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와 안무가들이 본 가상현실과 무용의 미래
“내 몸을 누가 끌어올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뻗어보세요.
나의 몸이 최대한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뻗어봅니다.
움직이고 싶은 근육에 집중해보세요”
우리가 운동하거나 몸을 움직일 때 종종 듣게 되는 말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여러분의 머리 속에는 많은 이미지들이 떠오르면서 이미지의 연상을 따라 신기하게 몸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죠. 우리의 신체는 알고 보면 우리의 사고와 감정에 따라 변화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체를 인터페이스로 쓰고, 움직임을 언어로 쓰는 가상현실(VR)을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도 볼 수 있다면, 어딘가 닮아 있지 않나요? 신체 언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상현실은 보다 많은 장르와 만나고 있습니다. 전혀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예술과의 새로운 부딪힘은 유희와 쾌감으로 끝나는 콘텐츠의 한계를 깨고,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기여합니다.
‘움직임’과 ‘몸,’ 그리고 ‘신체’를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무용가와 안무가들에게 VR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안무가와 무용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보낸 뜨거웠던 여름을 회고해보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기술 창작랩은 ‘무용의 미래’를 고민하는 새로운 실험의 장이었습니다. 무용기술 창작랩을 통해 만난 예술가들은 ‘질문’을 갖고 만났지만, 누구보다 ‘기술’을 즐거워하고, 실험에 집중하고, 과정과 순간에 진심이었습니다.
비트세이버가 이렇게 아름다울 일이야? — 발견하는 예술가
무용가들과 예술가들은 VR 콘텐츠를 어떻게 즐겼을까요?
‘종이새’란 작품을 봤던 임은정 무용가는 작품 그 자체가 무용이라 표현했습니다. ‘나뭇잎이 움직이는 것도 무용이다’ 라는 말을 더했던 무용가의 말에서 무용의 확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계장치를 쓴 사람들이 몰입해 있고 그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군무같은 풍경을 합니다. VR을 쓰고 하는 리듬 게임을 해본 무용가는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반복을 통해 외워지고, 학습하면서 재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작품처럼 보여지고 안과 밖의 세상이 다 보여지는 작업을 꿈꾸기도 하였죠. 그들은 이런 체험에서 ‘행위하는 나’와 ‘보여지는 나’의 객체를 분리하여 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간’의 감각을 발견해 냈습니다. 거울의 방에 들어가면 계속되는 무한루프의 시간차가 만들어내는 것 같은 디지털 공명을 발견해 내기도 했습니다.
가상현실 속 콘텐츠 환경에 놓여진 체험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역할이 바뀌는 것을 체험합니다. 때론 이야기와 환경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기도 하고, 또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자이자 참여자가 되면서 즉흥적인 상황에 놓이는 것을 경험하게 되죠. VR은 전통적으로 관객이 주도하고 참여자가 이끄는 공간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은 가상 세계 속에서는 카메라가 되면서 동시에 인터페이스가 되지만, 이런 모습은 바깥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피사체가 되는 풍경이 되는 것이죠.
순서대로 짜여진 동작을 외우는 안무가 아니라 ‘비트세이버’는 환경에 의해서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것임을 인지하고,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이지만 공간이 움직이면서 내가 움직인다는 역설도 발견해 냈습니다. 신체가 매체가 되고 입력 장치가 되면서 몸을 다르게 쓰는 모습을 통해 안쓰는 근육을 쓰거나 다르게 몸을 쓰는 것도 발견해 냈습니다. 몸의 쓰임과 관련된 연구와 고민을 많이 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일반적 체험자들은 가상 공간이 만들어내는 광활한 세계에 환호하고, 공간적 제약이나 물리적 제약이 사라진 환경에서 ‘놀라움’을 느끼고 몰입하지만, 무용가와 안무가는 되려, 현실 속 움직임의 법칙을 벗어난 움직임을 답답해 했습니다. 신체를 마음껏 활용하여 표현하고 다음 동작을 예측하며 자유롭게 공간을 점유하던 것이 아닌 것에서 되려 답답함을 느낀 것이죠. 이제 핸드 트래킹도 되고 쉽게 마커만 있으면 바디 트래킹을 집에서도 할 수 있도록 기술이 진보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의 시선에 따라 움직여 질지라도 콘트롤러에 의존하고, 카메라가 설정해낸 영역 안에서의 움직임이기에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 전체가 하나의 도구가 되려면 정교하게 모션 캡처 센서를 붙이지 않고서는 어렵기에 신체를 분절하여 보다 세부적으로 움직임을 찾아내는 안무가와 무용가에게는 한계로 보일 수 있지만, 이내 다른 감각을 찾아냅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이자 ‘매체’로서의 ‘신체’ 와 ‘몸’ — 사유하는 예술가
되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할 수록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무’란 어디까지 인가? ‘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무용’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많은 키워드가 던져졌고, 이것은 ‘무용’에 대한 사유였지만, 우리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매체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던지는 중요한 키워드들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2021년의 현재는 타인의 신체가 불편하고 ‘신체’를 감각하는게 낯설어졌고, 새로운 감각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기획자 박지선 피디님의 말처럼 ‘신체’를 감각하는게 멀어지는 시기에 ‘몸’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기회로 보니, 무용에서의 ‘신체성’은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됩니다.
디지털로 재현되는 모습이 시각적인 표면만 재현하지 않고 그것을 표현하는 상태의 리얼리티를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가상 세계 속에서의 신체의 비대칭성을 발견해 냈습니다.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들이 공간으로 재현될 수 있다면, 결국 ‘몸’ 에 대한 다른 감각을 발견해 내고, 결국 몸은 새로운 조합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발견해냈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공간’과의 관계까지 생각해보는 모습이었죠. VR 속 세계는 ‘공간스토리텔링’이라 말할 정도로, 공간 속에서의 3차원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한의 공간을 이동하는 새로운 방법을 규정하기도 하고, 6축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제스처와 움직임을 설계하기도 하고, 공간과 상호작용하기도 하고, 때론 컴퓨터가 만들어낸 존재와도 소통해야하기도 합니다.
중력이 사라진 공간으로 자주 묘사되는 가상현실 세계가 갖고 있는 확장된 공간성으로 인해 공간과 상호작용하던 무용가나 안무가들의 달라진 감각을 생각해보게 되고, 가상화된 신체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공간을 이루는 세계관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가상경험 기획자와의 고민과 일치해서 계속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새로운 ‘무대’로서의 ‘가상세계’ — 감각하는 예술가
브이알챗(VRCHAT)이라고 하는 소셜VR 플랫폼이자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참가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상익 님이 참여하고 계신 티슈오피스의 메타버스 ‘히든 오더’ 에서도 함께 모인 적이 있었죠.
현실은 각자 1~2m 안에서 접속한 환경이지만, 우리가 함께 보인 가상 세계는 마천루가 보이는 근사한 도시의 루프탑 라운지 같은 곳이기도 했고, 가상 세계 속 노래방이기도 했습니다.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환경에 반응하는 각자의 신체가 있었고, 다같이 여행을 떠난 듯 즐거웠습니다. 아바타를 바꿔 보기도 하고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가상 허그도 해보고 어깨도 두드려 보고, 점프도 해보고 백플립도 해보고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아바타를 조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음성은 현실 공간에서 서로 공명되고 있었고 가상 세계에서도 들렸죠. 이 점이 달랐습니다. 이 때 무용가들은 새로운 ‘감각’을 탐색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한 공간에 접속한 다른 사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새로운 무대에서 보다 더 신체적인 존재감을 궁금해 했습니다.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알 수 있지만 ‘생명력’, 즉 무대 위에서는 뜨거운 열기로 느껴지는 무용수의 존재감이 치환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리적 공연장에서 빠진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질문에서 시작해서 더 큰 질문으로 끝나는 실험
무용기술창작랩을 통해서 함께 했던 저희 B조는 ‘몸의 내부로부터와 외부로부터의 감각은 가상 세계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 에 대한 공통 질문을 찾아냈습니다. 각자의 경험과 몸이 세계와 맺는 감각에 대해서는 ‘ 가상 세계에서 시각 자극을 주는 것을 넘어 몸 내부로부터의 움직임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도 나왔고, 과정을 통해 기술을 실험하고 즐기면서 고민해낸 여정을 재밌는 영상으로도 담아 냈습니다.
스위스의 안무가 질 조뱅은 자신의 시각을 공유하던 영화와 달리 VR은 관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고정된 무대가 있는 것이 아닌 비정형의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는 야외 공연과 유사했다고 표현했죠. 안무가는 코치가 되어서 규칙과 룰은 정해주지만, 참여자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독립성을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동작이란 나올 수 없고, 무용수에겐 자율성을 갖게 되는 것을 강조했죠.
그는 VR이기 때문에 안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포맷과 형태만 바뀌는 것이라 말합니다. 일찍이 가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 관객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이머시브 연극처럼 이루어지듯, 가상 세계에서의 무용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합니다. 스스로 결정하는 관객과 무용수는 현실과는 다른 크기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할 수도 있고 새로운 예술 체험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죠.
무용기술창작랩은 제게 ‘매체는 몸의 확장이자 감각의 확장’ 이라고 한 마샬 맥루한( Marshall McLuhan)의 말을 실감하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무용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퍼포머의 ‘아우라’입니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으로 관객을 놀랍게 해주던 그 경이로움을 가상 무대에서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 또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난 뒤 무용가가 느끼는 황홀함은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 기술 복제 시대가 되면 예술가의 ‘아우라’가 쇠퇴한다고 말한 발터 벤야민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분명 우리가 물리적 무대에서 예술가에게서 느끼는 ‘존재감’과 예술적 경이로움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가상 무대는 새로운 춤의 확장 안에서 다른 감각을 탐색하고 함께 소통하는 즐거움의 장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무용을 교육하는 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기술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함께 가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 등 3차원의 세상에서 안무가와 무용가는 신체를 더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하는 창작자에게 새로운 길을 인도하는 셀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확장된 세계에서 낯선 감각을 찾고 그것을 다른 차원이자 새로운 예술로 승화하는 일에 더 많은 예술가가 함께 하게 될 때 더욱더 시대와 공감하고 사람과 연결되며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3차원 콘텐츠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이 글은 국립현대무용단 무용기술 창작랩(주최 : 국립현대무용단, 기획 : 박지선 프로듀서, 진행 :김호연) 에 함께 참여한 분들(B조 : 허윤경, 임은정, 양은혜, 이상익, 홍지현, 멘토 : 기어이 스튜디오) 과 2개월간 진행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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