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용운동 2

[829 기억을 더듬다]

여 백
[ in Daej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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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원하게 열린 운동장. 체육대회의 기억. 맨땅의 쿠션감. 막걸리파티와 흥겨움. 젖고 젖고 … 2차 3차 가서 또 젖고…. 운동장 보니 함께 떠오르는 기억 ‘포도밭 그 청년들’. -아는 사람만 아는 기억.

언덕. 언덕에 서면 보이던 6호관. 그 언덕 넘을 때 맞이하던 매서운 겨울바람. 혹은 시원한 가을바람.

6호관. 수없이 오고 갔던. 입구 계단에 앉아 놀기도 많이 했었는데. 건물 바로 앞 농구장에서 농구하다가 땀 범벅된 채 강의실로 바로 갔던 기억. 농구장의 기억. 지금은 사라진 농구장. 농구장 옆 잔디밭에서 막걸리 먹던 기억. 지금은 작은 숲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네.

그리고 그 숲속에 詩碑 하나.

이 동영상은 언제 촬영됐는지 알 수 없음. 인터넷 뒤적이다 찾은 동영상. 홍희표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말씀 중.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그리운 스승. 우리의 큰 스승님…. 정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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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호관 안으로 진입.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그러나 아, 이미 이 곳은 국문과 공간이 아니었으니..

우리 뛰놀던 옛 기억만 남았을 뿐, 이젠 낯선 타인의 공간. 우당탕탕 떠들다 박문성 형님께 혼나던 과사무실도, 시끌벅적하던 3층로비와 복도도, 6310, 6311… 강의실도, 5층 자료실도 이젠 추억만 남았네. 아, 아쉽다.

한 쪽 계단 앞 모퉁이 복사/제본실. 아, 그래 기억난다.

옥상으로 슬쩍 올라본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풍경. 고층주공아파트 가는 방향 ‘숲속집’ 고.갈.비는 오래 전에 사라지고, 그 옛날 생렬이형 살던 자취방도 지금은 아파트가 되었겠지.

#.6 고갈비의 기억. 선배들과 많이 갔었지만, 야외수업으로 그 곳 내려가서 막걸리 한 잔씩 걸치며 풍류를 즐겼던 그 때. 이름도 참 잘 짓지. 고등어갈비와 된장찌개가 맛있었던 그 곳은 내가 입학하기 전부터 ‘고갈비’로 불리고 있었다. 선배들은 그 곳에 가면 항상 물었다. “고갈비가 왜 고갈비인줄 알아?” 그러면 누군가가 꼭 그렇게 대답한다. “고갈비 맛있는 집, 고갈비집.. 그래서 고갈비 아닌가요?” ….쯧쯧쯧, 술기운에 얼굴이 불그레해진 선배는 또 장연설을 준비한다…. 고갈비는 말이지, 고독 갈등 비애야. 고.갈.비. 그리고는 고갈비에 얽힌 사연들을 연대별로 읊어준다. 전설들의 이야기.

  • “아, 생렬형 잘 살고 있나요? 대전에 있으면서도 너무 보기 힘들어요. ㅎㅎ 하긴 규태도 잘 못 만나요.”

#.7 자, 그러면 이제 학교 순례가 어느 정도 끝난건가? 이제 하산? 하산하려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이사 간 국문과 아지터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그 건물이 1호관이었나. 3호관 옆. 옛날에 우편물 오면 우편물 꽂혀 있던 곳. 그 건물로 국문과가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나서 발걸음을 옮긴다. 미로 같은 복도, 찾아 헤매다 과사무실을 찾았고, 그 옆 자료실 같은 공간 ‘수업준비실’이라는 곳도 찾았다.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했고… 한 층 내려오니 익숙한 교수님 두 분의 연구실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두 분 뵙기는 했었는데, 다시 뵙고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그 때는 혼자 말고 여럿 함께 뵙고 싶다.

문득, 10여년전 아이러브스쿨이 궁금했다. 아직도 그 공간이 있을까. 아이러브스쿨 국문과

모두 잘들 계신가요? 안녕들 하신가요?

#.8 왔던 길 내려 가는 길. 저 아래로 노을이 지고 있다. 내리막길 페달이 경쾌하다.

바퀴가 신나게 달려간다. 문화까페 지나 우리들분식 지나, 내리막길 쏴-아……… 발길은 나도 모르게 그 곳을 향해 달린다. 으레 가야만 할 것 같은. 20년 넘게 한결같은 전화번호. 282-8845.

잠깐 인사만 드리고 가자, 아저씨 아주머니 얼굴 떠올리며 경쾌한 체인소리와 함께 도착. 그런데…. 불이 아직 안 켜져있다. 방학 때라 아직 시작을 안 하셨나? 가까이 가 보니 일상적인 영업 가게 같진 않았다.

내부수리? 아님 옮기셨나….? 왠지 쓸쓸하고 서글펐다.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불을 밝히고 있을 것 같은 공간. 왜 진작 와보지 못했나 후회도 됐다. 지금 상황의 이유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가장 지근에 있는 불성후니에게 물어봐야겠다. 교수님들만큼이나 꼭 뵙고 싶은 두 분. 멋모르던 학창시절 나를 품어주셨던 두 분. 꼭 만나뵙고 싶다.

http://youtu.be/llvPM5vJ36g

#.9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취방이 있었던 그 길들을 다시 훑으며 옛 생각을 했다. 일방통행 길 달리며 그 생각을 다시 한다. 올 봄 벚꽃 필 무렵에 꼭 다시 찾을거라고. 잊고 지낸 수많은 것들, 수많은 사람들 이젠 좀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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