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EBS VR 다큐, ‘POISON(포이즌)’

Mina 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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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min readMar 15, 2021

SXSW 2021 버추얼시네마 경쟁부문 선정작 ‘POISON’ 제작기

Case study는 창작자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제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많은 분들이 효율 높은 제작 환경에서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만들어가는 ixi 시리즈입니다.

얼마 전 ‘POISON’의 SXSW 버추얼 시네마 경쟁부문 선정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도 나눌 겸 유상현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유 감독님과 ixi를 만들고 있는 기어이(GiiÖii) 멤버들과의 인연은 여러 xR 프로젝트에 걸쳐 이어져 왔는데요. 재미있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신 유 감독님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최신작은 어떤 작업인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락을 받은 유 감독님과 제작진들이 기어이의 사무실에 놀러오셔서 ixi 필진은 작품과 제작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포이즌 포스터 (사진 제공: 이미솔 PD)

작품의 연출을 맡은 EBS 이미솔 PD, VR 자문을 맡은 유상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서경대 융합대학 교수), 시나리오를 맡은 소현수 작가 세분을 모셨습니다. 10년 전, 국내 최초 3D 인디 뮤직비디오 ‘썸머히어키즈’의 ‘Fish & Chips’ 제작에 참여했던 인연들이 다시 만나 VR 작업을 함께하게 되어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뜨거웠던 ‘POISON’ 제작 현장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ixi 필진의 질문과 세분의 진솔한 답변으로 구성된 인터뷰 바로 만나보시죠. (ixi 필진은 인터뷰를 위해 ‘POISON’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유상현 감독, 이미솔 PD, 소현수 작가

ixi ‘포이즌’은 어떤 작품인가요? 독자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합니다.

이미솔 PD(이하 ‘이’): ‘포이즌’은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인간 몸에 침투해 인간을 감염시키는 경로를 체험하는 콘텐츠에요. EBS에서 처음으로 만든 Full VR(게임 엔진으로 제작한 6축 VR 경험) 콘텐츠고요. 그동안 EBS에서 360 촬영은 많이 했었거든요. Full VR은 이게 처음 시도해본 거예요. 교육적 목적, 학습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게 리보솜이 나오면 RNA가 나와’ 이렇게 말로 해주는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재미있게 모든 과정을 습득할 수 있는 그런 학습을 염두에 뒀거든요. 그리고 VR 다큐멘터리에서의 영화적 스토리텔링에 도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현수 작가(이하 ‘소’): 지금 말씀하셨듯이 교육적 목적인데 체험을 통해 환기를 시키는 거에요. 포이즌이 뭐지? 하는 호기심. 왜 내가 여기로 들어가고 쟤들은 왜 여기 붙지? 하는 그런 호기심을요. 그런 지식을 저희가 직접 전달한다기보다 이 체험을 통해서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하고, 심화학습은 관객이 따로 하게 되는거죠.

ixi 제목은 왜 ‘포이즌’인가요?

소: 처음에 리서치를 할 때 바이러스(virus)의 어원을 찾다 라틴어로 바이러스가 ‘독(毒)’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바이러스가 너무 직설적이라 좀 더 은유적인 ‘POISON’으로 제목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ixi 바이러스 입장에서 경험이 진행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기획 과정이 궁금해지네요.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게 되셨나요?

이: 처음에 아이템 후보군이 다양하게 있었어요. 제가 물리학과 출신이어서 사실 처음 VR을 만드는 만큼 우주 관련된 걸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참고 자료로 ‘Spheres (스피어즈)’를 보고 너무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우주 말고 다른 기획으로 가게 되었죠.

소: ‘스피어즈’가 거시적인 세계를 다뤘으니까 우리는 오히려 미시로 가자, 많이 들어가서 처음엔 양자역학 이야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코로나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고, 저희가 리서치 과정에서 유튜브를 찾아보니까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전(작용 원리)을 정확하게 구현하고 짚어주는 영상은 없더라고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계를 보여주는 게 없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 아이템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ixi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리는데요, 조언을 받기도 하셨나요?

이: 네, 바이러스 전문가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님께 조언을 받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전(Viral Replication Formula)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바이러스가 이동하고 감염되는 전체 과정 중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정하는 과정이 어려웠는데, 굉장히 생략이 많이 되어서 교수님이 설명해주신 내용 중 10% 정도만 구현했어요.

소: 처음에 교수님께 설명을 많이 들었을 때는 시나리오가 훨씬 복잡했습니다. 유 감독님이 덜어내는 역할을 많이 하셨죠.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너무 과학 다큐 같다면서. (웃음)

유상현 감독(이하 ‘유’): 두 분은 과학 다큐를 만드는 분들이니까 고증이 철저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저는 조금 더 일반인 관점,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VR이 단순 지식 전달에 쉬운 매체는 아니어서 훨씬 더 쉽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리보솜, DNA, RNA가 원래 시나리오에는 더 많이 나오는데, 제가 느꼈을 때는 그렇게 가면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좀 어렵겠다 싶었죠.

초기 스토리보드 (사진 제공: 이미솔 PD)

ixi 연출 방향이 비주얼적인 부분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요?

소: 유상현 감독님의 얘기를 듣고 초반보다 비주얼 방향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유 감독님이 영화적인 해석을 많이 해주셨죠. 처음에는 시각적으로는 좀 더 단순한 형태였는데,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이 좀 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지금의 ‘포이즌’이 된 것이죠.

이: RNA가 세포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증식하는 장면이 저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생명체 같은 느낌이 드는 지점이에요. 바이러스의 움직임이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껍질이 벗겨지고 그다음의 움직임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니메이션을 맡은 분께 좀 더 징그럽게, 더 생명력이 느껴지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했었고요. 생김새는 고증에 따라 만든 것이죠.

ixi 관객이 의식하지 않아도 ‘나는 누구지? 나는 여기 왜 있지? 내가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는 궁금증이 드는 게 VR 매체의 특징인 것 같아요.
그런데 ‘포이즌’을 체험할 때 ‘내가 바이러스인가, 아니면 나는 바이러스를 없애는 사람인가?’ 하는 게 헷갈리는 지점들이 좀 있었거든요. 중간에 제3자 시점으로 바뀌는 느낌을 받았는데 연출적인 면에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의도한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세포 내부에서 ‘나’를 둘러싼 공간의 디자인 (사진 제공: 이미솔 PD)

이: 원래 최초 기획 의도는 내가 무조건 바이러스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바이러스 입장이고 내가 바이러스가 돼서 사람 몸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간에 한 번 딱 그 시점이 어그러지는 순간이 있어요. 계속 바이러스임을 내레이션으로 듣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딱 하나의 바이러스만 들어가거든요. 체험자는 그걸 바라보고, 그 지점에서 시점이 그전과 분리되는데 이 연출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소: 시적 허용이랄까요. 시점이 100%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희가 봤을 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이상 괜찮지 않나 싶었어요. 바이러스 기전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이 시점의 불완전함이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질문했을 때 그렇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거죠.

유: 저희끼리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을 많이 벌였어요. 소설에서는 내가 누구다 한 번 나오면 머리에 각인되는데, VR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치고 갈 수 있어서 저희가 유저 테스트할 때도 그 질문을 많이 드렸어요. 내가 누군가, 내가 뭔지 아셨느냐 하고요. VR에서 시도할 수 있는 인터랙션 종류가 많지 않아서 저희가 날아오는 큰 공(바이러스)을 치는 인터랙션을 사용했는데, 저는 그 치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에게 ‘이게 나랑 얘랑 같은 편이야 아니면 반대편이야’를 헷갈리게 할 수 있는 요소였던 것 같아요.

ixi 손 모양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나’라는 관객의 존재나 ‘스토리 안에서의 존재’, ‘손’이 연결되는 부분이잖아요. 최종적으로 선택하신 손의 형태에 대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이: 앞서 이야기한 ‘시점’과 연관이 되는데, 만약에 1인칭으로 ‘내가 바이러스고, 한 개체다’라고 표현을 하려면 바이러스에 나와 있는 돌기로 손을 만들었으면 굉장히 직관적이었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중반에 시점이 완전히 분리되는 지점에서 그 개념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바이러스 전체의 의지나 지능, 인간을 감염시키기 위해서 종을 대변하는 어떤 전지적인 존재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굉장히 애매한 초록색 궤적만 나타나는 손으로 최종 디자인을 하게 된 거죠.

ixi 퀘스트(Oculus Quest)를 이용해 핸드트래킹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컨트롤러 버전으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핸드트래킹, Hand Tracking: Oculus Quest/Quest2의 인사이드-아웃 카메라로 손의 이미지를 인식하고 분석하여 손의 움직임, 위치, 제스쳐 등을 컨트롤러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출처: 오큘러스)

유: 초반 제작 과정에서 리프트 제작 환경으로 세팅한 상태에서 제작이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나중에 퀘스트 버전으로 변경하려니 나이아가라 비주얼 이펙트나 베이크된 환경 등 다운그레이드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최종적으로 리프트 버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퀘스트 버전으로 했으면 리모트로 전시하는 환경이나, 교육자료로 학교에 배포할 때에도 더 용이했을 것 같아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핸드 트래킹보다는 컨트롤러 사용을 염두에 뒀었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촉감이 중요한 움직임들 때문이었습니다. 컨트롤러 없이 손을 사용하면 바이러스들을 만질 때 찐득하게 붙는 느낌이랄지, 물을 만질 때의 흘러내리는 촉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 괴리감이 더 크거든요.

ixi 확실히 접촉하는 느낌을 줄 때는 손이 잘 맞지 않지만, 염력을 쓰는 것처럼 뭔가를 쏘거나 뭔가를 막거나 할 때는 손이 더 직관적인 것 같아요. 핸드트래킹이 아직 좀 불편할 수도 있어요. 실제 손과 트랙킹된 손 움직임에 미묘한 딜레이가 있어서 콘텐츠에 따라 컨트롤러의 진동 피드백 같은 부분이 오히려 더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ixi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내레이션도 좋고, 이게 바이러스의 관점이라는 것도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바이러스의 입장에 서 볼 수 있는 장치’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이 몸에서 계속 증식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거기 실패했을 때 어떻게 사라지는지, 나의 동료나 나는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지, 아니면 내가 이 공간에 부유하다가 정착을 못 하면 이렇게 사라지겠구나 하는. 그 입장에서의 ‘나’라면 저 돌기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데 이런 간절함이라든가 그게 딱 잡힐 때의 희열 이런 부분들이 좀 더 그려졌으면 이 관점이 더 참신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 제 생각엔 스토리텔링에서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할 것 같아요. 몰입을 위해서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저도 동감합니다. 내가 바이러스니까 이거 걸리면 큰일 나는데 하는 과정을 너무 심플하게 그린 것 같아요.

유: 제작사가 EBS다 보니 아이디어가 수용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저는 바이러스에 뿔도 달아서 캐릭터처럼 만들고 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좀 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적인 연출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이: EBS라서 그렇다기보단,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좀 더 다큐 스타일이라 캐릭터로 하진 않았어요. 극적인 연출에 있어서는 저도 아쉬워요. (실제로) 처음 바이러스가 세포에 들어갔을 때 백혈구가 위협적으로 막 잡아먹어요. 그런 전쟁 같은 씬이 나오면 좋았겠지만, 이번 에피소드에 구현하기에는 예산이 조금 부족했고, 기회가 된다면 2부에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포이즌 제작 현장 (사진 제공: 유상현 감독)

ixi 유튜브에 올려주신 제작기에서 이미솔 PD님이 ‘VR이 기존 TV 다큐멘터리 문법이랑 정말 다르다’고 하셨는데요. 제작하는 입장에서, TV 방송 제작에 익숙한 창작자로서 가장 크게 겪은 어려움이랄지, 가장 곤란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큰 어려움이 중간에 이걸 제작하면서 깨달았어요. 평소처럼 시나리오를 소 작가님이 다 쓰시고 그걸 비주얼라이징 하고 제작에 들어갔어요. 저는 항상 프레임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시나리오가 나오면 우선 2D로 콘티를 그려요. 그런데 머릿속에는 작품이 콘티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만들다 보니 VR은 타임라인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개념인 거에요. 사실 VR 안에는 카메라가 없잖아요. 프레임이 아니라 ‘공간’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게 기존 작업과 너무 큰 차이였어요.

유 감독님이 중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에요. ‘지금 공간 디자인을 해야 하는 게 중요한 문제다. 지금 우리 팀에서 다들 소통이 안 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앞’만 계속 생각해서 그런 거다. ‘프레임’ 개념으로 생각하니까 내 ‘앞’에 뭐가 있어야 하지? 해서 그렇다.’

그런데 그게 VR을 하시는 분들한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제 저나 애니메이션 하는 분도 VR은 처음이었거든요. 안 보이는 곳까지 공간디자인을 해야한다는게 제일 중요하다는 걸 좀 늦게 깨달았죠. 프레임이 없어지고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에 사용자를 좀 더 몰입시키기 위해서 인터랙션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인터랙션도 처음에는 양념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인터랙션이 핵심인 거예요. 그 공간에 몰입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 거죠. 그래서 처음에 2D로 생각할 때는 양념하듯이 ‘여기 만질까, 여기에서 이거 만질까’ 이런 식으로 인터랙션을 기획 했었는데 공간이 중요해지고, 공간을 만들어놓고 나니까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 공간 안에서 어떤 인터랙션이 가장 몰입감이 높을 것인지를 다 같이 또 새로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게 2D에서는 절대, 전혀 없는 일이에요.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고 2D 작업이랑 가장 달랐던 점이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편집할 때 프리미어나 파이널컷 같은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를 쓰는데, 이번 작업은 언리얼엔진을 쓰니까 그 작업 방식도 너무 생소했거든요. 노드가 있고.

제가 개발자분께 ‘타임라인 띄워 주세요.’ 하니까 ‘타임라인 아니고 원하는 초 수를 말하세요.’ 이러면 제가 ‘초 수요? 그러니까 3프레임만 밀어주세요.’ 하면 개발자분이 ‘그런 거 안 된다.’ 이런 식이었죠.

그 모든 과정이, 사용하는 툴부터 시작해서 작업 방식이 너무 생소했어요.

소: 유 감독님이 처음에 360도 콘티를 보여주셨을 때,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도 이거를 고려를 좀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이 ‘앞’만 생각하고 쓴 거예요. 나중에 저도 얘기했어요. 공간적인 부분을 미리 시나리오 단계에서 해결해야겠다. 이런 공간적인 경험이 저희가 거의 콘티 단계에 와서 설계를 들어간 거라서, 만약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려했으면 어떨까 그런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2부를 만들고 싶어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 제가 처음 제작 회의에 갔을 때 다 같이 모니터만 보고 하는 거에요. 모니터가 있고, HMD는 옆에 두고. 모든 것이 내 눈앞의 직사각형 안에 들어 있으니까 거기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땅을 넓혀간 거죠.

포이즌 제작 과정 (사진 제공: 유상현 감독)

ixi 작품의 러닝타임이 8분 30초인데 어떻게 정하셨나요? VR 콘텐츠를 만들 때 그런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10분 넘어가면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이유였는지 아니면 그 길이가 적당한 길이라고 판단하신 것인지 궁금해요.

이: 1차로 완성되었을 때는 러닝타임이 13분이었어요. 그런데 일단 10분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었죠. 기획 단계에서 여러 VR 작품을 직접 해보면서 10분이 한계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10분 이내로 만들기로 정했어요. 작품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테스트하면서 구간을 가장 적절한 위치로 이동하고 하다 보니 8분으로 줄었다가 최종적으로 8분 30초가 나왔어요.

ixi 10분이 한계라고 느끼신 이유는 뭘까요?

이: 제가 좀 어지러움에 민감한 편이에요. 움직임에 되게 예민하거든요. 저희 팀에서 제가 제일 예민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테스트를 많이 해봤어요. ‘포이즌’도 약간의 움직임이 있거든요. 콘텐츠에 그 정도 움직임이 있을 때, 저는 10분 이상 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했어요. 이게 기술적으로 데이터가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위로 가거나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가는 건 괜찮은데 수평적으로 방향성이 있거나 대각선으로 이동할 때는 어지럽더라고요. 그래서 포이즌에서는 다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게 움직임을 연출했어요.

ixi 제작 기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었나요?

이: 기획이랑 시나리오 작업은 한 2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소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되게 빨리 쓰세요. 그래서 두 달 밖에 안걸렸던 거고 실제 제작 기간은 3개월 정도 해서 총 5개월 걸렸죠.

소: 사실 초고는 금방 나왔어요.

이: 소 작가님이 회의하면 바로 수정해서 그날 바로 던지고 하는 스타일이세요.

소: 저희가 매번 모여서 작업할 수가 없었고, 수정을 빨리하지 않으면 다른 작업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작업이 전혀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라 수정을 빨리했고요. 3개월 동안 모델링하고 엔진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던 거죠.

유: 저는 시나리오 다 끝나고 실제작 들어갈 때 합류하게 되었어요.

소: 유 감독님이 오자마자 시나리오 보고 ‘이거 안 돼. 너무 어려워.’

이: 그래서 시나리오를 실제로 좀 많이 수정했어요. 제가 너무 디테일하게 바이러스의 번식과정을 쭉 풀어놨었거든요.

소: 용어도 많이 빼고요.

이: 거의 다 덜어내고 거의 뼈대만 남은 수준으로.

ixi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만한 부분인데, 순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이: 제작비는 8,00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ixi 굉장히 저예산으로 작업하셨네요?

유: 사실 저렴하게 할 수 있었던 게 저희가 10년 전 인연으로 모였기 때문인데요.

이: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스태프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크루가 모여서 돈 안 받고 자발적으로 하는 분위기였어요.

소: 재미있었죠.

유: 저는 첫 회의가 ‘놀러 와~’ 이래서 가봤더니 회의를 하고 있는 거에요. 저는 앉아 있다가 다들 말하길래 저도 한마디씩 하다 보니까 그게 회의가 됐어요. 만약 처음부터 계약 관계로 한명씩 섭외를 했으면 제작 예산이 훨씬 많이 들었을 거에요. 언리얼엔진 개발자분과 그래픽 하시는 분은 저희 크루에 초빙된 느낌으로 제작진이 꾸려졌죠.

이: 그래픽 하시는 분은 넷마블, 사운드 디자인하신 분은 넥슨에서 오셨고요.

소: 사람들이 다 좋았던 것 같아요. 좌충우돌 하는 와중에도 진행이 되고 결국 완성된 작품이 나왔다는 건 사람들이 다 좋아서인 것 같아요.

유: 친하기 때문에 서로 논쟁을 할 때도 더 세게 주장하고, 세게 반대를 할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조심스러워지고 포기했을 부분도 오히려 ‘이러면 절대 안 봐!’하고 말하거나 ‘이러면 안 되잖아요!’하면서 적극 토론하면서 만든 거죠.

소: 전체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서 ‘포이즌’ 2부도 꼭 하고 싶어요.

포이즌 언리얼 제작 환경 (사진 제공: 유상현 감독)

ixi 제작 과정에서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언리얼엔진을 사용했을 때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유: 언리얼이 노드 기반이기 때문에 처음에 굉장히 빠르더라고요. 첫 회의부터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바로바로 나오는 게 장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이 계속 조금씩 바뀌는데 구조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약간 갇혀 있었던 게 있었어요. 오프닝과 엔딩을 볼류메트릭으로 촬영해서 사람들을 파티클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훨씬 실사에 가까운 사람들을 볼류메트릭 기법으로 제작하려고 했죠. 엔딩에서 바이러스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진짜 사람들을 만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언리얼에서는 그 부분을 구현할 때 조금 까다로운 게 있었어요. 유니티는 유저들이 필요 때문에 만들어둔 플러그인이 다양하게 많이 있어서 좀 더 손쉽게 쓸 수 있었는데, 언리얼에서는 그런 게 좀 없어서 아쉬웠어요.

이: 언리얼이 좀 무겁다고 들었어요. 개발자분이 작업할 때 씬을 다 합치면 너무 무거워진다고.

소: 그래서 레벨 디자인을 나중에 수정하기 어려웠던 게 아쉬움이 많았어요. 저희 콘텐츠를 보시면 씬이 나뉘어져 있는데 그게 씬이 전환이 되면서 몰입이 조금 깨지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이 나중에 수정이 안 되더라고요.

유: 화질과 그래픽을 최상으로 하기로 처음부터 기획하고 구조를 짜는 경우에는 언리얼로 작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고, 이런저런 것들을 제작 과정에서 시도하기에는 유니티를 선택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ixi ‘포이즌’과 관련된 별도의 영상 다큐가 있을까요?

이: 아니오, VR로만 제작되었습니다. 리보솜, RNA 이런 과정을 설명해주는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관객들의 요청이 있긴 했습니다.

ixi 마지막으로 세 분의 다음 작업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차기작도 VR 작업이신가요?

이: VR로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일단 방송 콘텐츠를 해보라 해서 차기작으로 버추얼 프로덕션을 활용하는 작업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이템은 기획 중이에요. 아직 ‘포이즌’ 2부 제작에 대해 정식으로 이야기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제작본부 소속이고, EBS에 VR 콘텐츠를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요. 그 부서에서는 초등학생 중학생 대상의 학습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소: 저는 SXSW 시기에 맞춰 저희 콘텐츠에 들어가 있는 오브젝트들을 온라인으로 전시하고, 전시물에 대한 소유권을 NFT(non-fungible token) 플랫폼에서 판매해보는 실험을 하려고 해요. NFT 플랫폼은 예술가입장에서 시장이 다양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요, 시장이 다양해진다는 건 예술가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유: 지금 정부지원사업 신청이 한창인 시기라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러 사업에 실감 콘텐츠 부문 자문을 하고 있고요, 작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공개했던 Sim The Blind VR을 더 개발하고 싶어서 스폰서를 찾는 중입니다. 재밌는 작업들을 더 하고 싶어요.

‘POISON’이 초청된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는 1987년에 시작되어 매년 3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영화, 인터랙티브, 음악 페스티벌, 컨퍼런스입니다. 작년 SXSW는 코로나 타격으로 행사가 직전에 취소되기도 했었죠. 올해는 미국 시각 기준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되며 ‘POISON’도 행사 동안 체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EBS 이미솔 PD, 소현수 작가, 유상현 감독(서경대 융합대학 교수)과 함께한 ‘POISON(포이즌)’ 제작기 인터뷰입니다. 흔쾌히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 이번 이야기 어떠셨나요? 포이즌 제작진에게 더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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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 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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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rsive Producer, specializing in Narrative Design for Virtual Reality and Immersive Environments | Research-based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