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는 인류가 온다

에피소드 2 :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

Chancheol Jeong
ixi media
34 min readSep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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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는 누구인가?

디지털은 ‘있다(1)’와 ‘없다(0)’의 무한에 가까운 반복이라서 그럴까? VR HMD를 쓰면 한순간에 우리는 마치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공간 같은 디지털 가상공간의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디지털이 완벽하게 통제하는 시공간이 또 있을까? 1982년 개봉한 디즈니의 야심작(물론 엄청난 규모의 상업적 실패작이었다) <트론 Tron>은 컴퓨터 내부의 디지털 세계를 가상현실로 묘사했다. 1980년대 당시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활성화되던 시절, 디지털 기술을 가상과 연결시켜 바라보는 것은 디지털이 낳은 상상적 소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 가상현실은 제2의 현실이 되었다. 인류는 이제 디스플레이 장치를 머리에 쓴 시대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아직은 전면화되지 않았지만 VR HMD의 형태든, AR 안경의 형태든, 디지털 이미지만을 보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보는 시대는 이제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온 초근접 미래다.

알다시피 근대의 시각문화는 파노라마, 매직랜턴, 사진, 영화, 와이드 스크린, 3D 및 4D 스크린, 그리고 프로젝션 맵핑등의 시각 미디어를 이용하여 몰입을 향한 열망을 확장했다. 얼핏 보면 VR 미디어는 장구한 몰입의 욕망을 완벽히 실현할 것 같은 ‘완전 몰입의 테크놀로지’처럼 보인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모든 기계장치나 도구에는 복수의 시간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즉, 이 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구식적이고,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몸짓을 항상 동시에 만든다. 앞서 나는 자동차를 살펴보았는데, 이것은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예로 볼 수 있다. 모든 역사적 시기도 마찬가지다. 구식화된 것, 동시대적인 것 그리고 미래적인 것을 동시에 끌어 가져와 복수시간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물, 하나의 상황이란 다채롭고 복수시간적이다. 여기서 시간은 다양하게 주름져 한데 뭉쳐진 형상을 띤다”(Michel Serres and Bruto Latour 1995: 60).

위 인용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세르는 신석기 시대에 발명된 바퀴와 내연기관 장치 그리고 전자 장비 등 수천수만 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자동차를 기술의 복수시간성의 예로 들었다. 인류를 가상현실로 연결하는 HMD 장치도 마찬가지로 복수시간적 기계장치다. 결코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는 아니다. 기원전 4세기 경에 처음으로 등장한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18세기의 파노라마(panorama) 장치, 19세기의 입체경(stereoscope), 19세기 말의 마레오라마(Maréorama)와 시네오라마(Cinéorama), 20세기의 홈즈 스테레오스코프(Holmes Stereoscope), 헤일즈 투어(Hale’s Tours)와 센소라마(Sensorama)와 서클비전 360 (Circle-vision 360) 그리고 최근의 LCD 스크린과 네트워크와 헤드 트랙킹 센서 등 첨단 디지털 시각 테크놀로지의 아상블라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향해 달려가는 몰입이 과거의 오래된 몰입의 미래라는 주장은 아니다. 분명 시각을 통한 현실의 몰입적 재현과 체험은 오래된 인류의 문화이자 열망이었다. 하지만 시대별로 몰입을 향한 인류의 열망에는 차이가 있다. 디지털 가상현실이 현실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또다시 몰입을 향해 달려가는 디지털 인류의 시각문화의 본질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몰입하는 인류가 온다’의 두 번째 에피소드,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에서 나는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가 추구하는 몰입을 ‘완전 몰입 (total immer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8세기에 등장해 대략 지난 300년 동안 영속했던 인류의 몰입문화는 스크린을 응시하는 수동적인 방식이었으며, 지극히 정신적인(psychological) 차원이거나 현실의 물리적 요소에 기반한 정신물리적(psychophysical) 몰입이었다. 이것은 미디어고고학자 에르키 후타모의 주장이기도 하다(Huhtamo 2013: 201). 나는 21세기 인류가 욕망하는 몰입은 순수하게 가상적인 ‘완전 몰입’이라고 주장한다. VR HMD는 근대 시각문화가 상상에 의존했던 몰입의 요소를 현실화함으로써 완전 몰입의 단계로로 우리를 초대한다. 응시의 몰입에서 이미지의 통제자로서 관객의 위상이 변했다. 스크린은 완전히 투명해져 매개의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완전한 몰입 속에서 인류, 즉 가상세계 속의 ‘나’는 누구인가? 인간존재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몰입적 시각문화를 향해 질주하는, 하지만 과거와 달리 더는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이 아닌, 더는 미메시스에 국한되지 않는 몰입의 문화를 창조하는 인류의 정체성과 시각문화의 지평에 대한 물음이다.

1. 파노라마(Panorama): 18세기, 몰입하는 인류의 출현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몰입을 꿈꾸었다. 18세기 몰입적 시각문화를 개시했던 파노라마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791년 5월 18일 에딘버러 출신의 화가 로버트 바커(Robert Barker)는 ‘파노라마(The Panorama)’라는 새로운 몰입형 시각문화상품을 선보였다. 바커의 파노라마는 360도 원형 건물의 형태로, 런던 시내 중심가 레스터 스퀘어(Leicster Square) 28번지 자신의 이름을 딴 바커 하우스 뒤편에 세워졌다. 내부 벽면에는 ‘버드 아이 뷰’ 시점으로 내려다본 런던의 도시풍경이 담긴 그림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이어졌다. 그림의 전체 길이는 가로 426 미터, 세로 24 미터 였고, 그림은 가상의 관람자를 둘러싼 도시 풍경이었고, 원근법에 기초해 그려졌다. 관객은 출입구에 들어서 1층에서 3층을 오가며, 층마다 전시된 몰입적 풍경을 즐겼다. 바커의 파노라마는 실제로 풍경의 배경이 되었던 증기식 밀가루 공장 ‘알비온 밀스(the Albion Mills)’의 지붕에 올라서서 런던 시내를 내려다보는 듯한 가상적이고 몰입적인 체험을 선사했다. 바커의 파노라마는 여러 도시로 옮겨져 전시되다가, 1793년 처음 공개되었던 레스터 스퀘어 건물에서 상설 전시되었다. 바커는 “마치 정말로 거기에 있는 듯한” 상황을 전달하려는 것이 파노라마 제작의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유럽의 각 대표 도시마다 파노라마 건물이 건설되었고, 대도시의 주요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그림1 ] 로버트 바커의 파노라마. 위: 레스터 스퀘어에 위치한 바커 파노라마 건물의 내부 모습(1793년). 아래: 1791년에 최초로 공개된 바커의 파노라마. 자료출처: 위키 커먼스(Wikimedia Commons)

파노라마는 오로지 시각적인 방식의 가상적 도시 관광을 추구하지 않았다. 파노라마 내부는 관객이 걸으며 런던 도시 풍경을 내려다 보도록 설계되었다. 중앙에 설치된 전망대에 도착하면,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전망대는 의자나 난간 등 실제 관광지의 전망대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요소는 실제 전망대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시각적 몰입을 더욱 극대화하려는 목적에서, 즉 가상성을 지우기 위해 설치된 장치로, 파노라마 체험의 중요한 일부였다. 관람객은 난간에 기대어 도시 풍경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숙여 빌딩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어느 관람객은 의자에 앉아 사색을 즐겼으리라.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관객과 가상공간을 이어주는, 인터페이스이자 인터랙티브 장치였다.

[그림2 ] 콘스탄티노플 파노라마(Jules Garnier, 1880–1890)

바커가 최초로 선보인 파노라마는 거대한 원형 건물의 형식으로뿐만 아니라, ‘무빙 파노라마(moving panorama, 기다란 그림을 말아서 펼쳐서 보여주는 방식)’과 ‘엿보기형 파노라마(peeing panorama, 작은 구멍에 눈을 대고 들여다 보는 방식)’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18세기와 19세기 동안 유럽에서 몰입적 시각문화를 장식했다. 1831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어느 전직 해군 병사는 나일 해전을 재현한 ‘무빙 파노라마’를 보다가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침몰하는 대영제국의 함선 ‘퀸샬롯호(the flagship Queen Charlotte)’을 구출하기 위해 파노라마 아래에 배경막으로 설치한 초록색 커튼을 바다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진동, 바람, 빛, 냄새 등 다양한 감각적 특수효과가 가미되었다. 비시각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물리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더욱 관객을 가상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당시 파노라마 기반 시각문화공연은 시각적인 요소로만 관객을 가상의 세계로 초대하지 않았다. 이동공간이나 의자나 난간과 같이 물리적인 요소와 결합이 되어 몰입을 극대화했다. 진동, 바람, 빛, 냄새 등 다양한 감각적 특수효과가 가미되었다. 비시각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물리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더욱 관객을 가상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모두 가상의 세계에는 결핍된 현실 세계의 물리적 요소였다. 1889년 뉴욕 유니온 스퀘어 극장에서 공연된 <카운티 페어(The County Fair)> 연극에서는 대형 트레드 밀을 설치하고 그 위에서 연기자가 실제 말을 탔다. 배경에 설치된 무빙 파노라마는 말의 속도에 맞추어 빠르게 전개되었다.

[그림3 ] 1889년 <카운티 페어> 연극에 사용된 무빙 파노라마의 설계도. 자료출처: Erkki Huhtamo, Illusions in Motion: Media Archaeology of The Moving Panorama and Related Spectacles (The MIT Press, 2013): 125.

2. 18세기 몰입하는 인류: 수동적 몰입과 초월적 관찰자

18세기 파노라마를 시작으로 형성된 심리물리적(psycho-physical), 물리적 요소를 통해 증강된 심리적 차원의 몰입은 확실히 다감각적으로 실감적이었다. 오늘날 접하는 대부분의 VR 콘텐츠는 이러한 근대 몰입의 욕망을 완성하는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토스트(Toast)의 <스카이 빌딩 Richie’s Plank Experience>(2016), 솜니악스(Somniacs)의 <버들리 Birdly>, 어뮤즈(A.Muse)의 <그네 Swing> 등과 같은 설치형 VR 콘텐츠는 더 사실적이거나 더 환상적인 시각과 실제 물리적 효과를 통해 몰입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바커의 파노라마에서 걷기와 내려다 보는 행위는 <스카이 빌딩>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Richie’s Plank Experience Oculus Quest Trailer

인류는 디스플레이의 확장이 아닌 디스플레이의 착용을 통해 완전 몰입의 차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본질적인 18세기에 출현한 근대의 몰입과 21세기의 몰입의 차이가 있다.

인류는 디스플레이의 확장이 아닌 디스플레이의 착용을 통해 완전 몰입의 차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본질적인 18세기에 출현한 근대의 몰입과 21세기의 몰입의 차이가 있다. 걸으면서 보든, 구멍을 통해 보든 모든 파노라마의 그림은 특정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졌다. 즉, 풍경의 아름다움을 가장 완전하게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지점이 이미 설정되어 있었다. 이상적인 관찰자는 이른바 원근법의 소실점이 되었다. 파노라마의 몰입적 효과는 지극히 수동적이었다. 관람객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다니고, 고개를 돌리고, 바람을 느끼고, 진동을 느끼고, 빛을 느낄 수 있었지만, 모두다 이미 상정된 이상적인 관찰자를 향한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자극이었다. 지극히 자유도가 있었지만, 지극히 수동적인 몰입의 시대였다.

근대 몰입의 반복이지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를 위한 몰입은 아니다.

18세기에 형성된 근대의 몰입에는 초월적인 관찰자가 존재했다. 실제 관찰자는 초월적인 관찰자의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몰입에 빠졌다. 그림이 필름 기반의 동영상으로 바뀌었던 20세기에도 초월적인 관찰자가 지배하는 몰입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더 강화되었다. VR HMD에서 펼쳐지는 시각적인 가상 공간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로, 디스플레이를 쓴 관객의 시선과 고개에 따라 실시간으로 이미지는 변한다. 물론 근대의 초월적 관찰자의 위치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경험을 전달하는 VR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대 몰입의 반복이지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를 위한 몰입은 아니다.

3. 대형 시네마토그라프에서 서클 비전까지: 20세기, 몰입하는 인류

최초의 영화 장치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는 파노라마라는 수동적이고 일회적인 회화 기반의 몰입에 종지부를 찍고 시각적인 스펙터클과 다양한 감각적 효과가 혼합된 영화라는 광학적이고 복제 가능한 필름 기반의 몰입 세계로 초대했다. 영화는 파노라마의 시각적 요소에 결핍된 움직임을 완성한 기술적 성취였다. 1896년 7월 4일 니주니-노브고르드 박람회(the Nizhni-Novgorod Fair)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처음 관람한 막심 고리키(Maxim Gorky)는 ‘활동사진’ 열차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신비한 사실성의 스펙터클을 이렇게 묘사했다.

“기차가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조심하세요! 기차가 여러분을 향해 돌진합니다. 여러분이 앉은 어둠 속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 여러분(의 몸)을 으깨진 살점과 뼈 조각으로 채워진 자루로 만들어버리고, 상영관과 건물 전체를 산산조각 낼 듯합니다. (중략) 묘한 가상의 이미지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여러분의 의식까지도 약하게 그리고 흐릿하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막심 고리키가 전하는 캄캄함 어둠 속에서의 공포에 가까운 전율이라는 영화체험은 영화 자체의 효과가 아닌 영화관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피아노 반주는 영화의 스펙터클을 소리로 확성했으며, 변사는 격양된 목소리로 스펙터클의 순간을 알렸다. 영사 기사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영사기의 핸들을 최고 속도로 돌리거나 멈춤으로써 긴장감과 시각적 놀라움을 더욱 극대화했다.

이와 같이 초기영화 시대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 관객의 반응과 변사 그리고 음악연주로 완성되는 일종의 멀티미디어의 복합 공연이었다. 영화는 특히 기차와 같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을 이용해 관객에게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했다. 흑백이었고, 이미지에 불과했지만, 움직이고, 실제 현실이 복제된 이미지라는 이유에서, 스크린이 관객의 시야 전체를 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협적으로 몰입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몰입적 영화 체험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시네마크그라프를 개발한 뤼미에르 형제는 계속해서 스크린의 크기를 확대해 현실 그 자체와 같이 보이도록 시네마토그라프를 만들어 갔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대형 시네마토그라프 (the Giant Cinématographe)’를 공개했다. 가로 23미터 세로 30미터 크기의 초대형 스크린이었다. 영화에 내재되었던 근대 몰입의 욕망을 감출 수 없는 규모였다.

[그림4 ] 1900 파리 만국박람회 기계홀(the Hall of Machcines)에 전시된 뤼미에르 형제의 ‘대형 시네마토그라프. ’ 자료출처: Siegfried Zielinski, Audiovisions: Cinema and Television as Entr’actes in History (Amsterdam University Press, 1999, p. 29)

함께 전시되었던 라울 그리무앙 상송(Raoul Grimoin-Sanson)의 열기구 시네오라마(the Ballon Cinéorama)는 파노라마처럼 물리적 요소를 가미해 진짜 같은 열기구 체험을 재현했다. 직경 30미터 크기의 원형 극장의 벽면이 스크린이 되었다. 10대의 영화 영사기가 360도 벽면 전체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채웠다. 중앙에는 거대한 열기구 모형이 설치되었다. 극장 안을 밝히던 전등이 꺼지고, 영상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관객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높은 곳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풍경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이 이미지뿐이고, 흑백이었지만 실제 열기구에 카메라를 원형으로 설치해 촬영한 영상은 관객에게 열기구를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적어도 영화는 그림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18세기와 19세기 몰입의 욕망을 완전히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그림5 ] 라울 그리무앙 상송의 열기구 시네오라마. 자료출처: Siegfried Zielinski, Audiovisions: Cinema and Television as Entr’actes in History (Amsterdam University Press, 1999, p. 29)

영화산업은 스펙타클 중심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 도구로 발전해 갔지만, 영화라는 미디어는 여전히 가상체험을 창조하는 도구로 활용이 되었다. 특히 놀이공원에서 활동사진 상영은 그 어떤 경우보다 관객의 시각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4D영화와 같이 ‘몸’자체를 자극하는 가상체험의 방식이었다.

1905년 처음 캔사스 시티에 위치한 놀이공원 ‘일렉트릭 파크’에 ‘헤일스 투어(Hale’s Tours)’라는 영화관이 등장했다. 헤일스 투어 영화관은 기차 객실처럼 꾸며졌다. 객석은 70개 정도였다. 입장료 10센트를 내면, 10분에서 20분 동안 가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극장 밖에는 헤일스 투어 로고와 함께 하바나, 홍콩, 푸지섬 등의 여행 목적지가 적혀있었다. 극장 내부는 실제 기차의 객석처럼 꾸며졌다. 극장 맨 앞쪽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이국적인 자연풍경과 도시풍경이 주로 상영되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기차 혹은 전차 맨 앞에서 촬영되었다. 따라서 관객은 마치 실제로 기차를 타고 이국적인 자연풍경을 여행하는 느낌을 또는 전차를 타고 도시공간을 누비는 가상체험을 하게 된다. 실제 전차를 탄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극장 아래에는 차량의 진동, 좌우 움직임, 오르막과 내리막의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계장치들이 설치되었다. 실제 기차 소리가 결합되었고, 복잡한 도시 한복판을 지날 때는 차량의 경적 소리가 결합되었고, 전차 선로를 무단 횡단하는 행인이 보이면 경적소리가 진동했다. 이미지를 통한 가상의 여행은 소리가 결합되어 더욱 실감적으로 완성 되었다. 어떤 헤일즈 투어 공연의 경우 여행 가이드가 등장하여 여행자가 된 관객에게 다양한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헤일스 투어 영상: 빅토리아 & 벤쿠버 (1907)
[그림6] 헤일스 투어 내부 사진(위)과 특허신청서에 첨부된 설계도(아래) 자료출처: 위키커먼스

헤일즈 투어라는 독특한 가상체험은 피아노 반주, 변사의 구술, 각종 특수 무대장치, 그리고 관객의 육체적 반응이 한데 어우러져 창조되는 파노라마식 몰입의 문화였다.

하지만, 파노라마의 수동적인 몰입 역시 그대로 계승되었다. 현실 그 자체를 광화학적으로 복제한 필름은 그림과 비료할 수 없는 원근법과 사실성으로 ‘마치 거기에 있다’는 착각을 강화시켰다. 하지만 그럴수록 몰입의 수동성은 더 강력해졌다. 관객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려가며 영화 속에 내재된 이상적인 관찰자가 되어갔다. 이미지는 특정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었고, 관객에게 특정한 곳을 보라고 지시했다. 즉, 관람자는 수동적으로 계속 이미지에 이끌려가야 했다. 실제 그곳에 있다는 착각은 깊어졌지만 지극히 모순적이게도 몰입에 있어 자유도는 사실 거의 없었다. 근대의 몰입이 이렇게 수동형으로 전개될수록 가상과 현실은 더욱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이러한 수동형의 이분법적인 몰입 영상문화는 오늘날 VR HMD가 완전히 전복해야할 지점이었다.

영화 역사는 수동적 몰입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Puts you in the picture)”. 일반적인 4:3 비율의 영화 스크린 3개를 나란히 이어 붙여 제작된 파노라마형 스크린 ‘시네라마(Cinerama)’는 이러한 광고 문구로 관객에게 몰입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임을 알렸다.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는 시네라마의 파노라마 비율을 1개의 스크린에 구현함으로써 와이드스크린 테크놀로지를 실제로 영화적 몰입과 서사 도구로 상용화 시켰고, 컬러 3D 영화 테크놀로지는 화면 비율이 아닌 화면의 입체감을 통해 몰입감을 강화시켰다.

당대 프랑스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이러한 몰입적 영화 테크놀로지가 자신이 말했던 완전한 현실 재현을, 즉 카메라의 존재도,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의 존재도 사라지는 영화의 이상적 단계인 ‘완전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시네마스코프의 심판: 그렇다고 클로즈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The Trial of CinemaScope: It Didn’t Kill the Close-Up)」라는 기술비평문에서 바쟁은 이렇게 말했다.

“시네마스코프가 깊이감을 재현한다고 말하는 것은 틀리다. 시네마스코프가 우리 관객을 이미지로 들어가게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혼돈은 사실 이해가 된다. […] 시네마스코프를 통해서 관객은 배우의 얼굴 주변에 있게 된다.”

바쟁의 속뜻은 시각적으로만 깊이감을 전달하지 않고 실제로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있다는 지각적 차원의 몰입을 구현했을 때 비로소 시네마스코프는 자신이 꿈꾸었던 ‘완전영화’의 테크놀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쟁이 보기에 50년대에 무수히 생산된 와이드스크린 기반 영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18세기 근대의 몰입의 속성으로 지적해온 수동적이고 외형적 몰입을 무한 반복했다. 여전히 관객은 몰입적 스펙터클의 외부에 있는 수동적 응시자에 불과했다. 관객을 극장에 묶어 두려는 영화의 오래된 욕망의 결과였다. 근대 몰입적 시각문화의 중력은 와이드스크린의 기술적 속성을 삼켜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림7] 디즈니에서 개발한 360도 원형 극장 ‘서클비전 360°’의 구상도(좌) 및 특허 신청서에 첨부된 내부 설계도(우). 특허 신청서 상단에 ‘파노라마 모션 픽쳐 재현 장치’라고 적혀있다. ‘서클비전’을 설명하는 문구이지만, 18세기 파노라마로 시작된 근대 수동적 몰입의 반복임을 드러내는 자기반영적 문구다.

이후 여러 종류의 필름 기반의 몰입적 스크린 테크놀로지가 등장했지만 18세기 몰입의 문화를 맴돌았다. 사실 그림이냐 필름이냐의 차이였을 뿐 둘은 같은 몰입의 은하계에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자. 1960년 플로리다의 월트 디즈니 월드와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의 투머로우랜드에 ‘서클비전 360°’라는 원형 극장이 개관했다. 총 11대의 영사가 원형 극장의 벽면 전체를 이미지로 채웠다. 18세기 로버트 바커가 런던에서 최초로 선보인 파노라마와 동일한 형식의 몰입적 소비 상품이었다. 와이드스크린이 그랬던 것처럼 관객은 서클비전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몰입적 세계와 단절된 외부자가 되었다. 1984년 ‘옴니맥스 극장(Omnimax Theater)’라는 돔 형태의 극장이 등장했다. 오늘날 아이맥스 극장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데, 이미지는 부피감을 가졌고, 입체 서라운드가 가미되었고, 객석은 적당히 좌우로 앞뒤로 회전했다. 극장 내 모든 것은 입체적이었다. 파노라마에 물리적 요소가 가미될수록 수동성이 강화되었던 것처럼 관객은, 물론 안전상의 문제 때문이었지만, 완전히 객석에 고정되어야 했다. 20세기말 이미지가 디지털로 체제로 전환되기 전까지 모든 스크린 기반 이미지는 18세기 몰입의 중력에 이끌렸다.

4. 완전 몰입의 신화: 영화가 아닌 VR HMD의 것

[그림8] 벤자민 스타이거 르바인(Benjamin Steiger Levine)의 <마르코 & 폴로>(2021). 이 작품은 VR 미디어의 투명성을 서사효과로 사용한다.

앙드레 바쟁은 시네마스코프와 같은 와이드스크린을 완전영화의 테크놀로지로 바라보았지만 사실 그 주인공은 VR HMD이다. “배우의 얼굴 주변에 있게 된다”는 완전영화의 실현은 VR의 몫이다. 202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XR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에 출품되었던 <마르코 & 폴로 >와 <네 명의 탑승자>를 보자. 우리는 주인공의 얼굴 바로 옆에서 사적인 이야기의 관람자가 되기도 하고 대화의 상대가 되기도 한다. 바쟁이 완전영화의 형상으로 제시한 어떠한 인위적 연출도, 응시도 소멸된 “투명성” 속으로의 진입은 18세기 몰입의 미디어가 아닌 21세기 몰입의 미디어, VR HMD로 가능하다.

‘현실의 투명한 재현’은 앙드레 바쟁이 영화의 존재의 목적으로 규정하기 전에 이미 문필가와 영화감독 사이에서 영화의 궁극적 목적으로 설정되었다.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세계를 경험하며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쏟아진 이들의 기대감을 듣는다면 모두 영화가 아닌 VR 장치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1926년 버지니아 울프는 ‘영화와 현실(The Movies and Reality)’이라는 에세이를 시작하며 문학작품을 영화로 제작한 영화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독자들의 상상을 망쳐 버렸는지를 지적하려 했지만, 의식의 흐름 장르를 시작하고 완성한 작가답게 모든 상상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영화의 잠재력 앞에서 “우리의 언어는 비참할 정도로 빈곤하다”고 문자의 한계를 실토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영화의 기계적 특수성을 인지하고는 존재론적 무게를 지닌 영화를 상상했다. 그것은 단지 현실의 표면을 복제한 것이 아닌 현실의 무게까지도 주인공의 감정과 육감까지도 담아내는 영화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영화가 “추상적이고” “의식적인” 미까지도 전달하게 될 것이며 “언젠가 영화관에서 우리는 (영화의) 엄청난 기술적 능숙함으로…아직은 알 수 없고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보자면 현실의 무게 전달은 앞서 언급한 물리적 요소를 가미한 <스카이 빌딩>과 <그네>로 이미 실현된 것은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보다 일찍 완전영화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VR영화를 꿈꾸었던 이가 대서양 반대편에 있었다. 스크린의 콜럼버스로 불리었던 데이비드 그리피스다. 그리피스는 1915년 3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상상계의 대륙을 아직 다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영화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더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들 쉽게 단정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는 여전히 배내옷을 입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그리피스는 지금의 오락 중심의 영화산업이 언젠가 저물어갈 때, 더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잉태되지 않을 때에 새로운 영화의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머지않아 10년 안에 아이들이 공립학교에서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영화를 통해 배울 때가 올 것입니다. 다시는 역사를 읽어야 하는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의 공공 도서관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야별로 정돈된 여러 줄의 분류함이 있습니다. 각각의 분류함에는 스위치가 있고 의자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삶에서 독파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칩시다. 행정기관을 모두 탐문하고 수많은 책을 고생스럽게 읽었지만 서로 다른 의견들 때문에 혼돈에 빠져 결국엔 정확히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명확한 이해를 얻지 못한 채로 혼란에 빠지는 대신, 여러분은 단지 최신 장비로 이루어진 방에서 (눈높이에 맞게) 적당히 조절되어 있는 창 앞에 앉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스위치를 누르면 있었던 일들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어떠한 의견도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역사가 만들어지는 그 곳에 있는 것입니다. 공인된 전문가들이 매우 신중하게 쓰고 수정하고 분석하고 복사하는 모든 작업을 도와줌으로써 여러분은 생생하고 완벽한 표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피스는 영화의 완전한 모습으로 상상했던 것은 영화가 아닌 정확히 오늘날 우리가 VR 미디어의 콘텐츠로 구현했거나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가? 영화가 자극했던 완전영화, 즉 현실의 투명한 재현은 혹은 현실의 투명한 체험은 VR의 목표다. 인류가 최초의 인터렉티브 VR 헤드셋 장치 ‘비비드(VIVED)’를 머리에 썼을 때 신화로만 전승되었던 완전몰입은 실현 가능한 것으로 재발견되었다.

5. ‘Beyond Reality’를 ‘Bere’라 축약해 쓰고 ‘비어’라 읽다.

현실넘어, 혹은 ‘여기(here)에서 가상(virtual)으로 가다’는 의미를 담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XR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각 단어의 앞 두 글자 ‘Be’와 ‘Re’를 합쳐 보았다. 그리고 ‘bere’를 ‘here’를 ‘넘어서다’는 의미를 담은 신조어로 만들어 보았다. 그러니까 ‘비어 bere’는 단지 ‘here’의 반대말이나 가상의 동의어가 아니라 앞서 말한 ‘여기에서 가상으로 가다’는 뜻의 부사어다.

지금까지 살펴본 VR 미디어의 계보로 엮이는 과거의 다양한 몰입형 미디어는 결국 VR 미디어의 세부적 속성을 공유한다. 즉, 우리는 과거의 이러한 미디어 속에서 VR 미디어를 발견할 수 있고, 반대로 현재의 VR 미디어 속에서 과거의 몰입형 미디어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라투르가 말한 것처럼 과거는 결코 낡은 시대가 아니며, 동시대는 결코 새로운 것들로 가득하지 않다. 복잡하다. 미디어고고학자의 주장처럼 오래된 미디어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보고, 새로운 미디어 속에서 오래된 미디어를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엔 분명한 단절의 지점이 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는 그러한 종류의 단절이다. 즉, VR 미디어는 과거의 몰입형 장치와 분명한 선으로 나뉜다. 거기에 서로 묶을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그 차이는 쓰고 인터페이싱 할 수 있는 기술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마치 빛을 투과시키는 필름이 수년 전에 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필름을 릴에 감아서 사용하기까지 영화 장치가 발명되지 않았던 역사와도 같다. 영화가 필름을 릴에 감고 회전시키는 선형적 미디어와 컷으로 연결되면서 이전과 완전히 다른 미디어로 개체변이를 했다고 본다면, VR미디어는 분명 사용자와 상호소통할 수 있는 컴퓨터와 시야를 완벽히 가리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응시하지 않고 쓰게 되면서 완전히 이전과 다른 완전 몰입형 미디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를 쓰거나 눈에 가까이 대는 방식은 전혀 새롭지 않고 매우 오래된 몰입의 방식이기도 하다.

6. 음극선관(CRT)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출현

인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미지로 눈의 시야를 가림으로써 이미지에 몰입해왔다. 18세기 초에 이미 ‘엿보기형 파노라마’가 등장했다. 1855년 영국의 과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는 양쪽 눈을 모두 대고 그림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입체경(Stereoscope)을 선보였다.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홈즈와 키스톤 입체경은 오늘날 VR 헤드셋의 원형이라 볼 수 있는데, 시야를 완전히 가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특히 ‘키스톤’ 입체경은 전화를 통해 멀리 있는 상대와 바로 옆에 있는 듯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입체경을 상대가 있는 그 공간을 볼 수 있는 장치로 소개되었다. 물론 이는 오직 상상이었고, 그 누구도 광고 문구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유형의 디스플레이 착용은 초대형 스크린이나 그림으로 관람자의 눈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에워싸는 동시대 몰입의 기술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몰입감을 구현했지만, 몰입의 양상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것에 집중한 결과 몸의 자유도와 그 외의 몰입 강화에 사용된 물리적 요소는 사용될 수 없었다.

[그림9] 1726년에 등장한 ‘엿보기방식 파노라마’(맨위), 1855년에 데이비드 브루스터가 선보인 입체경(Stereoscope)(가운데), 키스톤사(社)의 입체경(맨아래).

역사상 최초로 정확한 의미에서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를 ‘상상했던’ 발명가는 모턴 헤이리그(Morton Heilig)다. 하지만 헤이리그는 정확히 18세기에 출현한 수동적 몰입의 욕망을 텔레비전 기반 헤드셋 형태로 구현하려고 했던, 실패한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선구자였다. 1960년 헤이리그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역사의 개막을 알렸던 음극선관(CRT, Cathode-Ray Tube)방식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헤드마운트드디스플레이형 ‘텔레스피어 마스크(Telesphere Mask)’라는 개인용 입체텔레비전 장치를 개발했다.

물론 이 장치가 헤이리그의 구상대로 완벽히 작동했는지 알 수는 정확한 기록은 보고된 바 없다. 1957년 제출된 특허 신청서를 보면 외형은 겉으로 보기에 21세기 VR 헤드셋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 있었다. 헤이리그는 3D 영상 구현을 위한 두 개의 렌즈, 탈착식 헤드셋 스트랩, 스테레오사운드용 이어폰, 볼륨 조절장치, 초점 조절장치 등 주요한 구성품을 모두 가장 최소형으로 설계해 헤드셋 안에 집결해 놓았다. 물론 이러한 시각적 몰입을 야기하는 장치에 더해 감각적 자극을 이끌어 내는 장치도 결합되었다. 다양한 향기와 뜨거운 바람을 내보낼 수 있는 에어 노즐이 헤드셋 아래에 연결되었다.

[그림10 ] 모턴 헤이리그가 구상한 ‘개인용 입체형 텔레비전 장치’ 설계도.

물론 이 최초의 헤드셋형 몰입 장치는 대대적인 자본투입이나 급속한 기술의 진전을 통해 현실화되지 못했다. 2년 후 헤이리그는 좌식의 브라운관 오락장치와 같은 센소라마(Sensorama)라는 이름의 몰입형 1인용 영상 관람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크기와 머리에 쓰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고, 모든 몰입적 효과는 동일했다. 일종의 확대형으로 제작한 ‘텔레스피어 마스크’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다. 센소라마를 처음 경험한 어느 기자의 감격에 찬 감상평에 잘 나타나 있듯이, 헤이리그가 당시 시대의 욕망으로 제시했던 몰입은 시각적이고 감각적이었지만,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가 욕망하는 것과는 다른 일방향의, 관람자의 자유도가 허락되지 않는 몰입형이었다.

“센소라마라 불리는 빼어난 새로운 장치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장치는 관객을 실제 자극을 통해 애워쌉니다. 컬러 입체 영화는 입체 음향과 색과 바람과 진동으로 가득합니다. 장면들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이제 이 장치로 인해 우리는 이전의 그 어떤 것보다 현실을 복제하는 데 더 가까이 도달했습니다.”

완전한 시각적이고 음향적이고 감각적 몰입을 추구했던 헤이리그는 현실의 복제를 목적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음극선관을 활용한 최초의 머리에 쓰는 몰입형 디스플레이 장치는 제작은 되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HMD형 몰입 미디어가 꿈꾸는 몰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역사적 해석을 내리고 싶다. 이러한 몰입적 현실체험은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가 꿈꾸는 “이야기 안에 있는” 몰입이 아니었다. 헤일리그가 시도한 시각적 몰입은 18세기 근대적 몰입의 완전한 형태의 지루한 반복이었다.

7.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출현

영상의 화질을 높이거나 감각의 종류를 다양화 하는 등의 정량적인 차원의 기술 개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정성적인 차원의 기술이 가능해짐으로써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역사는 일보 전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터랙티브, 인간과 컴퓨터의 연합을 통한 가상 세계의 참여 및 조작의 구현이었다.

말이 통하지는 않는 구식의 HMD에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연결함으로써 인터랙티브 장치로 발전시킨 인물은 스콧 피셔(Scott Fisher)였다. 1980년대 말부터 피셔는 이 세기의 연구를 지구 바깥으로 인간을 쏟아 올려 우주공간(outer space)로 보내는 기술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도전하는 나사(NASA)의 아메스 연구 센터(Ames Research Center)에서 단어들은 비슷하지만 완전 다른 차원의 연구, 현실에서 인간을 가상공간(virtual space)으로 몰입시키는, 더 추상적이지만 보다 실용적이고 활용가치가 높고, 무엇보다도 나사의 예산담당자가 환영할 정도의 저예산의 연구를 진행했다. 피셔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의 명은 “VIEW(Virtual Interface Environment Workstation)”였다.

[그림11] 피셔가 개발한 역사상 최초의 인터랙티브 HMD VR 장치 ‘비비드VIVED’

인간과 컴퓨터와 가상세계를 연합시킨 스콧 피셔(Scott S. Fisher)는 이를 실제 현실에서 접하듯이 가상세계를 구성하는 정보 안에서 사용자가 가상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감각적 미디어 환경의 구축을 통해 “직접적 경험”을 구현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즉 이전의 몰입형 영상 장치에서 관객의 움직임이 영상 내에 내재되었는데, 피셔의 몰입장치에서는 관객이 통제권을 가진다. 프로그램 된 가상 세계가 아니라 조작할 수 있는 가상 세계가 열렸다.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두 번째 진화의 순간이다. 피셔는 플라톤의 동굴에 붙박힌 인간들이 족쇄에서 풀려나 진정한 현실을 보게 된 것처럼 가상공간 속에서 자유를 찾은 관객을 설명했다.

“이 연구의 주 목적은 사용자가 가상 환경 안에서 움직일 수 있게 자유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혹은 약간 작은 규모의 환경 안에서 사용자가 지각적 활동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를 찾거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성된 공간의 특정 위치를 탐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피셔의 가상현실용 HMD는 2가지 가상의 작업을 구현했다. 원격으로 로봇의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원격으로 기계장치를 조정하는 ‘텔레프리젠스 (Telepresence)’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축된 정보의 공간 안에서 문서 작성 및 정보를 처리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데이터스페이스(Dataspace)’다.

[그림12 ] 데이터스페이스 (좌)와 텔레프리젠스(우) 장면

1988년 피셔가 선보인 ‘VIEW’ 시스템은 모든 면에 있어서 지금의 VR 헤드셋의 기능을 담고 있었다. 머리와 신체의 움직임을 모두 추적하여 실제와 가까운 정밀도로 가상현실에 전달할 수 있는(6 DoF) 트래킹 센서, 터치 방식의 컨트롤러에 해당하는 데이터글러브, HMD 밖의 현실 공간을 볼 수 있는 카메라, 흑백의 저해상도 LCD 패널, 초당 30프레임의 속도로 자연스러운 컴퓨터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처리 속도 등 오늘날 VR 헤드셋의 모든 기술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피셔는 전쟁의 기술을 상업화 했던 다른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이 우주 기술의 상용화를 제시했는데, 교육/업무/건축/의료/오락/통신 등 오늘날 언론이 VR 미디어의 핵심 활용 분야로 제시하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피셔가 구상한 가상현실 속 인류의 삶은 메타버스(Metaverse) 속 메타휴먼(Metahuman)을 겨냥했다.

물론 1961년 필코 회사의 엔지니어가 개발한 헤드 트래킹 기능이 결합된 HMD장치 ‘헤드사이트(Headsight)’, 1968년 이반 서더랜드가 개발한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시뮬레이션 기능이 결합된 HMD형 장치 ‘다모클레스의 칼 (Sword of Damocles)’, 1975년 클루거의 ‘비디오플레이스(Videoplace)’, 1977년 MIT 대학에서 개발한 일종의 가상 구글맵 ‘아스펜 무비 맵(Aspen Movie Map)’ 등의 가상현실 구축을 위한 디스플레이 장치도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근원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세부적 기술적 진보이거나 여전히 스크린 응시에 의한 몰입과 가상공간 안으로의 몰입의 경계 사이를 횡보했을 뿐이다.

피셔의 가상현실 장치는 그의 말마따나 인류에게 현실에서 사라져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기에 충분히 총체적이고 미래적이었다. 라니어의 ‘아이폰(EyePhone)’에서 오늘날의 오큘러스 퀘스트나 HTC의 ‘바이브’ 까지 이후 모든 기술적 진보는 피셔의 구상을 더 완벽한 형태로의 구현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다. 피셔는 실제 기술 개발을 통해 가상현실의 현재를, 완전한 가상현실의 미래를 구상했던 인물이다. 아마 미래의 미디어 역사학자는 피셔를 보다 확신에 찬 어조로 몰입하는 인류의 설계자로 규정할 것이다.

8. 완전몰입의 은하계를 향하여

21세기의 어느 때가 되면 우리 인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그 인류는 어떠한 형태든 디스플레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모든 실감 미디어 장치의 연장이자 그것들로부터의 단절이다. 마치 영화가 연속 이미지를 간헐적으로 영사해 운동 이미지를 만드는 오랜 역사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회전에서 감기의 기술로의 단절적 도약의 결과였듯. 컴퓨터 그래픽의 선구자이자 현실공간에 컴퓨터 그래픽을 중첩할 수 있는 HMD 장비를 개발했던 이반 서더랜드는 컴퓨터를 통한 인간과 가상공간의 연합의 미래를 꿈꾸며 이렇게 말했다.

“디스플레이를 컴퓨터에 연결함으로써 우리 인류는 물리적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개념적인 현상들에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디스플레이는 수학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안경이다.”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는 어쩌면 스스로 빛을 내거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없었던 18세기의 스크린 문화에서 태동한 ‘스크린을 응시하는 인류’를 3세기만에 대체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는 디지털 이미지의 투명성과 완전한 상호소통성을 통해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디지털) 가상이 혼합된 ‘피지탈(Physital)’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앙드레 바쟁이 영화라는 인위적 미디어의 소멸을 통해 영화의 완성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처럼, 그 어떤 서사효과나 시각효과를 통해서든 VR HMD의 존재감이 관객의 몰입으로 인해 소멸되었을 때, 말하자면 더는 디스플레이가 매개의 그림자를 남기지 않을 때 우리는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의 욕망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18세기 근대 몰입의 중력장이 미치지 못하는 몰입의 은하계다. 21세기 디스플레이를 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매개의 흔적을 지우는 ‘거의 신에 가까운’ 서사와 시각효과이다.

(‘에피소드 3: 가상공간의 산책자’에서는 <13층(The Thirteenth Floor)>, <코드명 J(Johnny Mnemonic)>,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등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 속 인간의 삶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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