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라, 근로장학

[2017년/1학기] 1조 취재후기

광화문의 기억 후 처음 맞은 학기였다. 탐사보도를 공부하겠다며 강의실에 모인 이들의 눈빛은 남달랐다. 나 역시 탐사보도라 함은, 대통령의 지위쯤은 충분히 흔들 만한 아주 거대한 존재라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래서일까.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우리 리포트의 소재가 한정됐을 때 조금 아쉽기도 했다. 우리의 보도가 꽤 거창한 결과를 가져오길 바랐으므로.

그러나 거창한 결과만을 목표하는 탐사보도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교내의 근로장학생을 소재로 삼고 면담하던 날, 기자님이 우리에게 건넸던 말이 아직 남아있다. 아주 사소한, 그러나 만연한, 그래서 모두가 무감각한 문제들이 탐사보도로 인해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탐사보도는 우리의 일상을 익숙하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건드려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익숙해있던 근로장학생의 선발과정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며 우리가 이야기했듯 말이다.

무엇이 기자이고, 무엇이 저널리즘이냐는 질문에 끝없이 어지러운 시대다. SNS가 발달하고 로봇이 기사를 쓰는 지금, 기자가 이들보다 기사를 빨리 쓸 자신이 없으면 기자는 더 잘 쓰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이 때 탐사보도는 기자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는 기회다. 탐사보도는 잘 쓰는, 잘 써야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래뉴스실습을 수강한다는 말을 하면 친구들은 늘 궁금해 했었다. 로봇과 기사 쓰냐는 질문이 대다수였다. 그 때마다 탐사보도를 답하며 내가 고개를 으쓱할 수 있었던 건, 탐사보도는 분명히 미래의 뉴스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수업에서 탐사보도의 ‘탐’ 정도만 맛봤다고 해도, 내게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탐사보도의 가치와 미래를 봤다는 사실일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펜을 굴리며 바삐 교정을 움직였던 이번 봄은 내게 꽤 오래 남아있을 거다.

오효정(자유전공13)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주제를 찾는 것부터 막연하고 파편적이던 문제의식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고, 취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달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종종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뉴스실습을 수강한 것은 후회 없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도 한 편의 탐사보도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덕분에 평소에 영상 뉴스를 볼 때면 그 구성과 화법을 유심히 보며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또한 수업을 통해 뉴스타파의 현직 기자님들을 비롯한, 훌륭한 언론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실제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통해 언론계를 엿보았을 뿐 아니라 언론의 본질과 소명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베트남과 목포에서의 현지 학습 역시 귀한 경험이었다. 뜨거웠던 호치민에서 그만큼이나 뜨거웠던 머릿속과, 세월호 앞에서 흘렸던 눈물과 먹먹했던 가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좋은 팀원들과 맺은 인연도 소중한 결과물이다. 취재와 제작 과정에서 몇 번은 기존의 구성을 뒤집어야 할 때도 있었고, 밤을 새며 회의하고 영상을 편집해야 하는 날도 있었지만 팀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기에 무사히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보통의 수업과는 다른 배움이 있었던 미래뉴스실습 덕분에 지난 학기는 특별한 학기가 되었다.

이지현(정치외교15)


본인은 4년 동안 언론정보학을 전공으로 하여 공부하였기에 언론, 취재, 뉴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수업과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로 사실을 찾고, 이를 조합하여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취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며, 이것만 잘 해낼 수 있다면 성공적인 취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탐사보도를 진행해 나가면서 취재의 무게를 이해하고, 이를 견뎌내며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탐사보도는 교내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에 반갑게 생각했다. 하지만 교내의 문제를 파헤쳐 나가는 과정은 자교의 문제를 애써 찾아내고, 주변의 동문과 교수님 그리고 교직원이 혹시나 부조리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주변을 탐문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친했던 친구, 존경하던 교수님, 성실한 교직원을 하나의 문제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이러한 취재가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지를 고민하여야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 취재의 결과물이 대단한 진실을 파헤치거나 멋진 탐사보도가 되기보다는 발전을 위한 소소한 사실과 함께 선의의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취재물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취재를 진행하였다.

진실을 찾는 것과 취재의 무게를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팀원과 함께 여러 밤을 지새는 시간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부족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이었기에 한 걸음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취재를 진행해 나감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신 여러 뉴스타파 기자님들과 최문호 기자님 그리고 홍종윤 교수님에게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이창곤(언론정보12)


선을 찾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다.

어디까지 파내어야 하나의 선, 어디까지 공개를 해야 하나의 선. 누구까지의 책임인가, 누구까지가 피해자인가의 선. 그 선을 어디에 긋는가에 따라 누구를 취재해서 어떤 질문을 물어야 하나 모두 달라진다. 언론이 내보내는 결과물 속에서 취재원들이 어떻게 그려졌느냐에 따라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에 언론인은 이 질문을 끝없이 안고 간다. 이번 학기 동안의 작업는 결국 이 선을 찾는 과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비록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한 학부생들의 과제일 뿐이었지만 우리들도 이 질문을 마주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학생 투고자들이야 당연히 신분의 비밀을 보장해줘야 하지만 그 외 기관 업무 담당자들은 어떡하나? 이미 정해진 체제 하에서 아무 힘이 없었을 학생들에게 우리의 보도가 도리어 부담을 지우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팀의 내부 회의에서도 자주 거론된 위 질문들은 결국 ‘보호해야 될 취재원’과 ‘책임이 있는 착취자’들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긋고 나눠야 하나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자님들이 학기 초에 강조했던 탐사보도를 구성하는 요소 중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명은 사건 속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결국 기자의 책임과 안목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묻지 마 살인과 강도 사건 같은 강력 사건은 만인이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누가 봐도 명확한 가해자가 피해자가 있기에 이러한 고민이 적다. 그러나 권력 사건을 비롯한 상당수의 사회 문제들은 이 아름답고 간결한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사건 주체들을 나누고 이를 각 명명에 걸맞은 포장지에 싸서 대중들에게 건네는 작업의 책임은 언론에 있고, 그 작업이 도중에 걸러질지언정 그 시작에는 한 명의 기자가 있다. 미숙하게나마 몇 가닥의 선을 그어 봄으로서, 그 책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이한호(언론정보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