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에게 배우는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Dano Lee
헬로우, PMF!
Published in
8 min readAug 22, 2018

JTBC 뉴스룸 시청 중에 재밌는 에피소드를 포착했다. 손석희 앵커가 태풍의 예상 경로 데이터를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살펴 보자!

2018년 8월 21일 JTBC 뉴스룸 중 태풍 솔릭의 예상 경로에 대한 리포트

태풍 솔릭의 예상 경로

윤영탁 기자가 위의 화면을 열어 놓고 태풍 솔릭의 예상 경로를 설명하자 손석희 앵커가 몇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 본다.

[앵커] 요 그림을 잠깐 걸어 놓고 설명을 좀 더 필요로 하는데요. 정확하게 시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제주를 가장 가까이 지나는 시각이 어느 정도입니까?

[기자] 제주 서해상을 지나는 시각이 23일 새벽 3시 ~ 6시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앵커] 목요일 오후 3시 (=그림에 표시된 시각)에는 목포 옆을 지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기자] 아, 목포 옆 해상을 지나는데 이거는 일단 그 전에 발표된 걸 기준으로 한 거고 (=이미지가 최신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기자] 서해상을 따라서 오다가 태안반도를 상륙을 하는데요, 그게 오후 8시 ~ 11시 정도로…

[앵커] 이왕이면 그 시각을 표시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시청자분께는.

(중략)

[기자] 서울은 하루를 넘겨서 자정에서 새벽 3시 정도…

[앵커] 하루 넘긴다니까 긴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인 자정 정도에 서울쪽을 지나갈 것이다. 목요일 밤에.

[앵커] 그렇게 해서 저 쪽 동해안 쪽으로, 북한 지역이 되는데요, 그쪽으로 빠져 나가는게 몇시 정도 됩니까?

[기자] 말씀하신 대로 8월 24일날 글피가 되겠죠. 15시 정도에 빠져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점심 때로부터 오후 정도 시간까지.

[앵커] 나중에는 상륙한 시간을 좀 표시해 주시죠. 이렇게 하니까 좀, 측정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태풍 솔릭의 예상 경로 리포트 보기

태풍의 예상 경로가 궁금한 이유는?

우리가 태풍의 예상 경로가 궁금한 이유는 그 태풍이 내가 사는 지역에 언제 도착해서 얼마나 피해를 줄 것인가를 알고 싶어서이다. JTBC는 전국의 시청자(=고객)를 대상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중요한 정보(=가치 판단 필요)를 전달해야 하기에 주요 지점을 선정하고 그 지점에 태풍이 언제 도착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이날 리포트에서는 기자가 해당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넘어가려 하자, 이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손석희 앵커가 자신이 생각하는 주요 지점들을 기자에게 차례로 물어 봤다.

  • 제주도에 가장 가까운 시각
  • 한반도에 상륙하는 시각 (리포트에서는 태안 반도. 사실은 충남 보령.)
  • 서울을 지나는 시각
  • 한반도 기준으로 언제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지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휴전선 기준으로 언제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지’가 되지 않을까?

데이터를 바라 보는 2개의 시선

우리에게 태풍의 예상 위치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고 하자. 이 모델에 시각을 넣으면 태풍의 예상 위치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시간대별 태풍의 예상 위치라는 데이터로 테이블을 만들고 지도 위에 그려 본 후 적당한 간격을 골라 시각화하면 방송에서 사용한 그림이 만들어 질 것이다. 방송에서는 22일부터 25일까지 매일 15시에 해당하는 예상 위치를 그렸다. 그냥 매일 하나씩 그린 셈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하루에 태풍이 이동하는 거리 외에 다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처음에는 혹시 같은 거리로 그렸을까해서 자로 점들 간의 거리를 재어 봤다. 아니다. -_-)

대체 시청자에게 무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그렸을까?

그런데 이 모델을 수정해서 시각이 아니라 위치를 넣으면 해당 위치에 태풍이 도착하는 예상 시각이 나오도록 해 보자. 이렇게 수정된 2번째 모델에 우리가 원하는 위치 정보를 몇개 넣으면 해당 위치별 태풍의 예상 도착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예측 모델을 만들라고 하면 첫번째 모델과 결과값을 구해서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것은 2번째 모델이다. 그리고 2번째 모델에는 ‘주요 지점’이라는 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보(=판단)가 더해져야 비로소 유용한 정보가 생산된다. (만약 모든 위치를 다 입력하면 1번 모델의 결과값과 동일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데이터 분석시 해당 비즈니스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다. 물론 반드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그 정보를 알고 직접 판단할 필요는 없다. 해당 도메인을 잘 이해하는 사람 (예. 손석희)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매년 3개 정도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준다고 하니 2번 모델로 결과값을 구하는 코드를 짜 두면 일 년에 최소 3번은 써 먹을 수 있겠다. 모델이야 계속 업데이트하겠지만.

사실 가장 궁금한 점은, 근대적 기상 관측을 1904년부터 했다는 유구한 역사의 우리 기상청에서 태풍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브리핑을 할 때 위의 5가지 지점에 대한 태풍 예상 도착 시각을 어떤 방식으로 알려 주고 있는지다. 혹시 시간대별 태풍의 예상 위치만을 제공하는 건 아닐까?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국민의 필요를 잘 담아 그에 맞게 시각화되어 있다면 JTBC 뉴스룸에서 이번과 같은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태풍 정보. 시간대별(12시간 단위) 태풍의 예상 위치만을 보여 준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어도 커뮤니케이션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랴. 손석희 앵커는 데이터의 ‘취사 선택’과 ‘적절한 워딩’을 통해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손석희가 선택한 ‘주요 지점’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많은 정보 중에 일부를 취사 선택한 결과이다. 만약 누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하자.

시청자들이 전국에 걸쳐 있으니 같은 간격 (예. 30km)으로 점을 찍었어요. 그러면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잖아요.”

‘에이, 설마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죠? 당신은 머지 않아 그를 만나게 될 겁니다… 레알…

간격을 너무 넓게 만들면 필요한 정보가 누락되고 너무 좁게 만들면 정보가 너무 많아서 알아 보기 어렵다. 적당한 간격이라는 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번 방송에서 사용한 그림은 거리가 아닌, 하루 간격으로 점을 찍었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탄생했다. 하지만 ‘같은 간격’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각적으로도 편해서(?)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손석희가 선택한 ‘주요 지점’은 우리 인간의 인지적 체계 (경계 인식) + 수도권 (인구 절반이 사는)의 중요성이라는 2가지 기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가니 생략.

리포트 중간에 기자가 태안반도를 지나 서울을 지나는 시점을 설명할 때 ‘하루를 넘겨서’라는 표현을 쓰자 앵커가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느끼고 부연 설명을 한다.

하루 넘긴다니까 긴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인 자정 정도에 서울쪽을 지나갈 것이다. 목요일 밤에.

태안반도 예상 상륙 시점은 23일 목요일 오후 8 ~ 11시 사이이고 서울 도착 시간은 24일 금요일 0시 ~ 3시이니 4시간 뒤(?)라고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 기자의 말도 틀리지 않았지만 잘못 해석될 여지가 크다. 데이터를 설명할 때는 부정확한 해석의 여지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적절한 워딩을 사용해야 한다.

맺음말

고객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주자. 그게 데이터 분석이든 뭐든 간에.

  • 데이터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라.
  • 고객이 궁금해 하는 것에 답할 수 있는 모델과 데이터를 만들자.
  • 취사 선택과 적절한 워딩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 역시나 손석희는 대단하다. #갓석희
  • 여러분 모두, 부디 태풍 피해 없으시길 빕니다.

잡동사니

이틀 후 JTBC 방송에서 사용한 그림을 보자.

새롭게 만든 그림.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다.

먼저 최근접 시간이라고 정의를 명확히 한 게 눈에 띈다. 이전 그림과 달리, ‘주요 지점’들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 현재 위치
  • 상륙지점 (군산): 상륙 지점에 대한 정의가 뭔지 궁금해 진다.
  • 대전 20km: 대전에서 20km 떨어진 지점으로 태풍이 지나간다.
  • 서울 100km: 서울 최근접 시간을 보여준다. 거리는 100km.
  • 강릉: 한반도를 빠져 나가는 경로를 보여 주려고 한 것 같다.

‘대전 20km 지점’, ‘서울 100km 지점’처럼 지점을 붙이면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리포트에서는 한반도 상륙 지점으로 태안반도를 말하지만 실제 예상 상륙 지점은 충남 보령이라고 리포트 시작 전에 자막으로 나온다.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태안은 보령으로부터 약 62km 북서쪽에 위치한다. 결국 둘 중 하나는 틀렸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청의 태풍 속보를 바탕으로 생방송용 그래픽을 만든다는 건 정말 스트레스 가득한 업무니 이해를...

리포트 시작 전에 나온 한반도 예상 상륙 지점

더 읽을 거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