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지털 노마드인가, 놈팽이인가? — 3편

Hwangoon
잉여라잎 인 뱅쿽
4 min readJul 25, 2017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고

“떠나는 이들과 남는 이들”

몇 번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돈을 까먹다 보면 금세 한국이 그리워진다. 내가 상상했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과는 동떨어지게 집에만 처박혀있기 일쑤고, 무기력하며,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해외생활 3개월 차쯤에 이런 상태가 된다. 물론 해외에 오래 체류한 경험이 있다면 그 시기는 좀 더 늦게 올 것이다.

그런 시기가 도래하면 당신은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허송세월을 보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첫 한 달은 당신이 출발 전에 계획했던 집 구하기, 근처 탐색, 몇몇 관광지를 방문하면서 금세 지나갔다. 두 번째 달부터는 여유롭게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세 번째 달이 지나있었고, 당신은 뚜렷한 계획 없이 집에 처박혀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건 그냥 끝을 계획하지 않은 해외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암담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우울해진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이 노마드의 삶을 결정 한 순간부터 정해져 있던 수순이다.

나는 20대 중반을 이집트에서 국제협력요원으로 보냈다. 출발 전에는 영어공부부터 해서 사업 구상 등등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남은 것은 아랍어와 몇몇 이집트 친구들이 전부다. 중요한 것은 고작 남은 그 두 가지는 출발 전에 계획했던 수십 가지 계획 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또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계획이 없으니 나에 대한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소 수동적이고 냉소해 보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편했다. 그게 그럭저럭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남는 사람의 입장으로 떠나는 이들을 보다 보면 이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이들은 아주 잘 짜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담컨대 계획대로 실천하기는 아주 어렵다. 두 번째는 융통성이 거의 없거나, 또는 지나치게 융통성이 넘친다. 전자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커뮤니티에서 소외되게 된다. 세 번째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애초에 쉽게 포기하는 성격인 것이다. 즉, A(한국에서의 삶) 보다 나은 B(해외에서의 삶)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A를 포기했기에 어쩔 수 없이 B를 선택한 경우이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새로움이라는 연료도 익숙함이 지배하는 순간부터는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익숙함이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들 때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도 된다. 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도 된다.

당신이 한국을 떠나 올 때 그 누구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었다. 물론 다시 돌아가는 것 역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포기가 아닌 결정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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