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첫 번째 이더리움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Kiheon Shin
Heavenly Designer
Published in
7 min readJul 26, 2017

불과 반 년도 지나지 않은 2017년 1월, 우연히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라는 제목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한권을 발견하게 됩니다. 최근 ‘디지털비평’, ‘기계비평’이라는 관점에 대한 인식이 점점 늘어가는 가운데 저 또한 기존의 기술과 맞서는 또 다른 기술의 흐름, 그리고 나아가서는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파괴적인 기술 (극단적으로는 위키리크스와 같은 액티비즘적인 성격의 해킹을 포함해서요) 에 대한 지지를 비롯해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기회들을 탐색 중에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리고자 하는 이 책은 제가 처음으로 블록체인과 더불어 ‘이더리움’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던 책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출간일이 1월이었으니 그 시점에서 조금만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 쯤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수 있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시민을 위한 — 가이드’라는 표현을 내세운 만큼 전반적인 책의 내용 자체는 재밌고 쉽게 읽히는 편인데, 세 명의 저자가 각각 ‘디지털비평’, ‘기계비평’, ‘적정기술’이라는 주제에 대한 독립적인 관점들을 제시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함께 대담 형식으로 논의를 갖는, 마치 하나의 세미나를 책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후반부 대담의 경우에는 각각의 독립된 주제들이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서 의외의 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네요. 이 세 가지의 주제 가운데 블록체인과 이더리움이 다뤄지는 파트는 ‘디지털비평’인데,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기계비평’ 파트를 통해 ‘채굴 열풍’과 같은 최근의 현상들을 다뤄보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모든 것이 매우 짧은 시간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기도 하죠.

이 책이 흥미로웠던 점은 기술이라는 것 자체에만 초점을 두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변화될 세상의 모습과 개개인이 가져아할 비평적 관점에 대해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블록체인 생태계의 흐름 가운데서도 ICO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Status ICO White Paper’에 명시된 내용을 보다보면 이러한 시나리오들을 발견할 수 있죠.

  • 시나리오1. 인도에 사는 거리 행상인 이해관계자A는 Status Teller Network의 판매자가 되어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를 얻음
  • 시나리오2. 아르헨티나에 사는 한 가족의 아버지인 이해관계자B는 아르헨티나 페소(Peso)의 변동성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인근의 셀러를 통해 Gold-backed tokens(DGX)를 구매함
  • 시나리오3. 태국의 이주 노동자인 이해관계자C는 미얀마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과정에서의 높은 비용의 송금액을 피하기 위해 Status Teller Network를 활용함

분명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이상적인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몇 일전 ICO의 여파로 벌어진 이더리움 대란과 같은 상황들을 바라볼 때, 이렇게 분절적으로 대비되는 비전과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행동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됩니다.

위의 4페이지 분량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미리보기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통해 관심이 생기신다면 가까운 기회에 직접 정독해보시면 어떨까요. 평소 책을 읽을 때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온라인 상에 기록해 두는 편인데 기록한 내용들을 덧붙이며 이만 포스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1. 기술의 앞날에는 성장과 성숙이라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오늘날 기술의 성장은 목표 지향적인 경제 패러다임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에 기술의 성숙은 사회적 공진화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기술의 성숙이란 크고 작은 단위의 공동체가 향유해온 시간 자율성, 생산과 소비의 패턴, 노동 세계의 특이성, 역사적 리듬에 기술적 대상이 길항하며 삶의 다양성을 형성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기술은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 결국엔 정량화된 숫자로밖에 평가받을 수 없는 기술 문화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성찬받고 있기 때문이다.
  2. ‘블록체인(Blockchain)’은 인류의 기술사를 통틀어 신뢰성 문제를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전환한 최초의 시도다… 이 기술의 혁명적 잠재성을 폭발시키려면 대중 기술로 하방된 블록체인이 필요하다. 모두가 코딩어를 배워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하고 운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기술의 가능성에 흥미를 느낀 누군가에게 자발적 학습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되어야 한다. 프로그래머들이나 관련 업계의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이 기술의 가능성에 힘입어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시도하려는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예술가 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끌어내볼 만하다.’
  3. ‘이더리움(Ethereum)’은 탈중심화된 암호화폐가 흐르는 탈중심화된 인터넷을 지향한다. 오픈소스로 기술을 공개해놨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종의 이더리움 개발에 뛰어들 수 있다. 이것은 비트코인 기술의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할수록 더욱더 다양하고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의 공유다.
  4. 인터넷이 우리 삶을 촘촘히 에워싸면서 사람들의 소비 습관도 변했다. 오늘날의 데이터 소비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듣고 보고 경험하는 실적인 시간의 향유보다 검색과 다운로드를 되풀이하는 일에 치우쳐 있다. 새로운 데이터가 쉼 없이 유입되는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하기보다는 파일을 선택하고 저장하는 속도를 더 즐기게 된다. 언젠가 체험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차원에 데이터를 저장하기만 한다면, 그에 할당될 시간을 0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어떤 가능성을 모아뒀는지 잊어버리기도 쉽다.
  5. 티모시 모튼(Timothy Morton)이라는 생태학자가 2013년에 낸 책에서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후변화의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은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 없고, 초미세먼지 같은 대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국적 단위가 아니라 지구적인 협치가 필요하다. 금융 역시 어머어마한 하이퍼오브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하이퍼오브젝트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 어느 나라에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적이다. 근대 국가 시스템으로는 대응 할 수 없는, 우리의 관념을 왜곡하는 거대 객체들과 맞서 싸울 방법, 특히 그것의 실체를 정보화할 방법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나아가 하이퍼오브젝트들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나 시스템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6. 지금의 경제 환경에서 필요로 하는 산업 인력이 되기 위해 코딩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거나, 고장 난 기계를 고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 기계들이 맺고 있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환경적 관계망들을 이해할 수 있는 총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지금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술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현재는 이러한 것들을 가르칠 만한 안목을 지닌 교육 인력들이 대단히 부족하며 이런 인력을 길러낼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7. 교육은 시스템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단순하게 지식을 배우는 데 기쳐서는 맥락을 모른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주어진 틀에서 교수나 교사가 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런 문제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소셜 임팩트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게 하고 경제적인 이익도 창출하는 영향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있으면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맥락이 바뀌더라도 그 사람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틀 안에서 메이커 교육, 3D 프린팅 교육, 코딩 교육이 되야 하는 것이지 그것들을 사용한다고 문제해결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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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heon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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