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ji Srinivasan: 네트워크 국가, 그리고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방법 (번역)

Clara Ex Ma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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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min readJan 21, 2023

팟캐스트 The Tim Ferriss Show의 #606화로, Balaji Srinivasan이 출연하였으며 2022년 7월 4일 게시되었습니다.

** 첫 부분의 자기소개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잡다한 내용은 생략하였습니다.

Balaji Srinivasan은 7월 4일, <네트워크 국가, 그리고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방법(The Network State: How to Start a New Country)>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해당 팟캐스트의 제목은 책의 제목을 따온 것입니다.

Tim Ferriss (이하 T): (생략) 먼저 현 크립토 시장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Balaji님의 견해와 전망을 궁금해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금 7월 1일에 이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는데요, 인도 지역에 대한 견해 또한 오늘 듣고 싶습니다.

Balaji Srinivasan (이하 B): 네. 좋습니다. 우선 저는 트레이더가 아닙니다. 장기 투자자, 엔젤 투자자, VC에 더 가깝죠. 오늘 Travis Kling이라는 사람이 재밌는 트윗을 했는데요, “나는 현재까지 장장 46개월간 크립토 투자를 해왔는데 이런 불황은 본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파괴되어버린 모든 프로젝트들의 리스트를 읊었죠. 하지만 이러한 ‘대학살’은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만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비크립토 시장에도 일어나고 있죠. 크립토 시장에서 좀더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좀더 체계적인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가격의 등락과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는 전천후 이론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많은 경우 발을 들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유전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시점보다 훨씬 전부터 유전학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머신러닝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10~15년 전부터 관여하고 있던 분야를 사람들이 얘기하기 시작할 때면 다소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제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가격과 무관한 가치를 가진 것들의 예시를 든 겁니다.

암호화폐의 근본적인 가치는 바로 ‘미국과 중국 정부 및 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시스템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질문이자 디지털 자유에 관한 질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실제로 재산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디지털 재산권은요? 혹은 미국 또는 중국 정부 소속의 경찰이 당신의 사유지나 재산을 침해하고, 모든 것을 감시하며, 이를 몰수하기도, 동결하기도 할 수 있진 않습니까?

디지털 재산권이 존재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제가 암호화폐 업계에 확신을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가격과는 상관이 없죠. (생략)

T: 50:50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분산 투자를 하는 견해에 관하여 질문 (이전에 출연한 회차에서 언급했었음)

B: 여전히 견지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투자조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두 생태계는 여전히 엄청나며 당시 저는 일단 구매한 뒤 10년 뒤에 크립토 업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한번 지켜보자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사용자의 수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담론 면에서도 말입니다. (생략: 오픈 소스가 아닌 트위터와 비교해서 생태계가 얼마나 ‘국가’처럼 확장될 수 있으며 이는 가격의 변동과는 별개로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과 그들의 담론 면에서 이미 가치가 높다는 내용) 가장 안 좋은 방식은 뉴스에 등장하는 자산을 산 뒤 그 자산이 또 뉴스에 올랐을 때 파는 것입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우매한 투자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달력에 30일이든 60일이든 90일이든 리마인더를 설정하고 분기별로 포트폴리오를 평가하고 비동기화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생략)

저희는 현재 다시 한번 고변동성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회사들은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사람들을 ‘변동성’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 ‘보호막’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pple에서 노트북을 산다고 쳐봅시다. 그들은 당신에게 가격을 청구할텐데요, 알루미늄 가격이나 백엔드의 어떤 희유원소광물이 변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현물가격으로 산다면 매일 같이 가격이 변화할 것이고 이론상으로 그들의 마진 또한 등락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량으로 변동성이 있는 자재를 구입하거나, 여러가지 선물 계약을 맺거나, 손실이 날 경우를 대비하여 마진의 일부 상승을 포기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합니다. 킬로그램당 X 달러에 일괄적으로 알루미늄을 구매하는 것처럼요.

기업의 이러한 여러 시도를 통해 당신은 $99, $29, $1499 등의 깔끔한 가격에 물건들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정부 또한 소비자들을 위해 이러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총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나 강도가 적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묻자) 여기에는 사회적, 금전적 변동성이 있습니다. 먼저 금전적부터 살펴보죠. 시장의 깊이(market depth)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Coinbase Pro나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를 본 적이 있다면, 구매 오더가 한 쪽에 있고 반대 쪽엔 매도 오더가 있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가격’이라는 개념은 거기서 탄생합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가격을 ‘수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가게에 방문하여 오렌지 주스를 한 병 산다면 정찰제로 가격을 지불하고 주스를 마시게 되겠죠. 자, 당신이 지금부터는 가게의 모든 오렌지 주스를 산다고 생각해봅시다. 첫번째 가게에서 100개의 오렌지주스를 개당 $4.99에 샀습니다. 그 다음 가게에서는 당신에게 $5.50에 100개를 사라고 합니다. 그 다음 가게에서는 $7에 100개를 사라고 합니다. 이제 당신은 시장 가격을 변동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가격의 증가와 함께 당신의 공급량도 늘어났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반대로 움직이겠죠. 가격은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별 구매자처럼 활동하므로 이것을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대량으로 구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당신과 흥정을 하려고 합니다.

시장의 깊이라는 개념은 오버톤의 창(Overton Window)과 평행한 개념입니다. 오버톤의 창은 주어진 시간대에 대중이 정치적으로 수용가능한 것들을 의미하며 그에 대한 대중의 감정은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현재의 중심이라면 과거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급진주의자들이 중심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보수파들이 중심으로부터 밀어낼 수도 있겠죠. 이는 매도와 매수 압력과 비슷합니다. 사실 투표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격과 정책에 대해 매크로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을 수용하고 정책을 수용하는 입장입니다. 그 정책, 그 가격은 당신에게 적용되는 정책/가격인 것이죠. 그보다 훨씬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혹은 특이 상황이 발생한다면 법은 ‘네고’가 가능해집니다.

(생략)

T: 향후 X년간 가장 예측 가능한 기술 개발 영역과 그에 대한 가정은 무엇인가요?

Balaji Srinivasan: 엑소시스트 소송 건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1980년대에 출간된 책 <엑소시스트>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데요, 작가가 해당 영화의 시퀄이었던 그의 책 Legion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즈를 고소한 사건입니다. 법정에서 공개된 서면 변론에서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스트셀러 리스트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것도, 판매량의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는 자료도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사설 내용에 가까우며 그러므로 미국 헌법의 언론 자유 보장 조항에 의해 보호됩니다.”

구글랭킹도 이와 마찬가집니다. Sinatra를 검색할 때 가장 많이 클릭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이는 Sinatra 웹 프레임워크였지만 현재는 Frank Sinatra의 위키피디아 페이지입니다. Sinatra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웹 프레임워크를 찾는 것이겠지만 지구상의 ‘일반적’ 사람들은 오히려 Frank Sinatra를 궁금해할 수 있습니다. Apple을 검색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로 과일 사과가 검색되길 바라진 않겠죠. apples라고 복수형으로 검색하면 과일이겠지만 단수형이라면 보통 Apple 회사를 의미하겠죠? 구글은 아주 현명하게 일하고 있는 겁니다. 랭킹이라는 개념이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요. 베스트셀러 리스트라고 하면 숫자적으로 매겨진 랭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대체로 사측의 견해를 담은 리스트일 것입니다.

저는 ‘트랜스휴머니즘(기술을 통해 인간의 영생을 도모하고 신체적 정신적 발전을 추구하는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Huberman Lab이나, 수명 연장, 뇌-기계 인터페이스, 팔다리 재생기술, 혹은 기타 여러가지 피트니스 및 재생/재활 관련 기술을 의미합니다. (생략) 트랜스휴머니즘 외에도 낙천주의보다는 최적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데요, 트랜스휴머니즘(초휴머니즘)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뜻도, 긍정적인 뜻도 내포하지 않은 ‘변화’를 의미하지만 최적이라는 단어는 개선을 의미합니다. 저는 최적의 피트니스, 최적의 건강, 최적의 금융, 이러한 개념을 의미하려고 하는 겁니다. 제게 앞으로 예측가능한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신다면 트랜스휴머니즘 혹은 최적주의가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략)

다른 하나는 많은 대기업들은 이미 주목하고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덜 와닿는 분야인 것 같은데, 바로 증강현실 안경입니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에 사람들은 융합 장치(convergence device)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LexisNexis의 아카이브를 확인해보시면 빌 게이츠가 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융합 장치가 무엇이냐면, 바로 텔레비전과 비슷하면서도 컴퓨터와 핸드폰 그리고 기타 전자기기들을 합친 것과 비슷한 장치를 의미합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가정의 문화가 형성 되었고 리모컨 또한 상용화되었죠. 그 후에는 텔레비전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유저들이 다른 것 또한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렇게 모든 것을 융합한 기능을 사용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기기는 텔레비전이 아니라 전화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종의 ‘융합 장치’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은 맞았던 거긴 하지만요.

아이폰 이전에도 ‘모바일’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잭 도시가 처음에 트위터를 140자 이내로 작성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 또한 SMS의 페이로드와 마찬가지로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부터) 모바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앞으로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잭 도시와 같이 현명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폰이 나온 후에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 대체 왜 필요한 거야?”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제 친구인 Yisah은 모든 사람들은 모바일(이동이 자유로운)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인터페이스가 더 작고 심지어 UX가 좀더 후퇴하고 기능 또한 더욱 제약되더라도, 언제나 당신의 곁에 항상 존재할 수 있다라는 개념 하나만으로도 1000x 이상의 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모든 앱은 모바일 앱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죠. 현재로선 그것이 정확한 예측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중략)

AR 안경이 제게는 정확히 그런 분야입니다. Snapchat이 최근 개발한 Spectacles(AR 안경)은 CEO인 Spiegel이 계속해서 비난을 받으면서도 밀어붙였던 역작입니다. 하드웨어는 반복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Spiegel이 이를 계속 견지했던 이유입니다. CFO 입장에선 정말 크게 반대할만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마진과 대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Spectacles는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Snapchat의 주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Alexa의 경우도 이미 수천, 수백만 대를 판매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애플, 구글, 아마존 등의 회사들이 각기 다른 스마트 스피커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이 제게는 흥미롭게 여겨집니다. 이렇게 트레이닝을 시키는 데이터가 도움이 많이 되겠죠. 1980년대를 대입해서 Alexa를 설명해보자면 아마 ‘시계 라디오’ 정도가 가장 정확한 설명일 겁니다. 그리고 전화기는 그 이상의 많은 기계들을 통합시켰고요.

솔라나에서 크립토 핸드폰을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1980년대나 90년대에 집을 나서려면 지갑과 열쇠들과 신용카드들을 모두 챙겨야 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죠. 물리적 지갑과 열쇠들과 카드들을 챙겨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현금과 지갑, 자동차 열쇠, 신용 카드 등이 핸드폰에 ‘프라이빗 키’ 형태로 모두 담길 수 있다면 정말 편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결국은 여러가지가 ‘통합’되고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T: 그렇습니다. 핸드폰 테더링이 되는 테슬라나, 애플페이 월렛, 그 이후에 무엇이 나올지가 기대가 되고 사실 그러한 미래에 이미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B: 저는 다음의 세 분야가 어떻게 아주 ‘짧은 문구들’로 수렴되고 있는지가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AI입니다. AI는 몇 개의 단어를 주면 그것을 통해 컴퓨터가 그 의미를 유추하고 그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기술입니다. 둘째는 크립토로, 12, 13, 14 정도의 개수의 단어로 구성된 니모닉을 유저에게 주는데 이 니모닉이 유저의 암호화폐를 모두 저장하게 됩니다. 10 개 남짓의 단어로 1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저장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은 소셜 미디어입니다. 해시태그와 같이 짧은 단어만으로도 ‘사회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영역이라는 점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 세 분야는 인지적, 감각적, 그리고 사회적 기술로 로켓 선박이나 내연 기관과는 달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과 직접 맞닿아 있는 기술인 것이죠.

(중략)

T: 지금부터는 최근에 내신 책 <네트워크 국가>에 대해서 얘기해봅시다. 대체 네트워크 국가가 무엇인지부터 얘기해보죠.

B: 네트워크 국가는 도덕적 혁신성, 국가적 의식, 이름이 알려진 설립자, 집단 행동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 대인 수준의 안정성, 통합된 암호화폐, 크라우드 펀딩을 받은 물리적 영역들의 열도(archipelago), 가상 자본, 그리고 온체인 합의 등의 특성을 띠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온체인 합의를 통해 충분한 인구 소득과 부동산 점유율을 갖고 있어 외교적 인정을 받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정의를 문장으로 내려야지 문단으로 내리면 어떡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는 설명하거나 상호작용하긴 쉽지만 실제로 구현하고 실행하기는 어려운 것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경우 무엇인가를 입력할 수 있는 아주 간편한 인터페이스가 있지만 구글을 구현하는 것은 아주 어렵죠. 사람들에게 네트워크 국가가 아니라 민족 국가(nation state)가 무엇인지를 정의내리라고 하면 아마 다들 어려워할 것입니다. ‘지도 상에 있는 지역들’이나 ‘그냥 국가랑 뭐가 다른가요?’와 같은 답변들을 내놓겠죠. (역자: nation과 state는 둘다 ‘국가’라는 의미가 있다.)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다면 그것이 ‘순환적 정의’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민족 국가에서 민족과 국가는 서로 다른 것을 나타냅니다. 민족은 단어 natality(출생, 탄생)에 뿌리를 둔 단어입니다. 일본처럼 하나의 공통된 정체성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 공통의 출생 성분, 공통의 언어를 갖고 종족적으로도 같은 카테고리에 분류될 수 있는 국민들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국가(state)는 nation(민족적 의미의 국가)이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일종의 법적, 정치적 정부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공장에서 ‘노동’과 ‘관리’의 의미가 다른 것만큼이나 서로 다른 단어들입니다. 하나의 nation은 그 위에 여러가지 state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은 여러가지 종류의 정부들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nation과 state는 둘다 ‘국가’라는 의미로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나 다국적(multinational)과 같은 단어에서는 national이 연방 정부와 똑같은 의미의 국가를 뜻하게 됩니다.

정부적 의미의 국가(state)가 민족적 의미의 국가(nation)과 동일시되는 것은 장단점이 모두 있습니다. 그 둘을 진짜 동일시 해버리게 되면 사람들은 사실 실제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정부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련이 쇠락한 경우만 봐도 기존 정부의 작은 집단이 순식간에 힘을 잃고 사람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민족 국가만큼이나 네트워크 국가가 다중절(multiclausal)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각 절이 각기 다른 실패 유형을 다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고 시도해왔으며 그 과정에는 vc의 계약이 이런저런 조항을 갖는 것처럼 여러가지 종류와 이유의 절차 지연과 청산, 그리고 비례 할당 권리 등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vc 계약의 모든 조항에는과거에 일어났던 갈등이나 실패가 미래에도 발생할 확률이 있음을 예측하고 작성되기 때문에 계약서가 복잡해지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네트워크 국가의 정의 또한 석유 플랫폼에 깃발을 꽂고 ‘지금부터 여기를 국가라고 부르자’라고 했던 과거의 행위들에서 보았던 역사적 실패부터 시작해서 역사적으로 경험했던 수많은 전쟁들까지 다양한 ‘실패’ 케이스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게 네트워크 국가란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정의 또한 아주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민족적 의미에서의 nation이라는 단어를 먼저 정의해보고 싶습니다. 루소, 헤겔, 마르크스, 밀 등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논해온 개념이죠. 2010년대에 저희는 이전엔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던 ‘무엇이 ‘화폐’인가’에 대한 질문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대에는 이제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nation이란 개념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nation부터 설명하는 이유는 사실 nation이라는 개념이 정부적 의미에서의 국가, 즉 state보다 선행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state가 없으면서도 nation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쿠르드족은 민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지만 그들에게 ‘state’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탈로니아의 경우 ‘카탈로니아인’의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state 보다는 nation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지 않는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상수’처럼 여겨져 왔던 것을 변수로 바꾸는 생각이죠. 젠더(생물학적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성별’)가 바로 상수가 변수가 된 사례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모든 종류의 백엔드와 데이터베이스가 새로 작성되어야 했죠.

US 달러가 또다른 예시입니다. 비트코인만 해도 달러가 일종의 ‘변수’로 여겨질 것이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달러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엄청난 ‘변수’로 여겨지고 있죠. 달러를 일정 비율로 교환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생각하는 사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언제든 엑싯(exit)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상수가 변수로 변해가고 있는 이러한 흐름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부턴 정말 세상의 많은 곳에서 이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술 분야에서 미팅이 면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미팅의 형식 또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이를 물리적으로 구매하여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디지털 사본을 읽고 있습니까? 디지털 버전의 모든 것들은 다양한 조합의 가능성을 출현하게 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단순히 전화를 걸 것인지 아니면 10 종류의 다양한 앱 가운데에서 선택하여 대화를 나눌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뉴스를 볼 때도 CBS, ABC, NBC와 같은 대형 방송사가 아닌 다양한 것들 중에 고를 수 있죠.

이는 탈중앙화이자 멋진 ‘분열’입니다. 모든 상수들이 경제학적으로 변수가 되어가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깨어난’ 사람들이 그동안 대중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경찰을 예로 들어보죠. 경찰이 있는 국가에서 살고 계십니까? 사람들은 그간 경찰이라는 개념이 상수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상당히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경찰에게 할당되는 자금을 줄이고 이를 폐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사설란에는 “경찰에게 지급되는 자금을 줄이라는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와 같은 글들이 올라옵니다. 경찰이 변수에 속하게 된 것이며 이는 엄청난 변화죠. 제 책에서 제가 “도덕적 반전(moral flipping; moral inversion)”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도덕적으로 ‘좋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고, 이전까지는 악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선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이제 당신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다른 국가들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민족국가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사실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민족국가가 아니죠. 좋게 쳐줘야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이루어진 이민족적(二民族) 공화국일 겁니다. CGR의 2017년 기사를 보면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 빨간색(공화당 지지자)과 파란색(민주당 지지자) 분포가 아주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저 연결만 되어 있는 것 같은 집단들로 보입니다.

결혼 양상 또한 아주 분명하게 이를 확인해볼 수 있는 변화입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이 “음, 인종은 상관 없이 결혼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지지자와 결혼하며 공화당의 지지자들은 공화당의 지지자들과만 결혼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오히려 더 강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세대에 걸쳐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바로 ‘민족’이 됩니다. (정치) 사상이 생물학이 되는 것이죠. 정치적 색깔이 너무 중요해서 다른 정치색의 사람과는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이는 일종의 개신교, 카톨릭교, 수니-시아파, 혹은 후투 족, 투치 족과 같은 종류의 요소가 됩니다. 이는 분명 사상적인 것이 아닌 부족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사상이 생물학을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바로 변수로 생각조차하지 않았어도 되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입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상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영역들에 대한 재고입니다.

T: 그렇다면 네트워크 국가라는 개념이 어떻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를 코드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당신이 “도덕적 반전”이라고 부르는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건가요?

B: 네트워크 국가는 공통의 도덕적 전제들에 의해 정의되는 온라인 세상을 형성하는 네트워크로 이룩되는 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일종의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때론 명시적인 것이 암시적인 것보다 낫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커뮤니티의 창립자가 자본주의, 법 집행, 기업가 정신, 인간의 발전, 양성(two-genders) 제도에 대한 본인의 선호도를 나열한다고 해봅시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선호도가 있어 어떤 것들은 당신이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주제이지만 어떤 것들은 아주 심각하게 당신의 사상과 대립할 수 있습니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사상을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정의하면 그것은 아주 강력한, 정말 말도 안되게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됩니다. 아주 기본적인 전제들에 커뮤니티의 일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내부적으로 불일치하는 생각들이 없기 때문에 정치의 모습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자금을 모집하고, 어떤 사람들이 집단을 이끌어야 할지를 함께 선출하기도 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특정 ‘목적’을 유기적으로 지지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이러한 네트워크 국가들로 필터링하는 것은 사실 첫번째 단계입니다. 아까 네트워크 국가의 정의가 엄청 구구절절 길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여러가지 종류의 실패 유형들을 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튜브에 가서 ‘국가를 설립하는 방법’을 검색하면 뭐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여러 웃긴 영상들이 나올텐데요, 그 영상들이 모두 뭐부터 시작하라고 하시는지 아시나요? 땅을 먼저 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기랄! 이미 지구상에 주인이 없는 땅은 없네요, 하하하.” 문제는 (물론 대부분 장난으로 만든 영상들이긴 하지만) 이 첫 단계부터 틀렸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토지는 가장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던, 하지만 제로섬(zero-sum)의 결과만 낳았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아직까지도 쿠릴 열도를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 또한 지중해의 여러 섬을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덴마크도 한스 섬(Hans Island)라는 무인도를 두고 아직까지도 어리석은 논쟁을 벌이고 있고요.

왜 한스 섬을 두고 싸우고 있는 걸까요. 무인도인데다가 꽁꽁 얼어붙은 섬이며 위치 또한 이상한 곳에 덩그러니 있는 섬인데 말입니다. 지도를 한번 봅시다. 1800년대에 있었던 오리건 국경 분쟁(54° 40′ or Fight)라고 불리는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54° 40′가 아니면 전쟁이다(54° 40′ or Fight)”라고도 불렸던 이 1800년대 중반의 분쟁은 태평양 북서부의 국경을 두고 일어난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측은 현재 ‘캐나다’라고 불리는 국가의 국경이 54° 40′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영국은 42°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합의된 것이 현재의 미국-캐나다 국경인 49° 선입니다. 자, 이 위도와 경도, 지도 상의 구성물인 이 위도와 경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다투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명확한’ 분쟁 아닙니까, 지도 상에서 확실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째로, 지도라는 것은 항상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닙니다. 1492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영토가 지도 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신세계(New World)” 지역은 지도에 없는 공간이었죠. 지도는 시대를 거치며 점차 개선되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곳에 “용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영역들은 “미지의 세계(terra incognita)”라고 불렸고 오랜 기간 다양한 미스테리 설이 이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우주에 가지 않는 한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미 온라인, 즉 인터넷 세계에서는 아직도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영역이 점차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와 동시에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이러한 종류의 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쟁은 지도상에서는 볼 수 없는 ‘숨겨진’ 전쟁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될 때마다 그것을 두고 다투게 됩니다. (중략) 하지만 트위터와 페이스북 간의 국경(경계)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트위터에는 3억 3천만 명의 유저가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유저는 36억 명이죠. 각 사람에 대해 그들이 플랫폼에서 보낸 시간을 기준으로 경계를 그린다고 해봅시다. 0~100%까지 각 플랫폼에 대해 계산했을 때 100% 트위터에서 보내는 사람과 100% 페이스북에서 보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평균치는 50/50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50/50 선에서 경계선을 그린다고 해보죠. 그럼 약 7천만 명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30/70처럼 경계선에서부터 멀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100/0처럼 완전히 국경과 멀어지는 사람도 생기겠죠.

여기서 제가 묘사하는 것들은 다 “컴퓨터 연산”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데이터 셋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연산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도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략 어림잡을 순 있지만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어딘가에 인수 당하지 않는 이상 어떤 유저들이 이 경계선을 주변으로 위치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안개에 쌓인 것처럼 모호한 영역이죠. 거대한 네트워크들조차 자신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볼 수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제어도(control)와 가시성이 떨어짐을 의미합니다. 결국 네트워크의 사용 등과 같이 가시성이 높은 것들을 위주로 싸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계선’ 지역에 대한 다툼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계선 지역을 얻기 위해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의 프로덕트를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최대한 경계선 지역에서 멀어지고 자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뿐일 것입니다. 3억 3천만 명의 유저를 가진 트위터와 36억 명의 유저를 가진 페이스북은 합쳤을 때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보다도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엄청난 네트워크인 것이죠. 이는 인류에서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규모이며 이들의 경계선 지역을 명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은 인류가 실제로 작동되는 방식의 전체 ‘지리학’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리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세상에서 어떤 두 사람의 물리적인 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몇가지 물리적인 지표들이 있을 겁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지표들이 훨씬 다양해집니다.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이 어떤 지표를 통해 경계선을 새로 긋고 나면 완전히 멀리 떨어진 위치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개개인만이 이런 것이 아닙니다, 각 대륙의 관계조차도 이렇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에서 러시아는 일본, 우크라이나, 이란 등의 나라와 가까이 위치합니다. 러시아라는 나라가 어디론가 완전히 이동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소련과 현재의 러시아처럼 국경의 확장과 축소를 반복할 수는 있겠지만 갑자기 어느날 러시아가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옆에 있게 되진 않겠죠.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러시아의 국력이 정점에 달해 있었지만 현재는 그 정도의 국력을 자랑하진 못합니다.

반면에 이더리움의 비탈릭과 그의 네트워크, 혹은 솔라나 네트워크 등은 갑자기 어느날 바로 옆에 존재하는 네트워크가 될 수 있습니다. 솔라나가 이더리움의 유저들을 데려갈 수도 있고요. 일본 옆의 바다에서 갑자기 떠오른 3000만 명의 섬처럼, 유저들을 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아틀란티스는 실제 아틀란티스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네트워크 관계들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리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양한 것들이 상수에서 변수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민족/국가”를 의미하는 nation이라는 단어였습니다.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이제는 네트워크에 의해 정의되는 여러 민족으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화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지리학”이고요. 네번째는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도덕적 원칙들”입니다.

(중략)

T: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좀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 네트워크 국가의 기본적인 개념들로 다시 돌아와보도록 하겠습니다. 5년이든 10년이든 시간을 한번 설정해보도록 합시다. 첫째는 몇년 내로 미국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중략)

B: 제가 예상하는 것들이 100% 맞을 것이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미국의 무정부 상태, 중국의 집권, 국제 중개자, 그리고 재중앙집중화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5~10년간 전세계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저의 전제입니다.

미국의 무정부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Bari Weiss의 뉴스레터에 작년에 이에 대한 글 “2021년에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변화했는가(How We Changed Our Minds in 2021)”를 적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이변이 없는 한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Tyler Cowen은 이런 사람들을 base-rater(기본 평가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미국이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로 향하고 있으며 우파 혹은 좌파 권위주의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소셜 미디어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 수사학적으로, 개념적으로, 인지적으로 사실인 것은 이들 모두 좌우와 같은 자잘한 벡터 차이와는 별개로 둘 다 반-권력주의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계층 구조에 반대합니다. 좌파들은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라고 주장할 것이며, 우파들은 “당신은 나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구도 나를 제어할 수 없으며 어떤 계층 구조도 정당하지 않다. 나는 권력주의를 믿지 않는다.”가 전제에 깔려있습니다. 결국 한 축에 미묘한 벡터의 합, “반-권위주의”라는 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정부주의적인 합의로, 좌우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계층 구조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무정부 상태는 자유와 평등의 궁극입니다. 높은 사람들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두는 평등합니다. 법과 규제, 계층 구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어쩌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궁극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긴장은 미국 문화 양 극단에 걸쳐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무정부 공산주의는 좋은 것이라 주장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암호화폐 무정부주의를 주장하고 이를 위해 비트코인을 내세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지난 몇 세기간 무정부 주의로 변화하려 시도했던 국가들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웠느냐입니다. Barbara Walter가 쓴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How Civil Wars Start)”라는 책을 보면 (물론 저는 많은 부분에서 그녀의 의견에 공감하진 않았지만) 지난 몇 세기간 미국과 NATO의 개입은 주로 민주주의의 확산을 의도한 것이었으며 이는 무정부 상태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멕시코는 이전보다도 훨씬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았습니다. Ioan Grillo는 “나르코(El Narco; 마약범)”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멕시코에서 얼마나 많은 무정부적 테러리즘과 갱단들의 활동을 낳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와 같은 나라들 또한 일종의 무정부 상태로 빠지게 되었죠. (중략) 2020년에 급성장했던 무정부주의에 비해면 2021년과 2022년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것 같지만, 2017년이나 2012년과 비교해보면 현재 우리가 얼마나 무정부주의로 향해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무정부주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발전할 수 있는 루트는 다양합니다. 미국 내의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과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 간의 싸움일 수도 있고요.

T: 미국 내의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의 수가 그렇게 유의미할 정도로 많은 건가요?

B: 저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즘이 사람들은 잘 모르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의 어느 챕터에서는 중앙화, 탈중앙화, 재중앙화에 대해 다룹니다. 재중앙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중앙화를 믿는 사람들은 “어라, 잠시만. 미국도, 중국도 우리는 계속해서 운영할 수 있고, 미국 지배층도 건재하고 CCP도 존재하네. 그럼 왜 재중앙화를 해야해? 이미 잘 작동하는 중앙화 시스템이 여기 있는데.”라고 말할 것이고, 탈중앙화를 믿는 사람들은 “재중앙화가 왜 필요해? 우리는 비트코인을 통해 정당하지 못한 기관들과 기득권층으로부터 힘을 뺏고 싶은 건데. 우리는 국가를 해체하고 정부의 자금을 빼앗고 경찰의 자금을 축소하고 싶어. 모든 것들의 자금을 축소하고 싶지. 우리는 독재를 탈피하고 감시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거야. 왜 그런 것들을 다시 만들고 싶겠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중앙화라는 개념은 사실 현재 지지자가 가장 적지만 적합한 지지기반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에서 이야기 한 것들 중에 역사의 나선형 이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선형 이론일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평등해지고 있고, 더 성장하고 있다면 그렇겠죠. 실제로 어떤 축에서는, 어떤 지표에서는 인류는 계속해서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수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같은 면에서 그렇죠. 아주 대략적인 누적 차트의 형태를 보입니다. 암흑 시대(Dark Ages)와 같은 때엔 다소 감소하기도 하고 항상 상승세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위로 나아가는 차트입니다.

역사의 나선형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의 우파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강한 사람이 더 나은 시대를 열고, 이 시대에서 그보다 약한 사람들은 무너져내리며 이들은 새로운 ‘힘든 시기’를 열곤 합니다. 그리고 이 힘든 시기에 새로운 강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네번째 전환점(The Fourth Turning)’이라는 책의 내용) 니체와 같은 사람 한명과 그리고 그를 따르는 스파르타인들이 위대한 사회를 세우면 타락한 사람들은 이를 무너뜨립니다. 그 이후에 다시 혼란과 잿더미 속에서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 반복됩니다.

재밌는 것은 좌파들에게도 비슷한 이론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인 혁명가들이 독재자와 싸워 이를 전복시키면 스탈린과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혁명을 타협해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권력층은 이전과 다를 것이 없어 혁명가들의 운동은 다시 한번 반복되죠. 자유주의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관료제에 대항하는 모습과 같은 버전이죠. 훨씬 평등주의적인 것들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고 좀더 평등한 계층구조를 만들고 나면 관료주의자들이 이를 다시 한번 둘러싸버립니다. 그러면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재건해야만 하죠.

저는 이 모든 싸이클이 결국 같은 싸이클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싸이클들이 단순히 더 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우파들의 노력이나, 더 열정적인 혁명가들의 사회를 꿈꾸는 좌파들이나, 더 혁신적인 사회를 꿈꾸는 자유주의자들의 싸이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권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한 싸이클 안에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정확한 타임프레임을 제가 제시하긴 어렵겠지만 5~10년 안의 미국을 그려보자면 온라인에서 결성된 폭도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두 집단 간의 추계학적(stochastic) 네트워크 싸움이 될 것입니다. 금리 인상과 하락의 장기적 그래프를 보십시오.

약 40년 간의 타임프레임에서 보자면 훨씬 하락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오 또한 같은 얘기를 하신 적이 있지만, 우리가 직관적으로 친숙하게 느끼는 싸이클들에 비해 훨씬 장기적인 흐름을 갖는, 인류에게 영향을 실제로 끼치는 “경향”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들숨 날숨과 같은 호흡의 싸이클에 당신이 익숙하다 생각해봅시다. 이는 몇 초에 지나지 않죠. 그리고 하루나 계절, 1년, 대통령의 임기와 같은 개념에도 당신은 익숙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겁니다. vc들은 5~10년 단위의 여러가지 실험들을 수백개, 수천개 보곤 합니다. 사람들은 이 정도의 타임프레임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40~50년 텀의 무엇인가를 트랙할 일은 잘 없습니다. 그러려면 인생을 그것을 관찰하는 데에 바쳐야 할 테니까요.

따라서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려면 위의 그래프와 같이 정말 명확하고 좋은 차트와 자료가 필요합니다. 이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 경제에 더이상 활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준은 화폐를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금리와 같은 지표들이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에 활력을 주려고 시도할 때마다 오히려 이 지표들은 더욱 하락하고 그 상태로 유지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그들은 (아마도 2024년 선거 전에) 금리를 바닥까지 인하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매우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돈을 찍어낼테니까요. 그리고 공급체인에 문제가 생기면서 실제로 재화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것입니다. 중국이 계속해서 항구를 닫고 코로나 락다운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저속 증기선 규제(slow steaming regulations)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B: 중국이 계속해서 항구를 닫고 코로나 락다운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저속 증기선 규제(slow steaming regulations)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T: 아뇨, 모릅니다.

B: 근본적으로 이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화물선의 속도를 규제하는 것으로, ESG 규제이자, 도덕적 반전(moral flippening)의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T: 먼저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달리오(Dalio)를 아까 언급하셨는데,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Ray Dalio는 투자사인 Bridgewater Associates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분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는데요, 당시 Bridgewater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였습니다. 1750억 달러 정도의 규모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Social), 그리고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얘기를 이어가주시죠.

B: 감사합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이미 화폐를 아주 많이 갖고 있는데, 연준에서는 화폐를 계속해서 찍어낼 것이며, 중국의 상황이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재화는 부족해질 것이고, 각종 제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코로나 락다운, 화물선의 속도 규제 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속도 규제는 ESG로 인해 세계의 모든 화물선의 속도를 감속해야 하는 ‘자해성’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비선형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현재 우리가 겪는 인플레이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며, 어쩌면 미국 사회의 분열을 일으킬 초인플레이션까지 갈 수 있습니다. 2010년대 비교적 호황기였을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분노하곤 했습니다. 2010년대, 즉 2019년까지 경제적으로 우리는 괜찮은 상황에 처해있었지만 사람들은 분노에 가득차 있었죠. 실제로 엄청난 불황기가 찾아오면, 재화를 더이상 구할 수 없어지고 인플레이션이 화폐의 가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면 사람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나설 것이며 소셜 미디어는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50명도 넘는 사람들이 자기가 통치자가 되겠다고 나설 것이고요. 이러한 현상은 (솔직하게 말해서) 미국이 부분적으로 불안정에 기여했던 여러 나라들에서 이미 볼 수 있었습니다. 리비아나 멕시코를 한번 기억해보세요. 사람들은 그저 “우리나라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라고 넋놓고 믿고 있는 셈입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우리가 미국의 무정부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861년(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지도를 한번 보시면 당시에는 미국에 연방과 남부 연합군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념과 지리학이 만났던 전쟁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운 전쟁이었죠. 많은 분들이 이 전쟁을 북이 남으로 쳐들어가서 이길 수 있었던 전쟁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수도를 침략하는 것이 단순히 지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사기를 꺾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부 전체가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연합에 통합되자 이들을 이념적으로 전향시키기도 했죠. 노예 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이나, 남북 전쟁 이후의 재건 시대(Reconstruction)까지, 그들은 남부인들의 머릿속의 소프트웨어를 제거하고 새로운 도덕관을 탑재한 소프트웨어를 재설치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양상도 비슷합니다. 나치 독일군을 침략하여 그들을 비나치화 시키고 그들의 수도를 점령하는 식이었죠.

전쟁의 한 가운데에선 언제나 이념과 지리학이 맞닿아있습니다. 이것이 전쟁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지도를 펴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을 갈라보면 예전처럼 주(state)를 경계로 이들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파편화된 프랙탈과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state)보다 작은 군(county) 규모로 여기 조그만 빨간색이 있고, 저 쪽엔 조그만 파랑색이 있고, 그 옆에는 조그만 보라색 지역이 있고, 이런 식입니다. 매우 그룹화된 프랙탈이라고 볼 수 있죠. 물리적인 공간에서 이는 두 민족 국가(nation)가 실로 종이 한장 차이로 맞붙어있음을 의미합니다(cheek by jowl).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두 개의 소셜 네트워크가 멀리 떨어져 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서로 가깝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최전선이 어디에 있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몇년 간을 소셜 전쟁으로 재개념화해봅시다. 물리적인 전쟁에서는 영토를 침략하지만 소셜 전쟁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침략해야 합니다. 탈플랫폼 현상(deplatforming), 해시태그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이를 통해서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상대방 편에 있는 누군가가 파랑에서 빨강으로, 혹은 빨강에서 파랑으로 변하도록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해시태그로 표현되는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인권 운동 슬로건)” 혹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로널드 레이건이 1980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문구로 인기를 끌었으며, 이를 재인용하여 도널드 트럼프 또한 2016년 선거에서 MAGA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와 같은 당신의 슬로건을 상대가 제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전향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깃발 빼앗기 놀이와도 비슷하죠. 당신이 공감하는 문구를 그들 또한 말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당신과 같은 편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깃발을 그들이 흔들게 만듦으로써 당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무효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도시나 옥수수밭을 침공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당신은 전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디지털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념을 변화시키고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를 디지털 전쟁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라는 것은 이것이 추계학적인 디지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roud Boys(미국의 극우, 신(新)파시스트주의의 남성 단체로, 정치적 폭력 집단)나 Antifa(안티파; 반(反) 파시스트, 반(反)인종차별주의의 좌파 단체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폭력과 폭력을 아우르는 전략을 사용한다.) 등의 단체들은 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에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현상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좌파와 우파의 무장한 세력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죠. 그러나 요즘 그러한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치 이벤트처럼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아주 놀랄만한 일이 아니며, 이러한 정치적 폭력 사건들이 미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제가 현재 보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의 진입과 비트코인의 부상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미국 정부의 비트코인 동결 및 제재 노력일 것입니다. 행정명령 6102(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 본토 내에서 금화, 금괴, 금 증서를 사재기하는 것을 금지한 것)처럼요.

T: 비트코인 부상과 관련하여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보여주신 차트에서는 금이 인플레이션 헤지로 작용하는 것처럼 비트코인 또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가 나타난 것 같진 않은데요. 이번에만 다를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있을까요?

B: 기본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관계성은 아주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만 보이곤 합니다. 아까 본 금리 그래프처럼요. 이 경우 저희는 비트코인이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떨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금은 역사가 깊죠. 비트코인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압류’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주식과 같은 다른 종류의 자산은 버튼 하나로 쉽게 압류해버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시위에 참여한 트럭 운전수들의 은행 계좌를 동결해버린 것이나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 자금을 동결해버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수백억 달러가 그저 한순간에 동결되어 버렸습니다. 미국 기득권층이 컨트롤할 수 있는 서버에 자산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죠. 정부가 아니라 기득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정부 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득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테크 기업의 CEO들이나, 언론사들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현재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버튼 하나로 당신의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면 사실상 당신이 당신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현 러시아처럼 전쟁이 발발할 시 이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제 미국 외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곳에 자신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을 줄여 나가야 할지 재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연준 의장인 파월은 몇 주전 세계 시장에서의 달러의 경쟁력에 대한 스피치를 하면서 스테이블 코인을 언급했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 통화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달러의 국제적 역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달러의 국제적 위상을 지원하기 위해 디지털 화폐의 중앙 은행 또한 검토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한 것이 아무나가 아니라 연준을 이끄는 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의미가 남다른데요, 그는 첫째, 달러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으며 둘째, 암호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이 그 위상의 보존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 것입니다.

주변 소음을 제거하고 이 말에만 집중해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의 비트코인에 대한 인식과 입지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면, 10년이 지난 지금 연준 의장이 국제 금융에 있어서 달러의 위상이 재고되고 있으며 암호화폐가 그에 대한 정책적 반응 중 하나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이는 ㅡ, 명백한 ‘승리’일 수도, 혹은 이를 어떠한 ‘영향력’이라 부를 수도, ‘변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동결되거나 압수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만이 당신의 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미국을 벗어나 전세계에 흩어진 수백만명의 비트코인의 지지자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체제입니다. 가치없는 달러를 위해 증권 거래소에 동결된 당신의 자산과는 다르며, 그러한 자산은 전세계를 쉽게 오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비트코인의 지지자들이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지점이겠지요.

금이랑은 어떻게 다르냐고요? 자, 금에는 물리적 금과 증서로 제공되는 금이 있습니다. 그리고 증서로 제공되는 경우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 거래 상대방의 상환, 결제의무 등의 불이행으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증서는 결국 누군가에게 압수 당할 수 있으며 물리적 금 또한 행정명령 6102에서 보셨던 바와 같이 중앙 정부가 칼을 빼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트코인은 한번도 그러한 일을 아직까지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있죠.

(중략)

행정명령 6102와 같은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재벌들을 와해시켜라”, “부자들에게 세금을 매겨라”와 같은 서사가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으며 사람들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비트코인이 몇백만 달러가 되고 달러에 인플레이션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그러한 사실을 다시 깨달을 것입니다.

(중략 — 아랍의 봄에서 소셜 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2010년대의 모든 정치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것이었다면, 2020년대의 모든 정치는 암호화폐에 대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정부는 이를 다루지 않고서는 정부에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중략)

T: 여태까지 말씀하신 부분은 비트코인이 쉽게 정부와 같은 중앙 행위자에게 동결 혹은 압수 당하기 어려운 자산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대중의 편리성이나 접근성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제 3 자에게 암호화폐를 갖게 될 것이며 대다수는 렛저와 같은 하드월렛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사람들이 당신을 잡아서 감옥에 던져버린다면 프라이빗 키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겠죠.

성공적인 네트워크 국가란 대체 어떤 모습인가요? 발라지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또, “비트코인 맥시멀리즘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가장 중요한 이념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또, 방금 전까지 저희가 나누고 있던 대화로 돌아와서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로 작용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오히려 여태까지는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시장에서 즉각적인 유동성을 가진 자산으로서의 리스크만을 갖고 있는 듯 했는데요.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면 매도 현상이 발생하는 그런 자산이요. 일부 투자자들이 전통적으로 보는 것처럼 금이 수행하는 인플레이션 헤지 혹은 다른 종류의 헤지 역할을 반영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암호화폐에 참여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하드월렛을 보유하지 않을 것이고, 시장에 대중이 들어오지 않는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발라지님께서 여태까지 설명하신대로 비트코인이 작동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 걸까요? 미국 달러와 관련하여 비(非)미국 정부들과 중앙 은행들에 의한 평가절하인 걸까요? 사실 좀 상상하기 어려운데,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말하는대로 비트코인이 작동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 건가요?

B: 음, 제가 맥시멀리스트가 아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제가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일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략) 당신이 시리아에 있으며 100BTC를 갖고 있다면 무엇을 사고 싶을까요? 아마 ‘평화’일 것입니다. 폭탄이 이리저리 날아다니지 않는 신뢰할 수 있는 이웃들이 살고 있는 평화로운 거리에서의 산책과 같은 것들을 사고 싶겠죠.

T: 발라지님, 죄송하지만 혹시 사람들을 위해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를 뭐라고 정의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비트코인 맥시멀리즘은 이념인가요, 신념체제인가요?

B: 다양한 정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저는 비트코인 이외의 어떤 디지털 자산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중략)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 커뮤니티는 이제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부 SEC의 잘못도 있는데요. 근본적으로 여태까지 우리는 디지털 자산과 종이 주식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나하면 SEC가 계속해서 “암호화폐는 전부 다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증권이며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버릴 거다!”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저는 디지털 자산과 주식은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각각 말이 없는 마차와 말이 끄는 마차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디지털 자산을 이용해서 모든 유저에게 이를 발행할 수 있으며 이들은 프로그램에 이를 활용할 것이며 이는 온체인으로 관리, 유통될 것입니다. 종이 주식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할 수 있죠. 하지만 종이 주식 또한 회사를 세우는 사람들의 인센티브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며 디지털 자산 또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인센티브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 또한 있습니다.

문제는 디지털 자산의 발행을 ‘병’으로 취급하고자 하는 SEC가 “규제받지 않는 자산의 발행을 모두 처벌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들이 업계에 있는 모든 회사들을 쳐내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이들은 Kik이라는 이름의 꽤나 유명한 회사를 털었는데 Kik을 선정한 것은 순전히 규제를 집행하기 위한 대상을 랜덤으로 고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쁜 행위자를 쫓는 것이 아니라 헤드라인을 최대한 많이 장식할 수 있는 행위자들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SEC의 행동은 Web3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자산과 주식을 서로 비교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식에 이를 비유하지 못하게 되면 이를 숨기거나 피해가기 위해 온갖 말장난으로 현혹시키는 말들을 해야 하며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네.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경우 맥시멀리스트들은 “하하 사실 이건 누군가 거짓으로 위장시킨 주식과 다름 없지, 불법적인 자금 모집이야.”라고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재밌게도 대부분의 맥시멀리스트들은 연준에는 반대하지만 SEC에는 찬성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는 원칙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좋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다른 코인을 규제하여 사람들이 비트코인 외에 다른 코인은 살 수 없게 된다할지라도 그것 또한 가격 상승에 일조하기만 한다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이는 공산주의자의 제로섬 정신과도 비슷합니다. Web3 암호화폐 경제가 조재하지 않았다면 비트코인이 현재와 같은 입지로 부상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이 성장하기 위해선 이것을 둘러싸는 인프라가 계속해서 발전되어야만 합니다. 제게는 이것이 아주 명백합니다.

(생략) 문제는 비트코인의 개수는 2100만개로 정해져있어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의 제로섬 게임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가 얻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는 잃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당신이 비트코인을 하나 얻게 되었다면 누군가는 비트코인을 하나 잃어야만 할 것입니다. 비트코인 커뮤니티에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이더리움만 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는 마치 진보적인 누군가가 주식을 공평하게 나눠줘야 한다거나 사람들을 차별하면 안된다거나 하는 말들에는 찬성하면서 실제로는 흑인 기업들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다거나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는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죠. 만약 진짜로 더 큰 자유를 원하는 것이라면 왜 정부가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왜 구매자와 판매자들이 거래를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왜 자본주의를 병적인 존재로 터부시합니까? 아마도 이는 맥시멀리즘이 이 이념적 매듭 안에서 꼬여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좀 멀리 벗어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봅시다.

T: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꼭 듣고 싶은데요,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말하는대로 비트코인이 작동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 건가요?

B: 제가 지난 10년, 혹은 어쩌면 15년간 배운 것은 바로 비이성의 가치입니다. Web3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술이나 금융적인 면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맥시멀리스트들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도덕적, 사회적, 윤리적인 이유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의 연장선에서 이들이 하는 말 중에 많은 부분에는 저도 공감하지만 이들의 행동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기에는 어떠한 ‘열의’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열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의는 가격이 하락해버리면 팔아버리는 사람과 절대로 팔지 않는 사람 간의 차이입니다. 열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에 대해 얘기를 하고 다니고 이를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과 이것이 없어도 건강한 삶을 이룰 순 있지만 삶의 한 요소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열의는 그것을 자신의 자아의 최상단에 두고 자신의 프로필에 이를 새기며 자신의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아의 최상단에 둔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가장 최우선순위의 답변으로 이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이죠.

미주리에 살면서도 미주리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내리진 않을 수 있습니다. 미주리에 사는 비트코인 옹호자, 기독교인, 공화주의자, 기타 등등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죠. 자아의 최상단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맥시멀리스트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는 특징일 것입니다. 정치적 스펙트럼은 계속해서 회전할 것입니다(좌우간의 싸움에서 상하간의 싸움으로 변화한다는 뜻). 빨간색과 파랑색의 대결에 노랑색을 약간 첨가해서 주황색과 초록색의 대결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주황색 대 초록색은 정치적 담론을 변화시켜 결국 비트코인(주황)과 달러(초록)의 대결을 의미하게 됩니다. 초록색 사람들은 몇몇의 공화주의자들과 보안국가주의자들, 군인들, 신(新)보수주의자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며 결국은 미국 정부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바로 비트코인을 주장하는 주황색 사람들로, 많은 민주당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할 것입니다.

(생략) 기존의 정치 스펙트럼이 좌파 대 우파의 싸움이었다면 이것은 상파와 하파(top vs bottom)의 싸움입니다. 달러를 지지하는 초록색 사람들은 권위주의자들일 것이며 비트코인을 지지하는 주황색 사람들은 자유주의자들일 것입니다. (생략) 여기서 많이들 간과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비(非)백인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주황색 지지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은 백인, 아시아인, 라틴, 흑인을 막론하고 동시에 타격을 입히고 있으니까요.

T: 디지털 금이 실제로 금과 같이 작동하는 시점은 언제일 것이라고 보십니까?

B: 좋은 질문입니다. 좀더 실질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생략) 우리는 아직까지 진정한 사이버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현재 많은 코인들이 거래소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수많은 실패 케이스를 보게 될 것인데요, 맥시멀리즘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개념에 가까워지고 있죠. 앞으로 중앙화 거래소들에 수많은 동결과 압수 명령이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순응하지 않는다해도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요.

빨간색을 띤 주에 속한 거래소라면 주지사가 “우리 주는 암호화폐의 성역입니다.”라고 나서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민이나 낙태 혹은 총기 규제 등의 성역 개념을 생각해보면 이미 성역 조성을 위한 토대는 이미 마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 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저는 맥시멀리스트들이 비트코인 압수 금지를 위한 헌법 수정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자유나 무기 소지의 자유 등과 같이 비트코인을 압수 당하지 않는 것을 기본권으로 제정하는 것이죠. 실제로 상당수의 주에서 이를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헌법 개정 비준 절차가 아닐 수도 있고 필요한 정족수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일부 주에서는 이를 비준할 것입니다. 그러한 주들에서는 “이를 비준했으니 이는 우리 주의 법이 되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비트코인을 압수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면 회사들은 자신들의 서버를 그곳으로 옮기게 되겠죠. 이러한 양상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며 또 두드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엘살바도르나 다른 지역에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궁금한 건ㅡ, 과연 2010년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트럼프가 몇 바이트씩 트위트를 날릴 수 있도록 액세스를 제공하던 버지니아의 서버가 실제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관심이나 가졌을까요? 아마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5~10년 후 사람들은 자신의 디지털 자산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정말로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이를 실제로 동결할 수 있는지도요.

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다른 요소들도 있습니다. 첫째는 양자 컴퓨터입니다. (생략) 중국은 현재 양자 컴퓨터에 사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는 양자 컴퓨터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지만, 양자 암호 해독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그에 비해 양자 암호화 기술의 발전은 더디거나 혹은 비용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운 상태가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양자에 강한 알고리즘은 빠르게 배포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한 쪽을 특별히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기본적인 몇가지 가정들을 깰 수 있는 만능패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종류의 공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통과하는 패킷들을 차단하는 방화벽 공격이나 이를 스타링크 혹은 무작위 포트로 송신해버리고 트래픽을 암호화하여 비트코인을 거래하면서도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게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악행’에는 정말 수많은 방법이 존재합니다.

또다른 문제는 비트코인 네트워크 자체가 온체인 거래를 위한 능력이 높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이를 온체인으로 매번 사용하기엔 어렵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번의 거래로 많은 돈을 가져가거나 보유할 순 있습니다. 2020년 초쯤부터 거래소에서부터 출금되는 코인들의 통계를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요 (아마 Glassnode에서 이러한 수치들을 갖고 있을 겁니다), 재밌는 것은 어떤 특정한 유형의 프로젝트들이 계속해서 거래소로부터 돈을 빼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DeFi(탈중앙화 금융)입니다.

DeFi는 대체로 탈중앙화된 지갑으로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앙화 거래소 중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규제에 의해 그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자금을 점점 더 국지적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럴만한 금융적 인센티브가 존재했던 것이죠. 재밌게도 많은 맥시멀리스트들이 DeFi를 혐오하지만 이러한 인센티브는 실제로 작동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금을 이동하도록 했습니다. 가설일 뿐이라 제가 강하게 내세우긴 어렵겠지만 제 직감으로 사람들이 BTC를 더 국지적으로 이동시켜 이를 WBTC 혹은 renBTC 등으로 바꾸고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할 것 같습니다.

(중략)

T: 2021년 초 저는 짐바브웨의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100조달러 지폐를 올리며 “돈의 가치도 변할 수 있다”고 적은 바 있습니다. 이에 초인플레이션에 대한 토론과 사람들의 “준비 통화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반응들이 이어졌죠.

더불어, 성공적인 네트워크 국가는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중략) 또, 새로운 증거에 대한 합리적인 적응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계십니까? 예를 들어 그 기반이 되는 신념이나 가치들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네트워크 국가에 대한 각종 매개변수를 설정할 때 견고하게 고착되어버리는 종교적 국가가 형성되면 어떡합니까?

먼저 짐바브웨 얘기에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한번 의견 나눠주시죠.

B: 말씀하신대로 어떤 이들은 “준비 통화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들은 사실 맥시멀리스트의 반대 지점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는 절대 합리적인 토론을 이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신념’에 관한 토론이라고 볼 수 있죠. 제 책에 “신, 국가, 네트워크”라는 소챕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요? 전지전능한 신일까요, 미국의 군대일까요, 정부일까요, 혹은 암호학일까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자본주의였을 수도, P2P 네트워크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챕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종교의 일반화’입니다. 종교에서는 신을 믿습니다. 하지만 교리라는 것은 종교를 넘어 정치 혹은 다른 사회운동 등에도 적용될 수 있죠.

교리에는 리바이어던이 있습니다. 그 존재는 신일 수도, 국가일 수도, 네트워크일 수도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종교가 아니지만 국가를 숭배한다는 점에서 교리에 속합니다. 맥시멀리즘 또한 종교는 아니지만 네트워크를 숭상한다는 점에서 교리라고 볼 수 있죠. 정치적 각성(특히 인종차별에 관하여; wokeness)은 일부는 국가, 일부는 네트워크(왜냐하면 그들은 주로 네트워크 위에서 움직이니까요)를 숭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또한 일부는 공산주의자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에 기반했다고 볼 수 있지만 주로 ‘국가’를 숭배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미국은 절반은 신, 절반은 국가를 숭배하고 있었는데요, “신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신을 잃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울 것입니다.”라는 사명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신은 일종의 ‘양념’이었고, 대체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나타냈습니다. 이와 같이 순전히 하나만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를 섞은 하이브리드 형태의 교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첫번째 창구로서 “신, 국가, 네트워크”는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준비 통화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일면 미국 정부를 숭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무신론자인데, 반국가론자이기까지 하다면 말입니다. 네트워크를 믿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맥시멀리스트나 크립토 부족주의자들이 되는 것이죠. 나치나 공산주의도 본질적으로 종교와 비슷합니다. 자신들이 종교 그 자체이거나 혹은 신의 대체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종교들이 그러하든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서로 싸우게 만들죠. 그러므로 이러한 논의는 과학적인 토론이 아니라 종교적인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어느 쪽도 답이 아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답을 선택하기를 강요받은 불행한 사람들 (나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골라야 했던 1939~1945년 동부 유럽의 사람들 혹은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서 골라야 하는 이란-이라크 전쟁 사이에 껴있는 사람들)의 예시와, 미국은 아직 전쟁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이 없으며, (파병을 가는 군인들을 제외하면 다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하듯이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전쟁은 사실 ‘더 높은 그 무엇인가’를 표방하며 명확한 타겟이 없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양 측에 막대한 피해만을 남긴다는 얘기.)

전쟁의 현실은 절대 아릅답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더이상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최대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죠. 상황이 좋지 않은 방식으로 소용돌이처럼 악화된다는 것을 아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시대를 70년이나 유지해온 지금, 사람들은 다시 갈등을 일으키는 사상들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대안일까요?

제 책에서 가장 중요한 컨셉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일종의 계율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앞서 <신, 국가, 네트워크> 챕터를 언급하며 어떻게 하이브리드 형태의 교리를 만들 수 있는지도 얘기했습니다. 네트워크 국가는 하나의 계율을 필요로 합니다. 기술이나 정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신념에 관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맞겠습니다. 이는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도덕적 전제(그리고 그 도덕적 전제는 무엇인가에 아주 집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와 이를 이루는 혁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디지털 상에서 시작될 수도, 물리적으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이 도덕적 전제가 얼마나 공격적인지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무효화시키는 문화는 나쁘다.”와 같이 순전히 온라인으로 행해질 수 있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한 문화는 우리 삶에 위험하므로 나는 반-무효화 사회라는 집단에 가입할 것이며 내 수입의 일정 비율을 지불할 의사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죠. (생략)

그들은 “교통법을 완전히 바꿔버리자.”든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자.”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혁신의 대상은 아주 구체적이고 하나에 집중된 것입니다. 스타트업과 비슷하죠. 스타트업도 결국 어디에 집중을 하느냐가 아주 중요한 곳이니까요. 딱 하나, 변화시키고 싶은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중략: 더 큰 예시로 “탄수화물은 나쁘다.”고 믿는 사람들이 물리적인 세상의 식료품점이나 식당들까지 영향을 끼치는 케이스를 들었다. 또, 1990년대 초반 공중보건 혁신가들이 공중 위생에 대해 제창하면서 모든 파이프, 하수구 등의 기술적인 변화를 꾀한 예시를 들며 20세기에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점차 흩어지며 이제는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기술 혁신가들과 정치 운동가, 사회적 기업가 등의 도덕적 혁명가들이 등장했다고 말하며, 혁명가들을 위한 ‘시장’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중략)

이것이 일종의 컬트가 아니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엑싯’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 원한다면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말 그대로 구독자를 모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 구독을 시작할 수도, 그만둘 수도 있죠. 서비스로서의 사회(Society-as-a-service)와 같습니다. 다음 시대의 SAAS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것은 100 퍼센트 민주주의와 같습니다. 51퍼센트의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51퍼센트만 민주주의고 49퍼센트는 독재정치임을 뜻합니다. 49퍼센트의 사회 구성원은 그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거죠. 지난 30년간 이런 형태의 정치가 편재해왔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던 사람에게 권력을 주지 못했다고, 그러므로 자신 또한 힘을 얻지 못했다고 느껴왔습니다. 미국 뿐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서 선거 결과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주의의 배면뛰기(Fosbury Flop; 등을 아래로 하고 배를 위로 보이며 바를 넘는 높이뛰기 종목)가 있습니다. 100퍼센트 민주주의는 이 커뮤니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커뮤니티에 속하기에 동의하며 언제든 원한다면 그 커뮤니티를 떠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동의를 한 셈으로, 합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입니다. (생략)

T: 100퍼센트 민주주의를 언급하시며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구독하는 방식으로 ‘모집’되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모델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미국 또한 언제든지 떠나려면 떠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시민권과 같은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세금 문제는 뒤따르겠지만 물리적으로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요. 하지만 많은 이들은 실제로 떠나기 위한 방법이나 의지, 혹은 자신이 없습니다. 엘살바도르를 이전에 언급하셨는데요,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 크립토 중심의 커뮤니티에 가입하기 위해 엘살바도르로 이사를 간 뒤에 사실 본인의 이상과 다른 모습을 만약에 깨닫는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거기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그 나라에서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르니까요.

사람들의 실제 이주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자면, 현재까지 가장 언급할만한 재미있는 네트워크 국가, 혹은 그것이 되고자 노력한 사례가 있습니까? 질문을 드린 이유는 한동안 실리콘 밸리에서 온통 ‘씨스테딩(seasteading; 인공 섬 또는 바다에 건설되는 해상 도시/국가로,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 열풍이 불었었기 때문입니다. 씨스테딩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죠.

B: 저 또한 책에서 그에 대해 다뤘습니다.

T: 네. 그러니까, 이렇게 교리의 신조들을 바탕으로 건설된 ‘의도적인’ 커뮤니티들이 그간 계속해서 시도되어 왔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실험되고 있습니다. 혹은 합의나 계율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혹시 어떤 곳들을 주의깊게 보고 계신지, 그리고 언급할만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B: 음,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제 책에서 명확하게 구별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타트업 기반의 사회들과 네트워크 국가들을 제 책에서 얘기하긴 했는데, 저는 네트워크 국가를 좀더 기존 주권으로부터 외교적 인정을 받은 것으로 정의합니다. 다소 특이한 정의인데, “잠깐만요, 진짜로 플로리다나 덴마크나 UN이 당신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그냥 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외교적 인정을 받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주 어려운 일이죠. 비트코인이 처음에는 순전히 하나의 인터넷 현상으로 시작했다가 블룸버그에 리스팅되고, 엘 살바도르의 주권 통화가 되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외교적 인정을 받긴 했지만, 10년의 세월이 걸렸죠. 외교적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 암호화폐와 법정 화폐 간의 거래소 같은 것들이 사실 대중이 완전히 암호화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네트워크가 외교적 인정을 받는 것이야말로 암호화폐 국가와 법정화폐 국가 간의 거래소 혹은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략) 아까 전에 미국의 무정부주의를 언급했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현상, 즉 중국 정부의 통제 강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앞으로 일어날 시나리오는 Roger Garside가 쓴 <China Coup>과 같은 책들, 혹은 그 외의 George Soros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예측한 것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어느 Psywar Group(프로파간다 등을 이용한 심리전쟁 조직)이 한달 전 올린 영상이 있는데요, 사이버 전쟁과 중국의 사진들, 그리고 그들이 중국 내에서 어떻게 심리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생략)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저는 중국 내부에서 일종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이러한 시도는 중국의 체제가 필사적으로 막고자 하는 종류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중국정부는 AI 감시망을 강화하는 등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 감시망은 시민 사회의 누군가와 협력하여 시민 사회의 모든 부분을 뜯어내는 것이죠. 그 결과로 역 물리적 제재(reverse physical sanctions)를 위해 물리적 상품을 차단해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텐데요, “알겠어, 의자를 팔게, 하지만 특정 군사 목적에 필요한 나사들은 팔지 않을 거야.”와 같은 거죠. 혹자는 정부가 이미 충분히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똑똑할텐데 왜 그런 짓을 하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저는 러시아와의 핵 극단 정책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자유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핵 전쟁을 굉장히 가볍게 여기는 태도 등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대만을 찔러보는 등의 행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략) 저는 미국의 무정부 주의가 진행되기 전, 혹은 진행되는 중에 중국의 통제가 중국의 규제를 뒤따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말은 중국인들이 나라를 떠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여권 발급률이 95% 하락했습니다. 그간 내부 락다운을 위해 QR 코드를 발급했는데 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권을 이용한 호구조사 시스템(hukou system)이 존재합니다. 많은 홍콩 사람들이 중국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들이 돈을 들고 떠나버리길 원하지 않습니다. 이젠 다수의 중국인들마저 돈을 들고 중국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Runxue라 부르며, 이는 탈출에 대한 철학(run philosophy)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모든 것에 반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인기가 많아질수록 그것은 일종의 애국심과 결부되어 중국이 끝장나면 돈을 챙겨 모두가 탈출한다는 묘사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러한 탈출 시도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통제가 강화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국 스타일의 무정부주의를 멈췄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시 국가의 형태를 다양한 나라에 수출할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온전히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며 무정부주의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AI 감시망이 당신에 반대되는 단체와 당신에게 반대하는 그 어떤 형태의 목소리까지도 모조리 찾아낼 것이고, 당신은 영원히 국가를 통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권력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피드백도 없는 완전한 통제 사회일 것이며, 무정부주의는 그에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생략)

그리고 이것은 나치 대 공산주의의 문제와 같습니다. 완전한 분권화와 완전한 중앙 집중화로 치환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재중앙화의 다양한 예시들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이 GM을 좋아하지 않고 Ford를 좋아하지 않고 Chrysler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Tesla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소프트웨어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Google 문서 소프트웨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은 Notion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중략)

제가 여기서 말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절대적으로 도덕이 첫번째이고 돈이 둘째라는 것입니다. 용병보다는 선교사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Charlie Rose가 Paul Johnson이라는 이름의 역사가를 몇 년 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그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미국의 식민지는 대부분 실패하지만, 종교적인 식민지들은 종교인으로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겠다는 결속력과 헌신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종교적인 색을 띠는 암호화폐 맥시멀리스트 커뮤니티가 보여주는 겨울(불황기)을 이겨내는 결속력과 헌신이 근본적으로 그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이전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죠. 미국은 앞으로 대공황기와 비슷한, 대 정체기, 혹은 대스태그플레이션기, 대인플레이션기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경험한 것처럼 1~2년 안에 반등을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더이상 돈을 발행할 수 없고 그러므로 현상을 교정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무정부 상태나 모든 반대 의견에 대한 하향식 통제와 침묵이 아니라, 진정한 혁신을 통해 돌파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혁신은 사실 모두가 동의할만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일전에 이런저런 사소한 사례들을 들었던 이유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스페이스X와 같이 매우 거창한 포부를 가진 회사들이나 140자 소셜미디어와 같이 사소해보이는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스페이스X와 트위터 모두 대기업입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탄수화물 zero와 같이 완전히 사소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FDA는 필요하지 않다와 같은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는 기업일 수도 있죠. 그 중에 어느 것이 실제로 먹힐지에 대해선 꼭 알지 못해도 됩니다. 그저 실험을 계속해서 그것을 사람들이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냅두기만 하면 되는거죠. 사회를 일종의 서비스로 제공하고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제 책이 주로 얘기하는 주제입니다.

T: 인도권(India Sphere)에 대한 정의와 그에 대한 견해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B: Sanjeev Sanyal가 발표한 인도의 경제조사에 담긴 그래프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해당 조사에는 수많은 지도가 실렸으며, 그러한 지도들은 야간 조명의 광도(nighttime luminosity), 국도 네트워크, 공항, 수로 등의 데이터를 보여줍니다. (중략) 그래프들도 아주 훌륭한데, 국가 전체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기 때문입니다. 조명, 고속도로 건설, 공항 등과 같은 데이터에 대해서 말입니다. 기본 인프라가 지난 10년간 급격히 향상된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식수를 포함해서요.

인도는 점차 4G 와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이 글도 참조해보시길 바랍니다. 10억명에 이르는 인구가 빠르게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H1-B는 이제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TCP/IP 비자입니다. 이것은 노동 충격, 문화 충격을 의미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대다수의 영어 사용자들이 이미 인도인이거나 혹은 조만간 인도인이 될 것입니다. 영어 문화권이 이제 인도 문화권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공학이나 의학이나 유사 분야에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 유창하지 않았습니다. 인도에서 일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나 세계에서 일하는 법은 알지 못했죠. 인터넷은 그것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인도의 모든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의 밈과 TikTok 등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인터넷 네이티브입니다.

외국인과 같은 개념이 사라지고 이제 그들이 인도인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인도 정부의 예산도 확인해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흐름에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디지털 대학, 드론 농장, 원격 의료, 오픈 소스까지, 기술에 정통하며 매우 미래 지향적입니다. 정말 똑똑합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신, 국가, 네트워크라는 프레임워크로 돌아가서, 저는 인도인들에 대해선 매우 긍정적으로, 인도라는 국가 자체의 미래에 대해선 약간 긍정적인 정도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인도인들의 네트워크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 책이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것 중 하나는 1945년까지 20세기가 미국 대 소련, 미국인 대 러시아, 즉 주변부에 있던 두 세력이 성장해가는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1800년대 아주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 세력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은 그 둘 사이에서 뒤쳐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2040년~2050년에는, 그보다 전일지 후일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세기가 중국이라는 국가와 인도인의 네트워크 간의 싸움으로 부상하는 양상을 보일 것 같습니다. 중앙 집권화된 국가와 달마교의 탈중앙화된 글로벌 네트워크 간의 싸움 말입니다. (이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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