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보내며

삼다 1기 저녁반 3학기 4주차 에세이, 안승용

고난주일을 맞으며.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까지 한 주 남았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초입에 우리는 그분의 고난을 묵상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음에 감사하다. 특별히 올 해의 고난주간에는 생동하는 피조물의 싱그러움을 보면서 부활의 주님을 고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시에서 자연은 먼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못 볼 것도 아니다. 사방이 콘크리트, 철골 구조물이지만 생명을 갈망하는 인간은 곳곳에 자연을 떠다 놓았다. 대자연의 푸름에 비할바 아니지만 이만한게 어디랴? 계절적으로 부활이 봄에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첫 열매 예수께 화답하듯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부활을 묵상하며 특별히 철맞은 푸른 잎과 흰 꽃을 보며 생명을 찬미하리라.

정작 내 몸과 마음, 정신은 아직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회사에도 변화가 있어서 2015년 1분기는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감사하게도 새로 등록한 교회 목사님 말씀을 듣고, 삼다 지정도서를 읽으며 믿음을 다시 생각해보고 내 삶도 돌아볼 수 있었다. 이번 사순절에는 특별새벽기도에 참여하고 싶었다. 전반 스무날은 어영부영 보내고 후반부에는 새벽을 깨웠다. 하루 가면 하루 거르는 식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고난주간에는 페이스북을 멀리하며 업무에 전념했다.

성금요일이다. 하루 금식을 했다. 아침을 여느 때처럼 거르고, 점심을 건너뛰고 외부에 업무 차 나갔다 모처럼 일찍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맛있는 반찬을 상에 차려 놓고 큰 아이와 계란말이를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식탁에 앉아 고기를 집어 먹다가 식구들이 둘러앉아 기도를 하니 ‘아, 그래 내가 오늘 금식 중이었지’ 하고 깨달았다.

부활의 전날인 성토요일이다. 아내와 집 문제로 상의를 하다가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그동안 회사나 집에서 여간해서는 평정을 잃지 않았는데 고난주간을 잘 보내다가 무너지니 속이 많이 상했다. 부활의 봄에 주님을 묵상하고 생동하는 만물에서 부활 사건의 증거를 보겠다는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주일, 드디어 부활의 날이다. 예배를 두 번 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평온도 잠시, 저녁에 이러저러한 일로 큰 아이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아마 큰 아이를 키우는 12년 동안 가장 호되게 야단을 친 듯하다. 분노 조절에 실패. 이틀 연속 폭발해버렸다.

내가 삶의 문제에 얽혀 바닥을 치고 있는 동안에도 어김없이 시간을 지나고 부활의 주일은 저물었으며 아파트 화단에 목련은 꽃망울을 피웠다. 예수 무덤에 시신이라도 건사하려고 찾아간 마리아처럼 팽목항에는 아직도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맴도는 분들이 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영광을 맛보았건만 오늘 이 땅에 부활의 소식은 아직인 듯하다. 이천 년 전 유대 땅의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팽목항과 광화문의 마리아들에게는 아직 부활 소식이 없다.

부활의 때를 맞아 자연을 즐기겠노라 했던 한 주는 분주하고, 혼란스럽고, 패배한 주간이었다. 내 몸도, 가족의 마음도, 회사도, 나라도 낙망뿐인데 꽃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태를 뽑낼 준비로 한창이다. 그저 녹음이 더 짙어갈 5월이 오기 전에 내 삶에도, 무엇보다도 세월호 가족의 마음에도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기 만을 손 모아 빌어본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