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그 이름, 공부

Sage Ahn
Know True Myself
4 min readSep 23, 2014

--

『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 | 역자 이재만 옮김 | 유유 | 384 쪽

책의 표지와 한 두 페이지를 넘기니 저작권 표시가 1920년으로 나온다. 책의 초판이 출판된 것이 1920년, 서문에 1920년 8월 15일이라는 저자의 날짜기록이 있다. 지금이 2014년이니까 이 책은 무려 아흔 다섯 살이겠다. 거진 백 년 전의 책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궁금증과 의심을 가지고 한 페이지씩 읽어 나갔다.

내게 공부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최근의 내 관심사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남보다 빨리,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효과적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그것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모든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지성인들은 “신성한 부름”, 즉 소명이 있다고 말한다.

“소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의 제1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곧바로 신과 우리 자신에게 순종해야 한다며 우리는 이 소명에 의해 은총을 입게 된다.”고한다. 소명이라니! 이 얼마나 거창한가? 하지만 이내 수긍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내 인생을 통해 시간을 들여 오랜 기간 동한 연마한 것이겠으나 누구나 시간을 보낸다고 잘 하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무엇을 잘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잘하는 것은 소명에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잘한다는 것, 소명이라는 것을 받드는 데는 천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견뎌내는 평균적인 인내,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의지, 누군가가 되고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를 비롯한 수많은 범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의지는 또 얼마나 얻기 어려운가?

저자는 공부에 필요한 덕목으로 겸손, 사랑, 면학, 기도하는 정신, 훌륭한 신체(운동과 식사, 금욕) 방해가 되는 악덕은 태만, 헛된 호기심이다. 공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사랑이란 어떤 의미인가? 저자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드러내는 신과 함께하여 진리에 동참하라고 조언한다.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도덕적 진전으로서 진리에 다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신께 배울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 억지스럽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논리에 신의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훌륭한 프로그래밍은 간결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겸손함과 간소함의 결과로 감각과 상상력을 규율하여 위대한 목표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 소명의 영역이 신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던 공학이던 간에 귀 기울일 만한 것이다. 책이 백 년 전에 쓰인 만큼 뒷부분의 공부의 방법은 어떻게 보면 현대의 방식과는 그 효율성면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진가는 진지하게 자신의 소명을 찾고 무엇을 잘하는지 왜 공부하고 싶은지를 알고 싶은 진지한 탐구자에게 주는 마음과 자세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책 전반에 걸쳐서 내게 가장 유익이 된 것은 아래와 같은 저자의 조언이다. 단순한 삶, 동료와의 협동, 현실 감각의 유지, 꼭 필요한 활동 요소를 해 내는 것, 내면의 고요함을 지켜내는 것. 1초 1초 숨 가쁘게 변화해 나가는 현대 사회에서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경쟁하지 않고, 그렇다고 현실을 등지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켜가는 것, 그러면서 내면의 고요함을 지켜낸다는 것은 정말 공부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협동과 고독 속의 내면의 고요함.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활동과 외적 교제는 은거와 고요, 내적 고독이 전제될 때만 허용될 수 있으며 이것들에 따라 규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고요한 묵상의 시간이 없이 눈뜨자마자 군중 속으로 회사로, 페이스북으로 들어가는가?

그렇다면 소명이 있고, 지식인으로서 덕목을 갖추길 열망한다면 얼마만큼의 공부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저자는 하루 두 시간만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연속적인 공부. 즉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습관은 현명한 규제를 받으면 제2의 본성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아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가? 하루에 2시간, 그리고 지속적인 습관으로서의 공부를 위해 양질의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아침과 저녁의 묵상을 지키고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 방해 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라는 조언 그리고 그 시간을 완벽하게 지켜야 공부에 열중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선언은 나로 하여금 지난 2년 공부에 대한 내 노력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지식노동자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이 책은 인생 후반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좋은 재점검의 기회를 주었다. 공부란 단지 글을 읽고 쓰고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아닌,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끝임 없이 진리를 향해 삶의 모든 영역을 고쳐가고 바꿔가는 것이리라.

--

--

Sage Ahn
Know True Myself

Runner, camper, father of two daughters and startup fou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