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런치(Fair Launch) : 공정한 분배가 이끄는 건강한 성장

Sung Ho Ryan Kim
해시드 팀 블로그
8 min readJan 22, 2021
제로에서 빠르게 솟아오르는 우주선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Fair Launch

개인투자자들을 이끌어낸 ICO붐

2017년 ICO 붐은 과거 IT 버블을 연상케 하듯 엄청난 돈을 빨아들이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를 대중들의 머리에 각인시켰다. 원래 ICO는 좋은 오픈소스를 개발하기 위해 이더리움을 보유한 수많은 개인들에게 기부를 받고 그에 대한 증서로 자신이 발행한 디지털 자산을 제공하는 간단한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 새롭게 발행된 자산의 가치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그저 그 소프트웨어를 후원한만큼 미래에 그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는 사용권을 받는다는 개념이었다. 거래소들은 초기 그렇게 발행된 몇몇 디지털 자산을 장밋빛 미래로 포장하여 엄청난 가격상승을 유도해냈고, 결국 수많은 기업들이 이 성공을 쫓아 ICO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단기간에 시장이 급상승했던 이유는 투자 기회들이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노출되어 있었고, 누구나 투자해서 단기간에 수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유망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의 기회는 벤처캐피탈과 같은 기관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업계에 큰 영향력이 있지 않는 이상 개인에게 투자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ICO의 경우에는 전혀 양상이 달랐다. 이런 개인 투자자들의 빠른 움직임에 경쟁이 과열되었고, 창업자의 훌륭한 이력과 그럴듯하게 쓰여진 백서, 명망 높은 투자자들과 어드바이저들의 이름이 올라간 홈페이지만 가지고도 몇 백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 금새 모집되었다. 개인들이 벤처캐피탈 못지 않게 돈을 벌기 시작하자, 몇 몇 개인들은 아예 투자 회사를 만들어 전세계에서 나오는 경쟁력있는 ICO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가치보다 훨씬 부풀려진 미래에 돈이 끊임없이 모이는 버블 현상의 끝에는 엄청난 폭발이 있을 뿐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시장에 엄청난 매도물량이 풀리면서 시장은 완전히 주저앉았다. 이때 많은 투자자들은 프로젝트의 펀더멘탈 가치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결국 ‘숫자’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일반적인 스타트업에서 사용자수나 매출 같은 지표를 이용해서 펀더멘탈을 측정하듯이 말이다.

Fair Launch의 시작이었던 SushiSwap

디파이로 다시 돌아온 개인 투자자, 그 중심엔 지표 중심 투자, 그리고 누구나 투자가능한 공정 투자

최근 불고 있는 디파이 붐은 다시 한번 대중의 관심을 디지털 자산으로 끌어들였다. 이번에는 ‘숫자’가 함께 있었다. 디파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지표 중 하나인 TVL(총 예치금; Total Value Locked) 이라는 수치는 얼마나 많은 자산이 해당 디파이 프로젝트에 예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TVL이 클수록 소화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수치가 높아질수록 펀더멘탈이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TVL이라는 지표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자산의 규모이기 때문에 매우 투명하게 계산되어진다. 그리고 이 지표는 벤처캐피탈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개된 정보이기 때문에, 기관과 개인 모두가 같은 선에서 투자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설계된 디파이 프로젝트에는 기관과 개인의 자금이 급속도로 몰리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2017년과 같은 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관 투자자들에게는 굉장히 낮은 벨류에이션에 투자를 받고, 개인 투자자들은 공개모집을 통해 높은 가격에 사도록 만드는 투자 모집의 구조가 굉장히 불공정하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몇몇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은 토큰을 서비스 런칭하기 전에 아무한테도 투자받지 않고, 서비스 런칭과 함께 서비스 성장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여한 수치에 따라 공평하게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이런 토큰 출시 방식을 페어 런치(Fair Launch)라고 부른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마케팅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더라도 기관과 개인이 스스로 서비스에 들어올 동기부여를 제공함으로써, 마케팅이나 홍보 없이도 규모를 빠르게 키울 수 있고,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 사이의 차등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출시한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YFI(yearn. finance)는 출시하자마자 시장에서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출시한지 2개월만에 전체 토큰 가치 기준 1조 원 규모의 서비스로 급성장했다.

이 이후로 출시된 스시스왑(Sushi Swap) 역시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최대의 탈중앙화 거래소인 유니스왑(Uniswap)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개인과 기관들이 스시스왑으로 유동성을 옮기면, 그 규모에 비례해서 자체적인 토큰을 분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니스왑에는 유동성을 제공하더라도 아무런 대가가 없었지만 스시스왑은 빨리 옮겨놓을수록 스시스왑의 가치를 대변하는 토큰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유니스왑 전체 유동성의 80%가량이 순식간에 스시스왑으로 옮겨갔다. 이를 기반으로 아무런 브랜드도 없었던 스시스왑은 출시하자마자 전체 TVL 순위 기준 3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유니스왑과 관련없는 많은 사람들도 이 토큰분배에 참여하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을 키우는데 더 도움을 줬다. 이번 사건은 명백히 프로젝트의 성장에 기여하는 사람에게 공정한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과실을 나눠준다면 더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유저를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은 증명, 그러나 아직 부작용도 존재

분명 이번 실험이 적어도 유저를 끌어들이는 데에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은 확실하다. ‘토큰 분배 -> 새로운 유동성 유입 -> TVL 증가 -> 펀더멘탈 상승 -> 토큰 가격 상승 -> 토큰 보상 규모 증가 -> 더 많은 유동성 유입’ 이런 사이클을 거치면서, 토큰의 가격이 폭락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유동성 공급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토큰 가격이 상승하지 않고 하락하기 시작한다면 반대로 유동성 공급자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충분한 규모로 상승해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토큰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저가 매수를 하는 외부 투자자가 나타나며 토큰 가격을 지지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분명한 부작용도 존재한다. 이렇게 기관 투자를 받지 않은 프로젝트의 문제점은 이 프로젝트가 충분히 믿을만한 창업자인지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분명 기관 투자를 받은 프로젝트는 기관과 창업자 개인의 이름이 알려진만큼 사회적 부채가 있고, 기관과 창업자 사이에 강한 계약관계가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페어 런치로 시작한 프로젝트들은 굳이 기관한테 투자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신의 신상명세를 공개해야되는 의무도 없다. 익명의 창업자로 시작하지만, 프로젝트에 유동성이 모이기 시작하고 토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모을 수 있다. 그 자금이 묶여있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제어할 수 있는 키는 그 익명의 창업자에게 있기 때문에, 창업자에게 모든 자금을 빼고 사라져버릴 유인이 생긴다. 이러한 경우 서비스 존속 여부는 창업자의 선의에 기대는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여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초기자금 없이 시작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전문 업체를 통한보안 감사를 받지 않고 출시하는 점도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설령 창업자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안 감사를 충분히 하지 않아서 보안 구멍이 있다면, 코드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있는 스마트 컨트랙트의 특성상 쉽게 해커의 표적이 되고 자금이 탈취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 런치를 하려는 유능한 창업자를 지원하고자 하는 페어 런치 캐피탈(Fair Launch Capital)이라는 새로운 지지자 그룹이 생겨났다. 초기보안 감사 비용을 대주고, 초반 유동성 공급 등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그 댓가로 토큰을 많이 받아가는 형식으로 이해관계를 일치시킨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소수의 천재 개발자들은 이런 그룹에게 충분히 지원을 받으면서 좀 더 안전한 페어 런치를 준비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전통적인 ‘투자회사’들 또한 이제는 창업자들에게 단순히 자금을 대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경쟁력 있게 창업자와 프로젝트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미 기관보다 개인 투자자 그룹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페어 런치가 투자회사들이 어떻게 더 프로젝트에 경쟁력있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의 요약본은 한경비즈니스리뷰(2020.09.21)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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