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 메타버스의 새벽

Roblox: Dawn of the Metaverse

Kenial Lee
kokr
21 min readMar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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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Disclaimer

  • 이 글은 로블록스의 시리즈 E 투자사 중 하나였던 Meritech Capital의 크레이크 셔먼(Craig Sherman)이 쓴 글인 Roblox: Dawn of the Metaverse를 번역한 글입니다. 투자사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 저는 로블록스에서 일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 번역에 사심이 섞였을 수 있습니다 (?)

로블록스 IPO 이후 국내에도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혹시 좋은 기사가 있을까 하고 최근 로블록스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았는데, 대부분이 단신으로 다뤘거나, 로블록스를 단지 게임 플랫폼으로 보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소개하거나, 경제적 관점만을 소개하거나, IPO 이후의 투자에 관련된 내용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내용도 대동소이하고요.

로블록스의 비전에 대한 좀 더 깊은 시각을 담은 글이 없을까 하고 찾아보다가 투자사의 파트너 중 한 명이 쓴 글을 발견해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투자사들이 로블록스의 어떤 점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는지, 투자사들이 메타버스라는 틀에서 로블록스의 비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메타버스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투자자의 시각을 읽어볼 수 있을만한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 소개해 봅니다.

로블록스: 메타버스의 새벽

크레이그 셔먼, 2021년 3월 10일

우리는 여명을 보았다

“같은 문제에 도전하는 수많은 신생 기업들이 등장하고, 이런 기업들이 갑자기 인기를 끄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 아마도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는 것이다.” –Bob Kagle, Benchmark의 공동 창업자

2005년 초에 저는 Benchmark의 EIR(상근 임원, Executive in Residence)로 일하면서 고속 성장 중인 인터넷 웹사이트의 100위~500위 목록을 뒤져가며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들 사이트를 분석했습니다. 그때 파악한 추세 중 하나는, 사용자가 업로드한 짧은 비디오를 제공하는 6개 정도의 웹 사이트가 급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죠. Bob Kagle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하고 새로운 분야를 발견한 것 같은데. ‘중요’하다는 건 사람들이 이 서비스에 빠르게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말 그대로 소비자들이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가치를 이 회사들이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지. ‘새롭다’는 건 이 회사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어떤 것과 쉽게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의미고.” 그가 옳았습니다. 1년 반이 흐른 후, YouTube가 탄생했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며 디지털 세계(digital world)라는 분야를 탄생시켰죠. 한국의 싸이월드, 일본의 Mobage (DeNA), 핀란드의 Habbo Hotel, 미국의 Second Life와 같은 회사들이 등장했고, 이들 회사는 마케팅 없이도 고속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에 싸이월드는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20대의 한국인이 사용하는 서비스였습니다. 2006년에 DeNA는 Mobage에서 세계 최초로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소셜 게임을 배출했습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거친 비유(이를테면, World of Warcraft가 MySpace와 결합했을 때?)를 동원하지 않고는 이러한 서비스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지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 서비스들은 게임과 소액 결제가 결합된 소셜 네트워크였을까요? 아니면 샌드박스 스타일의 MMORPG였던 걸까요? 이들 서비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사용자의 실제 정체성과 별 상관이 없는 디지털 / 가상의 정체성.
  •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있는 소셜 네트워크.
  • 단순히 타인의 홈페이지 / 피드 / 비디오를 살펴보고 댓글을 다는 것 이상의 재미있는 활동.
  • 가상 아이템을 구입하여 아바타를 멋지게 꾸미거나 게임에서 파워업을 하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자기 표현 방식
  • 자기 표현과 소셜 인터랙션이 일어나는 장소에 대한 (은유적) 감각.
  • ‘웹 페이지’가 아닌 ‘방’과 ‘집’의 역할을 하는 공간.

다들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를 “가상 세계” 혹은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메타버스는 1992년에 Neil Stephenson이 쓴 예언적인 책인 스노 크래시(Snow Crash,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습니다)에서 등장해 대중화된 용어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 “온라인 사교(online hangout)”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지난 세대는 쇼핑몰이나 시내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었는데, 사람들이 같은 일을 이 서비스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도 사람들은 시내에 나가서 쇼핑을 하긴 하죠.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상점과 인파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핑계일 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큰 목적입니다.

스노 크래시, 버닝 맨(Burning Man), Nick Bostrom의 가상 세계 논쟁, MySpace, 모든 MMO(다중 사용자 온라인 게임)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 새롭고 중요한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2006년에 CEO로써 GaiaOnline에 합류했고, GaiaOnline는 이 분야의 초기 진입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Gaia의 매출은 200만 달러에서 2,400만 달러로 증가하며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MAU는 20만명에서 800만명으로 증가했으며, 미국의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가상 재화(virtual goods), 선불 카드, YouTube 비디오와 소니, 워너 브라더스의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가상 영화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습니다.

2008년 초, 저는 Benchmark의 이사진에게 로블록스의 설립자 데이빗 배저키(David Baszucki)를 만나보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 분야에 속한 여러 회사들과 접촉해 보았지만, 데이빗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것을 그 회의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먹힐만한 메타버스에 대한 최고의, 그리고 현실성있는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09년 5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IVS 스타트업 컨퍼런스에서, 저는 지금까지 본 스타트업 회사들 중 어느 회사가 가장 유망한 스타트업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로블록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후에 저는 Gaia Online이 로블록스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데이빗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로블록스와 비교하면 훨씬 큰 회사였고, 로블록스는 아직 많은 관심을 끌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회사의 보유 자금 2,500만 달러 중 2,0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시했습니다. 데이빗은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행하고 싶어했고, 자신의 비전을 믿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Gaia, Habbo, Second Life는 모두 2010년에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Mobage와 CyWorld는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았죠. 하지만 AltaVista가 Google에게 밀려 사라진 것처럼, 선구자 역할을 했던 이들 기업은 이제 로블록스의 역사에 각주로 남게 되었습니다.

2011년 3월에 Meritech Capital에 합류하면서, 제가 처음으로 이사진들에게 소개한 CEO는 데이빗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데이빗의 비전에 수긍했지만 Meritech는 성장하는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는 모델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준에 로블록스는 아직 너무 이른 상태였습니다. 사실 로블록스에서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가 훌륭한 게임을 만들기는 여전히 어려웠죠. 하지만 이사 중 한 명인 Rob Ward와 저는 우리가 검토한 스타트업들 중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스타트업으로 로블록스를 꼽았고, 이후 5년 동안 우리는 데이빗과 정기적으로 만났습니다. 인재를 소개시켜주고, 재정이나 전략에 관련된 피드백을 해 주면서 신뢰 관계를 쌓았습니다. 우리는 게임 분야(PopCap)과 소셜 네트워킹(Facebook) 분야에 투자하면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 유명인사의 부재, 실리콘 밸리에서의 떨어지는 지명도 등에도 불구하고, 로블록스 팀은 흔들리지 않고 게임 개발자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와 도구를 차츰 개선해 나갔습니다.

로블록스의 창업 후 9년이 지난 2015년 하반기가 되자 로블록스의 성장세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로블록스는 복잡한 서비스입니다. 물리 엔진, 마켓플레이스, 서버 인프라스트럭처, 스튜디오 도구(주: 게임 개발 툴을 의미합니다) 등,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잘 작동하고 대규모 환경에서도 문제가 없어야 하죠. 2015년에 로블록스는 5,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2016년에는 매출 예상액을 6,700만 달러로 잡았지만 4월이 되자마자 이 예상액도 쉽게 달성할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7월에 먼저 투자를 제안했지만, 데이빗은 투자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9월이 되자 로블록스는 매출 예상액을 1억 200만 달러로 올렸고, 데이빗은 5억 달러의 회사 가치 평가에 동의한다면 우리에게 투자 라운드를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모멘텀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자자가 로블록스의 시장 범위가 제한적이며 사용자 유지율(retention)이 너무 낮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좀 다른 시각으로 데이터를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동료인 Max Motschwiller와 Rob과 함께 로블록스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Max는 기발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다른 투자자나 심지어 로블록스측 인사들조차 깨닫지 못한 다른 시각으로 로블록스를 살펴봄으로써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Meritech의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의 수표를 투자금으로 기꺼이 내 줄 수 있을법한 기분이었습니다만, Meritech Capital 단독으로는 투자 라운드를 진행할 수 없었고, 그래서 Index Ventures의 Neil Rimer가 투자 과정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 해 로블록스는 감격적이게도 1억 2,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로블록스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로블록스 성공의 이유

넓게 보면, 로블록스의 성공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로블록스에는 두 가지의 네트워크 효과가 존재합니다. 훌륭한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는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Facebook, YouTube, DoorDash, AirBnB를 생각해 보세요). 로블록스에는 두 가지 네트워크 효과가 존재합니다.

  • 더 많은/나은 게임 → 더 많은 사용자를 유도 → 더 많은/나은 게임을 유도. 이 현상은 YouTube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비디오를 YouTube에 업로드하는 건 쉽습니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이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유사한 서비스를 만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 로블록스에서 친구가 더 생길수록 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사용자 → 더 나은 경험으로 이어지며 →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입니다. 이 현상은 Facebook, Instagram, Snapchat과 비슷합니다. 게임 (좀 더 정확히는 “엔터테인먼트 공동 경험(entertainment co-experience)”) 플랫폼과 소셜 네트워크의 결합이라 할 수 있겠죠.

멈추지 않는, 영원히 성장하는 문화 트렌드

  • 디지털 세상(Digital Worlds) : 계속 향상되는 디바이스의 성능과 계속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는, 사람들이 앞으로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디지털 라이프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와 사회적 관계를 원합니다. 게임은 전자를 충족시키고, Snap과 Zoom 같은 회사의 서비스는 후자를 충족시키죠. 로블록스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제공하는 몇 안되는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부모들은 실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위험을 인식하고, 자녀들의 물리적인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0년 전에는 젊은이들이 저녁을 먹기 전까지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이웃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이 흔했습니다. 로블록스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장소이기 전에,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 사용자 제작 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 : 소프트웨어의 도움으로 아마추어도 괜찮은 품질의 컨텐트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최근 10년간 사용자들이 대부분의 컨텐츠 제작에 주축이 되었습니다. YouTube는 동영상 제작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MySpace, Facebook, Instagram, Snap은 쉽게 컨텐트를 공유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Apple과 Google은 팟캐스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오늘날 로블록스는 한 개인이 뭔가 멋진 것을 만들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다른 비교할만한 서비스가 없는 플랫폼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좀 더 살펴보죠.

게임 중심의 메타버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제가 운영했던 서비스를 포함해서, 초기 메타버스에 대한 시도는 대부분 모든 사람이 즐길만한 거리가 아닌 가상 공간에 불과했습니다. 반면에 로블록스는 게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건 디즈니 월드나 다름없는 서비스였습니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루 종일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죠. 놀이기구 또한 그 자체로 굉장하고요.

단순한 게이밍 플랫폼이 아닌, 메타버스 우선주의

디즈니는 놀이기구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놀이기구가 친구와 가족과 함께 놀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디즈니 월드의 캐릭터, 성, 음악 등의 요소는 놀이기구를 모아놓은 유원지를 넘어서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로블록스 서비스는 게임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지만, 게임이 아닙니다. 로블록스는 그보다 더 야심적인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데이빗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집, 학교를 넘어서는 제 3의 공간인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 공간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꾸밀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원하는 방향대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또한 상상하는대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창작물과 행위을 통해 현실 세계보다도 더 완전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로블록스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곳이며, 수많은 게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물리적인 거리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가장 친한 친구와 어울릴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만들고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만든 게임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고, 이를 위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로블록스가 인간의 공동 경험(Human Co-Experience)라고 부르는 것이죠. 이미 스노 크래시의 Neil Stephenson과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의 Ernest Cline이 메타버스가 어떤 모습일지 책과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죠. 데이빗은 제 3의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용자 제작 컨텐츠 구조 대 전통적인 그래픽 품질의 평가

수년간 대부분의 게임 회사의 경영진과 투자자, 게이머들은 로블록스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게임이 너무 아마추어처럼 보였었기 때문이죠. 현재는 상황이 바뀌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로블록스의 게임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큰 이유 중 하나는 게임 자체가 아직 몇 가지 측면에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것이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AAA급 게임 프랜차이즈와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래픽 품질(fidelity, 주: 정확히는 그래픽 자체 혹은 결과물의 품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3D 게임이라는 특성상 그래픽을 렌더링하기 위한 텍스처부터 모델의 구성 모두의 전반적인 품질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둘째로, 대부분의 게임에 깊이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지난 2년간 극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며, 최소한 다음 10년 동안은 계속해서 더 나아질 것입니다.

로블록스 게임이 다른 플랫폼의 게임보다 그래픽 품질이 낮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로블록스의 이상은 개발 자금이 거의 없는 비 개발자가 창의적인 게임을 쉽게 만들어, 노후된 휴대폰에서조차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로블록스는 일반적인 게임 스튜디오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캐릭터가 큰 벽을 주위를 뛰어 돌아다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게임을 상상해 보세요. 이 벽의 본질은 뭐죠? 자금이 충분히 있는 게임 스튜디오에서 AAA 게임을 만든다면, 누군가 성과 지도의 배치를 디자인하겠죠. 다른 아티스트가 이 벽이 실제 사진처럼 보이도록 벽을 칠할 겁니다. 개발자는 벽의 위치와 경계를 설정해서 캐릭터가 벽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죠.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겁니다. 반면에 로블록스에서는 아이가 실제 세계에서처럼 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가 벽돌을 모아 쌓아서 벽을 만들면 되는거죠.

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은 큰 차이로 이어집니다. 게임 스튜디오의 누군가가 마지막 순간에 벽을 옮겨야겠다고 결정하면, 그들은 설계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반대로, 로블록스에서 개발자가 벽을 옮기고 싶다면, 벽을 클릭하고 드래그해서 몇 초 만에 벽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는 개발자에게 굉장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개발자는 게임을 만드느라 1년 동안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고, 실수는 쉽게 수정할 수 있습니다. 게임 제작 과정은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쉬워지고 빨라집니다. 한편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벽은 AAA 게임만큼 사실적이지 않을 겁니다. 로블록스는 의식적으로, 10년 넘도록 개발자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어려운 방향이었죠. 최근에 와서야 로블록스는 품질을 높이는 쪽에 투자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008년의 전형적인 로블록스 게임

2019년의 로블록스 게임

현재 로블록스 게임의 또 다른 한계점은 Triple-A 게임에 비해 깊이가 없고, 복잡성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DAU가 증가하고 더 좋은 게임에 대한 개발자의 기대 수익이 커짐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로블록스는 스스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개발자들이 게임에서 공동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개발 도구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게임의 그래픽이 향상되고 복잡한 게임이 늘어남에 따라, 좀 더 높은 연령대의 사용자도 유입되고 있습니다. 로블록스는 예전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위와 같은 변화로 인해 이제는 13세 이상 사용자층이 13세 미만 사용자층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17세 이상의 사용자 증가율은 로블록스 사용자 집단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20여년을 기초에 집중한 훌륭한 팀

데이빗은 탁월하면서도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첫째로, 그는 단순히 프로젝트를 할당하는 대신, 시스템을 구조화(architect)하는데 매진합니다. 메타버스를 만드는 일은 극도로 복잡합니다. 이러한 복잡성을 개념화할 수 있는 CEO는 찾아보기 어렵죠. 미국의 건국자들처럼, 데이빗은 ‘최종 시스템 아키텍트’이며, 이것이 데이빗의 능력입니다. 저는 우리가 로블록스를 이해했기 때문에 Meritech가 로블록스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데이빗이 순수한 지성과 시스템에 대한 고집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놀라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현재 로블록스 시스템의 다양한 요소를 개발하기 위해 40개가 넘는 제품 개발 팀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팀들은 로블록스의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함께 성장하고 있으며, 팀의 수 또한 점점 늘어날 겁니다.

둘째로, 데이빗은 분기별 목표 대신, 다년에 걸쳐 계획의 우선 순위를 정합니다. 그는 단기적인 최적화 대신, 장기적으로 기초를 다져나가는 쪽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단순히 리크루터를 더 고용하는 대신 직원 채용 시스템을 만들어 인재를 찾아내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빠르게 매출을 올리는 대신 사용자들을 즐겁게 해 줄 게임을 개발할 게임 개발자들의 의욕을 북돋기 위해 게임 개발자를 위한 인센티브 방식을 만든다던가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저는 장기적인 사용자 경험을 위해 — 더 나은 소프트웨어나 구조적인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단기적인 수정에 비해 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 단기적인 기회를 몇 번이나 포기하는 CEO와 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데이빗은 또한 탁월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리더이자 로블록스 기업 문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난 5년간 데이빗은 이 능력으로 그 자신과 로블록스 팀을 극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실 Meritech의 포트폴리오에서 이토록 우수한 직원들을 고용할 수 있었던 회사는 로블록스를 제외하면 Facebook 뿐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출중한 자문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는 대부분 권력의 법칙이 존재하고 오직 소수만이 시장에서 승리하죠. 소셜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이유가 명확합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모두 한 서비스에 모여 있다면 여러분은 거기서 놀겠죠. Facebook이나 Instagram의 자리를 빼앗기가 어려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로블록스는 아직 궁극적인 지향점에 도달하려면 한참이나 멀었습니다. 사용자 수가 3~5배로 증가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쉽죠. 로블록스의 게임의 품질이 향상되고 좀 더 복잡한 게임이 등장하면, 10대 후반, 20~30대 사용자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전연령의 유저를 끌어들이기 시작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용자로 하여금 계속 구입을 유도해서 유저별 매출을 세 배로 늘리는 방식 또한 간단해 보입니다. (대부분의 게임 회사가 공격적인 전략 없이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죠) Zynga를 위시한 수익에 집중하는 (그래서 “고래” 유저에게 의존하는) 여타 회사들과는 달리, 로블록스의 유저당 매출은 골고루 분포해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성장 예측에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실질적으로 로블록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건 점점 바뀔 겁니다. 2020년 12월에 Lil Nas X는 로블록스에서 콘서트를 주최했고 수백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로블록스에서 동영상 사용이 자유로워진다면, 사람들은 친구와 함께 TV 프로그램이나 YouTube 동영상을 시청할 겁니다. 음성 채팅이 추가되면 (현재는 텍스트 채팅만 가능합니다), 비즈니스 미팅, 무대 연극, 독서 모임, 대화 치료 요법, 어학 연습 등도 가능해질 겁니다. 알림 기능이 추가되면, 사람들은 일회성 이벤트에 등록할 수 있을 겁니다. 곧 유명 브랜드 의류 (가상 및 실제. 주: 이미 Gucci 등의 브랜드가 마켓플레이스에 등록되어 있습니다)를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게임은 언제나 로블록스의 핵심으로 남을 것이고, 이 게임은 사용자의 자기 표현과 소셜 네트워크와 함께 제공되기 때문에, 로블록스 외부의 다른 (더 멋져 보이는) 게임들과 경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블록스는 시작부터 게임을 넘어서는 더 큰 무엇이었습니다. 로블록스는 “게임”이 아닌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이 경험에 참여하게 되는 건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제 마지막 주장에 동의하신다면, 로블록스의 기회가 진정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음미하신 셈입니다. 10년 전, 사람들은 로블록스가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블록스를 과소평가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로블록스는 단지 차세대 게이밍 플랫폼인 “게임을 위한 YouTube”에 불과하다며 과소평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12월 로블록스의 Lil Nas X 콘서트

물론 메타버스에 대한 우리의 상상과,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될 거라는 우리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겠죠. (상당히 자주 틀리기도 하고요!) 데이빗 배저키는 지금까지는 그의 선견지명이 옳았음을 증명했지만, 우리는 아직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로블록스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에게 계속 안전한 공간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로블록스는 기민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이 분야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게임이나 소셜 앱이 메타버스 요소를 적절한 방식으로 추가하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치듯 ‘짜잔!’하고 나타날 수도 있겠죠. 메타버스의 개념이 대담하고 야심찬 발상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불가피한 현상이니까요.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고,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냐는 겁니다. 우리는 데이빗 배저키와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를 탄생시킨다는데에 걸었습니다.

* Altos Ventures의 Anthony Lee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로블록스의 네트워크 효과가 가속되기 전까지 어려운 시기에 데이빗를 믿고 지원해 주었으며, 그는 데이빗이 가장 신뢰하는 자문가가 되어주었습니다. 저 또한 그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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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ial Lee
kokr

A programmer, translator, Robloxian, and da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