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보내고 싶었던 편지

Sung Ho Ryan Kim
해시드 팀 블로그
11 min readNov 18, 2018

*본 블로그 포스팅은 프라하에서 열린 이더리움 파운데이션의 Devcon 참석 후기를 해시드 내부에 공유한 메일을 재가공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글이기 때문에 해시드의 철학이나 다른 멤버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Ryan입니다.

프라하에 가기 전 마지막 미팅에서 ‘모두가 데브콘에 함께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실시간 정보를 공유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전 고질적인 게으름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30번 정도 현장 소식을 전하는 메일을 써야겠다고 머리속으로 되뇌였는데요. 결국, 집에서 도착해서야 ‘프라하에서 도저히 못 쓰고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를 씁니다.

변명을 하자면, 프라하에서는 매일 컨퍼런스와 미팅에 참석하며 아이돌 못지 않은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오랫동안 못 봐서 너무나 그리웠던 와이프와 점심을 먹고, 시차적응을 위한 꿀잠도 자고, 효자노릇한다고 어머님과 같이 저녁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난 프라하 데브콘 일정을 하나씩 되새겨보고 있습니다.

미안하다, 좀 게을렀다…

이번엔 Devcon 강연이나 블록체인 업계 핵인싸들과의 네트워킹보다 프라하 일상 관찰을 통해 더 많은 유럽 시장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프라하행은 출장으로서의 의미도 있었지만, 제게는 첫번째 유럽 여행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맡고 있다보니 유럽이라는 동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럽인’으로 빙의해 일주일 간 그 동네 사람들의 행동과 시장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한국으로의 귀국과 동시에 소주를 사랑하는 한국인 Ryan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난 일주일간 ‘한국말 잘하는 유럽인’ Ryan으로서 느꼈던 유럽시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잠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유럽시장에 대한 단상

개인적으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요소는 ‘시장’과 ‘타이밍’입니다. 물론 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것 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팀들을 서포트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시장이 뒷받쳐주지 않거나,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팀이라고 해도 사업이 성공에 다다를때까지 무수한 자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극단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거나 타이밍이 적당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항상 유럽 시장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럽이 정말 시장으로서 의미가 있을까? 유럽인들은 왜 느릴까? 아시아 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엄청난 열기를 띄고, 미국 시장에서 유명한 벤처캐피탈들이 하나씩 크립토 펀드를 만들때, 유럽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전세계 유니콘 스타트업 리스트에 왜 유럽 회사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제게 유럽이라는 시장은 너무 느려서 네트워크 이펙트가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아시아와 미국에서 이미 돌풍이 지나간 이후 느즈막히 나무늘보처럼 “요즘 그거 알아? 블록체인이라는 끝내주는 기술이 있어”라고 말할 것 같은 시장이었습니다.

Are you saying that because they’re European they can’t be fast?

이번 프라하에서 일주일동안 머물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건물, 그리고 교통, 페이먼트 등을 관찰했습니다. 느낀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보다 적당히 잘사네” 였습니다. 한국의 K-pop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킬 엔터테인먼트 거리가 있거나, 미국처럼 끝내주는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가 있거나, 중국처럼 황하강에 다같이 오줌을 누면 홍수가 날정도의 인구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사람들은 그냥 말 그대로 주어진 환경에 만족을 하며 적당히 잘 살고 있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프라하는 독일군에 일찍 항복 했다고 합니다. 덕분인지 대부분의 건축물이 잘 보존된 상태로 남아 유럽에서도 끝내주게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도시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콜택시 서비스로 우버를 사용했으며,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상점에서는 알리페이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베이징, 샌프란시스코처럼 매달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도시는 아니지만, 전세계의 다양한 IT 서비스들이 이곳에 들어와 생활 곳곳에서 조금씩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블록체인도 사람들에게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면 느리더라도 조금씩 받아들여질 수 있을꺼라 생각했습니다.

우버가 좀 비싸긴 했습니다.

프라하에서 만난 몇몇 유럽 프로젝트는 뒤늦게 퍼블릭 블록체인을 만들겠다며 제게 열심히 설명을 했습니다. 블록체인과 기존 IT 산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는 개발자와 창업자가 모여 만든 팀들을 만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꼈던 것은 다른 시장에서의 플레이어보다 현저히 느린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속도로는 도저히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Ethereum은 이미 Devcon과 같은 거대한 커뮤니티가 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개발자 커뮤니티는 만들 계획인가요?”, “이 기술의 Defensibility는 무엇인가요?”, “만약 Ethereum이 이 기술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프로젝트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뚜렷한 계획이 아닌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는’ 다소 안이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스타트업에게 “대기업이 진출을 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요?”와 같은 질문은 정답이 없기는 하지만, 꼭 물어봐야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최소한의 고민없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지금 인터넷 시대에서 유럽이 쳐해있는 어려움이 블록체인에서도 반복될 것입니다. 유럽 팀들은 블록체인으로 인해 더 촘촘하게 연결되는 글로벌 시장에 대비해 더 전략적인 사고를 가지고, 경쟁에서 이길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할 것 입니다.

유럽 기업들 중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인터넷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출처: Roland Berger

유럽 투자자들의 전략

프라하에서는 유럽 투자자를 만날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 중 꽤 인상 깊었던 회사가 하나 있는데요. TLDR라고 하는 투자사입니다. 초기 멤버는 영국인이었지만 이미 미국 파트너를 많이 받아들였고, 현재는 전체 10명 이상의 파트너들과 30명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놀라웠던 부분은 전직원이 베를린, 런던, 홍콩, 뉴욕, 마이애미, 샌프란시스코 등 모두 다른 지역에 분포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는 Devcon에서 만난 직원들끼리도 오프라인에서 거의 처음 만나는 것 같은 눈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LDR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친구들을 만들고 창업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탈중앙화된 펀드나 엑셀러레이터에 대한 실험이 저에게는 조금 생소해보였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TLDR안에서는 본업인 투자, 엑셀러레이션 외에 다른 사업을 준비하는 부서도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한 파트너는 안전한 커스터디 서비스가 시급하게 필요한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온 서비스 품질이 너무 낮아서, 전통 금융시장에서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조직의 형태가 아직 매우 말랑말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 투자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다가도 기회가 있다 싶으면 직접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산업에 비어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시장이 성숙해지기 전에 다양한 기회를 찾는 시도인가 봅니다.

그 외에도 기존 금융에서 넘어온 몇몇 투자사들이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암호화폐 투자 규모가 작고 주류로 넘어오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오픈 소스 개발자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소수의 개인에게서 투자를 받는 경우가 많이 보였습니다.

유럽 투자사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아시아에서 더 활동을 많이 하며, 두 시장에서 느끼는 열기를 유럽시장으로 반대로 가져오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투자자는 중국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인 996(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주일 6일 일한다)을 언급하며 중국 사람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부러워했고, 미국 실리콘 벨리에서의 혁신을 부러워했습니다.

유럽 시장에 대한 맺음말

유럽 시장은 블록체인 분야에서 다른 어떤 시장보다 열기가 낮았습니다. 몇 년은 더 기다려야 블록체인 프로젝트에게 좋은 기회가 올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장 분위기에서도 parity technology, COSMOS, TLDR, 1kx, Rockaway blockchain과 같은 오픈 소스 개발을 이끌고, 투자를 장려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Hashed는 이런 개척자들과 함께 유럽시장에 탈중앙화가 꽃피우도록 훌륭한 창업자들을 교육하고 투자를 할 계획입니다.

Devcon에 대한 짧은 소감

작년 칸쿤에서 열린 Devcon3에는 해시드 파트너 전원이 참여했습니다. 그땐 ‘이런 세계가 있구나!’ 놀라느라 정신이 없었었는데, 이번 Devcon는 개인적으로 작년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일년간 수 많은 컨퍼런스를 주관하고, 참여하다보니 Devcon과 같은 행사에 대한 감흥이 사라진것 같습니다. ‘행사’에 대한 희소성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거겠죠.

하지만, 좀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건 꺼져가는 시장의 불씨에도 활발한 커뮤니티였습니다. Devcon 메인 행사장 밖에서 소소하게 진행되는 소규모 발표가 메인 행사장에서 거대한 기술 로드맵에 대한 발표보다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개별 프로젝트의 성과 발표부터, 에스토니아의 탈중앙화 정부 방향성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가 Devcon 참석자들을 유인했습니다. 이외에도 탈중앙화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경각심을 심어주는 발표라던지,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포스트잇으로 알고 싶은 것을 적고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세션과 같은 아기자기한 관심사 기반 모임들이 Devcon을 빽빽하게 채웠습니다. 중국에서는 V神(비탈릭+신)이라며 신으로 추앙받는 비탈릭도 이 곳에서는 이전만한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이더리움 진영의 중심에서 도전장을 던지는 잠재적 경쟁자도 등장했습니다. Avalanche나 Zcash, Difinity가 참석하고 발표하는 것을 보며, ‘이게 바로 오픈 커뮤니티구나!’ 이마를 탁 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Devcon은 이더리움 또는 비탈릭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블록체인 생태계의 모든 사람을 위한 장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건강한 생태계 안에서 이뤄지는 경쟁이 어떤 차세대 스타를 만들어낼지 기대감을 키우는 행사였습니다.

건강한 경쟁이 스타를 만듭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각했던 것들 중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을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기회가 된다면 토론을 해보는 것도 재밌을것 같네요.

  • 이미 커버린 이더리움과 천재 개발자 몇명이 시작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중 어떤 쪽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 어떤 UX를 계기로 블록체인의 대중화를 만들어질 수 있을까?
  • 만약 layer1 blockchain에서 Scalability, Privacy등의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layer2 protocol들은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 Blockchain은 localization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일까?

혹시 이런 주제들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언제든지 토론은 환영입니다.

[Hashed Community]

Hashed Website: hashed.com

Facebook: facebook.com/hashedfund

Medium: medium.com/hashed-official

twitter: twitter.com/hashed_official

Telegram: t.me/hashedchanne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