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이 아닌 나를 향한 ‘베스트’

[데일리 하가 #24.]

John Goes Home
Daily Column
5 min readJan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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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7:5~8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자신과 사람의 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저주에 놓은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축복의 상징인 비를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동일하게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 언제나 좋으신 분입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저주에 놓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이 오지만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그것이 저주인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 축복이지만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이지만 그 때는 그것이 좋은 것인지 보지 못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동사 시제는 완료된 것인가 아니면 미완료된 것인가에 따라 완료시제와 미완료시제 두 종류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완료하고 다 이루신 사건은 완료시제로,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은 미완료 시제로 사용됩니다. 미완료 동사는 과거에도 이뤄졌고, 현재도 이뤄지고, 미래도 이루어지는 일들에 표현합니다.

위 본문에 사용된 ‘좋은 일이 오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미완료 시제입니다. 즉, 과거에도 좋은 일이 왔고, 현재도 오고 있으며, 미래에도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기를 기꺼이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 성품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하지만 사막의 떨기나무 같이 하나님의 생명과 무관하게 사는 자들은 좋은 것이 와도 보지 못한다고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외형적 종교적 열심으로는 지금의 우리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열심이었습니다. 실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 중심은 하나님의 본질인 그 생명과는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기호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바울의 표현을 따르면 영을 따르지 않는 모든 것은 육신을 따르는 것인데,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믿었지만 하나님의 본질에 닿질 못했기 때문에 육신 안에 갖혀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자였습니다. 바로 이들 앞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사용한 ‘좋은 일이 오는 것’에서 ‘좋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을 때의 ‘좋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최상의 좋은 것을 이들에게 보내셨지만,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았던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에 놓인 사막의 떨기나무 (…)

‘좋은 일이 오는 것’에서 사람들은 ‘좋은’을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좋은’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원어적 관점에서 ‘좋은’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기 좋은’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아십니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입니다. 땅의 관점에서 한계적 시각을 가진 나의 ‘좋은’이 아닌 나를 향한 베스트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좋은’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좋은’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과 맞닿은 ‘좋은’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 지셨습니다. 의인과 악인 모두를 포함해서입니다.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구원을 얻는 것이지 예수님이 지신 것은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좋은 것’을 언제나 보내시는 분입니다. 다만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자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육의 눈을 만족시킬 좋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참 생명에 속한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 좋은 것의 가치에 눈뜨는 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오늘 날에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보내고 계십니다. 이미 달란트와 같이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아주 가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따르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삶을 살 때에는 땅속에 감춰진 진주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둔한 자의 눈을 여는 것은 말씀에서 나오는 생명의 빛입니다. 우리가 하가를 하는 이유입니다.

시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오늘 17일차…. 1~17절 리뷰하는 날인데요. 암송도 중요하지만… 1~17절을 여러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해요. 익숙해진 상태에서 본문을 눈으로 집중해서 보시면 느끼지 못했던 감동들이 있을거에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와닿는 절들 중에… 입술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말할 수 있는 몇 단어를 붙들고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상황 속에서… 그 몇 개의 단어로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셨으면 합니다. 바로 이 방법이 바울이 강조한… 1)쉬지 말고 기도하라 2)영 안에서 기도하라….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모두 하가와 함께 평강의 주말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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