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에게 길을 묻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이 되었다. 스무 살, 서른 살, 쉰 살, 예순, 각각의 열 해들이 저마다의 의미가 있어 공자는 약관, 이립, 지천명, 이순 등의 이름을 붙여 그 의미를 새겼겠지만 내게 불혹이라는 마흔 살은 유독 중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생이 평균 팔십을 산다고 하면 마흔은 한사람의 인생에서 반환점이 되는 지점이다. 마라톤으로 치자면 21Km를 지나 반환점을 돌아 뛰어온 그만큼의 거리를 다시 가야하는 곳에 온 것 같다.

인생이 달리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에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명확한 길이 있다. 그 길을 벗어나면 실격이다.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뒤돌아 볼 일도 아니다. 그저 묵묵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에 들어오게 된다. 일등이 목표여도 좋고 완주가 목표여도 좋다. 뛰어도 좋고 걸어도 좋다. 포기하지 않으면 완주자의 영예가 있다. 하지만 인생은 어떠한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누가 줄쳐주고 이리로 가라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뒤도 돌아보고 왔던 길을 다시 가보기도 한다. 시간적으로는 반을 온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얼마의 시간이 주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주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 사라져 가고 있다. 혼자 뛰어가는 사람, 걷는 사람, 함께 뛰는 사람들. 이따금 내게 말을 걸기도 하고 같이 가자고 하기도 한다. 뛰다 보니 나보고 잘 뛴다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은 어딘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잘 뛴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더 열심히 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른 길로 간다. 나보고 잘 뛴다고 하더니 왜 저 사람은 다른 길로 갈까? 허탈하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는 내가 가는 길은 틀렸다고 한다. 자기를 따라 가야 한다고 한다. 기분이 나쁘다.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간다.

달리던 그룹에서 빠져나왔다. 여럿이서 뭉쳐서 뛰다 보니 가는 길이 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덩어리는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이 틀렸을까 하는 안도감을 주었지만 길도 보이지 않고 시간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막연히 잘 달리고 있다는 착각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무리에서 나오니 여러 갈레의 길이 보인다. 속도도 느껴진다. 하지만 머릿속은 더 혼란스럽다. 관성으로 뛰다가 스스로 정해야 하는 갈래 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멈췄다. 그렇다고 아주 서있으면 안될 것 같다. 한걸음 걷고 한참을 멈춰서 있다가 또 한걸음 걸었다.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고 머리만 빨리 돌아간다.

나의 레이스는 어떻게 될까? 더 서있어야 할까 아니면 한발자국 더 가야 하나, 뛰어야 하나? 가면 어디로 가야하나? 마흔 갈림길에 홀로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군데군데 길 찾는 동무들이 두런두런 모여 있다. 아마도 조금은 더 오래 서서 스스로에게, 또 동무들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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