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적 금융1 - 송금

Kiheon Shin
Heavenly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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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Jul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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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의한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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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우리 손 안에 쥐어져있던 현금이라는 교환 가치는 그 거래의 단순성이 절대적이다. 사용자에 대한 어떠한 개인정보나 신용정보를 요구하지도 않고 단순히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즉각적인 신뢰의 관계를 보장한다. 그러나 많은 양의 현금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가운데 현금과 디지털의 결합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디지털 상에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등을 통해 기존의 현금이 보장했던 신뢰의 관계를 보다 간편한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다. 문제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의 편의성을 위해 사전에 더 많은 개인정보와 신용정보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이 실질적인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은행이나 관련 기관들이 가진 복잡한 인프라가 상시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신뢰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국제통화기금(IMF)가 인용한 맥킨지 & 컴퍼니 (McKinsey & Company)의 보고서에 의하면 금융의 디지털화의 상황 가운데서도 개인 간의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3자의 역할로서의 은행이 해외 결제 서비스를 통해 거둬들이는 수입은 연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1조 7000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는 사실상 20세기 초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다수의 은행이라는 중앙 집권적 주체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왔다. 이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중에는 해외 노동자나 이주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디지털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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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페이, 페이팔과 같은 디지털 금융 서비스가 디지털 기반의 단순성과 접근성을 통해, 그리고 모바일을 중심으로 결제 시장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 오히러 지구 반대편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보다 더 역동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케냐에서는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 기반의 송금 서비스가 전 국민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2007년 서비스의 시작 이후 2017년 현재 사용자 수는 3000만명, 나아가 케냐 전체의 GDP의 42%가 엠페사를 통해 거래되거나 송금되었다고 하면 대략 그 파급력(1)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더 많은 파급력을 전달하고자 1달러 미만의 거래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무료화하는 방안을 실험 중에 있기도 하다.

모바일 기반 송금 서비스 M-Pesa의 10년간의 지표

이 서비스가 작동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자는 서비스 창구에 가서 송금액과 수수료를 지불한다. 그 후 수신자에게 휴대전화로 송금액을 전달하는 SMS와 비밀번호를 보낸다. 메시지를 받은 수신자는 인근 서비스 창구에서 해당 화면과 비밀번호를 제시하면 현금을 받는다. 은행을 거치지 않는 이 송금방법은 은행계좌를 가지지 못한 빈곤층 사이에 순식간에 확산됐다. 사실상 은행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엠페사는 선진적 기술과 모델을 보유해야만 디지털 금융 서비스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공식을 깨트렸다. 오히려 인구 대부분이 수입이 적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기 어려운 빈곤층이라는 점,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돈을 벌기 위해 나간 노동자들이 송금 수요가 높다는 점은 감안한 맞춤형 서비스라는 점이 성공 요인이다. 기존의 은행은 이러한 수요에 적절하게 대처하기보다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였고 결국 모바일의 폭발적인 보급(2)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설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사용자의 문제 해결에 주목한 디지털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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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페사의 서비스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 난방비, 교육비는 물론 농업용수나 식수를 공급받거나 태양광 패널을 통한 전기 공금, 농업용 비료 공급, 농업 용수 공급 등 다양한 필요를 채워주는데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PAYGo(Pay-as-you-go)(3)’의 방식은 디지털과 모바일을 통해 금융과 다른 상품이 결합한 사례이다. 이 역시도 사용자와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고려한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인 것이다. 한 달의 수도 요금을 지불하는 것과 당장에 필요한 한 사람 분의 식수를 구입하는 것은 분명 접근성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금융과 신용의 혜택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약자일수록 이러한 접근성의 차이는 더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잔돈의 크기에 따라 교환되는 파카의 충전 카드

아랍어로 ‘작은 변화’를 의미하는 파카(Fakka)의 사례는 유통망이 미비한 이집트 내 상거래 환경에서의 거스름돈 지불에 대한 문제에 주목했다. 이전까지 거래에서 발생하는 잔돈은 지불이 어려운 나머지 과자나 껌, 아스피린 등의 물품을 잔돈 대신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관광객의 입장에서 매우 곤란한 문제였다. 보다폰 이집트에서 고안한 파카는 불필요한 물품 대신 휴대폰 통화 시간을 늘려주는 카드를 잔돈 대신 제공함으로써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파카의 활용은 이집트 상거래 환경에서 점차 확장되어 전국 46,000개 이상의 매장에서 활용되는 새로운 화폐가 되었다.

기존에 전세계적인 대규모 결제망을 가진 비자(Visa)의 경우 엠페사와 유사하게 인도지역 내 사용자 환경을 고려한 엠비자(mVisa) 서비스를 선보였다. 엠비자는 별도의 POS(Point of Sale) 없이 QR Code 만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데 웹사이트 상에 소개된 활용 시나리오만 살펴보더라도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향후 다음의 네트워크 기술로 불리우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비자인 만큼 엠비자를 통해 지금부터 영향력을 높여가는 것은 매우 강력한 전략으로 느껴진다. 엠비자와 관련해 비자의 기술담당 총괄부사장 라자트 타네자(Rajat Taneja)는 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mVisa 서비스의 전체 작동 원리

“For the past 50 years, access to Visa’s technology environment was tightly controlled and available only to developers at financial institutions and merchants — a strategy that helped drive the migration from cash to electronic commerce in a secure manner,

“지난 50년간 비자의 기술 환경은 통제되었고 금융기관의 개발자들과 자영업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현금거래에서 전자상거래로의 안전한 변화를 이끈 전력이었습니다.”

“Today, as commerce shifts to digital environments where consumers can make secure purchases using mobile devices, it is critical that we open up Visa’s network and make it easier for developers globally to access our payment platform — making secure Visa payments a standard feature of mobile applications.”

“오늘날, 고객들이 모바일 디바이스를 이용해 안전하게 결제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그 결과 비자의 네트워크를 공개하고 전 세계 개발자들이 우리의 결제 플랫폼에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일, 안전한 비자 결제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표준 사양으로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습니다.”

또 한번의 혁신을 가져올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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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변화는 이미 많은 영역에서 시작되고 있다. 엠페사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여 서비스를 시작한 비트페사(BitPesa)는 2014년부터 케냐 지역으로부터 다른 나라로까지 서비스의 범위를 확대 중이며 그 영향력을 인정 받아 계속적인 투자와 제휴를 유치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비트페사의 서비스 원리
기존의 송금 방식과 비트페사를 통한 송금 간의 비교

현재 태국, 미얀마, 러시아 등에서 파일럿 서비스를 진행 중인 에버렉스(Everex)(4)는 자체적으로 발행한 ‘EVX’라는 이니셜의 이더리움(Ethereum) 기반 스마트 토큰(5)을 통해 그 자체로 재화의 가치를 가지는 한편, 이더리움의 강점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신뢰 프로세스를 구상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 내에서 블록체인의 근간이 되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기존의 금융이 구축해온 ‘신뢰’라는 가치를 그대로 담아내기에 넘어야할 장벽이 많이 남아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안전망, 규제 등은 여전히 긍정적 기대와 극단적 불안감 사이를 빠르게 오르내리며 쉽사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자국 내 금융과 통화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가운데 부득이하게 그것에 의존해야 했던 일부 개발도상국 내에서의 암호화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화로 인식된다. 낮은 비용과 빠르고 간소화된 절차에 안정적으로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재화로서의 역할까지 가진다고 하니 그 파급력이 강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문제 해결을 넘어 더 나은 사용자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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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발도상국 내에서의 디지털 금융은 서비스의 단순성이나 접근성, 기술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넘어 서비스 내에서의 세심한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고민까지 입체적으로 고려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CGAP(Consultative Group to Assist the Poor)‘Financial Services Apps in India: How to Improve User Experience’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인도 지역 내 활용되고 있는 모바일 송금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사용성 분석과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위한 상세한 가이드라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 내에서 활용되는 금융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사용성 분석
개발도상국 환경만의 특성이 반영된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가이드라인

앞서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살펴본 것과 같이 금융의 디지털화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금융 혜택을 전달해줄 수 있는 발전적 변화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수혜를 제공한다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엄연히 비즈니스이고 그것의 사용자들은 이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존재들이다. 앞으로의 개발도상국 환경 내에서의 디지털 금융 서비스는 단순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넘어, 대상과 환경, 상황, 맥락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전달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얼마나 더 좋은 기술을 가졌는가의 차이가 아니다. 더 큰 차이는 발견되는 문제와 그 대상에 대해 얼마나 더 관심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느냐의 달려 있을 것이다.

연결된 글

미주

(1) 엠페사는 그 사회적 파급력을 인정 받아 2017 RemTech Awards의 Social Impact 분야에서 수상하였다.

(2) 우리가 일반적으로 짐작하는 것과 달리 개발도상국 내 모바일 사용자의 확산은 유선망과 같은 제한적인 인프라의 구축 단계를 건너 뛰면서 급속히 증가하였다. 케냐의 경우 모바일 보급율을 살펴보면 전체 인구의 24%만이 은행 계좌를 가지는 반면, 모바일 보급율은 이를 훨씬 상회하는 80%에 달한다. 중요도 측면에서도 일자리나 생계, 여가 등의 핵심적인 기능을 모바일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3) PAYGo(Pay-as-you-go) 모델에 대한 설명과 사례는 CGAP(Consultative Group to Assist the Poor)의 블로그 포스팅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 에버렉스는 이러한 혁신성을 인정 받아 2017 RemTech Awards의 Service Originality 분야에서 수상하였다.

(5) ERC-20 (Ethereum Request for Comments-20)은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암호화폐 및 스마트 계약으로서의 기능이 통합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표준이다. 에버렉스의 EVX는 이러한 ERC-20을 기반으로 구축된 스마트 토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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