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알미트라를 위하여

『예언자』 칼릴 지브란 | 오동성 옮김 | 나마스테 | 175쪽

현자가 되고 싶었다.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 여러 팀원을 거느린 팀장으로서, 작은 회사의 사장으로서, 참여하는 모임의 나이든 아저씨로서,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 강한 나는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나의 지식과 언행으로 타인을 감동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럴 때 마다 짧은 경구나 도움이 되는 책들을 찾았고, SNS와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개걸스레 읽어 댔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사랑, 결혼, 자녀, 베푸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일, 기쁨과 슬픔, 집, 옷, 사고파는 일, 죄와 벌, 법, 자유, 이성과 감정, 고통, 참 나를 아는 것, 가르치는 것, 우정, 말, 시간, 선과 악, 기도, 즐거움, 아름다움, 종교, 죽음, 고별 등 인간의 삶에 중요한 스물 여섯가지 영역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쓰여진 산문시이다. 작가는 20년을 구상한 끝에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잠언집 중의 하나로 자리 매김한 이 책을 출간했다.

현자 알무스타파는 올팔레즈를 떠나기 전, 도시로 들어와 그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사제들과 사람들은 그에게 진리를 말하기를 요청한다. “지금 이 순간 그대들의 영혼을 움직이고 있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으랴?” 사제 알미트라,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 부자, 여관 주인인 노인, 농부, 여인(기쁨과 슬픔), 벽돌공, 상인, 재판관, 법률가, 교사, 젊은이, 학자 등 다양한 이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현자에게 질문하고 현자는 답을 한다.

나는 현자가 되고 싶었으나 현자는 곧 지혜를 구하는 무리의 한사람이다. 떠나기 전 알무스타파는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듣는 이 중의 하나였다고 고백한다. 길지 않은 잠언집이지만 읽는 동안 나는 이 잠언집이 그 명성에 비해 자못 진부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 어떤 잠언집보다 위대한 진리의 성경을 오랫동안 읽었기 때문에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성경에 비해 예언자는 역시 한 수 아래였다. 다만 마지막 장 “고별에 대하여” 지브란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는데, 우리 안의 무한함에 대한 언급에서 였다. “그것은 드대들 안에 있는 무한함이라. 그 무한한 이 안에서 그대들은 단지 세포와 힘줄에 불과하며, 그의 소리 안에서 그대들의 모든 노래는 조용한 두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무한 이 안에 있는 그대들 역시 무한하니 그래서 나는 그를 바라봄으로 그대들을 바라보았고 사랑했다.(중략) 그의 힘이 그대들을 땅에 뿌리 내리게 하고, 그의 향기가 그대들을 하늘로 들어올리고, 그의 질긴 생명력으로 그대들은 죽지 않으리라.” 딱히 이 무한한 이가 우리안에 계신 주님이심을 말하지 않아도 어찌 그리 딱 들어 떨어지는가.

지혜를 구한 이들에게 오히려 자신이 듣는 이였다고 말한 알무스타파와 같이, 현자가 되고 싶은 나는 결국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리라. “늘 더 고독한 길을 찾는 우리 방랑자들은 하루를 마친 곳에서 새로운 날을 시작하지 않으니 떠오르는 아침 해는 저녁 해가 진 곳에서 우리를 찾지 못하리라.”라는 구절과 같이 인생의 지혜는 끊임없이 새로워야 하고 우리는 어쩌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현자가 되지 못 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의 서있는 곳의 아침 해가 어제 저녁 해가 진 곳이 아닌 새로운 곳이라면 내 인생의 잠언은 날마다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나만의 알미트라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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