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굴절 시키는 법

『달팽이』 손광성 | 을유문화사 | 323쪽

지난 주부터 간간히 찾아온 이명현상이 글숙제 마감 전날 또 심하게 찾아왔다. 왼쪽 귀가 꽉 막힌 느낌만으로도 답답한데 윙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내가 사는 집으로 이사 온지 9개월쯤 되었다. 매우 소란스러운 윗집 발소리, 말소리, 덜그럭 거리는 배려라고는 찾아 볼수도 없는 생활의 소리들이 매일 우리 부부를 괴롭힌다. 이제 좀 참을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좀 더 심한듯하다. 아마도 이명과 어우러져 더 날 자극하는 듯하다. 손광성의 달팽이는 바로 소리로 시작한다. 그러나 너무도 정반대의 소리의 아름다움을 그만큼 멋들어진 글로 풀어내는 수필 한편이다.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 영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어떤 활동이 실용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일이 어디있는가 하는 어릴적 생각에서 나아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 소설은 재미라도 준다면 다행이었지만 특히 수필은 하릴없는 아낙네들이나 쓰는 글 나부랭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수필집을 손에 들고 빠져들어 미소를 머금고 단숨에 읽어 내었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앞으로 쓰는 글은 이런 글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내게는 손광성의 글이 참으로 반갑고 매혹적이다.

『달팽이』에는 소리, 냄새 등 감각적인 글부터, 대추나무, 오동나무, 도라지꽃, 달팽이와 같이 자연의 소재들에 대한 관찰과 감상, 장작패기나 지붕을 고치는 일상의 이야기들, 러시아를 여행한 내용과 이곳 저곳을 다닌 단상까지 작가의 삶의 일상과 느낌, 생각이 짧은 두세페이지의 수필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달팽이를 읽으면서 역시 우리말, 우리글로 쓰인 글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참 평범한 하루의 삶이, 그 삶의 한 장면이 이렇게 읽는 사람의 눈 앞에 펼쳐지듯이 그림처럼, 그리고 여유있지만 지루하지 않게 흥미롭게 쓰여질 수 있다는 놀라움으로 수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서두에 이야기 했듯이 시끄러운 도시의 삶을 사는 나에게 작가의 삶은 참으로 여유롭고 행복하며 부러운 삶이다. 작은 텃밭을 가꾸며 좁은 정원에서도 계절을 음미하고, 돌절구와 부채를 통해 생활의 멋을 찾으며, 삶을 반추하는 아름다운 글을 풀어내는 부러운 삶의 주인공이니 말이다.

그런 내게 작가가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만난 <동해 작은 섬 물가에>라는 수필이 단연 기억에 남는다.

“벗들이 모두 훌륭해 보이는 날엔 / 꽃을 사다 아내와 즐긴다.”는 대목에 와선 목이 메곤 했다. 이 시를 통해 나는 슬픔을 굴절시키는 법을 배웠다.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다쿠보쿠의 시구절과 슬픔을 굴절시키는 법을 배웠다는 작가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운 수필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과 질투의 마음을 가진 내게 작가의 솔직한 면면이 내 눈길을 잡아 끌었다.

평안하고 아름다워만 보이는 작가의 삶의 모습은 아마도 그의 편하게 읽히는 유려한 글 솜씨의 반영이리라. 하지만 두번의 전쟁을 겪고 이산의 아픔을 감내한 삶이 어찌 그리 편하고 쉽기만 했으랴. 그저 곡절 많고 시끄러운 삶의 한 복판에서 나도 손광성처럼 아름다운 글로, 치밀한 삶의 관찰로, 담담하게 풀어 낸 짧은 글들로 내 인생의 여백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다음 주에는 아마 꽃을 사서 아내와 즐기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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