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롤러코스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지도 오래됐고, 그 사이 진행했던 프리랜서 일도 중단됐다. 보통 사람들은 서로를 직업으로 소개하기 때문에, 갑자기 타이틀이 없어지자 이제야 자아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날 누구라고 소개할까? 난 누군가? 한동안 IT 프리랜서라고 소개했으나, 이제는 프리랜서 일도 끝났고, 당분간은 또 혼자 일을 하려고 하니, 프리랜서라고 둘러대기도 뭐하다.

이제 남은 것은 “예비창업가” 정도이다. 마치 “취업준비생”처럼 사실상 현재 백수지만, 백수가 아닌 것처럼 살짝 덜 민망하게 포장한 단어다. 누가 이런 단어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시기에 따라 자존감은 넘치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주기가 너무 짧거나 진폭이 너무 커서 힘들 때가 있다

직업 타이틀이 없어서였을지, 무언가 진행하는 일들이 잘 안됐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한동안 자존감이 바닥에 깔린 채 죽상으로 지내다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별다른 사건 없이 자존감이 추락했던 것처럼, 별다른 사건 없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왔다.

아마도,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가서 오랜 친구들도 만나고, 옛 동료들도 만나며 시시껄렁한 일들에 웃고 떠들며 간접적인 위로를 얻은 게 큰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꼽자면, 자존감이 떨어진 계기는, 무작정 사업을 하겠다고 뛰쳐나왔으나,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에 자신감을 잃었던 것 같다. 사실 큰 조직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야, 나 정도면 꽤나 다양한 영역을 감당할 수 있는 풀스택 개발자지만, 서비스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어쩌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했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에 실망이 이어진 거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날 바라보면 어떨까? 배워가며 하면 되는 거지, 세상에 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미리 준비가 다 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까?

큰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자존감의 롤러코스터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것 같다. 마치 아래에 안전망이 있는 것처럼, “그래도 내가 이렇게 잘 나가는 회사의 구성원이고, 그럭저럭 중간은 가는 사람이잖아?”라는 안전망. 이런 안전망이 갑자기 휙 없어졌으니, 다소 당황할 만도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안전망은 가짜다. 안전망처럼 보이지만 막상 떨어져 보면 그냥 끊어져버릴 허술한 안전망.

진짜 안전망은, 남들과의 비교나 사회적 타이틀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 아닐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라거나 열등한 존재라는 판단 같은 건 집어치우고, 그저 그냥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배워나가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부족하지만 배울 수 있는 사람, 그런 면에서 존중할만한 사람. 그게 자존감의 핵심이 아닐까?

또 다른 핑계로, 평소 내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 구부정한 자세를 자주 취하곤 했다. 다소 비논리적으로 들려서 믿기 어렵지만, 단지 가슴을 활짝 펴고 꼿꼿이 서는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남성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하니, 어떤 자세나 말투를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 난 반대로 구부리고 다녔으니, 그런 자세가 실제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겸손을 장려하는 사회이지만, 사실 반대로 따져 보면, 나는 아직 익지 않았으니까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면 겸손한 태도를 보태는 것이 아름답겠지만, 익지도 않은 주제에 겸손을 포장하려 한다면, 그건 오히려 거만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일부러 거만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겸손한 척도 필요 없다. 그냥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정리하자면,

  • 난 우등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그런 개념은 상대적인 거다.
  •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에 기대가 큰 거다. 해보고 실패하면 배우고 다시 하면 된다.
  • 셀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자.

이런 자기계발서에서나 볼 법한 결론에 이르렀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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