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크립토 대출시스템 변천사

Jake
해시드 팀 블로그
8 min readFeb 26, 2024

‘금융’의 본질은 무엇일까? 금융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 함은 예금과 대출일 것이다. 현대의 복잡한 금융시스템이 자리잡기 이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 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한 기록들이 나타나있고, 우린 그것을 최초의 금융이라 칭할 수 있다. 그런 원시적인 형태의 금융에서 시작해 최근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금융의 탄생과 발전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DEFI다. 혹자는, 특히 2022년 전후 사건사고들을 겪은 뒤로, DEFI 자체가 거품이며 펀더멘털이 없다고 말한다. 실질적인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돈을 넣은 사람이 나중에 돈을 넣는 사람의 돈을 가져가는 다단계 구조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술한 금융의 본질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암호화폐 시장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주 높은 이자를 지급하고서라도 돈을 빌리려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자신의 돈을 예치하여 어떻게든 적은 위험으로, 더 쉽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 역시 굉장히 많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엄청난 대출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다른 어떤 금융시장보다도 탄탄한 펀더멘털을 갖춘 시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본고에서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대출 플랫폼들이 어떤 니즈들을 충족시키며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 보존되어 있는 대출 기록

DEFI 이전에 암호화폐 시장에는 CEFI 대출 플랫폼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었다. CEX에서 지원하는 마진거래가 가장 흔하게들 이용해본 대출 서비스에 해당될 것이다. 마진거래를 해봤다면 누구나 funding fee를 시간 단위로 뜯겨보았을텐데, 그 값을 연이율로 환산해본 적이 있는가? 바이낸스 BTC/USDT 기준 기본 펀딩피가 8시간 당 0.01% 가량인데, 이는 단리로 계산하더라도 약 연 11%의 값이다. 하지만 펀딩피는 수시로 기본펀딩피의 수배~10배 이상까지도 올라가고, 특히 BTC가 아닌 알트코인들의 경우는 더 하다. 마진거래를 하는 경우 연 수십에서 수백, 수천 %의 고금리 대출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따갚돼(따서 갚으면 돼)’, ‘잠깐이면 돼’라는 마인드의 눈먼돈들이 엄청난 대출 수요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트레이딩 목적이 아니라 펀딩피 수익을 목적으로 마진거래에서 포지션을 잡고 헷징을 통해 포지션 노출은 상쇄시킨 뒤 이자만 받아가는 전략들 역시 각광받는다.

8시간 당 1.4%의 펀딩피는 무려 연 1533% 의 고금리로 환산된다. (이미지출처: 바이낸스)

그런 큰 수요가 있다보니 CEFI 렌딩 서비스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펀딩피를 먹기 위해 굳이 번거롭고 위험한 액션을 직접 수행할 필요 없이, 플랫폼에 자산을 예치만 하면 이자를 받아갈 수 있게끔 서비스의 프런트 구조를 짠 것이다. 렌딩 서비스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플랫폼들도 많았고, 해외거래소의 경우 대부분 거래소 인하우스 렌딩 서비스를 제공했다. BTC, ETH 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의 형태로도 예치를 할 수 있었는데, 스테이블코인의 경우가 일반적으로 이자도 더 높았다. 예치자 입장에서는 BTC나 ETH로 포지션을 가져가며 예치를 하고 싶어하여 그쪽이 공급은 많고, 대출자 입장에서 대출금을 통해 신규투자를 하기 위해선 스테이블코인이 가장 용이한 형태여서 반대쪽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USDT 예금의 이자율은 기본 10%에서 수십퍼센트를 상회하는 높은 값이 유지가 됐다. 사람들은 가격 변동에도 영향 받지 않는 USDT 예치상품이 보편화되자 이를 기성금융 예금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은행 돈 빼서 여기다 넣어두는게 훨씬 이득인데?’ 하지만 이는 하이 리턴에는 하이 리스크가 필수 동반된다는 이바닥의 진리를 잠시 깜빡한 셈이었다.

2022년, 갑작스런 전쟁이 발생하고 만다. 업사이드 만을 바라보며 잔뜩 레버리지가 되어있던 암호화폐 시장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락장이 시작되자 담보로 맡겨져 있던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시장에 형성된 불안감으로 예치자들은 줄줄히 자산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뱅크런들이 일어나게 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수준의 CEX가 파산하며 렌딩서비스를 포함해 예치된 모든 고객자산이 유실되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상당한 규모였던 유명 CEFI 예치플랫폼이 파산하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의 공통점은 자산의 소유주가 자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전혀 모니터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탁업체의 독단으로 자산이 위험하게 관리되다 사고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2022년의 사건사고들에서 우린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대출 시스템은 반드시 탈중앙화 되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이미지출처: 매일경제)

AAVE는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탈중앙 대출 플랫폼이다. CEFI 서비스를 이용할때처럼, 웹사이트에 접속해 간단한 클릭 몇번으로 대출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 자산의 예치와 대출이 모두 블록체인 상의 컨트랙트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탈중앙 서비스로 규정하게 된다. 우리는 블록체인 상에서 트래킹을 통해 우리가 예치한 자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누가 빌려가는지, 이 플랫폼의 재정건전성이 어떠한지 모두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블록체인 상에서 대출이 이뤄진다는 점은 흥미롭고 혁명적인 발전도 이뤄냈다. 기존에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대출이란, 항상 담보가 필수적으로 바탕이 되어야 하는 형태였다. 익명성이 강하고 규제가 느슨한 이 시장에서, 기성 금융시장처럼 신용에 기반한 무담보 대출을 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Flash-loan은 담보대출의 한계를 기술로서 극복해낸 상품이다. 플래쉬론은 블록체인 상에서 액션이 수행되는 최소 단위인 하나의 트랜잭션 안에서, 대출 실행과 상환을 모두 끝마쳐 버리는 형태의 대출이다.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선 대출의 상환이 하나의 트랜잭션 안에 보장되어 있으니 담보도 신용도 필요 없이 큰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고, 대출자는 그렇게 쉽게 큰 돈을 빌려 하나의 트랜잭션 내에서 하고 싶은 액션을 맘껏 취한 뒤 이자만 살짝 붙여 돈을 갚아버리면 된다.

탈중앙 대출플랫폼의 단점은 없는 걸까? AAVE를 사용하다 보면 수시로 불만을 갖게 되는 포인트들이 있는데, 주로 들쭉날쭉인 이자율 관련일 것이다. 저금리로 대출을 실행해놨는데 갑자기 금리가 확 올라버린다거나, 대출을 할때는 고금리인데 예치를 할때는 저금리라던가 하는 등의 문제들이다. 이는 기성 금융의 은행들과 비교하면 지급준비율이나 여러 규제, 약정 등을 통해 금리를 안정화하는 장치들이 탈중앙 대출 플랫폼에는 아직 덜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탈중앙의 세계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빠르게 나타난다. 최근에는 이자율과 대출기한을 고정하여 대출을 실행할 수 있는 탈중앙 대출 플랫폼도 런칭됐다. 예치자들은 자금을 예치한 뒤 해당기간동안 자금을 인출하지 않겠다고 약정을 함으로써 더 높은 이자율을 받게 된다. 대출자는 그렇게 상환기간이 확정된 자금을 적당한 이자율의 고정금리로 대출을 실행함으로써 금리 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양측에 편의를 제공하고 뱅크런 등에도 더 안전한 구조로 대출시스템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출처: Coupon finance)

상술한 문제 이외에도 탈중앙 플랫폼에선 잠잠하다 싶으면 한번씩 해킹사고가 터지는 등 전형적으로 시장의 미성숙함에서 기인하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기성 금융시장 만큼의 안정성을 갖추고 고도화가 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22년 CEFI 사고들과 문제의 성격을 비교했을때,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더 구조적인 이점을 갖고 있는지 역시 명확하지 않을까? 대출 수요라는 확실한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한 DEFI 대출 플랫폼이 발전하고 나면, 지금의 은행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의 일부가 우리 DEFI 투자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작성자 : Jake Kim, 김지섭, 해시드 운용역 https://www.linkedin.com/in/jiseob-kim-97505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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