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의 진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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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드 팀 블로그
9 min readAug 13, 2018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탈중앙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어떤 이는 탈중앙화된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갈 미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탈중앙화라는 단어가 ICO 마케팅을 위한 세일즈 단어일 뿐 그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가치가 있거나 없다고 말하려면 우선 그 단어를 명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탈중앙화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나름의 정의를 제시하겠습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탈중앙화의 정의가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본 블로그에서의 정의를 공유함으로써 각자의 탈중앙화를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존에 제시된 탈중앙화의 의미

최초의 등장 배경

The Tennis Court Oath — Jacques Louis David

“Decentralization is the process by which the activities of an organization, particularly those regarding planning and decision-making, are distributed or delegated away from a central, authoritative location or group.”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탈중앙화는 어떤 조직의 활동, 특히 계획이나 의사결정에 관련된 활동을 중앙의 권위있는 집단으로부터 (다수에게) 분산시키거나 위임하는 프로세스입니다.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라는 단어는 1820년 프랑스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제시된 정의나 사용된 배경이나 우리말로는 ‘분권화’에 좀 더 가까운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분권화’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탈중앙화’라고 부르는 데는 분권화라는 단어로 다 담지 못하는 뜻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블록체인 계에서 탈중앙화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장본인중 한명으로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있습니다.

비탈릭 부테린의 탈중앙화

비탈릭은 이더리움 백서의 제목으로 ‘A Next-Generation Smart contract and Decentralized Application Platform’ 이라고 쓰면서 탈중앙화를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The Meaning of Decentralization(원문, 한글번역)이라는 글을 통해 나름대로 탈중앙화를 정의하였습니다.

구조적 탈중앙화: 몇 대의 컴퓨터가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가?

정치적 탈중앙화: 몇 명의 주체가 시스템을 이루는 컴퓨터를 통제하고 있는가?

논리적 탈중앙화: 시스템이 얼마나 획일적이고 통일성있는가? 둘로 나누어도 둘 다 동작하는가?

비탈릭의 정의는 탈중앙화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의미로부터 정의를 분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시스템이나 분산 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로만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탈중앙화가 사회적으로 왜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기에 다소 지나치게 추상화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컴퓨터 시스템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크리스 딕슨의 탈중앙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VC회사 중 하나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줄여서 a16z)의 제너럴 파트너이자 암호자산 담당이기도 한 크리스 딕슨(Chris Dixon)의 관점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크리스 딕슨은 Why Decentralization Matters(원문)라는 글에서 탈중앙화를 엄밀하게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중앙화된 현재의 인터넷이 탈중앙화로 인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서술합니다.

크리스 딕슨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의 인터넷 서비스는 초기 성장단계에서는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여 사용자를 유혹하고, 열린 생태계를 만들어 참여하는 개발자나 사업체들과 협력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성장하고 난 뒤에는 네트워크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져서 사용자들을 착취하고 서드파티 개발자나 사업체들과 경쟁하고 그들의 이익까지 빼앗기 시작합니다.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된 시스템은 이와 다릅니다. 사용자와 개발자들이 토큰이라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받고, 자발적으로 토큰의 가치향상을 위해 협력하며 시스템을 성장시킵니다. 만약 초기 개발팀이나 채굴자 등이 권력을 쥐게 되어 횡포나 착취를 하려고 해도 토큰 기반 투표와 같은 방법으로 참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시스템을 복제(Hardfork)하여 기존 데이터와 유저군을 그대로 유지한채 권력자를 몰아낼 수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프랑스 혁명에서의 탈중앙화와 비슷해보이지만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자유와 평등의 관점에서 탈중앙화를 지지했다면, 크리스 딕슨은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탈중앙화가 전체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효용을 더 빨리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위에서 다룬 여러 탈중앙화의 정의들은 나름대로의 장점과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중앙화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새로운 탈중앙화의 개념을 세우기 위해서는 탈중앙화가 다루는 대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탈중앙화의 대상: 합의 프로세스

블록체인으로 시작된 이 거대한 흐름은 결국 합의 프로세스를 탈중앙화하자는 것입니다. 크게 두 가지 종류의 합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현재 상태에 대한 합의, 즉 사실에 대한 합의입니다. 두 번째는 미래에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합의, 즉 결정에 대한 합의입니다. 간단한 사례를 통해서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사실에 대한 합의

자원이 부족한 사막에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마을에는 우물이 하나 있고, 모든 주민이 나누어 마실 정도의 물이 매일 고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물을 너무 많이 마셔버리면 누군가는 갈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실에 대한 합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누가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기록하지 않으면, 제대로 분배할 수 없습니다. 또한 A가 믿는 B의 물 소비량과, B가 주장하는 자신의 물소비량이 다른 경우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합의를 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다 같이 우물과 그 기록을 감시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탈중앙화 되어있는 동시에 비효율적입니다. 효율성을 위해 한 사람이 전담으로 우물과 사용기록을 관리하기로 합니다.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중앙화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 우물관리자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기록을 생성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물의 분배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결정에 대한 합의

사실에 대해서만 합의를 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물관리자가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 정직하고 실수 없이 일을 잘 하고 있다고 합시다. 이 우물관리자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을 줘야 할까요? 전적으로 우물관리자 혼자 결정하게 하면 본인이 원하는 만큼 물을 맘껏 마시고, 다른 사람들은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토론과 투표를 통해 모든 주민이 다 같이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물 관리를 포함한 마을과 관련된 모든 일들에 대해서, 매번 토론과 투표를 하자니 그 비용이 너무 큽니다. 마을에서 제일 현명하고 믿음직스러운 리더를 투표를 통해서 선출하고 그에게 권한을 위임합니다. 역시나 효율적이지만 사실에 대한 합의와 마찬가지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합의는 결정에 대한 합의의 토대가 됩니다. 누가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면, 누구에게 얼만큼 물을 마시게 할 것인가 라는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됩니다. 또한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고 할 때, 누가 어떤 결정에 표를 던졌는지에 대한 사실에 합의 할 수 없다면 투표과정 자체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상당수의 구성원이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마을은 여러개의 소집단으로 분화되어 다같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폭력적인 갈등상황까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탈중앙화의 진짜 의미

위에서 살펴본 것 처럼 여러 주체로 구성된 사회에서 합의를 이루려면 큰 비용이 듭니다. 때문에 많은 경우에 우리는 손쉽게 중앙화를 택하게 됩니다. 블록체인과 탈중앙화 기술은 합의의 비용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낮춥니다. 하드웨어 설비와 전기 비용만 생각하면 중앙화된 구조가 더 저렴하지만, 신뢰성을 댓가로 지불하는 추가비용과 리스크비용까지 고려하면 탈중앙화된 시스템이 더 저렴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탈중앙화는 중앙화된 합의구조에서는 불가능 했던 다양한 일들을 가능케 합니다.

위에서 논의한 것을 바탕으로 앞서 제시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살짝 바꾸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어떤 네트워크 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실과 의사결정에 관련된 합의를 중앙의 권위있는 집단으로부터 네트워크 내 다수에게 분산시키거나 위임하는 프로세스”

탈중앙화의 대상을 ‘사실에 대한 합의’로 제한한다면 자칫 탈중앙화 기술의 1차적 효용에만 집착하게 될 수 있으며, 결정에 대한 합의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이념적 가치에만 매몰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에서는 사실에 대한 합의를 영어단어 그대로 컨센서스(Consensus)라고 부르며, 결정에 대한 합의 방식은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구분하여 부릅니다.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프로젝트는 흔히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민하게 됩니다.

탈중앙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탈중앙화의 개념과 그 범위를 정의했지만 아직은 그 의미가 온전히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블록체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사용사례인 화폐를 통해서 중앙화와 탈중앙화가 어떻게 대비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탈중앙화라는 개념이 어떤 여러 속성을 지니는지, 우리가 바라는 형태의 탈중앙화가 실현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탈중앙화에 대한 개념이 어느정도 정리 된 다음에는, 이것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어떤 효용을 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여러 철학적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고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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