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 이더리움의 표준 역사 속에는, 오늘날의 다양한 블록체인이 만들어지기까지 참고할 수 있을만한 고민의 흔적들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메인넷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 이더리움 상에는 네트워크를 한층 발전시켜줄 새로운 표준들이 끊임없이 제안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다른 타 메인넷에서 참고할 수 있을만한 표준들까지 실험적으로 활발히 제안되고 있다. 요컨대, 이더리움의 표준 기록은 블록체인의 거시적인 발전 트렌드를 좇을 수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인 셈이다.

2. EIP 개요

2.1 EIP의 범위

이더리움의 표준들은 EIP(Ethereum Improvement Proposal)라는 이름 하에 제안된다. EIP-1에 따르면 EIP의 범위는 크게는 3가지, 혹은 세분화해서 6가지로 분류된다.

많은 EIP들이 제안되어왔지만(i.e., 10월 17일 기준으로 총 689개), 이중에서 사실상 논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범주는 Standard Track이다. Meta 혹은 Informational 에 해당하는 EIP들은 EIP 프로세스 자체를 설명하거나,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하드포크와 같은 프로토콜의 주요변경사항들을 설명하는 메타 문서에 가까운 안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 따라서, 실제로 Meta나 Informational의 EIP들은 대부분 2020년도 이전에 제안되었다.

Standard Track 내에서도 특히 CoreERC 표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는데, Core EIP의 경우에는 주로 합의 레이어 혹은 실행 레이어와 관련하여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변경사항을 적용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표준들로 구성돼있다. 따라서 다른 범주의 EIP들에 비해, Core EIP들은 더욱 신중히 검토되고 채택에 앞서 AllCoreDevs Call 등의 부가적인 과정을 통해 클라이언트들과의 긴밀한 토의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ERC의 경우, 어플리케이션 단에서 적용할 수 있는 표준 혹은 컨벤션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조금 더 어플리케이션 혹은 최종 사용자와 가까운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 ERC-20과 같은 토큰 표준, ENS와 같은 Naming Resolution Sevice, 라이브러리 패키지, 계정추상화 등 우리에게 친숙한 표준들이 ERC에 포함되어 있다. Core EIP와 달리 ERC는 배포되는 대상이 어플리케이션 단인 경우가 많다.

Networking과 Interface 범주에 속하는 EIP는 이더리움 네트워크 내 데이터의 통신이 더 원활하게 동작하거나 Core EIP 및 ERC 들을 지원할 수 있는 표준들로 구성돼있다.

2.2 EIP 프로세스

Source: EIP-1 (Data as of 17th, Oct., 2023)

위 EIP들은 모두 사전 논의를 시작으로, 어느 누구나에 의해서 제안될 수 있다. 하지만 제안되는 안건들이 모두 채택(Finalized)이 되는 것은 아니다 — EIP는 그 이름처럼 Proposal 이기 때문에 개별 안건들이 정식 표준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일련의 프로세스를 따르게 된다.

  • Idea : 본격적인 채택 프로세스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체 커뮤니티 구성원을 대상으로 해당 안건이 EIP로써 포함되는 것이 적절한 지 논의되는 사전 단계이다. Ethereum Research 혹은 Ethereum Magicians에서 해당 논의가 이뤄진다.
  • Draft : 제안된 안건이 EIP의 폼을 갖추면 EIP 에디터들에 의해 EIP 저장소(Repository)에 병합된다.
  • Review : 해당 안건이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받을 수 있는 단계이다.
  • Last Call : 안건이 Final 단계로 가기 이전의 마지막 검토에 해당하는 단계이며, EIP 에디터를 통해 이 단계가 결정된다 — 검토를 위한 최종 데드라인이 정해지는데, 일반적으로 14일 이후로 설정된다.
  • Final : 해당 안건의 최종 확정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 Stagnant : Draft, Review, Last Call 상태에 있는 안건들 중에서 6개월 이상 변경 사항이 없는 경우, 이 단계로 변경된다. 단, 작성을 재개하거나 업데이트 시 다른 상태로 변경된다.
  • Withdrawn : 해당 안건이 완전히 회생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 단계의 EIP는 다시 복구될 수 없으며, 해당 안건의 논의를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EIP를 제안하는 것 뿐이다.
  • Living : 이 단계는 해당 안건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특별한 상태이며, 해당하는 EIP는 현재 2개 뿐이다 (i.e., EIP-1 & EIP-5069)

비트코인의 BIP(Bitcoin Improvement Proposal)와 파이썬의 PEP(Python Enhancement Proposal)에서 영감을 받은 이 프로세스의 세부 사항, EIP의 형식, 그리고 에디터들에 대한 책임 및 역할은 EIP-1EIP-5069를 각각 참조하길 바란다.

다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 EIP 프로세스가 각 단계로 나아감에 있어서 EIP 작성자, EIP 에디터, 이더리움 코어 개발자, 그 외 이해관계자 및 커뮤니티 구성원 등 광범위한 주체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는 점, 그리고 해당 논의들은 모두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오프체인 거버넌스를 채택한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프로토콜의 현 상황에 따라 특정 EIP가 매우 빨리 채택될수도, 혹은 무기한으로 채택이 연기될 수도 있다. 이에, 보다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위하여 Ethereum Magicians 등에서의 사전 논의가 매우 권장된다.

또한, 지금까지 제안된 약 689 여개의 안건들 중 약 34%에 육박하는 안건들이 리비전 단계 혹은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그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동시에, ‘표준 채택이 사실상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동시에 방증하기도 할 것이다 — 그도 그럴것이, 표준이 많으면 많을수록 네트워크의 복잡도는 상승하고 기존의 표준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검수 작업에 더욱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3. EIP의 역사와 블록체인 트렌드

지금까지 기록된 EIP들은 네트워크가 구성되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요소부터 당시의 업계 트렌드까지 직간접적으로 상당부분 반영해오고 있다. 물론 초창기에 비해 다양한 특성을 가진 메인넷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함에 따라, 모든 영역에 있어 지금 시점의 EIP가 업계를 선두하는 표준 프레임워크라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표준들의 큰 흐름들은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3.1 ‘~ 2017’

2017년도 이전까지는 블록체인이라는 개념 혹은 정체성이 주로 확립되고 다양한 블록체인들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 기간동안에는 네트워크가 동작하기 위한 기초적인 기능의 구현 혹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당시에 제안되었던 EIP들은 업계 내에서 표준 트렌드를 선두하였는데 네트워크 통신 로직과 관련된 스펙,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토큰 및 컨트랙트들의 기본이 되는 표준들이 이 시기에 제안되었다.

대표적으로는 가장 대중적인 토큰 표준인 ERC-20, ENS의 뼈대를 이루는 ERC들, 그리고 서명된 데이터를 다루는 표준인 ERC-191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외에도 다양한 토큰, 컨트랙트, 라이브러리 및 OPCODE(Operation Code), 그리고 코드 최적화와 관련된 표준들이 제안되었다.

3.2 ‘~ 2019’

이어지는 2년 동안에는, 기초적으로 구성된 메인넷들 상에 어플리케이션들이 조금씩 배포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 특히 이 시기는 NFT와 DeFi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대중들에게 블록체인이 처음으로 많이 알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NFT 표준인 ERC-721도 이 시기에 제안되었는데 이 외에도 다양한 토큰 표준 및 컨트랙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다보니 자연스레 네트워크 단에서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프레임워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각종 컨트랙트들을 탐지하고 그것의 소유권 관리와 관련된 표준들이 다수 제안되었는데 이외에도 주목할만한 표준들은 업그레이드 가능한 컨트랙트의 포문을 열어준 EIP-1167, 그리고 컨트랙트 코드를 기반으로 컨트랙트 주소를 만드는 새로운 OPCODE(i.e., CREATE2)를 제안하는 ERC-1014 등이 있다.

또한 네트워크 사용량이 점차 늘다보니 네트워크 가스비에 대한 정책도 본격적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한 때가 이 때이다 — 과거, 가스비 경쟁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구조 때문에 사용자들은 가스비 예측이 매우 힘들었다. 이에, 기본 수수료(Base Fee) 와 선택적 수수료(Priority Fee)를 분리하여 트랜잭션 당 가스비 예측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하는 EIP-1559도 이 시기에 제안되었다.

3.3 ‘~ 2021’

2년에 걸쳐 이더리움 메인넷을 통해 NFT와 DeFi를 비롯한 어플리케이션들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 확인된 이후, 다양한 메인넷에서는 저마다의 특징들을 내세운 다양한 토큰 프로젝트와 DApp들이 등장하였다. 이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L1들이 등장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고, NFT와 DeFi 생태계의 내러티브 역시 대중들로부터 더욱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생태계가 풍부해짐으로 인해 자연히 더욱 많은 트랜잭션을 감당하게 된 이더리움 진영에서도 확장성 솔루션 혹은 가스비 정책에 대한 논의가 더욱 심화되었으며, NFT와 DeFi 단에서는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고도화된 기능들을 구현케하는 표준들이 제안된다 — 크리에이터들의 로열티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ERC-2981, 그리고 한 트랜잭션 내에 무담보 대출과 상환을 모두 가능케하는 플래시론(i.e., ERC-3156) 등이 이 시기에 제안되었다.

3.4 ‘2022 ~’

2022, 23년은 블록체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극에 달했던 시기인 동시에 테라 및 FTX 사태, 그리고 매크로 경제의 악영향이 뒤이어짐에 따라 그 관심이 급속도로 식기도 한 해이다. 이에 따라, 각 프로토콜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및 성장전략을 더욱 확고히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상호간의 이념 충돌(e.g., Monolithic vs. Modular), 더욱 유연한 환경을 위한 프로토콜 마이그레이션, 혹은 자체 생태계 구축(e.g., AVAX — Subnet / Polygon — Supernet / Cosmos — ICS, etc.)과같은 이벤트가 발생하였다.

특히 해당 논의들은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더리움이 PoS로의 전환을 위한 로드맵의 주요 전환점을 돌기도 하였고, 또한 상대적으로 타 메인넷들에 비해 보안성과 탈중앙성이 우수한 이더리움 및 롤업 생태계가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PoS를 위한 기초적인 네트워크 환경 조성과 관련된 EIP, 그리고 PoS 전환 로드맵의 세부사항에 따라 롤업과 관련된 일련의 EIP들 역시 많이 제안되어오고 있다.

한편, 업계 내외에서는 블록체인에 대한 유스케이스 혹은 UX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이에, 실질적으로 사용자들의 어플리케이션 경험을 개선하고 웹2 — 웹3 간의 간극을 이어줄 수 있는 미들웨어 성격의 표준들이 상당히 많이 제안되어오고 있다 — 오랫동안 논의가 멈춰져있었던 ERC-4337 기반의 계정 추상화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이외에도 트랜잭션, 신원, 토큰 바운드 계정 등과 같은 미들웨어 성격의 표준들이 많이 제안되어오고 있으며, ZK 및 AI를 접목하여 새로운 경험을 보여줄 수 있는 확장 표준들 역시 많이 제안되어오고 있다.

4. 새로운 참여자들로부터의 지속적인 기여

이전 그래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재미있는 포인트들은 1) 블록체인이 대중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기시작한 2018년, 그리고 2022년에 EIP 제안의 수가 최적값을 기록했다는 점, 2) 그리고 이 최적값들은 제안된 ERC의 수에 의해 견인되었다는 점이다 — 다른 연도에는 Core EIP가 가장 지배적이었는데 특히 2018, 2022, 그리고 2023년도에는 ERC가 가장 지배적인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EIP를 제안하는 주체들의 구성이 변함이 없다면(즉, EIP에 초창기부터 기여하고 있던 주체들에 의해서만 계속해서 EIP가 제안이 된다면), 제안되는 EIP의 수가 늘어나는 이러한 트렌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더욱이, 표준이 네트워크에 많이 누적될수록 그 복잡도는 증가하기때문에 새로운 표준이 제안되고 채택되는 과정은 더욱 느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살펴본 결과,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대해 가장 잘 알고있고 초기부터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주체들(에디터들을 포함하여)이 많은 EIP를 제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을 제외하고도 상당 부분의 EIP 제안들이 EIP 제안에 경험이 적은 사람들로부터 제안되었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 EIP 제안자의 수는 800명 남짓을 기록하고 있으며, EIP를 제안한 경험이 5번 미만인 제안자들의 비율이 90%가 넘는다.

연도별로 새로운 제안자(i.e., 이전에 EIP를 제안한 경험이 없는 주체)의 수를 프로젝션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 아웃라이어(i.e., 2018’s & 2022’s)를 제외하고 새로운 제안자의 수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새로 들어온 제안자들이 당해 제안된 전체 EIP들 중 평균적으로 7–80%가 넘는 비율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적지않은 사람들이 매년 새로이 EIP에 참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의 이더리움 커뮤니티와 함께 어울리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나가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5. 마무리하며

참조할만한 레퍼런스가 많이 없는 백지와 같은 상황에서 네트워크를 개선하기 위해 거쳐야했던 수많은 논의의 흔적들이 성문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메인넷은 이더리움이 유일하다. 이에, 앞서 간략히 톺아보았듯 EIP를 살펴보는 것은 블록체인의 역사와 현상태를 진단하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점점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새로이 참가함으로 인해 제안되는 EIP들은 우리가 블록체인을 통해 꿈꾸는 미래를 구체화시키는 데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외, 현 EIP 프레임워크가 가지는 부가적인 의의 및 한계점을 간략히 생각해보며 본 아티클을 마무리해본다.

5.1 좋은 거버넌스 사례로써의 의의

거버넌스란 본디 한 조직이 그들의 비전을 추구하기 위한 주요 의사결정으로, 어디까지나 제1 목적은 조직의 비전 달성이다. 따라서 거버넌스에 의해 결정되는 프로토콜의 표준들은 프로토콜의 비전과 일치하도록 제안되어야 하며 비전을 달성하는데에 효과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EIP의 범위는 ‘보안성과 탈중앙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확장성을 개선하고(i.e., 트릴레마의 개선), 다양한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하는 월드 컴퓨터(World Computer)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더리움의 비전과 상당히 정렬되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이더리움 생태계는 로컬라이즈드 컨퍼런스, 포럼, 블로그, 정기적인 개발자 콜, 번역톤(Translathon) 주최, 유튜브 채널, 이외 다양한 컨텐츠들을 통해 다양한 참여자들로하여금 EIP의 온보딩이 용이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 더욱이, 결과적으로 매년 새로이 EIP에 참여하는 주체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이 실질적으로 새로이 제안하는 EIP들은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데에 상당한 기여가 되고 있다.

요컨대,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으로부터 기원한 탈중앙화의 개념을 ‘다양한 참여자들이 온보딩하기 쉬운 환경’으로써 정의한다면, 이더리움의 거버넌스는 그것의 미션과 일치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점점 더 참여자들의 분포가 탈중앙화되고 있으므로 좋은 프로토콜 거버넌스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2 포크가능성을 통한 특정 아이디어의 실험 기회로써의 의의

한편, EIP는 다양한 표준들이 집약되는 공간이긴 하지만, 이더리움과 같이 광범위한 상호작용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는 General-Purpose 프로토콜들은 표준들 간 다양한 충돌가능성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개별 표준의 채택이 빠르게 이루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 문제에 집중한 표준이 최종적으로 완결(Finalized)되기 또한 쉽지 않다.

따라서 특정한 유스케이스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이더리움과 같은 General-Purpose 프로토콜을 통해 그것을 기대하기보다 그 의도에 최적화된 프로토콜을 선택하거나 구축하여 민첩하게 실험해보는 것이 더욱 효과/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별도의 프로토콜을 탐색하고 구축하는 것 역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한다.

이에, 특정 EIP를 베이스로 이더리움을 포크하여 이 과정을 개시하는 것은 좋은 시도일 수 있다 — 예를 들어, ERC-20의 저자인 Fabian Vogelsteller는 기존 토큰 및 계정 표준들의 비유연함을 지적하며 아직 Draft 단계인 ERC-725를 기반으로 크리에이티브 경제만을 위한 LUKSO라는 프로토콜을 구축중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EIP를 극대화하여 활용하는 동시에 이더리움과의 호환성으로부터 오는 시너지까지 누리며 특정 유스케이스를 실험해볼 수 있다.

즉, 다양한 EIP를 제안해보거나 논의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쩌면 특정 프로젝트 탄생의 기회이자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5.3 하지만 비개발자의 온보딩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가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통해 잠재적으로 꿈꾸고 있는 다양한 유스케이스 및 가치들은 소수의 개발자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네트워크에 온보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참여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이더리움의 표준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주체 역시 크리에이터 혹은 비즈니스 관계자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오피니언 리더들로 구성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개발자들의 EIP 온보딩은 여전히 어렵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더리움 생태계는 다양한 소통 채널을 통해 EIP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비개발자들의 쉬운 이해를 돕기위한 하이레벨의 자료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파편화되어 존재한다. 더욱이 EIP들을 한눈에 톺아볼 수 있는 랜드스케이프 등 역시 부재하다 — 어떤 EIP가 주류인지 추적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EIP의 넘버링 규칙은 혼란스럽다.

여전히 서구권, 그리고 개발자 중심으로 맞춰진 문서 및 주요 이벤트의 타임라인 등을 포함하여 비개발자들을 위한 온보딩 과제들이 개선된다면 더욱 다채로운 가치 구현 및 실질적으로 채택에 필요한 표준들이 빠르게 논의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비주얼을 제공해주신 Kate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지 사항: 본 글은 단순 정보 제공을 위해 작성되었고 투자, 법률, 자문 등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를 추천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며, 본문의 내용만을 바탕으로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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