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

Kevin Sohn
해시드 팀 블로그
7 min readAug 8, 2018

Block #0: 논의를 시작하는 이유

논의를 시작하며

2017년 말 비트코인이 1만 달러를 돌파했을 때 시장은 환희에 가득찼고 블록체인은 미래를 파괴적으로 혁신할 기술로 여겨졌다. 중앙화된 비즈니스의 시대가 끝나고 곧 탈중앙화 산업혁명이 시작될 것만 같았던 환상은 베어 마켓(Bear Market)의 시작으로 비트코인의 가격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한때 기존의 틀에 박혀 새로운 산업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치부되었던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그래서 블록체인이 대체 어떤 효용을 가져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낙관론자들조차 설득력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탈중앙성을 제공한다는 자명한 답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대답은 자연스럽게 다시 ‘그렇다면 탈중앙성은 무슨 효용을 제공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블록체인의 가치를 ‘검열 저항성’으로 한정지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물론 검열 저항성에도 큰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블록체인이 파괴적 혁신을 가져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편 탈중앙화를 통해 유저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거나 데이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두 경우 모두 중앙화된 구조에서도 대부분 가능하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또 다른 접근에는 네트워크의 가치를 내재하는 토큰 모델을 통해 네트워크의 지분을 사용자들이 가지도록 함으로써 운영주체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거버넌스를 나눠갖게 함으로써 더 민주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이것도 분명 기존의 중앙화된 모델을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는 있지만 여전히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기술적 혁신

잠시 블록체인을 벗어나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미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두 가지 기술적 혁신을 지켜보았다. 두 기술 모두 도입 초기에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낙관론만큼이나 수 많은 회의론들이 제기되었고 아무 효용이 없거나 제한된 영역에서 일부에게만 쓸모가 있을 것이란 예측도 많았다. 현재의 시선으로 돌이켜보면 대체 어떤 바보들이 그런 어리석은 예측을 내놓았을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비웃고 지나치기엔 그들은 당시 그들의 예측이 화제가 되어 지금까지도 기록으로 남겨졌을만큼 충분히 똑똑하고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사람들에게조차 어려운 일이기에 그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이유를 하나 꼽아보자면 아마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것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빠르고 경제적인 이동 수단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아 평생 동네 근처를 벗어날 일이 거의 없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가 발명되어도 고작 읍내에 장이 열릴 때 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넘어서기 힘들다.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은 이 새로운 도구가 보부상들에게 유용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 구조 전반의 변화까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기술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던 사례들을 되짚어 보면, 그들은 대개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가치를 그것이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한정지어 생각하였다. 자동차의 효용을 예측할 때 기존에 자동차를 필요로 할만큼 멀리 이동하던 사례들에 한정지어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들은 단지 기존에 할 수 있던 것을 더 잘 할수있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개척해왔다.

인터넷이 발명되기 이전 사회의 시점으로 인터넷의 효용을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전화나 팩스처럼 오프라인의 정보를 빠르게 주고 받는 수단에 불과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술로 인한 본질적인 변화는 무한한 정보가 임의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이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저장하고 가공하여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곧 정보 자체가 온라인 세상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전례없는 규모의 정보 생산과 유통으로, 정보 자체가 곧 재화이자 권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구글은 편지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회의론자들은 기존의 서비스와 소비 패턴을 고려하면 굳이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야 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디바이스의 특성상 불편해서 사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선구자들은 그것으로 인해 새롭게 가능해지는 것들에 집중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모든 사람들이 항상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으며 그로인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가능하게 되었고, PC에 맞춰져있던 웹 환경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다시말해, 스마트폰은 단순히 기존의 인터넷 소비를 더 편하게 해준 것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터넷을 소비하는 패턴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형태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였다.

블록체인에 대해 지금까지 논의된 것들

지금까지 블록체인 혹은 분산원장의 효용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그것이 지향하는, 혹은 지향할 수 있는 철학적 가치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기존의 비즈니스와 생태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자에는 탈중앙화, 자유주의, 직접민주주의, 평등주의 등의 관점이 있고 후자에는 중개자(middleman, 미들맨) 제거, 토큰 이코노미, 검열저항, 정보 비대칭 해소 등의 관점이 있다. 물론 이런 관점들도 중요하지만, 블록체인의 효용에 대한 논의들이 아직까지 여기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것은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이지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가 숭고하기 때문이 아니며 단지 팩스보다 편지를 빠르게 보낼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블록체인에 대해 앞으로 논의해야할 것들

이러한 이유에서 ‘블록체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 라는 주제의 시리즈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블록체인의 기술적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령 인터넷은 인류에게 임의의 정보가 임의의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항상 연결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그 다음으로, 그것이 어떠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탈중앙화’나 ‘미들맨의 제거’처럼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은 명확한 효용을 제시하여야 하며, 동시에 ‘검열저항성’이나 ‘토큰 이코노미’처럼 지엽적이어서도 안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파괴적 혁신을 위해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들을 소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다양한 솔루션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Block #0를 마무리하며

앞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장 똑똑한 사람들에게조차 어려운 일이며 특히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고 언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존재한 적 없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그것의 가치를 말하려는 나의 시도 역시 나중에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산업의 최전방에서 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있는 엔지니어로서 나의 관점과 인사이트를 최대한 공유하는 것이 나의 직업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구상하고 SNS 생태계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위해 컴퓨터공학자가 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블록체인 역시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비전문가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지는 비즈니스맨들이 고민할 영역이지만 그들에게 그것이 핵심적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인지 설명하는 것은 엔지니어들의 역할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제시될 패러다임이 여러 분야에서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있는 많은 비즈니스맨들과 블록체인의 기술적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엔지니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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