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사에서의 기억들 (1) — 46만 5천원

Wonhee Jung
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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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in readMar 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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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말인가 4월 초 쯤 언젠가의 첫 취업. 기억의 단편.

오늘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취업한 회사에서 맞는 첫 월급날이다. 부산지역 회사이고 산업기능요원으로 취업을 한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말하던 연봉협상이라든가 근로계약서 같은걸 쓴 기억은 없지만 사장님이 섭섭하지 않게 주겠다라는 말이 왠지 믿음직스러웠다. 아니 믿고 싶었다.

월급이 입금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뱅킹으로 확인을 했던 건지 아니면 월급 명세서를 받았던 것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기 찍혀있던 금액은 아직도 기억한다.

46만 5천원

50만원에서 이것저것 다 빼고, 알바나 컴퓨터 과정 강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써 처음 받은 내 급여액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IMF가 터진지는 벌써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사회는 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컴퓨터 공학과 선배들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4학년 초만 되도 이미 반 이상은 다 취업해서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IMF 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1997~1998년도 졸업생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999년 졸업생 및 내 대학졸업 연도인 2000년 졸업생들도 4학년 2학기 막판이 되기까지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Photo by Melinda Gimpel on Unsplash

대기업으로부터 졸업자 지원 원서가 날라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당시 나름 벤쳐 열풍이었던 서울쪽과는 달리 내가 있던 부산을 비롯한 지방은 그러한 벤쳐 열풍 닷컴 열풍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못해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도 않았다.

많은 졸업생들이 실업자를 면하기 위해서 대학원 과정을 가거나 휴학을 하거나 아니면 서울쪽으로 올라가서 닷컴 회사들에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학 4년 동안 계속 부산 지역에서 병역특례 회사를 알아보던 나는 결국 졸업할 때까지 병역특례 업체를 구하지 못했고, 병특 TO가 없는 회사에는 취업할 수 없었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니던 학교의 대학원 진학을 확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날도 대학원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짐을 싸들고 들어간 대학원 연구실에서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내가 올려놓은 구직정보를 보고 연락을 하는 거라면서 와서 인터뷰를 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산업기능요원 TO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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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Wonhee Jung

Lifelong gamer and learner, loves lifehack. Senior Software Engineer@Blizzard Entertainment. Master’s degree in CS@UIUC, current CS grad student@Georgia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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