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가 반드시 넘어야 할 본원담보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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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드 팀 블로그
7 min readJan 20, 2020

블록체인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디파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혹자는 디파이의 근원적인 수요가 시세변동을 통해 차익을 얻기 위한 거래, 즉 투기에 몰려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투기라고 하여 이를 문제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본시장에서 투기심리는 시장의 역동성과 유동성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디파이에 대한 가장 합당한 우려는 바로 담보자산의 한계이다.

담보자산이란?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믿을만한 중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디파이, 탈중앙화 금융에서는 무엇보다도 담보자산이 중요하다. 현재 활발하게 사용되는 다양한 디파이 프로토콜들도 담보자산이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미국달러와 연동된 다이(DAI)와 같은 합성자산(Synthetic Asset)도 담보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이러한 합성자산 또한 발행을 위해서는 다른 담보자산을 요구한다. 현재 디파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담보자산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이더(ETH)이며 그 밖에 여러 프로젝트들이 발행한 ERC20토큰들이 담보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렇게 합성자산이 아니면서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담보물을 통화이론의 본원통화(Base Money)에 빗대어 본원담보(Base Collateral)라고 부르자.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의 금 보관소 중 한 곳

앞으로 디파이 전체 시장 규모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디파이 관련 사업을 하려는 창업자들이나, 금융기업, 그리고 디파이쪽에 투자를 하려는 투자자들이 그 답을 가장 궁금해할만한 질문이다. 디파이 시장규모를 측정하는 지표는 TVL, 거래량, 사용자수 등 여러가지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표는 TVL이다. TVL은 예치자산 총가치(Total Value Locked)의 약자로서, 스마트 컨트랙트에 예치된 자산 가치의 총합을 의미한다. TVL 기준으로 볼 때의 디파이 시장 규모는 통화금융에서 통화량을 구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산출할 수 있다. 통화량은 흔히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본원통화에 통화승수를 곱한것으로 표현한다. 이 때 본원통화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실제 화폐량을 의미하며, 통화승수는 은행의 지급준비제도에 의해 실제로 추가유통되는 돈의 비율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디파이의 TVL을 본원담보 X 담보승수로 표현해보자. 여기서 담보승수(Collateral Multiplier)는 디파이 프로토콜들이 요구하는 최소담보비율과 자산이 합성되는 횟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통화승수와 담보승수의 차이점은 지급준비율과 최소담보율에서 나온다. 지급준비율은 100%보다 작기 때문에 대출이 반복될때마다 통화승수는 크게 증가하며 무한히 커질 수 있다. 반면에 최소담보율은 100%보다 크기 때문에 자산의 합성이 반복되더라도 담보승수의 증가폭이 작으며, 그 최대 크기에 제한이 있다.

담보자산의 규모에 갇힐 수 밖에 없는 디파이 시장

요약하자면 담보승수는 초과담보비율과 합성이 반복되는 정도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그 크기에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TVL을 키우는 방법은 바로 본원담보의 총량을 키우는 것이다. 현재 본원담보로서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자산은 이더인데, 이더의 시가총액은 17조원 정도이다. 발행된 모든 이더가 담보로 잡힌다고 하더라도 본원담보가 17조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앞으로 디파이가 발전하면서 우마(UMA)와 같은 합성토큰 발행프로토콜을 통해 현실 세계의 주식을 거래하는 것일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본원담보의 규모가 너무 작다면 매력도가 많이 떨어진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현재 1600조원이 넘는다. 발행된 모든 이더를 전부 담보로서 활용해도 애플주식 전체 발행량의 1.x% 밖에 합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과담보비율까지 감안하면 1%보다 한참 아래수준으로 떨어진다. 레버리지 인덱스를 합성하면 더 많은 수량의 애플주식을 보유한 것 과 같은 투자포지션을 만들어 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댓가로서 담보물의 강제청산 리스크가 급격히 높아지므로, 이것 또한 완전한 솔루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더의 가격이 급락하면 무너지는 모래성

이더(ETH)를 중심으로 구성된 담보자산은 단순히 규모이상의 잠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단일지점실패(Single Point of Failure)이다. 단일지점실패는 블록체인과 탈중앙화가 방지하고자하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하나의 지점에서 실패가 일어나더라도, 이것이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금융권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다. 부실채권을 담보로한 파생상품들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면서 리스크의 규모를 키웠고, 담보물의 가치가 급락하자 그 위에 쌓인 모든 상품들이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이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부실자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대로 된 가치평가 방법론을 갖추고 충분한 거래 유동성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가치변동성이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본원담보 역할을 하는 이더의 가치가 일정수준이상으로 급락하는 경우에 이더를 담보로한 여러가지 합성자산들의 지불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담보자산의 성장을 위한 노력

결론적으로 담보자산의 규모와 다양성을 키워야만 디파이 산업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 일각에는 디파이 프로토콜의 효용성만 잘 성장시켜도 본원담보의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디파이 프로토콜의 효용성이 높아질 수록 더 많은 이더가 담보로서 스마트 컨트랙트에 잠기게 된다. 이를통해 거래시장에 공급되는 이더의 량은 감소하게 되는데, 이더리움의 기축통화는 이더이기 때문에 이더의 수요는 동시에 증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이더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이더 가격이 상승하면 이더의 발행량은 같더라도 총 TVL은 증가할 수 있다. 반면에 디파이 프로토콜을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 담보자산 자체의 혁신을 꾀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첫째는 비트코인을 디파이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이다. 비트코인에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더리움 대비 응용사례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BTC)의 시가총액은 160조원으로 이더 시총의 9배에 달한다. 이러한 비트코인을 담보로 가져올 수 있다면 시장규모를 단숨에 10배로 키울 수 있다. 비트코인을 담보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알에스케이(RSK)는 비트코인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구동할 수 있는 레이어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디파이를 접목하려고 한다. 반면에 wBTC나 tBTC는 비트코인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ERC20형태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시도이다. 다만 두 경우 모두 스마트 컨트랙트 레이어가 순수한 비트코인 네트워크 만큼의 신뢰도를 제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잠재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두번째는 금이나 법정화폐, 부동산, 주택 등의 현실자산을 토큰화 하여 담보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첫번째 방향은 여전히 디파이 시장의 규모가 비트코인 시가총액에 갇힌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 방향은 잘만 실현된다면 시장규모를 현실 경제만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방향은 탈중앙화된 방법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들어 금을 토큰화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금을 맡기고 금 토큰을 발행하려면 금을 맡아주는 중개자가 필요하며, 마찬가지로 누군가 금토큰을 가지고 금을 청구할 때 금을 돌려줄 중개자가 필요하다. 이 중개자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금을 보관해야하므로, 스마트 컨트랙트가 아닌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존재여야 한다. 특정 중개인이 존재하는 시스템을 탈중앙화 금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디파이가 성장할수록 점차 본원담보의 중요성이 대두될 것

아직 디파이 전체에 잠겨있는 자산의 총가치, 즉 TVL은 7900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이더 시가총액의 4.6% 밖에 되지 않고, 비트코인 시가총액의 0.5% 밖에 되지 않는 수치이다. 담보승수까지 고려하면 디파이의 본원담보 총량은 더 작을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담보물의 가치보다는 다른요소들이 디파이의 성장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원담보의 규모의 범위를 확대하지 않고서 디파이가 현실세계의 금융시스템과 경쟁하기는 어렵다. 디파이의 성장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하려는 스타트업, 금융기업, 투자자 등은 본원담보에 대해서 정교하고 구체적인 예측을 해내야만 할 것이다.

2020년 1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에 기고한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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