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록에 대한 고찰 — 제 1부 (MolochDAO의 Moloch이란?)

Clara Ex Machina
Holy Crypto
Published in
22 min readJan 21, 2023

* 원래 몰록의 의미는 히브리 성경(특히 레위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나안의 신 혹은 신의 집합체로 불 위에 손을 뻗은 황소머리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적인 모습이나 악마나 사탄 숭배의 일종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사람, 심지어는 아이까지 제물로 바치는 숭배 방식 때문에 ‘큰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대상 등을 비유할 때 이용되곤 한다.

** MolochDAO는 2019년 ETH Denver에서 Ameen Soleimani가 런칭한 Grants DAO로, 그 사상의 기반은 대학 시절 읽은 이 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조) 인류의 가장 큰 적을 조정 실패(coordination failure)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DAO들을 육성 중인, DAO들의 DAO입니다.

***원문은 2014년 7월 30일에 게시되었습니다.

몰록에 대한 고찰

1부.

알렌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몰록에 대한 시:

어떤 시멘트와 알루미늄 스핑크스가 그들의 두개골을 부수고 지성과 상상력을 집어삼켰는가?

몰록이여! 고독이여! 오물이여! 추악함이여! 먼지 뿐인 깡통과 얻을 수 없는 돈!

아이들은 계단 밑에서 비명을 지르고

소년들은 군대에서 흐느끼고 있으며

노인들은 공원에서 울고 있다!

몰록이여! 몰록이여! 이 모든 것은 몰록의 악몽! 사랑이 없는 몰록이여! 정신적인 몰록! 몰록, 그대는 인간의 엄격한 심판관일지어다.

이해할 수 없는 감옥, 몰록이여! 영혼 없는 감옥과 슬픔의 의회에 의한 죽음, 몰록이여! 몰록의 건물은 심판이며! 몰록은 전쟁의 거대한 돌이로다! 몰록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정부!

몰록의 마음은 순전히 기계로 만들어져 있으며! 몰록의 피에는 돈이 흐르며! 몰록의 손가락 열 개는 각기 군대가 되며! 몰록의 가슴은 식인 발전기이며! 몰록의 귀는 연기가 나는 무덤이로다!

몰록의 눈은 천 개의 어두컴컴한 창이며! 몰록의 긴 거리에는 무한한 여호와처럼 고층 빌딩이 서있다! 몰록의 공장은 안개 속에서 꿈을 꾸고 으르렁대듯 삐걱거린다! 몰록의 굴뚝과 안테나가 도시를 지배하는도다!

몰록의 사랑은 끝없는 기름과 돌과 같으며! 몰록의 영혼은 전기와 은행이다! 몰록의 가난은 천재의 망령이다! 몰록의 운명은 무성(無性)의 수소구름과도 같으며! 몰록의 정신은 그의 이름 자체이다!

나는 홀로 외로이 몰록 가운데 앉아있도다! 몰록 안에서 나는 천사를 꿈꾸는도다! 몰록 안에서 광기에 젖어 경멸을 당하는 한 인간이여! 몰록 안에서 나는 사랑도 잃고 인간성도 잃었노라!

일찍이 내 영혼에 찾아온 몰록이여! 몰록 안에서 나는 육체를 잃고 의식만 남겨졌도다! 자연적 황홀함으로부터 겁을 먹고 달아나게 만든 몰록! 나는 몰록을 버렸지만 여전히 몰록 안에서 깨어나는도다!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빛!

몰록이여! 몰록이여! 로봇 아파트와 보이지 않는 교외! 뼈로 가득한 국고! 눈이 먼 자본! 악마와도 같은 산업! 유령의 나라! 무적의 정신병원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성기들! 무시무시한 폭탄!

그들은 천국으로 몰록을 들어올리다 등이 부러졌다! 도로, 나무, 라디오, 그 밖의 많은 것들! 도시를 천국으로 보내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어디에나 있는 것이었다!

환영이여! 징조여! 환각이여! 기적이여! 황홀함이여! 이것들은 미국의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갔다!

꿈이여! 경배여! 계몽이여! 종교여! 이것은 모두 민감한 헛소리들로 가득찬 배와도 같다!

돌파구! 강 위에 있는! 회전과 십자가의 못박힘! 홍수 아래로 떠내려갔다! 황홀함! 계시! 절망! 10년간의 비명과 자살! 정신! 새로운 사랑! 정신나간 세대! 시간의 바위 위로 떨어진다!

진정으로 거룩한 강 속의 웃음소리! 그들은 이것을 모두 보았다! 야생의 눈빛! 거룩한 외침! 그들은 작별을 고했다! 그들은 지붕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고독을 향해! 손을 흔들며! 꽃을 쥐고! 강으로 몸을 내던졌다! 거리로 내던졌다!

이 시가 항상 저에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문명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대로 이루어진 손가락들과 고층 빌딩의 창문들로 이루어진 눈을 상상해보면 그를 마치 거의 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시에서 몰록이 자본주의를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일부 사실일 것입니다. 어쩌면 엄청 큰 ‘일부’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꼭 들어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운명이 무성(無性)의 수소구름과도 같다? 자본주의 안에서 나는 육체를 잃고 의식만 남겨졌다? 자본주의는 화강암의 성기이다?

몰록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제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C.S. 루이스가 “철학자들의 계층(Hierarchy of Philosophers)”에서 던진 질문으로, 무엇이 이 모든 것을 일으키고 있는가? 입니다. 인류는 모두가 기쁘고 지혜로울 수 있으며 세계는 공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감옥과, 굴뚝과, 정신병원들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시멘트와 알루미늄 스핑크스가 그들의 두개골을 부수고 지성과 상상력을 집어삼켰을까요?

긴즈버그는 이에 대해 “몰록이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디스코디아(혼돈의 여신인 Discordia, 즉 Eris를 중심으로 한 종교/철학) 종교문에 따르면 말라클립스는 디스코디아 여신에게 인간 사회의 악에 대해 불평합니다.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며, 불의가 지구에 만연하며, 사회가 자기 민족의 집단들을 약탈하고, 어머니들이 아들들을 감금하고 있으며, 형제들이 전쟁을 하는동안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찌하여 문제가 되는가?”

말라칼립스가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것을 경멸합니다!” 라고 대답하자, 여신은 이렇게 대답하죠. “그렇군. 그렇다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

여기에 내재된 질문은 이것입니다. 만약 모두가 현재의 체제를 싫어한다면, 누가 이것을 영속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긴즈버그는 “몰록”이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대답이라서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진짜 말 그대로 고대 카타르고의 악마가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긴즈버그의 대답이 힘을 갖는 것은 체제를 하나의 행위자로 생각하는 것이 체제가 “행위자가 아닌” 정도를 더욱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보스트롬은 독재자 없는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지도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이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복되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상상하는 것은 쉽습니다. 이 두 가지 규칙을 따르는 국가를 상상해보십시오. 첫째, 모든 사람은 하루에 8시간동안 강한 전기 충격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합니다. 둘째, 누구라도 하나의 규칙을 어길 경우 (이 규칙 또한 포함) 혹은 이를 반대하거나 시행하지 않으면 모든 시민들은 합심하여 그 사람을 죽여아 합니다. 이 규칙들이 전통적으로 충분히 확립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를 시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매일 8시간동안 전기충격을 가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행하지 않았을 때 모든 이들이 당신을 죽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당신을 죽이지 않는 사람 또한 다른 이들이 그를 죽일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이 체제를 혐오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조정 매커니즘(coordination mechanism)이 없기 때문에 체제는 계속해서 지속됩니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모든 이가 동시에 이 체제를 따르는 것을 멈춤”으로써 쉽게 체제를 최적화시킬 수 있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체제 내에 속한 모든 이는 스스로에게 돌아올 거대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는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예시가 다소 인위적이긴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실제 세상의 예시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앞의 예시처럼 여러 극의 함정을 갖고 있습니다.

1)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 두 명의 멍청한 자유주의자들이 결국 양 측 모두에게 손실을 입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조정을 어떻게든 해낸다면 더 좋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신의 관점에서 조정-조정은 손실-손실보다 나은 결과일테지만, 체제 내의 어떤 죄수도 이를 행하지 못합니다.

2) 달러 경매: 저 또한 이전에 이에 대해 적은 바 있고 같은 논리의 좀더 복잡한 버전을 “어두운 예술로서의 게임 이론(Game Theory As A Dark Art)”에도 적은 바 있습니다. 좀 이상한 경매 규칙을 따르면 누군가에게 $10을 주고 $1를 사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신의 관점에서 1달러를 10달러로 구매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체제 내에서는 이를 위해 행해진 각 단계가 아주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먼지 뿐인 깡통과 얻을 수 없는 돈!)

3) 저의 비자유주의자(Non-Libertarian) FAQ 2.0에 실린 물고기 양식 이야기:

사고 실험으로, 호수에서 물고기 양식업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호수에는 서로 경쟁하는 1000개의 회사들이 소유한 1000개의 동일한 물고기 양식장이 있습니다. 각 양식장은 매월 $1000의 수익을 올립니다. 아마 한동안은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 물고기 양식장이 쓰레기를 만들어내므로 점차 호수는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각 양식장이 내뿜는 오염물질로 인해 호수의 생산성이 매월 $1씩 감소한다고 쳐봅시다.

1000개의 양식장은 곧 매월 $1000의 생산성 감소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이 양식장 중 어느 누구도 수익을 낼 수 없게 됩니다. 이 때, 자본주의가 개입을 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복잡한 필터링 시스템을 만들어 오염 물질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가동하기 위해선 매월 $300를 지출해야 합니다. 모든 양식장은 자발적으로 이를 설치합니다. 오염은 중단되고, 양식장은 다시 매월 $700씩을 벌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상당한 금액이죠.

그러나 스티브라는 이름의 한 양식장 주인이 그의 필터를 가동하는 데에 이골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가 필터링 시스템 운영을 중단하는 순간부터 다시 하나의 양식장만큼의 쓰레기는 다시 쌓이고 매월 $1의 생산성 감소로 이어집니다. 스티브는 매월 $999를 벌지만, 다른 양식장 주인들은 $699를 벌기 시작했습니다. 양식장 주인들은 스티브가 더이상 필터링 시스템의 유지보수 비용을 내고 있지 않으며, 그로 인해 자신들보다 더욱 높은 수익을 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필터링 또한 중단하게 됩니다. 400명이 필터기를 분리하면 스티브는 월 $600을 벌게 됩니다. 이는 스티브와 다른 모든 이들이 필터링 시스템을 함께 돌렸을 때보다 오히려 낮은 수익이 되어버립니다. 여전히 필터링 시스템을 가동중인 선한 양식장 주인들은 월 $300밖에 벌지 못합니. 스티브는 모두에게 돌아다니며, “잠깐! 필터링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한 자발적인 협약을 맺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의 생산성이 낮아지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그에게 동의하고 필터 협약에 서명을 합니다. Mike라는 이름의 얼간이 한 명만 빼고 말입니다.

이제 Mike를 제외한 모두가 필터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Mike는 매달 $999를 벌고 다른 이들은 $699를 벌게 됩니다. 점차, 사람들은 다시 Mike처럼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300의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필터를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사실 필터를 사용할 동기가 전혀 없습니다. 이기적인 사람 또한 다함께 필터를 사용하는 협약에 서명할만한 동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다른 이들이 모두 서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본인만 하지 않는 옵션에 훨씬 더 끌리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결국 아무도 협약에 서명하지 않는 바람직하지 않은 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저는 이것이 제가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핵심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자유주의자 FAQ 3.0은 아마 한 200번쯤 제가 반복해왔던 이 예시에 대한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신의 관점에서 우리는 호수의 오염이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체제의 내부자의 관점에서는 그 어떤 개인도 호수가 오염되는 것을 방지할 수 없으며 필터링 시스템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입니다.

4) 맬서스 트랩:

(영국의 경제학자인 맬서스는 1798년 발간한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멜더스 트랩이며 바로 타노스가 밝힌 악행의 이유와 동일하다. 또한 맬서스는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이후 영국정부가 빈민법을 개정하여 빈민을 위한 복지제도를 없애는데 크게 기여했다. — 이투스 “[칼럼] 위기 이후 찾아올 새로운 산업혁명에의 기대” 에서 발췌)

이는 물론 순수하게 이론적인 내용이라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아주 깨끗한 섬에 처음으로 도착한 쥐들 중 한마리라고 생각해봅시다. 섬은 맛있는 풀들로 가득하며 당신은 어슬렁 어슬렁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먹고, 멋진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당신은 “프리스비 부인과 나임의 쥐들(Mrs. Frisby and the Rats of NIMH)”에 나온 쥐입니다!) 그런 여유로운 삶 말이죠.

당신은 아주 오랫동안 살면서 여러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당신의 자식들 또한 여러 자식을 낳았고, 자식들의 자식들 또한 여러 자식을 낳게 됩니다. 몇 세대가 지나자 섬은 1만 마리의 쥐로 가득차 섬이 부양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제 양식과 공간이 부족해지고, 인구를 1만 마리로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세대의 일정 비율만큼의 쥐가 죽기 시작합니다.

일부는 생존을 위해 돌아다니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예술을 포기합니다. 매 세대마다 이 종파는 다른 (주류의) 구성원들보다 약간 적게 죽습니다. 점차 어떤 쥐도 예술을 전혀 향유하지 않으며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쥐들은 몇 세대 내에 멸종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예술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주류보다 더 야비하고, 비열하고, 더 생존주의적인 종파가 결국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어느 한 종파가 개체의 과잉을 줄이기 위해 한 쌍당 두 마리로 자손의 수를 제한하기로 이타적인 결정을 내리면 그 종은 수세에 밀려 사라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어느 종파가 동족포식을 시작한 뒤 이것이 생존에 더욱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결국 이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이는 고정된 풍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때 어느 쥐 과학자들이 섬의 견과류 저장고의 고갈이 위험한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으며 곧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고 예측을 합니다. 그러면 일부 쥐들이 견과류 소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제한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더 이기적인 개체들에게 압도당하고 말 것입니다. 결국, 견과류는 고갈되고 대부분의 쥐가 죽어버리며 개체의 감소와 증가 싸이클이 반복하게 됩니다. 이 싸이클을 중지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 종파는 그 행동이 무엇이 되었든 이를 시간 낭비라 여기며 그럴 시간에 경쟁하고 소비하기를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는 다른 개체들에게 압도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진화는 맬서스주의만큼 이상적이진 않지만, 우리가 다른 것들에 적용하여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토타입 예시를 제공합니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쥐들이 쾌적한 수준의 개체 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체제 내에서는 각 개체는 유전적 명령을 따르게 되며 섬은 끝없는 호황-불황 싸이클을 반복하는 굴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5) 자본주의: 어느 치열한 산업의 자본가를 상상해봅시다. 그는 작업장에서 일꾼들을 고용하여 최소한의 이윤으로 판매하는 의복을 생산합니다. 설령 이 자본가가 직원들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불하거나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제공하고 싶어한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제품 가격이 올라갈 것이며, 이는 더 낮은 가격에 의복을 판매하는 경쟁자들에게 밀리게 만들어 회사가 곧 파산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경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급여를 주고 싶어하는 좋은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서로가 더 낮은 가격에 의복을 판매하는 배신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 그들은 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입니다.

기업들은 경쟁이 치열한 경제 환경에서 순전한 경쟁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치를 점차 잃어가는 쥐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즉, 이익의 최적화를 제외한 모든 가치를 포기하거나 더 이익 최적화를 잘 해낸, 더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에게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자본주의를 진화에 비유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적합한 기업(Fit companies; 고객이 구매하고 싶게 만드는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며, 확장하고, 미래의 노력을 고취할 것이지만, 부적합한 기업(Unfit companies; 어느 누구도 사고 싶어하지 않는 기업)은 파산하여 그들의 회사 DNA와 함께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이 붉고 이빨과 발톱이 있는 이유(Nature Red in Tooth and Claw에 대한 비유; 마이클 머레이가 쓴 책으로,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자연적 악으로서 동물의 고통을 탐구)는 시장이 무자비하고 착취적인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신의 눈으로 보면 모든 회사가 근로자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우호적인 산업 생태계를 꾀할 수 있습니다. 체제 내에서는 그것을 제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몰록의 사랑은 끝없는 기름과 돌과 같으며! 몰록의 피에는 돈이 흐른다!

6. 두 소득의 함정: 이에 대해선 이 블로그에서 최근에 논의한 바 있습니다. 좋은 학군에 있는 교외 주택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주택 구입 능력을 최적화하기 위해 다른 많은 가치(자녀와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 재정적 안정)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론입니다.

신의 눈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좋은 집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업 및 겸업을 하지 않기로 동의한다면 모든 사람은 이전과 똑같이 한 가지 일만 하면서도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체제 내에서는 두 번째 직업을 갖는 것을 금지하는 정부가 없다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입니다.

로봇 아파트와 보이지 않는 교외!

7) 농업: 자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농업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불렀습니다. 실수든 아니든 농업의 발생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농업 문명은 유목민 문명을 쉽게 압도했으며, 이는 불가피하고 저항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맬서스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렵 채집이 더 즐겁고, 기대 수명 또한 더 길며, 인간의 번영에 더 도움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민족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태에서 온갖 질병과 억압과 역병이 있는 농업이 더 경쟁적인 선택이었다면, 모든 사람들은 농업인이 되거나 코만치족 인디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신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더 즐거운 선택을 내리기 위해 수렵 채집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체제 내에서 각 부족은 농사를 짓거나 불가피하게 죽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8) 군비 경쟁: 강대국은 예산의 5%에서 30%를 국방에 지출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없을 때(지난 50년 동안은 대부분 이 상태였습니다.)에는 사실 인프라, 건강, 교육 또는 경제 성장에서 돈을 빼돌리는 비효율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방위비 지출을 하지 않는 국가는 이웃 국가의 침략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국방에 예산을 낭비합니다.

신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며 모든 나라가 군대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제 내에선 어떤 국가도 이를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으므로 최선의 선택은 무기고에 쌓여있는 사용하지 않는 미사일에 계속해서 돈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9) 암(Cancer): 인체는 조화롭게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원을 모으는 세포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세포가 자신을 복제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여 이 균형에 결함이 생기면, 해당 세포와 그 후손이 자라나 결국 다른 모든 세포를 압도하고 신체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신체는 죽습니다. 또는 상황이 반복되어 특정 암세포들이 종양의 나머지 부분에 결함을 일으켜 종양의 성장이 느려지고 정체될 수 있습니다.

신의 눈으로 볼 때 최선의 해결책은 모든 세포가 협력하여 신체의 죽음을 초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제 내에서 암 세포는 증식하여 다른 세포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며, 이 경우 면역 체계만이 남아 암으로 변하게 하는 자연적 동기를 억제하게 됩니다.

10) 바닥으로의 경쟁 (race to the bottom): 이는 일부 지역에서 더 낮은 세금과 더 적은 규제를 약속함으로써 기업을 유인하는 정치적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는 결국 모든 관할 구역이 경쟁력을 최적화하기 위해 최소화된 세율과 규제를 도입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든 비즈니스, 수입 및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시점에서 결국 그들은 쫓겨나고 더 순종적인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바닥으로의 경쟁이라는 이름이 마지막 예시에만 붙긴 했지만 앞서 언급한 모든 예시들은 바닥을 향한 경쟁입니다. 한 행위자가 공동의 가치를 희생하여 경쟁력을 높이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경쟁자들 또한 그 가치를 희생하거나 경쟁에서 밀려나 덜 양심적인 사람들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체제는 다시 한 번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이미 희생된 가치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신의 눈으로 볼 때 경쟁자들은 그들이 배신하면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체제 내에서는 조정 메커니즘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글을 더 진행하기 전에 약간 다른 형태의 다중 행위자 트랩에 대해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 경우 경쟁은 외부의 힘 (보통 사회의 낙인, social stigma)에 의해 억제됩니다. 결과적으로 바닥으로의 경쟁은 일어나지 않으며 체제는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계속해서 기능할 수 있게 되지만, 최적화는 불가능해지며 리소스는 이유없이 계속해서 버려지게 됩니다. 글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분이 지치지 않도록 여기서는 네 가지의 예시만 들어보겠습니다.

11) 교육: 저는 반동철학에 대한 에세이에서 아래와 같이 교육 개혁에 대한 저의 실망감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교육 체제를 개혁할 수 없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의 동기는 (그들이 실제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 여부에 상관없이) 가장 유명한 명문대에 진학하여 좋은 곳에 채용당하는 것입니다. 고용주의 인센티브는 (대학이 실제로 가치를 더하는 학교인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가장 명문대에서 학생들을 뽑아 일이 잘못될 경우 상사에게 자신의 결정을 변호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의 인센티브는 US News 및 World Report 순위에서 측정한 바와 같이 (학생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더 많은 명성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막대한 비용 낭비와 열악한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교육의 신이 이것을 알아차리고 훨씬 더 효율적인 체제로 이어지는 교육 법령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물론 엄청 쉽게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현실에선 우리에게 교육의 신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은 교육이나 효율성과 부분적으로만 상관관계가 있는 자신의 인센티브를 따를 것입니다.

신의 눈으로 보면 “학생은 대학에서 얻는 것이 있을 때만 가야 하고, 기업들은 출신 대학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채용해야 한다”와 같은 말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 교육 체제 내에서 모든 사람은 이미 자신의 인센티브를 올바르게 따르고 있으므로 인센티브가 체제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체제도 변화하지 않습니다.

12) 과학: 위와 같은 에세이에서 발췌하겠습니다.

현대의 연구 커뮤니티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과학 연구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출판 편향(실험이나 연구 결과가 출판 또는 배포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무시할 수 없으며, 통계는 관성적으로 혼란스럽고 오도하는 방식으로 수행되며, 복제 실험은 너무 늦게 실행되거나 전혀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람들이 과학계를 혁신하기에 너무 멍청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출판 편향을 피하기 위해 연구의 조기 등록을 요구하고, 새롭고 강력한 통계 기술을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며, 복제 실험을 수행하는 과학자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말 간단한 방법이지만 과학계에 큰 진보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아마도 저는 다른 과학자들보다 똑똑한가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과학의 신이 있다면 이러한 방식이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모든 사람이 올바른 통계를 사용해야 한다는 과학 법령을 만들고, 복제 실험을 하는 과학자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또 다른 과학 법령을 만들면 쉽게 해결될 문제겠죠.

그러나 알다시피, 신의 관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 체제 내에서는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어느 과학자도 자신의 연구에 ‘일방적으로’ 새로운 통계 기술을 도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연구가 지구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줄어들며, 다른 모든 과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에게는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동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연구 저널에게도 일방적으로 조기등록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부정적인 실험 결과를 발표할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획기적인 발견만 발표하는 다른 저널보다 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체제 내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센티브를 착실히 따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13) 정부 부패: 진심으로 기업 복지(정부가 기업에 제공하는 금전적 보조금, 세금 감면 또는 기타 특별 우대 조치 등)가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계산 방법에 따라 조금 상이할 순 있으나) 약 1000억 달러(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에 지출하는 금액의 3배에 달하는 금액)를 지출합니다. 이 문제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아마 쉽게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기업 복지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왜 기업 복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까요?

정부는 선출되거나 승진하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출 가능성에 대한 최적화의 일부가 기업의 캠페인 기부금을 최적화하는 것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정부 관계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기업 복지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정부 관계자는 기업의 지지를 잃을 수 있고, 기업 복지를 온전하게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따라서 신의 관점에선 기업 복지를 없애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각 정부 관계자의 개인적인 인센티브로 인해 기업 복지는 계속해서 유지되게 됩니다.

14) 의회: 미국인의 9%만이 의회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는 바퀴벌레, 머릿니 또는 교통 체증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하원 의원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의 62%는 이를 찬성합니다. 이론적으로, 두 번 이상의 선거 주기 동안 9%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구를 갖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의원의 인센티브는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동시에 국가의 나머지 지역들은 버리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성공적으로 이를 해내고 있습니다.

신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국회의원은 국가의 선익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체제 내에서 그들은 자신이 선출될 수 있는 길만을 택하게 됩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내용이 워낙 길어 약 4~5부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