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녀를 그로스 해킹하라!

Dano Lee
헬로우, PMF!
Published in
13 min readAug 24, 2018

최애를 위해 팬들이 직접 그로스 해킹을 시전한다

엠넷의 프로듀스 48은 96명의 여자 아이돌이 등장하고 국민 프로듀서 (시청자)가 투표를 해서 표를 더 많이 받은 아이돌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당신이 팬으로서 당신의 아이돌을 살아남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나미라는 여자 아이돌을 위해 그로스 해킹을 시전한 팬들이 있어 소개한다.

1. 먼저 상황 파악부터

AKB48 소속의 일본 여자 아이돌인 아사이 나나미

  • 방송5회차가 진행될 때까지 방송 분량도 별로 없고
  • 방송 5회차에 46위를 했고
  • 6회차에서는 조 경연 5위로 꼴찌를 하는…

팬으로서는 정말 미쳐 버리기 직전... 이제 남은 건 탈락?

대개 프로듀스 팬들은 개인적으로는 자기 주변 지인들의 투표를 독려(라고 쓰고 주변인을 탈탈 털어 폰인증 번호를 강탈한다라고 읽는다)하는 방식으로 투표수를 늘린다. 과거 프로듀스 101 박지훈 팬 중 하나가 전남친의 현여친을 뺏은 사연 (주변 지인을 다 털고나니 전남친만 남게 되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이 컬투쇼에 소개되기도. 한 마디로 얘네들은 미쳤다…

팬 커뮤니티에서는 돈을 모아 지하철 옥외 광고를 한다. 광고비는 수백만원 가량이 들지만 그 효과성은... (그거 보고 투표할리가…)

이러한 투표 독려 프로모션(?)의 문제는 다른 아이돌의 팬들도 다 하는 거라는거다. 인기 많은 아이돌은 팬도 많고 돈도 많아서 광고도 많이 하고 인기 없는 아이돌은 그저 구색만 갖출 뿐…

구색만 갖춘… 색감도 뭔가 짠한…

그러고 보니 인기 없는 아이돌의 팬 커뮤니티는 스타트업과 비슷하구나… #짠내난다

2. 그녀를 살려야 한다.

7월 20일 6회 방송분 (나나미가 조 경연에서 꼴찌…)을 보고 빡친 나나미의 팬이 나나미 갤러리 (나나미 팬들의 디씨인사이드 게시판)에 아이디어를 올렸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알아 듣게 말하자면,

  • 돌.갤 (=돌 갤러리. 원래는 돌 이야기하는 게시판인데 블리쟈드의 하스스톤이라는 게이머들이 이주해 옴)에 가서 투표하면 팩 주는 마케팅을 하자.
  • 돌.갤러들 (=하스스톤 게임하는 사람들)은 팩에 환장한다… (몰라도 되지만 궁금하면 여기를)
  • 돌.갤은 게시글의 조회수도 높고
  • 돌.갤러들은 고정픽 (매주 투표하는 아이돌)도 없어.
  • 이벤트 비용도 저렴하다. (당첨자 1인당 3,300원, 팩 2개 가격)
  • 어때? (높은 레버리지. 투표를 하고 인증을 한 사람만 응모할 수 있는 당첨 이벤트이기에 당첨자 몇 배의 투표수를 얻을 수 있음.)

정리하면

  • 가설: 새로운 채널 (=돌.갤)을 통해 새로운 고객층 (=고정픽 없는 돌.갤러들)을 저렴한 비용 (=당첨자 인당 3,300원)으로 획득 (=투표로 전환)할 수 있다.

딱 봐도 설득력 있지 않은가? ㅇㅈ?

3. 내부 논의가 이어지고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언제나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게 성공할지 말지 그 결과를 누가 알겠나…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를 확인해 보자.

아이디어 게시글에 달린 댓글
  • “음… 좋기는 한거 같은데….”라는 유보적 의견 등장.
  • “좋다 진짜, 아이디어(강)추”라며 동의하는 의견도 등장.
  • 투표 방법 안내글 등장.
  • 총대(를 멜 사람)만 있으면 돈 내겠다는 사람 등장.
  • 처음 아이디어를 낸 득도가 이거 하려면 짤이랑 짧은 영상이 필요하다고 함.
  • 월-토 일주일 동안 ~~어쩌구 저쩌구: 이벤트 기간, 경품 개수, 메시지 등 캠페인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 등장.
  • 돌.갤러 (=이벤트 타겟) 등장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함.
  • ‘이벤트짤은 나나미 갤러 중 금손한테 만들라고 시키자’ 등장. (짤= 이미지, 이벤트짤은 이벤트에 사용할 이미지를 말함. 줄여서 ‘이벤짤’이라고도 함.)
  • 돌.갤 말고 하스갤에 가서 이벤트하자는 아이디어 등장. 바로 까임 (하스갤은 하스스톤 갤러리를 말하는데 이미 폭망해서 돌.갤로 이주한 상태.)

과연 그들은 이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

4. 빠른 프로토타이핑을 통한 의견 조율

나나미 갤러들은 총대(를 메기로 한 사람들)를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이벤짤 시안 등장

최초 아이디어 제안 후 8시간 만인 22:48에 이벤짤 시안이 만들어졌고 해당글에는 많은 의견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벤짤을 만든 이는 23:00까지만 의견을 받겠다고 제한해 버린다. (= 나나미의 경쟁 갤러들이 먼저 유사한 이벤트를 시작해 버리면 그건 죽 쒀서 개주는 꼴이다…)

최초 제안글에 다른 프갤러 (프로듀스 갤러리)가 등장해서 비난. 이미 19:27에 아이디어가 프갤에 널리 알려져 버린 상황.

“돌갤에서 왔습니다 엄근진 빨자면 퀸나미 용안 밑에 하스스톤 타이틀 바로 밑에 ‘히어로즈 오브 워크래프트’는 현재는 안쓰는 문구에요” (=엄근진은 ‘엄격, 근엄, 진지’의 줄임말)

하지만 이런 중요한(?) 의견도 씹힘. (=안 중요함.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사장님한테 마케팅팀에서 저런 시안을 가져 갔으면 분명 “야, 게이머들한테 로고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틀리게 적고 거기 커뮤니티 가서 이벤트하는 게 말이 되냐… 금방 바꾸잖아. 바꾸고 하자, 응?”이라고 했을 거다.)

실험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건 뭔가 쓸데 없는 일 — 갑론을박, 쓸데 없이 높은 품질 만들기 등 — 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안에 사용된 나나미 얼굴 사진이 마음에 안든 나나미 갤러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사진 쓰는건 이번 공지까지만으로 해조 이번에는 급했을테니 괜찮아~

그래, 괜찮다. 우린 결코 속도를 늦출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이건 실험이다. 실패하면 딴 거 하면 되고 성공하면 더 다듬어서 2차 진행하면 된다. (무슨 1,000억 짜리 로켓 쏘냐?) #물론최소요건은맞춰야…

5. 드디어 이벤트 시작

총대들은 약간의(12분간? ㅋㅋㅋ) 의견 수렴 후에 시안을 수정하고 바로 23:37분에 이벤트를 시작한다. #돌격앞으로!

5번, “모르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

1차 시안과 비교하면 4군데 변경됨. 찾아 보세요. (혹시나 더 있으면 알려주세요.)

투표 방법 안내 짤
투표 인증 안내 짤

6. 그래서 결과는?

먼저 아래 짤들을 보자.

얘들아, 팩 받아 가렴
팩 주는 예쁜 누나

대박이 나야 만들어진다는 패러디 짤들이다. 이벤트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고 이벤트 게시 후 4시간 만에 1,400표 정도의 인증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 이벤트를 통해서 총 1만표 정도를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나나미가 4주 동안 받은 96,000여표의 10%)

약 6일 동안 진행됐는데 주작된 표를 걸러내고도 매일매일 인증글이 1천건이 넘었다. 그 1천 여건의 글들 대부분이 당첨 확률을 올리기 위해 엠넷과 지마켓 두 개 다 투표한 글이었고 투표를 하고도 귀찮아서 인증을 안하거나 다중 계정을 하나의 글에 몰아서 인증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6일동안 돌.갤러들의 인증글만으로 1만표 이상을 받은 것.

7. 전쟁의 시작

그런데 이 이벤트에 열 받은 다른 아이돌의 갤러들이 연합해서 12명 투표에서 나나미를 제외시키기로 결정한다. (한 번 투표할 때마다 12명에게 투표 가능.) 그러나 무토 토무 갤에서 연합을 깨고 팩 이벤트를 진행 (이름이 좌우 대칭이라서… 돌.갤러들은 좌우 대칭을 좋아한다. -_-)하고 이름에 BB (‘비비’)가 들어가서 사랑 받을 수 밖에 없는 무라카와 비비안 갤에서도 이벤트를 진행하기에 이른다.(BB는 돌.갤러들에게는 벤 브로드를 뜻하며 과거 블리쟈드 하스스톤팀의 팀장이었다. 하스 갤러들의 애증의대상이라고.) 거기에 평소라면 이런 이벤트를 차단할 것 같은 돌.갤 관리자가 팩 없이 홍보하면 차단하겠다는 글을 올림으로써 오히려 팩 이벤트가 돌.갤에서 공인되기에 이른다.

부수효과로 프듀 아이돌에 까막눈인 이 무식한 용병들 (팩 받자고 투표한 돌.갤러)이 12명을 투표해야 되니까 그냥 나나미 주위의 아이돌들에게 투표하면서 나세권 (나나미 + 역세권)이 형성되는 일도 벌어짐.

나세권 형성

돌.갤에서는 ‘팩 많이 주는 갤러리가 주인님이다’라는 실학파와 ‘먼저 팩주기 시작한 갤러리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라는 명분파의 예송 논쟁이 벌어지지만 돌갤러들이 용병으로서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상도덕 드립이 등장하면서 프듀팩 3원칙을 만들어 내게 된다.

프듀팩 3원칙

결국 12픽으로 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게 되고,

고정 12픽

우리의 아사이 나나미, 그녀는 돌.갤의 공식갤주 (=공식 갤러리 주인)가 되었다.

덤으로 돌.갤러들이 서비스로 ‘네이버 스트리밍 조회수 1위’까지 만들어 준다. 충성, 충성! (현재 누적 조회수 33만의 위엄!)

“짜장면을 30인분 시켰으면 군만두는 원래 서비스로 주는거에요.”

나나미 직캠 조회수 1위 영상 보러가기

그런데 이게 여기서 끝이 아니다.

8. 그들에게도 ‘aha moment!’가 찾아옴

처음에는 팩에 눈이 멀어 투표를 했던 돌.갤러들이 실제 나나미의 팬이 되어 버린다??!!

팩으로 시작해서 팬으로 끝납니다…

아사이 나나미 입덕 계기 영상

Product-Market Fit - 나나미에게 그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 - 이 없었다면 체리피킹 (보상만 받고 떠나는 것, 전형적인 보상형 캠페인의 단점)으로 끝났을 텐데 이들은 나나미의 매력에 빠져 진짜 팬이 되버렸다. (대규모 유료 광고를 집행하기 전에 반드시 product-market fit을 먼저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게 아니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위의 영상에서는 처음에는 팩 받자고 투표하면서 사진 보다가 살짝 빠지고 그 다음으로 네이버 직캠 영상 보다가 입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드시 영상을 보고 본인도 입덕하게 되는지 직접! 확인하시라.) 역시 이번에도 직캠은 NUX (New User eXperience)의 훌륭한 창구 역할을 해냈다.

이런 대성공이라니 기쁘지 아니한가!!!

8. 포스트모템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8회차에서 떨어졌다… #망할 #돌갤러들폭주

떠나간 나나미가 보고 싶은 그들의 절규.

4회차에서 팀 내 개인 순위 1위를 했을 때 이런 이벤트를 진행했다면 달랐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만 해 본다. #이게다악마암준영때문이다.

이 이벤트가 이런 대박을 거둔 게 천우신조라는 분석이 있다. (그래서 그로스 해킹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실험하라고 말한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까...)

또 시기가 상당히 잘 맞아 떨어졌는데, 신 확장팩 박사 붐의 폭심만만 프로젝트가 차근차근 공개되고 있는 와중에 그날이 딱 공개하는 카드가 없는 쉬는 날이었고, 이벤트가 신 확장팩이 출시되기까지 시간이 좀 많이 남아서 아직 예구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예구팩이 미끼 상품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였고, 말일이나 그 전날도 아니라 전설런을 하거나 주차를 위해 돌겜을 열심히 굴리는 것도 아닌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에 심심하고 떡밥이 없는 돌갤러들은 미끼를 덥썩 물어버렸고 보다보다 정이 들은 아사이 나나미는 블리자드를 떠난 BB의 뒤를 이은 2대 갤주로 추앙받아 이제는 팩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으니..[4] 출시가 임박해서 이미 예구를 모두 마쳤거나, 재밌는 카드가 공개되어 그 카드로 100분 토론을 하고 있거나, 월말이 되어서 빡겜을 하거나 했으면 이렇게까지 크게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기에 나나미 갤러들은 하늘이 나나미를 돕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

물론 돌갤에 가서 이런 이벤트를 잘못했다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나나미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상황, 탈락직전이라 배수의 진이라도 쳤어야 했기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깝치다가 역풍 맞아서 돌갤에서 쫓겨난 왕이런 갤주를 보라.

아이디어가 최초 제안된 후 실행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아이디어 최초 게시 (14:52) 8시간만 (22:48)에 총대들을 중심으로 이벤트 짤 시안을 만들었고 23:00까지 피드백을 받아서 시안을 수정하고 23:37에 바로 이벤트를 시작했다. 총 9시간 45분 소요됨. 이래서 총대 (사실 상 그로스팀)가 중요하다. 이들로 인해 이렇게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실행이 가능했다. 게다가 이들은 전업도 아니다.

난 정말 궁금하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중에 몇곳이나 이런 속도로 그로스 해킹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지…

9. 여기서 잠깐

여기서 잠깐, 우리 리텐션 이야기를 하고 가자. 새로운 채널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획득한 경우 기뻐하지만 말고 이들의 리텐션 (retention, 잔존율)을 잘 챙겨야 한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면 그냥 망하는거다. 그로스 해커라면 기존 나나미 갤러들에 비해 새롭게 영입된 돌.갤러들의 리텐션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이렇듯 리텐션은 반드시 코호트 (cohort)를 나눠서 관리해야 한다. #이거슨다음글을위한포석

맺음말

그로스 해킹은 스타트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주위를 둘러 보면 어디에나 ‘스승’이 있다.

  • 그로스 해킹에서는 속도가 생명이다. 그래야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
  • 아이디어를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하고 실험해서 검증하라.
  • product-market fit은 정말 중요하다.
  • 팬심은 위대하다! (그로스 해킹 따위, 훗!)

에필로그

난 디씨인도, 프로듀스48 시청자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난 지 1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단지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나미 영상을 다 찾아 보고 디씨랑 인터넷에서 관련글을 뒤지다가 디지는 줄 알았다. 탐사보도하는 기자님들, 존경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건 나에게는 aha moment!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거다. ㅠ.ㅜ #미안해나나미짱

그리고 나나미 이벤트를 설명한 글들은 많은데 정작 돌.갤에 작성된 나나미 갤의 첫번째 이벤트 글을 찾지 못해서 ‘이벤트가 끝나서 지운 건가’하고 있다가 돌.갤에서 오리지널 이벤트 글을 찾아내고 감격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믿거나말거나

굳이 그로스 해킹 사례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돌.갤의 실록(?)을 적은 이유는 우리가 하는 어떤 작은 실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지 말자고 훼방 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천하의 제갈량도 저런 상황을 다 예측할 수는 없다. 언제나 되는 이유는 한가지요, 안되는 이유는 천가지다.

미친… 나나미갤의 누군가(아마도 총대 중 한명이겠지.)가 실제 이벤트 개시 전에 1명에게 테스트해 본 글 발견… #실험전UX검증은필수 #시안올리기전 #10분만에테스트끝

성지 순례 가세요.

현자의 아이디는 득도…

최초 게시글에 이어진 성지순례의 흔적들, 언능 가서 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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