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U 교환학생(完) — 4달 간의 교환학생을 마치며

Heechan
HcleeD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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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min readMay 13, 2024
Jewel Changi

4달 간의 NTU 싱가포르 교환학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는 대학교에서의 9번째 학기인데도 매번 16주가 정말 빨리 간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으니까 여유롭게 이것저것 해보면 되겠지, 싶었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못해본 것들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도 조금 들었습니다.

지난 4달 동안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살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싱가포르 문화와 나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러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국가입니다.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계와, 말레이계, 인도계 사람들이 모여서 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계가 70%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느끼기에는 말레이인이나 인도인이 꽤 많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는 젊은 인력을 주변 국에서 많이 데려오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가 좁은 땅을 가진 싱가포르는 출산율을 높이기보다는 노동 인구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국가의 발전은 상위 10%에게 몰빵하는 교육과 해외 고급 인력을 데려와 견인하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싱가포르가 이미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 민족으로 이루어져있고 다른 문화의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지금도 어느정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닥 좋지 않지요.

River Cruise — Marina Bay Sands

돌이켜보면 제가 KAIST에서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교환학생이나 외국인 학생들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저는 교환학생은 왠지 대충 하고 놀러다닌다는 생각에 팀플을 같이 하기 싫어했고, 캠퍼스에서 외국인이랑 소통하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죠.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 = 국가 라는 기반 개념이 아주 강하다보니, 외국인을 보면 어느정도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 능통한 외국인이더라도 오히려 더 신기한 시선을 받게 되지,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기보단 신기한 이방인 정도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싱가폴에 와서 학기 초반에 그닥 친구를 만들지 못했던건 이런 시선을 제 스스로 적용해서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 ‘외국인으로서’ 살고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이 좀 특이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교환학생 을 로컬 학생들이 좀 귀찮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영어로 fluent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초반에 한 두 번 다른 교환학생이나 로컬 학생들과 대화를 실패하고 나서는 자신감을 잃었었죠.

하지만 4달을 다 살고 온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싱가포르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국가로부터, 다양한 문화를 베이스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민족, 다른 인종 등의 사람도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꽤나 배타적인 한국 사회하고는 다른 느낌입니다. 아예 아시아인이 아닌 서양인도 심심찮게 있는데, 서양인들도 딱히 그런 시선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동북아 사람이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중국계와 큰 차이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싱가포르인과 외국인’이라는 구분을 그닥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걸 어느 순간 깨닫고 제가 지금껏 정말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단지 4달 동안의 시간이었고, 실제 싱가폴 사회보다는 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대학교라는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느낀 점이 모든 경우를 대변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와 확연히 다른 국가 분위기, 문화를 느낄 수 있었고 저에게는 꽤나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의 대학은 왜 싱가포르 대학에게 밀릴까

NTU에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면서 느낀 점은, 난이도는 KAIST랑 별반 차이가 없거나 더 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들은 두 개의 수업 말고도 다른 전공 과목들의 족보들도 확인해봤는데, 좀 더 문제가 정직하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NTU 학부 학생들에게 KAIST 학생들이 전혀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데, 세계 무대에서 NTU와 KAIST 사이에는 차이가 조금 있습니다. 대학 순위도 어느정도 차이가 나고요. 서울대나 KAIST 학생들도 실력만 따지면 경쟁력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세계 무대에서는 싱가포르 대학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험기간엔 고양이도 기숙사 독서실에 앉아있는 NTU

그래서 싱가포르에 지내는 동안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분명히 우리 학생들도 모두 경쟁력 있는 좋은 인재들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우선 대학 랭킹은 학부생의 실력과는 거의 상관 없긴 합니다. 연구 실적이 우선이므로 좋은 교수, 연구자, 대학원생들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에 비해서 싱가포르 대학은 어떻게 좋은 교수, 연구자를 데려왔을까요?

주요한 원인으로 손 꼽히는 것은투자 금액의 차이가 있겠습니다. 싱가포르는 몇 개의 국립대를 정부에서 각 잡고 키우고 투자하기 때문에 교원 모집과 연구비 지원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반면 KAIST는 작년 R&D 예산 감축까지 된 것을 생각해보면…

물론 제가 그런 예산의 차이를 직접 느낀건 아니고요.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실력 있는 교수나 연구자에게 한국과 싱가포르 중 어디서 일할지 물어본다면 상기한 문화의 차이와 영어 사용 여부 때문에 싱가포르를 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에서 말했지만, 싱가포르는 외국인이 오더라도 신기하게 보는 — 혹은 배척하는 분위기의 국가가 아닙니다. 외부에서 교수나 연구자가 오더라도 이 문화에 익숙해지는데는 크게 어려운 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잘하면 싱가포르에서의 생활, 연구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영어 화자로서는 나쁜 선택지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은 외국인이 사회에 녹아들기 힘들고, 당장 캠퍼스를 벗어나면 모든 것이 생소한 한국어로 되어있고, 대학 교수들도 다양한 국가 출신이 아니라 한국인 교수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교수 사회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분야별 교수 사회는 꽤나 좁기 때문에 외국인 교수가 힘든 점도 분명히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애초에 한국인이 아닌데 한국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의 글로벌 진출도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히 경쟁력 있는 학생들이지만, 영어를 못하는 경우라면 글로벌 무대에서 실력을 뽐내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학교에는 영어 잘 하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부럽습니다)

사실 영어는 또 공부하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긴 한데, 이 문화와 언어라는 전반적인 이유로 싱가포르에 있는 기업과 한국에 있는 기업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라는 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이며 영어 베이스의 국가이기 때문에 수 많은 글로벌 기업, 빅테크, 동남아 여러 국가를 커버하고 있는 큰 기업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좋고 큰 기업들이 많지만, SWE 입장에서 보면 삼성 정도를 제하면 빅테크도 한국지사가 메인이 되는 곳도 그닥 없고, 한국 시장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작다는 생각도 지난 몇 년간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느꼈습니다.

NTU에 있는 동안 학내 취업 박람회도 갔었는데요. 싱가포르도 요즘 취업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취업 박람회에서는 아주 많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채용을 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의 취업박람회 규모를 생각하고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IT 기업은 저 같은 외국인도 채용하는데 실력만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상기했듯 싱가포르는 고급 인력 데려오는데 꽤 유하고, 비자도 한국인 + 고학력에게 비교적 쉽게 나온대서 회사에서 뽑기로 마음만 먹으면 데려오는건 큰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학생들도 똑똑하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한국과 싱가포르의 문화, 언어 차이 때문에 약간 저평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1, 2학년 때는 KAIST는 대체 왜 수업을 다 영어로 할까 하며 불만이 있었는데 고학년이 될 수록, 대학원이 가까워질 수록 영어로 수업하는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앞으로 우리는 한국이라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잘 생각해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영어 실력

저는 이번 싱가포르 교환학생을 시작할 때 영어 실력이 조금 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품고 시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4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좀 늘긴 했습니다.

사실 친구가 별로 없었어서 하루에 식당 가서 주문할 때 빼고는 한 마디도 안하는 날도 많았지만… 1~2주에 한 번씩은 사수와 연구 미팅을 해야 했고, 룸메랑 가끔 대화도 해야 하고,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고, 일상 생활에서도 무조건 영어를 써야 합니다. 종종 이벤트성으로 로컬 학생들이나 다른 교환학생과 대화할 일도 생기는데, 이런 날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에 온 첫 날이나, 교수님과 처음으로 미팅을 했을 때 문장 하나를 제대로 못 만들어서 버벅거렸는데, 그때에 비하면 많이 늘긴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마지막 미팅 때 너 영어 많이 늘었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Fluent하게 영어를 한다는 것은 아닌데, 비교적 영어를 내뱉는데 저항감이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한국에서보다 싱가포르에서 저에게 기대하는 영어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교 기준으로는 영어를 전혀 잘한다고 볼 수 없는데, NTU에서 연구나 수업을 들을 때는 “아 너 한국인이구나? 한국인은 영어 안쓰지 않아? 그정도면 너는 영어를 어느정도 하는구나?” 이런 느낌으로 언제나 대해줬습니다. 뭔가 영어를 못해서 걱정이라고 말하면 다들 그정도면 그래도 문제없는 것 같은데 라고 말해주더라고요.

룸메이트(중국계 미국인)랑 만난 첫 날 “나 영어 좀 못해서 이해 해줘”라고 말했는데 “어 나는 한국어 모르는데 너는 영어를 아는구나?”라는 반응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이렇게 기대가 낮은 환경이기도 하고, 살기 위해선 무조건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이라 영어로 말하는 저항감을 줄일 수 있는게 큰 것 같습니다. 언어는 자신감이라는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사실 싱가폴 자체가 어학연수에 있어서 최고라고 볼 수는 없긴 하겠습니다. 당연히 갈 수만 있다면 미국이나 영국 같은 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발음, 액센트로 얘기하고 배우기 좋습니다. 싱가포르는 발음이나 억양, 흔히 싱글리시라고 부르는 싱가포르식 사투리가 어느정도 섞여있기 때문에 영어 자체를 위해서 오기에는 최고의 선택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싱가포르인들도 싱글리시에 대한걸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어서, 저 같은 외국인한테 얘기할 때는 부산 사람이 사투리를 숨기고 서울 말로 말하려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해주긴 합니다. 고맙긴 하지만 숨길 수는 없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꾸준히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연구를 하려면 영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 경험

의도치 않게 연구 병행까지 하게 되었었죠. 사실 연구라고 하면 논문 많이 읽고, 구현하고, 실험하고, 논문쓰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기대하는데, 저는 Ideation과 구현 정도만 하고 시간 상의 문제로 유저 테스트와 논문 작성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이건 NTU의 문제가 아니고, 제가 살짝 운이 안따라준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사수님도 파트타임 박사과정이었고, 교수님도 일정을 빡빡하게 가져가시는 분이 아니셔서 조금 여유롭게 지내긴 했습니다.

다시금 총정리를 해보자면, 저는 Lee Chei Sian 교수님과 사수 Kevin과 함께, 두 가지 프로젝트에 대해 Digital Nudging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하나는 대학생의 온라인 학습 환경에서 Procrastination을 Digital Nudging으로 줄여보자였고, 하나는 LLM을 이용한 학습 환경에서 유저의 Fact-check를 Digital Nudging으로 유도해보자는 주제였습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 두 세가지의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나, Procrastination의 경우에는 구현이 힘든 것이 많아서 기존에 Kevin이 만들었던 스케쥴러 앱에 이모지와 자기 자신에게 남기는 유저 메세지 기능을 추가하는 구현을 덧붙였습니다. LLM Fact-check의 경우에는 지난 블로그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크롬 익스텐션을 만들어서 ChatGPT와 Google Gemini UI에서 Snackbar UI를 노출시켜 유저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도록 메세지와 디자인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까지 구현했습니다.

근데 크롬 익스텐션에서 최근 2개 turn에 대한 로그를 기록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만들어두었는데, 교수님께서 이게 상당히 인상 깊으셨는지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마 제가 떠난 후에도 다른 박사과정 학생 Zhong이 이어서 진행할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연구를 전부 경험 해보진 못했지만(유저 테스트랑 writing을 못해봐서…), 일단은 대학원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랩 학부 인턴십 지원을 했는데 워낙 인기 랩이라 붙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안되면 다른 학교 알아보고, 그것도 안될 것 같으면 취업 알아보고…

여담

Jumbo Seafood에서 먹은 칠리크랩과 시리얼 새우

한국으로 돌아가기 1주일 전 부모님께서 싱가포르에 여행을 오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거의 해외여행을 안 다니셨기 때문에, 제가 있는 김에 큰 맘 먹고 한 번 오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신 동안 혼자 있을 때는 안가본 맛있는 식당도 많이 가고, 관광지들도 쭉 다시 한 번 둘러봤는데 좋았습니다. 3일 간 가이드처럼 하느라 힘든 것도 있긴 했는데, 부모님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싱가포르가 여행하기 좋다는 잘 모르겠긴 하네요. 돈이 충분히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그게 아니면 가성비로 여행 온다는 생각은 하면 안될 것 같긴 합니다. 숙소도 선택지가 많지 않고, 음식이든 어디 입장료든 다 가격이 꽤 있어서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돈이 어느정도 여유가 있고, 안전하고 깔끔하고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을 찾는다 하면 괜찮은 여행지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꽤 좋다고 느껴집니다. 한국인이라 하면 득이 됐지 안좋을건 없습니다. 문제는 저에게 한국 아이돌,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드라마, 영화도 잘 안보고 아이돌도 유명한 사람들만 알아서 대답을 잘못해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뭔가 신나서 말 걸었는데 제 대답이 좀 미지근하니까 실망시킨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근데 느낀 점은 일본 문화, 일본 브랜드는 싱가포르에서 꽤나 메인 스트림인 것 같고 이미 싱가포르인들의 일상에 깊게 들어가 있는 느낌인데, 한국 문화는 최근에서야 인기를 끌기 시작한 ‘특이한 경험’ 정도의 위상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 컨텐츠들이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포문을 열었으니, 앞으로 그 외의 한국 문화도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알게 된건데, 저는 한식을 굉장히 좋아했구나 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에 싱가포르 음식들이 저에게 그렇게 맛있지 않아서 한식이 그리울 때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한식집이 아니면 대부분 그냥 중국인이 하는 가게라서 맛이 그닥입니다. 4월이 되어서야 학교 근처의 Jurong Point에 한국 상점이 있다는걸 알아서 1주일에 한 번 씩 컵라면이나 컵반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한식 식당에 갔을 때 가장 인상깊었던건 콩나물 무침이었습니다. 사실 콩나물 무침을 어디서도 메인 요리로 팔지 않고, 비비고 같은 반찬 브랜드에도 콩나물 무침이 없습니다. 그냥 반찬으로 나오죠. 저는 콩나물 무침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한식이라고 할 때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한식당에서 반찬으로 콩나물 무침이 나왔을 때 그 맛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양한 음식들을 시도해봤고, 중반부터는 어느정도 싱가포르 음식 맛에도 익숙해져서 그냥저냥 먹고 살만 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거부감이 없어질만할 때 귀국하게 되었네요. 돌아와서는 다양한 한식들을 먹고 있습니다.

결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기숙사 방 사진

싱가포르에서의 첫 날, NTU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더운 날씨, 쏟아지는 비(싱가포르는 11~2월이 우기라서 이때 비가 좀 더 자주 옵니다. 물론 다른 때도 비가 안오는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선 정말 모든 소통을 영어로 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싱가포르라는 낯선 환경에 대한 무지. 이런 요소들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어지러운 심정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때 썼던 블로그 글을 보면 한국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도 적어두었네요.

그래도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여기는 비가 자주 오는 것 + 비싼 물가 이 문제들만 어느정도 견딜 수 있으면 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에 더운 시간에는 애초에 일하면 밖에서 안움직일거고, 공기도 좋고, 조금 해 질 때 선선해지면 밖에서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리고 아시아라서 한국인에게 친절하고 외국인도 쉽게 융화될 수 있는 문화까지. 저는 싱가포르가 꽤나 통제에 잘 따르는 나라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건 사람마다 선호가 다르니…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싱가포르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월세나 물가 때문에 돈을 꽤 벌어야 싱가포르에서 살 수 있겠지만요.

돌아보면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싶기도 합니다. 더 친구도 만들어서 많이 놀러다니거나, 더 연구 관련 활동을 요구해서 공부를 많이 할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적당한 관광, 적당한 학습 활동, 적당한 휴식을 할 수 있어서 작년까지 아주 지쳐있었던 저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해외에 가서 문화를 배운다, 시야가 넓어진다 라고 하는 얘기들은 허세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작 잠깐 여행을 가서 뭐가 시야가 넓어진다는건가 싶었죠. 그래도 싱가포르에서 살았던 4달 동안 그 말의 의미를 실감했고, 어쩌면 제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 채 바꿀 수도 있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느정도 충동적으로 결정한 교환학생 생활이라서 걱정도 있었는데, 흔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잘난 것 없는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고 많은 지원을 해주신 KAIST, NTU에게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 NTU 교환학생(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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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chan
HcleeDev

Junior iOS Developer / Front Web Developer, major in Computer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