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늑대인간 (The Werewolf Experience)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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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min readNov 23, 2022
(이미지 출처: 비욘드리얼리티 2022 홈페이지)

VR 기술을 마주한 첫 순간부터 늑대인간 이야기를 VR로 구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크리스토퍼 (Chirstopher Morrison 이하 C)는 늑대인간 (The Werewolf Experience)을 통해 관객이 직접 늑대인간으로 변신하여 하울링하고 달리고 때론 쫓기며,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공포스러운 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늑대인간 캐릭터에게 가장 중요한 두가지인 변신 과정과 하울링은 VR 경험에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음성 인식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관객의 으르렁 소리를 경험의 중심에 둔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크리스토퍼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기술에 자신이 좋아하는 판타지 장르를 접목시키며 VR 속 장르 구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5년 벨기에에서의 첫 피칭 이후 2017 Stereopsia Europe의 3D Film Booster작품으로 선정 된 후 3년의 투자기간과 2년의 제작 기간을 걸쳐 2022년에 세상에 나온 늑대인간은 크리스토퍼의 커리어의 집약체 같은 느낌입니다.

늑대인간을 만들기까지의 여정을 묻는 질문에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주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마치 여러 미디어의 경계를 허무는 XR 콘텐츠와 닮은 듯 합니다.

크리스토퍼는 지난 경험들을 토대로 더 크고 다이나믹한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재다능한 창작자 크리스토퍼의 지난 여정과 앞으로의 도전을 들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그 기록을 조금 많이 늦었지만,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 & ixi 콜라보 특집 두번째로 인터뷰로 소개합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 & ixi 콜라보 특집>

  • 인터뷰 진행 : 이혜원, 김다예
  • 정리 및 감수 : 김다예, 나지경
  • 인터뷰 일시 및 장소 : 2022년 7월 , 기어이 스튜디오

언제나 함께 했던 이머시브 창작 활동: 역할놀이부터 VR까지

Q: VR 제작 활동 이전부터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VR제작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늑대인간에 이르기까지 어떤 작품 활동을 하셨는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C: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아보면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이미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을 시작 했습니다. 다만 제가 이머시브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 뿐이죠. 제 프로필은 진짜 희한해요.처음에는 무술가 (martial artist)로 시작했습니다.어렸을 때부터 역할 놀이를 즐겨했는데 제가 1974년생이니까 D&D 역할 놀이 (Dungeons & Dragons role playing: RPG 게임의 시초로 불리는 판타지 게임) 1세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1981년 즈음부터 판타지 소설 매니아였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놀이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미국의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셰익스피어와 일본 연극을 전공하신 제 첫 멘토 Dr. Phyllis Lee Viccellio (Dr. V)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메릴랜드 주 공립 고등학교에서 그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선생님을 만난 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죠.

Dr. V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셰익스피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전통 연극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LARPer(Live Action Role Player)라고 불리던 라이브 공연 그룹 1세대이기도 한데, 매주 토요일마다 중세시대 복장을 하고 중세시대 무기를 들고 마치 그 시대 사람들처럼 연기하고 싸우는 그런 종류의 역할놀이를 했습니다. 스포츠이기도 하면서 연극이기도 한 조합이었죠. 이런 어린 시절 경험들이 돌아보니 모두 이머시브 창작 활동이었습니다.

(LARP 이벤트에 참여중인 배우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매릴랜드 주의 르네상스 페스티벌 사진, 이미지 출처: Baltimore Magazine)

전문적인 연기 활동은 메릴랜드 주에서 개최하는 르네상스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 역시 라이브로 진행되는 대규모 역할 놀이 페스티벌이었는데, 작은 도시를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마을처럼 꾸며놓고 전문 배우들을 고용해서 ‘길거리 (즉흥) 연극 (street theater, street improv)’을 진행했습니다. ‘관객 애니메이션 (crowd animation)’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배우로 참여했던 저는 르네상스 시대의 소작농 캐릭터로 그 공간에 존재했습니다. 르네상스 페스티벌 연기 역시 이머시브 연극 경험이었죠. 매일 6–7시간 정도의 길거리 즉흥 연기를 하는 것이 제 첫번째 전문 연극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이런 공연 경험을 통해 연극 분야 뿐만 아니라 VR을 위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역할 놀이, 즉흥극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죠.

사람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몰입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누군가 집중했을 때 어떤 모습인가?

극에 빠져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관객들 중 공연에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배제시키지 않고 모두 몰입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반대로 지금 당장 극적인 경험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흥분한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저는 비교적 전통적인 연극 커리어의 길을 걸었지만, 몰입형 경험은 언제나 제 활동의 일부였습니다. 대학에서 연극 연기를 전공했지만 기존의 연기 프로그램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스스로 자신의 학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독립 연극 과정 (Independent Theater Studies)’으로 전과해, 보스턴 대학 연극학부에서 저만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행동 중심의 연극 프로그램을 구상했죠. 행동 중심 연극에서 몰입과 관객과의 소통은 늘 중요한 요소들이었고, 저는 이를 즐겼습니다. 제 연출 졸업 작품은 무대를 옮겨 다니며 공연하는 연극이었고 관객이 앉을 자리조차 없어서 다들 무대 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감상해야 했습니다. 이 연극도 역시 그때는 몰랐지만, 이머시브 연극의 한 종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캘리포니아 주 북부로 옮겨가서 당시 예술 감독이었던 Josh Costello와 함께 ‘임팩트 극단 (Impact Theatre)’을 설립했습니다. 1996년 당시의 MZ세대였던 X세대를 겨냥한 극단이었고, 말도 안되게 비싼 미국의 연극 공연들에 반대하며 저렴한 가격의 연극 공연들을 제공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한 장에 200 달러가 넘는 공연 티켓은 사치였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가격을 낮추려고 노력했죠.

저희는 젊은 관객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연극을 재해석한 작품이나 새로운 연극 공연에 집중했습니다. 이 극단 활동으로 연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연출했던 작품 중 직접 쓴 대본도 있었습니다.

제가 임팩트 극단과 함께 한 시간은 5년 정도였지만 극단은 2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두번째 예술 감독이었던 멜리사 힐먼 (Melissa Hillman) 감독의 재임기간 중 극단은 미국에서 꽤 영향력 있는 극단으로 발전했습니다. 2015-6년 즈음 문을 닫기 전까지 약 200여편에 다다르는 프리미어 공연들을 했습니다. 이후 브로드웨이 전문가들로 성장한 사람들의 첫 연극 활동을 도왔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스파이더맨 뮤지컬을 집필한 Roberto Aguirre-Sacasa나 뮤지컬 해밀턴의 캐스팅 된 Daveed Digs의 초기 작품들을 임팩트 극단에서 도울 수 있었습니다. 대충 이 정도가 제 연극 경험입니다.

아, 그 즈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연극인, 체조선수, 무용수, 음악인 및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위한 ‘움직임 공동체 (movement collective)’를 운영하기도 했네요. 함께 서로의 분야에서 익혀온 움직임을 가르쳐주고 라이브 공연을 하곤 했죠. 이머시브 공동체 활동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창안 연극 (Devised Theatre)’을 시도했던 겁니다. 약 10년 동안 이 공동체 운영에 참여했고,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에서 5번의 라이브 공연을 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의 신체 움직임과 공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관심은 VR을 시작하면서 더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VR 경험은 공간 감각과 신체의 움직임, 퍼포먼스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저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혼자서 VR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비슷한 관심을 가진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양의 서커스 (Cirque du Soleil)’ 팀의 첫번째 이머시브 공연인 ‘세상 끝자락의 바 (The Bar at the Edge of The Earth)’에 무술가로서 참여해서 투어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인기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이 때의 투어 경험을 바탕으로 1인극을 썼고 그 1인극 공연의 수익금으로 2008년에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양한 연극 경험을 하던 중에 새천년이 밝았고, 첫 번째 디지털 혁명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2000년 즈음, 제 첫번째 영화 멘토 유리 콜 (Juri Koll)을 만나게 되었죠. 유리와는 아직도 영화 작업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혁명에 빠져서 DV 테이프로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누구나 감독이 되어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선사했고 유리와 저는 그 시대에 반응했습니다. 우리끼리 디지털 카메라와 편집 툴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면서 영화 업계를 탐색할 수 있었습니다.

2005년에는 앞서 말했던 ‘태양의 서커스’ 투어가 있었고, 그 때는 첫번째 부인과 결혼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영화 시나리오 슈퍼바이저 일을 했는데 LA로 옮겨가서 본격적으로 영화업계 일을 하고 싶다고 했죠. 그래서 저는 그녀와 함께 LA로 가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7편 정도의 연극을 연출하고 몇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LA에 왔으니 LA에 어울리는 영화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사로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읽고 평가하는 일을 했는데 그 때 정말 많은 시나리오들을 읽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지 간접적으로 익히게 되었고 나중에 작가로 섭외된 적도 있었지만 제가 쓴 시나리오가 제작된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LA였으니까요.

LA로 이주하면서 영화 일을 제대로 시작했습니다. 2008년에 연출한 영화는 칸 영화제 단편 프로그램 (Cannes Short Film Corner)에 뽑혔었고 그때부터 영화제 생태계와 콘텐츠 배급 과정에 대해 익히게 되었습니다. 2008년 영화제에 초대됐던 단편은 결국 배급으로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부인이 영화계를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뉴욕으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맨하탄에서 2년 정도를 살았는데, 그 때는 연극이나 영화 일보다는 돈을 버는 일을 찾아다니며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한 빚 탕감에 집중했습니다. 첫 장편 연출 계획이 있었고, 빚 없이 스스로 제작까지 하고 싶었거든요.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개인 사비로 제작하는 영화를 ‘신용카드 영화 (credit card movies)’라고도 부르는데 약 4만달러 정도의 카드 빚으로 영화를 만들고 나중에 갚아 나가는 방식입니다.

그 즈음에 제 두번째 부인이자 VR for Procter & Gamble의 수장인 Ioana Matei를 만났고 그녀가 브뤼셀에 살았기 때문에 제가 유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브뤼셀에 도착했을 때, 저는 이미 빚을 모두 탕감한 상태였어요. 첫 장편을 만들 준비가 된거였죠. 하지만 브뤼셀에서 테스트 촬영을 하다보니 제 영화가 너무 미국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 남부에 사는 퇴마사 가족들을 주제로 세명의 퇴마사 여자 아이들이 주인공이었거든요.

벨기에 투자자들에게는 너무나 요상한 컨셉의 영화였고, 너무나 미국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장편 작품구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스케일은 더 작게, 1인극 영화로 다시 썼는데 그 때 만들었던 첫 장편이 ‘벨웨더 (Bellwether, 2019)’입니다. 2017년 브뤼셀에서 촬영했고 런던에서 활동중이던 배우 알렉스 리드 (Alex Reid)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 Bellwether 포스터, 이미지 출처: Reality+ 홈페이지)

2015으로 시간을 잠시 되돌려보죠. 그때 이미 제 와이프 Ioana Matei는 VR을 시도하던 중이었고 저 역시 새로운 미디어에 매료되었습니다. VR을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늑대인간 (The Werewolf Experience)을 구상했어요.

늑대인간 제작기 in 벨기에

Q: 그렇군요. 디테일한 이야기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는 듯 생생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감독님의 다양한 경험들이 VR로 이어지는 지점들이 있어 흥미롭습니다. VR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늑대인간을 구상하셨다고 했는데 늑대인간 제작 과정은 어땠나요?

C: VR에서의 신체 구현을 상상하다보니 관객이 뱀파이어가 되는 경험을 구현하면 피를 마시는 장면이 들어가야할 것 같고, 좀비는 너무 식상하고 잔인할 것 같았습니다. 반면 늑대인간이 되어보는 경험은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늑대인간은 판타지적 요소와 함께 어떤 동물적인 힘과 매력도 갖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VR을 통해 관객을 늑대인간으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제 최애 영화 두 편이 바로 ‘런던의 늑대인간 (An American Werewolf in London, 1981)’과 ‘도그 솔져스 (Dog Soldiers, 2002)’에요.

저는 곧바로 늑대인간 피칭을 시작했고 몇몇 벨기에 프로듀서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2015년 즈음에는 ‘트랜스미디어’가 키워드였고 벨기에에는 트랜스미디어 콘텐츠의 IP 양산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일부로 ‘Cross Video Days’ (이후 ‘VR Days’로 이름이 바뀜) 피칭 콘테스트가 진행됐고, 거기서 처음으로 늑대인간 VR 피칭을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 프로젝트를 알렸던 거죠. 이후 2017–8년즈음에 Stereopsia에 진출했고 Stereopsia Booster 피칭에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너무나 길었고 저는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어요. 미국인 입장에서 유럽의 방식은 너무 느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작과정을 더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VR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제작사가 아닌 Unity 프로그램에 능숙한 사람들이 있는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그때 찾은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의 이름이 ‘Fridge’인데 나중에는 ‘The Pack’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 회사의 경우 Unity 프로그래머들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야 모델들을 Unity 프로그램에 직접 임포트 할 수 있는 회사 제품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장편 제작을 위한 Unity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2018년에 이 회사를 알게 되어 VR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안했습니다. 회사 역사 저처럼 장르성이 강한 VR을 제작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늑대인간 스틸, 이미지 출처: 비욘드 리얼리티 홈페이지)
(늑대인간 스틸, 이미지 출처: 비욘드 리얼리티 홈페이지)

The Pack은 20년 이상의 포스트 프로덕션 경험을 갖춘 회사였기 때문에 벨기에 투자자들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2018년 당시 저는 벨기에 영주권자였지만 아직 시민권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벨기에 내의 프로덕션 파트너를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어요.

The Pack과 나는 VR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 집필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벨기에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지만 투자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벨기에에서만 네 군데 각기 다른 곳에서 3년에 걸쳐 투자를 받았습니다. 2015년에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7년 후인 2022년에야 완성할 수 있었던 겁니다.

나는 코딩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프로덕션 파트너가 꼭 필요했어요. 우리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했고, 다행히도 애니메이션 제작은 모두 재택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팬더믹의 영향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웠습니다.

(BIFAN XR TALK에서 관객 질문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중앙), 왼쪽으로는 김종민 프로그래머와 오른쪽에는 블랙 아이스 VR의 감독 아리프 칸, 이미지 출처: Da Ye Kim)

늑대인간 경험, 사운드, 상호 작용

Q: VR 의 매력 포인트는 관객이 자신이 아닌 다른 캐릭터로 변해서 가상의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늑대인간의 특징은 관객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여 하울링 소리를 내며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인데, 음성인식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 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늑대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거든요.

C: 무언가를 제작하기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분위기/톤(tone)은 무엇인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 세상은 어떠하며 이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전달할까? 어떻게 몰입감을 구현할까?

VR의 경우, 이 이야기가 VR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VR로 제작할 때 관객이 캐릭터가 직접 되어보는 경험인가 아니면 관찰자의 입장으로 보는 경험인가? 관객이 플레이하는 캐릭터는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관객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

늑대인간 VR은 관객을 늑대가 된 듯이 으르렁 거리게 유도합니다. 늑대인간 캐릭터를 신체화할 때 으르렁 소리나 하울링 소리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를 유도하기 위해서 튜토리얼로 경험을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비디오 게임 속 튜토리얼을 매우 싫어하는 편이지만, 늑대인간의 경우 튜토리얼이 꼭 필요했어요.

늑대인간 경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가지가 바로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퀸스와 하울링 소리입니다. 변신 시퀸스 (transformation sequence)는 정말 중요합니다.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꼭 등장할 뿐만 아니라 늑대인간 팬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변신 시퀸스를 물어보는 것일 정도니까요.

늑대인간 VR 초반에 등장하는 거울은 관객의 캐릭터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 중간 부분에서는 물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도 있죠. 이렇게 변신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은 관객의 신체적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늑대인간’하면 또 하울링 아니겠습니까? 늑대인간 VR을 처음 기획했을 때 유럽의 크리에이터 랩 (European Creators’ Lab)에 참여했었는데 거기서 움직임에 기반한 인터페이스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팔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 인터페이스를 봤는데 늑대인간에 접목하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체력적으로 어려워보였습니다. 팔을 푸드덕거리는 늑대인간은 그림이 이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움직임이 아닌 소리를 통해 진행되는 인터페이스를 생각하게 되었고 음성인식을 떠올렸습니다. 기왕에 음성인식 인터페이스를 사용할거면 늑대인간처럼 으르렁거리고 하울링하는 경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 초반에 제가 처음으로 경험해봤던 VR 작품 역시 소리를 사용했었습니다. 네덜란드 오페라 극단에서 제작한 “Waltatem”이라는 VR이었는데 관객이 노래를 부르면 그 음정에 맞춰 경험이 변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음정이 올라가면 관객의 몸도 위로 올라가고 음정이 내려가면 다시 내려가는 설정이었죠. “그래, 늑대인간 경험에서 하울링 소리를 빼놓을 수 없지”라고 생각을 심어준, 늑대인간 VR 제작에 정말 큰 영향을 준 VR이었습니다.

관객이 하울링을 할거라면 그 소리가 VR 경험 중심에 있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음성인식을 통해 스토리가 진행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음성인식 인터페이스 작업은 ‘DeMute’라는 회사와 함께 구현했습니다. VR과 공간 음향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인데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늑대인간 티져, 출처: Christopher Morrison Vimeo)

Branching 내러티브, 관객의 선택으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

Q: 늑대인간 VR은 감독님의 오리지널 이야기인가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는 branching narrative 형식인데 이 형식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C: 늑대인간 VR은 제가 창작한 오리지널 이야기입니다. 애니메니션 감독을 맡았던 제프 (Jef Dehouse)와 제 와이프 Ioana Matei도 공동 작가로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있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가 창작했고 제가 VR 감독을 맡았습니다. 벨기에 프로듀서들은 관객이 으르렁 소리를 내야한다는 전제조건을 걱정했고, 어떻게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경험을 더 몰입감 넘치게 만들 방법이 필요했고 그래서 하나의 스토리 라인이 아닌 branching narrative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는 으르렁 대고 누군가는 소리를 안 낼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두 관객이 같은 엔딩을 경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관객의 음성 인터랙션에 따른 세 가지의 다른 엔딩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네러티브 형식들을 좋아하고 이를 스토리 경험에 녹여내는 작업을 즐깁니다. 2015년부터 비디오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작업도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branching narrative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관객/플레이어의 선택이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디오게임에서 쓰는 branching narrative 형식을 늑대인간 VR에도 사용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오랜 연극 생활과 저예산 영화제작 경험 덕분에 branching narrative로 제작할 경우 제작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Branching narrative 작품에는 추가로 필요한 장면들이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작품의 스케일은 줄였습니다. The Pack과의 논의 끝에 몇몇 대형 장면들을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강물을 건너가는 장면이나 어떤 집안을 휘집고 다니는 장면이 있었지만 결국 편집했습니다.

Branching narrative의 경우 여러 버젼의 엔딩을 준비해야합니다. 처음에 하나의 엔딩만 준비했던 이유는 예산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세 개의 엔딩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세개의 추가 장면이 필요하다는 의미였기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몇몇 큰 장면들을 편집했기 때문에 세 가지 엔딩을 제작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하울링 소리를 내지 않은 관객도 한 가지 버전의 엔딩은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리를 내는 것이 내키지 않으면 조용히 관람해도 한 가지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언제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진행이 달라지고 이에 따른 특정한 엔딩을 경험하게 됩니다.

늑대인간 VR은 관객의 선택에 의한 경험입니다. 저는 작가로서, 임의적인 선택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지양하는 편입니다. 늑대인간의 경우 소리를 내느냐 내지 않느냐의 이분법적 선택이긴 하지만 언제 어떤 부분에서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됩니다. 늑대인간 VR 속 선택들의 결과는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경험 중 등장하는 여러 선택의 순간들 중 두 개는 이야기 진행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나머지 선택들에는 반드시 선택에 따른 특정한 결과가 있습니다.

다음을 향해 또 달려나가다

Q: 늑대인간은 VR 스토리텔링과 기술을 접목시키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감독님 오리지널 창작 작품인만큼 혹시 시리즈로 제작하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C: 시리즈 제작에 대해 답하기 전에 전시 경험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정말 대단합니다. 관객이 각자 정해진 시간에 부스 공간을 예약 해서 다양한 VR을 경험해볼 수 있는 시스템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늑대인간 VR을 더 즐기기 위해서는 더 여러명의 관객이 전시공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이상적인 큐레이션은 한 공간에 세 명의 관객이 함께 늑대인간 VR을 경험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각자 VR 헤드셋을 쓰고 경험하겠지만 두 명 정도의 사람이 옆에서 같이 소리를 낸다면 소리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치 영화관에서 웃긴 영화를 볼 때 주위에서 아무도 웃지 않으면 웃기 민망하지만 누군가 같이 웃으면 웃음소리가 몇 배로 커지는 것과 비슷한 논리입니다.

늑대 무리를 ‘pack’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러 명이 pack을 이뤄서 함께 늑대인간 VR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 환경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늑대인간 VR은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도록 하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늑대인간 VR은 세가지 다른 속도로 경험을 세팅할 수 있는데 빠른 모드 (fast mode)로 설정했을 경우 40초에 한번씩 선택을 하게 되어있어서 8분 이내로 전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 VR 이야기 속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배우들이 그 공간에서 즉흥 연기를 한다면 VR 헤드셋을 쓰기 전부터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전시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시리즈로 제작할 것인가? 좋은 질문입니다. 앞서 말한 The Pack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와 저는 처음부터 늑대인간 VR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전시 경험을 더 디테일하고 연극적으로 구상해서 LBE (Location-Based Entertainment) 경험으로 진화 시켜볼 계획도 있습니다. 멀티 유저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 역시 생각 중입니다. 지금의 이야기와 세계관이나 음성인식 인터페이스는 유지하되 LBE 멀티유저 경험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Q: 늑대인간 VR 외에 다른 프로젝트도 구상중이신가요? 워낙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시는 만큼 다음 프로젝트도 VR인지 궁금합니다.

C: 차기작들 중 하나는 분명 VR일 겁니다. 현재 장편 영화도 제작을 시작했고, TV 시리즈 하나를 피칭 중에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시나리오 하나도 제출한 상태구요.

제 회사 Reality+는 다음 VR 프로젝트를 위한 컨셉 프루프 (proof of concept)를 완성한 상태입니다. 이번 VR의 제작사는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인데 앞으로 조금 봐야할 듯 합니다. 제목은 ‘Drunk Zombie Duelists (DZD)’이며 360 볼류메트릭 캡처 기술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제가 장르영화, 장르 이야기를 좋아하는 만큼 VR에 장르 네러티브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DZD의 경우 넷플릭스 느낌의 5 에피소드 시리즈로 제작하는 코미디, 액션 무술 VR일 예정입니다. 두 결투자 (duelist) 캐릭터들 사이에 시간차를 두는 이야기 형식을 구상 중이며 모든 결투장면은 볼류메트릭 캡처 기술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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