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나한테 왜이래?

나의 사랑이야기

1994년 3월의 C관 식당은 신입생들을 맞이하려는 동아리들로 북적였다. 예수전도단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예의 신입생의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C관 식당으로 향했다. 종교동아리가 모여 있는 곳에는 예수전도단을 비롯해서 여러 동아리들이 모여있었는데 유독 예수전도단에만 사람이 없었다. 한바퀴 학교를 산책 겸 돌고 와도 또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귀찮았는지 괜시리 짜증이 났는지 그 옆 테이블에 있던 CCC로 마음을 바꿨다. 왜 그랬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그 때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다. 나는 1학년, 아내는 2학년. CCC에서의 생활은 순조로웠고, 학교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는 나는 동아리방만 왔다 갔다하면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 때 부터 마음이 잘 맞었던 아내와 나는 CCC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함께 생활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더 마음 깊이 서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귀기도 전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통화도 길게하고 그렇게 선후배의 정에서 의지하는 관계로 점점 발전했다. 2학년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밤, 여느 때처럼 밤에 전화 통화를 하다가 수련회 준비 등으로 바쁘기만 하고 딱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 롯데월드에 놀러가기로 약속을 했다. 95년 8월 28일. 아내와 롯데월드에서 만나 이리 저리 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날 그렇게 아내에게 흠모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서로는 누나 동생하던 사이에서 연애라는 것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CCC는 공동체 내에서 연애를 금하는 고리타분한 선교단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기까지 하는데 둘의 교제 사실을 간사님께 알려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3학년으로 캠퍼스 부대표순장이었고, 나는 2학년이자 곧 3학년이 되면 대표순장이 될지도 모르는 재목이었으니 간사님 입장에서는 자못 진지하셨을 것이었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3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 금식수련회에서 심야 불침번을 설 때 화섭형이 날 불러 둘의 관계를 확인하며 자못 진지하게 걱정을 해 주시던 모습도 생각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CCC 1호 커플로 결혼까지 골인한 전설의 순장들이 되었다. 그러나 몰래 몰래 두 커플이 더 있었으니 참으로 남여관계는 누가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캠퍼스의 십자군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내는 학부를 마치고 취업을 했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95년부터 교제를 했고 6년째가 되는 2000년, 뉴밀레니의 첫 해에 석사 4학기생의 신분으로 결혼을 했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니 참 놀라는 눈치셨다. 당연하게도 26살의 새파란 아들이 사고를 친것도 아니고 무슨 뚜렸한 이유도 없이 결혼을 하겠다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리라. 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에 125cc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종로거리를 달리던 철 없던 커플은 그렇게 혼인서약을 했다.

아내가 짧은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5백만원과 이런 저런 도움을 통해 맨주먹의 새신랑은 불광동 북한산 자락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화장실에서 거대한 지네가 발견된 놀라운 자연속 낡은 빌라였지만 그 어떤 집보다 소중한 첫 집이었고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임신한 아내가 언덕을 내려가지 못해 남대문 시장에서 아이젠을 사다 발에 신겨주던 추억이 가장 많은 신혼살림이었다.

올 해가 결혼 15주년이 되는 해다. 철 없던 꼬꼬마 부부도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되어 아가씨 같은 두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반평생을 함께 했고 이제 남은 반평생을 함께 살아갈 부부는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는 없지만 나는 아내가 매일 매일 더 사랑스럽다. “여보 난 당신이 어제보다 더 사랑스러워” 했더니 “근데 나한테 왜이래?” 라는 답이 돌아오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