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개발자가 되는 길 (2) — I may be wrong

김대현
HappyProgra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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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in readMar 23, 2024

지난 글에 호응이 과분하여, 더 용기를 내어 같은 주제의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마침, 지난 글을 올린 즈음에, 가까운 주변 개발자 한 분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 불편한 심리 상태의 원인이 꽤 공통적이라는 점에서 다음 주제가 바로 떠올랐어요. 불편한 심리 상태에 빠져있는 당장의 상황에서는 이런 의견을 드려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바로 전달드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니, 사실 이런 의견은 누구도 듣기 싫어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어뒀는데, 무심히 읽게 되어 공감이 드는 부분이 있다면 다행인 정도이겠습니다.

내가 맞다는 환상

어쩌면 본능의 영역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학창 시절 시험 문제에 정답을 적어내야 하는 교육 과정에 따른 악습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가 맞다”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내가 틀린 걸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건 미처 내가 관심 갖지 않았던 무지한 영역에서일 뿐이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 있는 부분에서는 틀린 걸 인정할 수 없습니다. 틀린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이 조금이라도 틀린 표현을 하면 바로 지적을 해서 바로잡아주고 싶어 하지요.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인데 날 틀렸다고 지적한다? 그럼 맞서 싸워서 내가 맞고 남이 틀리다는 걸 인정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말이죠.

시험을 볼 때나, 일을 할 때나 어떤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이런 자세가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일상 대부분에서는 이 맞고 틀리고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을 수도 있고, 취향의 차이일 뿐,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맞다”는 환상은, “남이 틀리다”라는 환상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남이 맞다”면 “내가 틀리는”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왜 굳이 내가 꼭 맞아야 합니까? 틀린 지식을 갖고 있으면 죽어나가는 생존의 문제에 놓여있기라도 한 것처럼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고 표현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서, “틀려도 된다”라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 다른 의견에 대해 열리고 배우기 편해지고, 마음이 불편한 지점도 대폭 사라지며, 싸울 일도 줄어듭니다.

내가 틀려도 된다면, 상대 역시 틀려도 되며, 설령 상대가 명백히 틀리다고 할지라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관대하고, 타인에게도 관대해지면 되는 거죠. 틀린 걸 알게 됐을 때, 겸허히 배우면 됩니다. 굳이 정정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해도 됩니다. 틀려도 되는 거니까요.

이렇듯 “틀려도 된다”라는 생각에서 큰 해방감이 이어집니다. 개발자가 뭐 평생 시험을 보는 상태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때로는 맞고 틀리는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걸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 쓸데없는 고민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지금, 제 의견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지를 지적하고 싶으신가요? 이미 그것이 “당신이 맞고”, “제가 틀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미 “내게 맞는 의견이 있는데, 저 사람이 날 틀렸다고 말하네?”라는 흐름인 겁니다.

전 지금 제 글의 내용이 틀려도 되고, 당신의 내용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체로 너무 편안해요.

각자의 세상에서

우리 모두 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다 나름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실상 각자의 세계가 너무 다른 상태인 거죠. 이 세상과 세상이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세계관이 달라서 빚어지는 충돌들이 있습니다. 긍정적 충돌일 때도 있고 소모적인 부정적 충돌일 때도 있습니다.

각자 내 세계와 그들의 세계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세계를 일치시키려는 불필요한 시도를 포기할 때에 엄청난 에너지가 절약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의 세상

위대한 스승들은 이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찬 하나의 세상이라고 하더군요. 언젠가 깨닫게 된다면 그런 통합의 세상에 눈을 뜰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현실 세계에서 그저 조금 마음 편한 자세를 유지하는 정도로는 각자의 세상을 인정하고 내 세상에서는 이게 맞고, 당신 세상에서는 그게 맞다, 그리고 그걸 꼭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쩌라고? (2)

내 의견이 맞다는 주장을 하고 싶거나, 타인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 해당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하는 본인 스스로를 바라보고 인식합니다. 이 의견을 표출해서 내가 얻는 이득은 무언지 따져봅니다. 과연 내가 맞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맞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틀린 걸 인정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통의 이익은 무엇인지 따져봅니다. 그 사이 잠깐의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이익이 체감될 것입니다.

[이전 편] 행복한 개발자가 되는 길 (1) — Breath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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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김대현

Written by 김대현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함수형 프로그래밍을 선망하며 클로저, 스칼라, 하스켈로 도전하며 만족 중. 마이너리티 언어만 쫓아다니면서도 다행히 잘 먹고 산다. 최근엔 러스트로 프로그래머 인생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