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게임, 진정한 ‘대안 현실’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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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드 팀 블로그
8 min readJul 29, 2019
블록체인 게임 ‘액시 인피니티'의 캐릭터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2017년 말에 등장해 한 때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마비시키기도 했던 최초의 블록체인 게임 ‘크립토키티’를 시작으로 블록체인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 몇몇은 아직 완성된 제품 없이 수십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모집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가장 큰 규모로는 미국의 미씨컬 게임즈(Mythical Games)가 작년 11월 1천6백만 달러(한화로 188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모은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암호화폐 시총 기준 3위의 리플(XRP)을 개발한 리플(Ripple)도 블록체인 게임에 뛰어들었다. 리플은 모바일 게임사 카밤(Kabam)의 공동창업자이자 e스포츠 구단 젠지(GenG)의 회장인 케빈 추(Kevin Chu)가 대표로 있는 블록체인 게임사 포르테(Forte)와 함께 1억 달러 블록체인 게임 펀드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또한 올해 초부터 ‘해시드 랩스’라는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블록체인 게임회사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블록체인 게임이 어떤 차별성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지 살펴보고, 한편으로 블록체인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짚어보자.

블록체인 게임의 핵심: 영속성과 확장성

블록체인 게임은 아직 잘 정리되지 않은 분야로 같은 ‘블록체인 게임’ 이라고 불리는 게임들끼리도 그 설계가 상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속성을 면밀히 살펴보면 적어도 어떤 속성들이 게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 필자는 크게 볼 때 영속성과 확장성의 두 가지 속성이 블록체인 게임을 기존 게임과 다르게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시조 격인 비트코인이나, 최근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 프로젝트 모두 블록체인을 ‘금융자산 인프라’로 규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블록체인이 금융자산을 다루는데 적합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블록체인의 영속성에 있다. 내 통장 잔고가 기록된 은행의 데이터베이스가 어느 날 사라지거나, 조작될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특정 회사의 주식을 경영진이 임의로 발행하여 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아마 그런 금융기관이나 인프라를 신뢰하고 금융자산을 맡기기 어려울 것이다. 게임 또한 마찬가지이다. 게임 속에서 구매하거나 획득한 게임 아이템을 비롯한 나의 자산을 누군가 맘대로 없애버리거나, 조작하거나, 발행규칙을 바꾼다고 하면 누구도 그 게임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에 누가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소수의 고과금 사용자가 매출의 대부분을 일으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게임에 수천만 원, 수억 원을 쓰는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게임의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언제든 게임 속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게임 서비스 종료’로 인해 게임 속 자산을 모두 잃어버린 유저들의 하소연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권에서 사용되는 블록체인이 영속적이고 중립적인 분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금융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듯, 블록체인 게임은 게임 내 사용자의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될 것을 약속한다. 예컨대 이론상으로는 블록체인 게임이 온전히 블록체인 프로토콜 위에서만 작동된다면, ‘서비스 종료’가 불가능한 게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개발사가 서비스를 종료해도 적어도 게임 내 자산들은 여전히 존재하여 차후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여지가 있다. 영속성은 크립토키티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블록체인 게임들이 가장 크게 호소하는 속성이다.

그 다음으로 게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블록체인의 속성은 확장성이다. 블록체인의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Non-Fungible Token)’ 컨셉을 이용하면 게임 내 자산의 역사가 모두 기록된다. 다시 말해, 해당 자산이 발행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이 자산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추적가능하다. 이를 이용하면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게임과 그 자산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다. 예컨대 성능이 같은 아이템이더라도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인 페이커 선수가 착용했던 아이템은, 팬들에게는 더 값진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일반 공과 사인구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게임 서버를 통해서도 구현 가능한 부분이기는 하나, 위에서 언급한 영속성이 없이는 제한적으로 구현될 수밖에 없다. 또 이더리움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이제는 블록체인의 기본 기능 중 하나가 된 ‘스마트 콘트랙트’를 사용하면 게임의 개념을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 크립토키티 위에 제3의 개발자들이 모자 액세서리나 경주게임, 대전게임 등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블록체인 게임의 도박성, 사행성, 저품질 논란

이렇게 보면 블록체인 게임이 좋은 점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어떤 지점에서 블록체인 게임들이 비판을 받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암호화폐를 제외하고 가장 인기 있는 댑(Dapp,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바로 도박(Gambling)이다. 특히 이오스(EOS)와 트론(Tron)에서 도박성 댑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댑닷컴(Dapp.com)을 비롯한 통계 사이트에서도 활동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소위 돈 놓고 돈 먹기에 해당하는 사행성 요소를 강화한 게임도 여럿 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블록체인 게임은 자산의 온전한 소유권을 제공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아이템 거래기능을 허용한다. 문제는 이 거래가 암호화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비록 암호화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서 쉽게 법정화폐로 환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금성 자산에 해당한다.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 상자를 열어서 받게 되는 아이템이 환금성 자산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이 아이템 상자가 근본적으로 즉석복권이나 도박과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적어도 기존 게임들 대비 ‘사행성’이 강해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극단적인 자유주의 관점에서 도박성과 사행성이 근본적으로 나쁘지 않고,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요 목적이 스토리, 문제해결, 목표성취 등으로 얻어지는 ‘재미’가 아니라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이 된다면, 외적인 보상 때문에 내적인 동기가 파괴되는 전형적인 보상의 부작용을 겪게 된다. 누구도 ‘내적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임이라면 누가 돈을 내고 싶겠는가. 돈을 내는 사람이 없다면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는 보상이 지속 가능할리도 없다.

게임의 근본원리와 설계와 관련된 비판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나와 있는 블록체인 게임들의 품질이 너무 낮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현재 블록체인 인프라는 계정 생성, 지갑 설치, 개인키 관리, 백업, 블록체인 사용료 지불 등 사용자가 불편해할 만한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게임이 사용자를 끌어들이려면 일반적인 서버 기반 게임보다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에 가깝다. 블록체인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 암호화폐 결제기능만 붙인 게임들도 많고, 블록체인 게임으로서의 창의성은 발휘했지만 게임으로서의 기본기가 부족한 게임들도 매우 많다. 크립토키티와 수많은 겜블링 댑들이 높은 수익을 내면서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가장 인기 있는 블록체인 게임들조차 2천 명 수준에 불과한 일간 활성 사용자(DAU)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상업적인 성과가 나오기 전까진 실험으로 봐야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속성과 확장성이 보장되는 블록체인 게임은 기존의 게임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전까지의 서버 기반 게임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고, 확장 가능성이 굉장히 제한된 가상의 대안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이 탄생할 블록체인 게임은 ‘실존하는 대안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블록체인 게임들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아직 산더미처럼 많다. 눈에 띄는 상업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고, 어쩌면 오랜 실험 끝에 블록체인 게임은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는 컨셉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립토키티가 나온 후 불과 1년 반 남짓 해온 실험에 대해서 섣불리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게임 실험에 동참하고 있는 창업자들 또한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기보다는, 정말로 블록체인으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치열한 고민과 자기성찰의 과정에서 어쩌면 모바일 게임의 왕도를 제시한 슈퍼셀(Supercell) 같은 회사가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2019년 7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에 기고한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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