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코딩 피칭 후 배운 점과 다음 할 일

지난주에 제주 창조 경제 혁신 센터에서 운영하는 “사업 아이디어 피칭 데이”에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겠다는 내용으로 발표했습니다. 발표 자료는 이전 글에 상세하게 정리했습니다. 발표는 기대 이상으로 유익했고, 배운 점이 있어서 따로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발표 내용] 한글 코딩 비즈니스 피칭 — https://goo.gl/DD8RzT

발표 후 배운 점

  1.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머릿속 내용을 총 정리해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2. 비개발자도 사람이고, 자세히 설명하면 관심을 갖고 들어줄 수 있다.
  3. 주제에 따라 발표자료 자체는 그다지 흥하지 않는다.
  4. 새로 만나고 알게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5. 많은 사람들이 교육용으로써의 사업성은 인정한다.

사실, 워낙 기술적인 내용이고, 개발자들조차 무관심한 내용이라서, 사업 아이디어 피칭으로 나서는 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또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동안 머릿속 생각을 한판 총 정리해보겠다는 의미로 참가한 측면이 크지요. 게을러서 따로 정리하지 않고 산만한 생각만 있는 상태였으니, 이번 기회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그 빌미로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해보겠다는 의도였고, 그런면에서는 유효했습니다. 남들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스스로도 꼼꼼히 점검해 보고 정리하는 일을 꽤 열심히 하게 해주더군요. 뭔가가 닥쳐야 실제 일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컴파일러나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 같은 개발자들도 잘 이해하기 힘든 주제를, 비개발자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는데요,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전문 용어들에 어리둥절 표정을 지을 청중의 모습이 미리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 청중의 집중도가 높았습니다. 아마도 발표 무대의 특성상, 다 같이 들어주고 좋은 내용을 공감해 주겠다는 기본 참관 마인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쨌든 그 집중도에 사뭇 놀랬습니다. 잘 모르는 내용을 얘기해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질문까지 해주시는 청중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지요. 비개발자도 사람이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로 풀어가면, 모르는 내용이라도 잘 들어주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요새는 정말 일반인들이 코딩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은 것 같습니다.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나도 좀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으신 게 아닐까요?

발표 자료는 정성 들여 준비했고, 애초에 글로 따로 남길 생각이었기에 스크립트도 일일이 작성했습니다. 발표 후 해당 스크립트를 그대로 미디엄에 공유했습니다. 슬라이드도 일일이 캡쳐 하는 정성까지 들여서 말이죠. 이전까지의 제 글이 짤방 하나 마땅히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 정성이라면 더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역시 미디엄 글의 흥행(?)은 “글의 모양새”가 아니라 관심있는 “주제”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글 코딩”이라는 주제 자체가 무관심한 영역에 있지요. 그렇다면 반대로, 어차피 관심 있는 “주제”의 글을 쓴다면 그 모양새에 너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안심이 됩니다. 곧 시즌1을 마무리 지을 연재 글, “웹 개발 입문자를 위한 연재”가 딱 그런 거죠. 글이 어렵고 꾸밈이 별로 없지만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습니다. 이왕이면 관심 있는 주제에다가 모양새도 정성을 들이면 더욱 좋겠지만, 둘 중에 집중한다면, 주제와 내용에 먼저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앞서 적은 이유로 나서기 두려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드러냈더니, 새로 알게 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발표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소 말 한마디 나눌 상황이 없었을 테고, 이 기회로 어떻게 또 새로운 연결 고리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거지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탓에 한 사람 한 사람 새로운 연결이 생기기 힘든 성격인데, 그런 면에서 아주 큰 소득이 아닐까 합니다. 단지 페친이 되더라도, 그냥 공통 지인으로 연결되는 강도와, 그래도 제가 한 줄기 10분짜리 얘기를 털어놓고, 청중과 연결된 페친은 좀 더 강한 고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리고, 사업성의 영역에 있어서는, 제가 제시한 방향을 조금 틀어서 좋게 평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현재 스크래치처럼 교육용에 치우쳐진 언어는 배우기 쉽기는 하지만, 실용성 측면에서 아쉽고, 그렇다고 바로 어른들의 언어를 쓰기에는 거리감이 큰 경우에, 한글로 된 실용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주제가 파고들 틈새가 있지 않나라는 평가였지요. 일부 초등학생들도 스크래치를 시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니, 초등학생 이후 고등학생 정도까지를 아우르자는 건데, 제 평소 초점으로부터 조금 이동했습니다. 평소 중고등학생들에게 그렇게까지 코딩 열풍이 불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몇몇 분들께 얘기를 듣고 조금 바뀌었지요. 제가 평소 노렸던 고객층(?)은 대학생 정도였는데, 조금 더 연령대를 낮춰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배운 점들이 많으니, 제가 들인 노력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둔 것 같습니다. 남는 장사(?)였네요.

다음 할 일 (Next Actions)

사실 발표로 다룬 주제가, 두 가지 측면이 혼재돼 있습니다. 일반적인 프로그래밍을 할 때 한글을 더 써도 된다라는 주장과, 아예 한글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서 제공하겠다는 측면이 섞여있어요.

  1. 일반 프로그래밍 언어로 한글을 더 쓰기
  2. 아예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와 플랫폼을 만들어 제공하기

첫 번째 측면은 사실, 일상적인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한글로 작성하는 예제를 더 노출하면 그 효과가 조금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타겟은, 이미 영어 코딩에 익숙한 사람들보다는, 이제 막 배우는 사람들이 개방적이고, 어쩌면 당연시 받아들일 것이기에 초급 수준의 학습 문서나 예제를 한글로 코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적절한 분야를 접근한다면, 아마도 HTML, CSS, JS, Python 같은 분야를 다루는 초급 과정 교육 과정을 만들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 만약 한글로 코딩하자는 주장이 유효해서 널리 공감대를 얻는다면 제게 무슨 득이 있을까 고민해봤는데, 딱히 득 될 일이 없네요. 굳이 이득을 꼽는다면, 제 나름의 주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진다는 만족감? 그러니까 제 에고(ego)에 보탬이 되려나요? 득실을 잠시 고민해보니, 틈틈이 주장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합니다만, 과도히 노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저 제가 초급 수준의 강의 자료를 만들 때, 한글로 적는 수준으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거꾸로 단지 한글 코딩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역으로 굳이 초급 수준 강의를 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노력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초급 수준 강의에도 조금의 관심은 있으니,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두 번째로, 아예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와 플랫폼을 만들려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작업이기 때문에, 예상 성과와 더불어 더 진행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발표 자료에 설명한 대로, 클로저에 살짝 얹는 방식으로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를 쉽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 결과물이 널리 쓰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웹으로 REPL을 얹어서 튜토리얼 문서를 읽고 실험하기 좋게 만드는 것과, 조금 더 나아가서 웹 IDE를 만드는 방법은, 잘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잘 만들고 났다고 해도 그 실효를 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병행해볼 수 있는 일로는, 일단 제가 직접 그 언어를 써서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업무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제 혼자 마음대로 한글을 썼다가는 협업 개발자들이 곤란해할 테니,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해서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의 포트폴리오로 삼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 주업에 부담을 주면 안 되니, 별도 운영이나 유지보수 부담이 없는 단기 프로젝트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온전히 제 개인 프로젝트이면 제일 좋겠지만, 이 경우 포트폴리오라고 하기에는 좀 허전하고, 또 매번 뻔한 주제가 나올 테니, 주변에서 혹시나 공감대 높은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개발 측면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단가할인 내지는 재능 교환의 성격으로, (재능 기부가 아님) 프로젝트를 진행해 봐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상세한 내역은 따로 정리해봐야겠어요. 혹시나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의미있는 일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제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 상황이라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 말입니다. 이런 프로젝트 조건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글로 정리해서 여기에도 URL을 공유하겠습니다. 주변에서 개발자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런 조건에 맞는다면 소개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이 돈 벌기인 프로젝트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아예 떠나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하지 않습니다. 돈과 의미의 비율이 적절한 프로젝트를 고릅니다. 저 개인은 이미 풀타임으로 계약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서, 추가로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리고, 의미라는 것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따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또, 아마도, 일반 프로그래밍 언어에서의 한글 사용과,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플랫폼 공통으로, “교육용 플랫폼”의 측면에서는, 라즈베리 파이에 해당 플랫폼을 얹어본다거나, 아니면 교육용 커리큘럼을 개요만이라도 작성해보면 흥미로운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합니다. 이건 워낙 막연한 생각이라 틈나면 해당 주제를 좀 더 파고들어 보려고요.

배운 점과 할 일들, 그중에 선택할 것

고작 10분 발표에 배운 점이 많고, 해야 할 일의 목록도 많이 얻었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그냥 묻히겠지만, 모르죠, 어쩌면 이중에 가장 재밌으면서 효과적인 일 한 두 개쯤은 실제로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고 비관심 주제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주변에 뿅! 하고 떠오르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한번 생각해봐 주시고 소개시켜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Show your support

Clapping shows how much you appreciated 김대현’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