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뭘까

지속 가능한 글쓰기에 대하여

Junhyuk Jang
hyuk
3 min readSep 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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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호혜성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업무처럼 글을 쓰고는 했다. 기록이라는 행위는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가끔 엉뚱한 순간에 욱하게 되고 이는 마치 호혜성의 원칙처럼 아프게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그럴듯한 글 한편에 다가오는 말들은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한 긍정적인 반응이라 여겼다. 그런 까닭에 더욱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긍정의 시간이, 기록의 순간이, 머리에서 손으로 손에서 문자로 이어지는 장면들이 한 동안 뜸했다.

필요 충분 조건

왜일까. 무엇이 기록을 멈추게 했을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기록 자체를 멈춘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록을 작성하고, 서로의 의견을 문자로 주고 받으며 조율해 나가는 시간은 차고 넘쳤다.

공적인 글쓰기가 아닌 사적인 글쓰기, 자유로운 메모가 아닌 구조화 된 글쓰기의 정지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필요한 것 이외에 잉여의 사고가 정지되면서 글쓰기도 함께 정지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글쓰기에 사용할 여력이 없다.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화면 너머의 실없는 영상들 뿐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거나,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하여간에 어떤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절박함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내게 절박한 것은 휴식 뿐. 정리하고 싶은 생각의 파편들에 눈길을 줄 겨를이 없다. 글을 쓰기에는 마련된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

부끄러운 얄팍함

오랜만에 생긴 일상의 틈에서 짧게나마 이렇게 끄적여 보기 전에, 예전에 썼던 글을 무심히 다시 읽어보았다. 대부분 도구의 사용법이나 업무의 팁 같은 실용서에나 어울리는 글이었다.

‘좋은 것을 먼저 배우고 익혀 이렇게 공개하노라’ 같은 시혜적인 입장에서 썼던 것일까. 누군가는 도움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구겨서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더 살필 수 있는 부분을 생략하거나, 적당히 덜어냈어야 하는 부분을 방치하거나, 혹은 둘 다거나. 어딘가 너무 얄팍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이상의 자아에 끼워맞추듯 써내려간 것은 아니었나 싶다. 같은 부류의 글을 더 썼다가는 저렴한 실체를 금방 들켜버릴 것 같았다.

왜 쓰냐건 웃지요

그래도 쓴다. 앞으로 언제 또 이렇게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을 옮겨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은 써 본다. 휘발되는 생각을 잠시라도 붙잡고 싶고, 정리해두면 언젠가는 또 들춰보고 부끄러워 할 수 있을테니.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라고 위로해본다.

그런 척이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날 정말 ‘척’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상의 자아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부디 지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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