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Dalio와 비트코인

허진호 (Jin Ho Hur)
hurxyz
Published in
8 min readJan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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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Dalio가 드디어 비트코인에 대한 생각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https://www.bridgewater.com/research-and-insights/ray-dalio-what-i-think-of-bitcoin

냉큼 읽어 보았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생각의 어느 정도 전향적인 변화를 내심 기대했었는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약간 실망’ 이었다.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시각이 변화하기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기관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조심스럽게 부정적’인 시각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volatility, 규제/제도 변화 가능성을 가장 큰 리스크로 지적하는 것은 10년 이내의 타임라인에서는 유효한 시각이지만 수십년, 수백년의 시각에서는 크게 의미없는 시각이라고 보며,

금이 Store of value로 자리 잡는데 수 천년이 걸렸고 은이 한 때 그 대체재 역할을 하려다가 실패한 긴 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이제 막 10년이 넘은 신생 자산 (asset class)에 전통 자산과 같은 잣대를 적용한 것은, 이 기술이 가져 올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면 기존 자산 운용사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트코인에 대하여 지적한 여러가지 이슈에 대한 Ray Dalio의 생각은 (정확히는 Ray Dalio의 전반적인 사고의 흐름, 내지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를 분석하고 정리한 애널리스트의 생각이겠지만) 대체로 전통적인 기관 투자자가 크립토에 대해서 가지는 시각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한발짝 물러 서서 보면,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기본적으로 ‘조 달러’ 규모의 전통적인 기관 투자자 시각는 비트코인이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규모와 그 대비 ‘너무 큰 리스크 (volatility, 규제)’를 고려하면 이러한 ‘조심스럽게 부정적’인 시각이 당연하기도 하다.

‘나는 가치 투자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B/S로 표현되지 않는 테크 주식에는 투자할 수 없다’며 버티다가 결국은 항복하고 테크 주식을 보유하기 시작한 워렌 버펫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 문서에서 (기존에 미처 주목하지 못 했던, 하지만 이 문서를 읽으면서) 새롭게 주목하게 된, 비트코인의 한정된 발행 수량이 가질 수 있는 장기적인 한계에 대한 생각이 문득 머리를 때렸다.

수천년 동안 안전 자산 역할을 해 온 금이 지금도 연간 1~2% 내외의 안정적인 추가 공급이 (금융적 의미로는 인플레이션이)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해,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21m의 hard limit으로 정해져 있고 몇 년에 한 번씩 그 공급량이 반감되는 (금융 시각에서 보면) 극단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의, 즉 장기적으로 너무 ‘귀해질’ 자산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비트코인의 제약이 가격 상승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과거 몇 백년간 금의 역할을 보면 이 점으로 인해 비트코인은 극단적으로 제약이 큰 자산으로서 (금태환 시기의 금이 그랬듯이) 궁극적으로 경제 규모의 성장을 극도로 제약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경제와 decoupling이 될 것이고, 그 결과 몇 십년 이상 장기적으로는 (지금 대부분의 크립토 enthusiast가 비트코인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내러티브로 삼고 있는) ‘디지털 금’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겠구나 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그 안에서 살고 있는 fiat money 시스템은 1694년 영란은행의 설립부터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주조된 화폐가 아닌 (literally) 프린트된 화폐 (즉, fiat money)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의 중국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fractional reserve에 기반하여 신용을 창출할 수 있는 fiat money라기 보다는 (‘약속 어음’에 해당하는) IOU에 불과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고,

‘fractional reserve 기반으로 신용을 창출하고 경제 규모의 성장에 따라 통화 팽창이 되어 경제 흐름의 바탕이 되어 주는’ 의미에서의 fiat money 시스템은 17세기 영란은행의 설립부터라고 본다.

금본위제에 기반한 fiat money 시스템이 운용되고 여기에 영국에서 발명된 ‘채권’, 암스테르담에서 발명된 ‘주식’ 시스템이 더해져서, 이후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 규모 팽창을 받쳐 줌으로써, fiat system이 산업혁명 이후 급 팽창한 인류의 부를 창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였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사회 시스템을 아주 단순화해서 해석하는 공돌이의 시각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금본위제는 여러 번의 금융 위기 때마다 정책 결정자 (중앙은행이 있을 때에는 중앙은행, 없었을 때에는 최고 지도자)들이 가장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었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예를 들면 30년대 대공황을 극복과정에서 일반인의 금 거래 자체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기 까지 하였다.

일반적으로 금본위 체제 하의 금융 시스템은 아주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경제 규모가 급격히 커지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금본위 체제 하에서 경제 규모 성장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생긴 왜곡이 누적되면서 (예를 들면, 30년 대공확 극복 이후 지속적인 경제 규모 확대에 따른 화폐 발행이 계속되어, 금본위제 임에도 불구하고 시중 통화 규모가 중앙은행 보유 금보다 훨씬 큰 규모로 운용되었고, 이에 대한 시장의 챌린지가 계속 됨에 따라)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된 1970년대 초 금태환을 포기하면서 금본위 체제가 완전히 해체되어 버리고,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사실상 금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달러가 금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은 막대한 무역 수지 적자 (및 재정 적자) 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달러 프린팅을 통하여 금융 시스템 운용이 가능한 unfair advantage가 주어지는 (그래서, 프랑스의 드골이 그렇게 강하게 반대하였던 달러 기축 통화 시스템의) 불합리한 점이 있고, 또 이러한 fiat system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금융가의 행동이 2008년 금융 위기, 또 이번 GameStop 사태로 불거진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낳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금태환에 의한 제약이 없어짐으로써 1970년대부터 (19세기, 20세기 초보다 훨씬 더 빠른) 글로벌 경제 성장이 가능해졌고, 또 (대공황보다도 그 규모가 훨씬 더 컸던)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의 팽창을 가져온 1720년 산업혁명 시작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경제 성장은 그 성장률이 연평균 1% 수준이다. 이에 비해 1900~2000년 100년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3% 수준이다. 특히, 20세기 전반 대비 후반의 놀라운 성장률은 주목할 만 하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글로벌 GDP 성장

물론, 이 과정에서 부의 불평등이 더 극대화된 것도 사실이다.

2차대전 이후 부의 재분배가 급격히 개선되어 (상대적으로) 1970년대 피크를 보인 후,1980년대 초 대처, 레이건으로 시작된 전반적인 시스템의 보수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1980년부터 부의 불평등이 강화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 현재 기준으로 19세기말 부의 불평등이 역사상 최대치였던 ‘벨에포크 시대’의 80–90%까지 회귀된 과정의 근간도 사실 금태환 해체에 기반한 fiat system이 그 기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쨌든, 지난 50–60년 간 (인류 역사 상 유례가 없었던) 경제 규모의 급 성장과 팽창, 부의 재분배의 강화 및 약화 과정이 앞으로 수십년, 수백년 이후 어떤 형태로 바뀌어 있을지를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대부분의 인류가 누리고 있는 (역시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를 만드는데 fiat money 기반 금융 시스템이 그 연료 역할을 해 준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금 시스템은 이러한 경제 팽창과 parallel하게 운용되면서 팽창된 부의 일부를 담아 두는 store of value 역할을 하면서 꾸준하게 (경제 성장률 + 인플레이션 — 금 인플레이션) 수준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적당하게 안정적으로) 상승해 왔다. 묘하게 지난 300년간의 경제 성장률과 금 인플레이션 율이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온 것이 이러한 안정적인 시스템 운용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즉, 너무 흔하지도 않고 동시에 너무 귀하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보관과 교환이 쉬운 이러한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수 천년간 은이나 다른 귀금속 등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결국 유일한 store of value 도구로 금이 살아 남았다고 본다.

21m개로 제한되고 몇년마다 인플레이션 비율이 반감되는 비트코인은 (경제 성장률 + 인플레이션 — 비트코인 인플레이션) 수준의 가격 상승을 담아 내기에는 너무 ‘귀한’ 비트코인이 되어서, 바로 이 점때문에 몇 십년, 몇 백년 긴 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금의 역할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조만간 거의 0%에 수렴할 비트코인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향후 적어도 수십년간은 3% 수준, 그 이후에도 1~2% 수준을 유지할 경제 성장률만 고려하면, 100년만 고려해도 그 가격이 수십배 오를 것이고 여기에 제한된 수량을 고려하면 그 가격은 더욱 폭발적 상승을 거치다가, 결국은 (굳이 비유하자면) store of value라기 보다는 ‘너무 귀한 보석'이 되어 버린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궤적을 밟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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