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터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Korea Quantum Computing
Korea Quantum Computing
8 min readFeb 10, 2023

여러분들은 양자컴퓨터가 언제 처음 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 제가 양자 컴퓨터에 관해 들었을 때 타임머신처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자 컴퓨터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요즘과는 달리 제가 처음 들었던 5년 전만 해도 제 주위에서 양자 컴퓨터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제게 양자 컴퓨터를 처음 알려주셨던 교수님 뿐이었으니까요.

오늘은 양자 컴퓨터의 시작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알면 알수록 방대한 내용이라서 이번에는 정말 가볍게 읽을 정도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9세기 후반 전자, 양성자 등 입자와 관련된 여러 실험들이 고전 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1900년 막스 플랑크의 흑체 실험을 계기로 태동한 양자 역학은 운명적인 1927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출처] https://9gag.com/gag/a5XpemG#comment

위 사진에 있는 사람들 면면이 한 눈에 봐도 대단해보이지 않나요? 물리학을 잘 모르는 이들도 알만한 이름이 많이 보이는 이 사진 속 인물들은 “the October 1927 5th Solvay International Conference” 참석자들입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17명이나 포진한 세계적인 석학들의 모임이었죠. 이 컨퍼런스가 양자컴퓨팅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 자리에서 양자 역학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 해석 이후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가 벌이게 될 그 유명한 양자 이론 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하지요.

https://cdn-images-1.medium.com/max/1000/0*fm0i1q5saY2Iln-_.png
[출처] https://pgr21.com/freedom/83302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확신했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등의 말을 함께 끊임없이 양자 역학을 비판했습니다.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발표한 EPR Paper도 그러한 비판의 산물이죠. 보어는 아인슈타인이 공격해 올 때마다 논리적인 반론을 통해 그의 이론을 입증하였습니다.

※ 혹시아인슈타인-보어의 논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다음 블로그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덧붙여 재밌는 사실은 양자 역학을 비판했던 공격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양자역학에 논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공격도 그랬고, 양자 역학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사고 실험 중 하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원래는 양자역학을 공격하기 위해 제기되었다고 하죠.

[출처] https://www.facebook.com/nobelprize/photos/a.164901829102/10157794976959103/?type=3

아쉽지만 양자 역학 이야기는 여기서 다음을 기약하고 양자 컴퓨터의 등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양자 컴퓨터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파인만에 의해서 1981년 제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양자 컴퓨터의 시발점은 1961년 롤프 란다우어가 비가역적 연산으로 인한 정보 손실에서 야기하는 에너지 소모를 이야기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또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한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비가역적 연산이란 쉽게 말해 연산을 통해 얻은 출력값으로부터 입력을 복구할 수 없는 연산을 말하는데요.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은 정보가 손실되었기 때문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열을 수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란다우어의 부하 직원이었던 베넷에 의해 ‘정보를 지우지 않음으로써 에너지 소모가 없는 가역적 연산을 하는 컴퓨터’로 연결되죠. 그리고 드디어 1980년 폴 베니오프에 의해 제안된 튜링 머신의 양자 모델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출처] https://mitendicotthouse.org/physics-computation-conference/

한편 베넷의 제안으로 양자컴퓨터 연구를 시작한 파인만은 1981년 가역적 연산을 통한 에너지 손실을 제어를 논한 베니오프의 생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1981년 IBM과 MIT가 공동 개최한 ‘The Physics of Computation’ 컨퍼런스에서 “자연 현상은 양자 역학의 원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자연을 제대로 시뮬레이션하려면 양자 역학의 원리로 동작하는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죠.

사실 이 때만 해도 양자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실체를 한 번도 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었죠. 지금도 양자 컴퓨터가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존재라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연구는 계속되어 데이비드 도이치가 1985년 범용 양자 컴퓨팅 개념에 관한 논문에 이어 1992년 리처드 조사와 함께 도이치-조사 알고리즘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 알고리즘 또한 실용성보다는 양자 컴퓨팅의 우위를 보여주기 위한 즉 증명을 위한 알고리즘에 불과했죠.

양자 컴퓨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된 것은 벨 연구소의 쇼어가 1994년 발표한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을 통해서였습니다. 양자 컴퓨팅이 사람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 거죠. 1996년 발표된 그로버 검색 알고리즘과 더불어 쇼어의 알고리즘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2000년 대 양자 컴퓨터에 관한 기초 기술 개발로 이어지게 됩니다. 마침내 양자컴퓨팅을 실현시켜 줄 하드웨어 및 기술 개발 단계로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로 일컬어지는 캐나다 D-Wave사의 128큐빗의 양자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2011년입니다. 당시 이 양자컴퓨터의 대당 가격은 1천만 달러로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에 납품되었다고 합니다. 슈퍼컴퓨터 개발에서 우월적 위치에 있던 IBM 또한 2016년 초전도 방식의 양자 컴퓨터를 IBM Q Experience 라는 이름으로 클라우드에 서비스하면서 상용화 경쟁에 뛰어들었죠.

그리고 2019년 10월 23일 구글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구글의 54큐빗 시커모어 칩을 탑재한 양자 컴퓨터가 기존 디지털 컴퓨터가 1만년 걸릴 난수 생성 문제를 단 ‘200’초 만에 해내는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를 성공했다는 내용이었죠. 물론 비교에 있어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너무 낮게 잡았다 등의 논란과 비판이 뒤따르긴 했지만 학술적으로 양자 우월성을 처음 입증했다는 점은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인 22년 11월, IBM은 ‘IBM Quantum Summit 2022’에서 새로운 양자 프로세서인 433큐빗의 ‘IBM Osprey’와 차세대 양자 시스템인 ‘IBM Quantum System 2’를 선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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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BM Quantum

비록 하나하나 다 언급하지 못했지만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IBM을 비롯한 다양한 양자 컴퓨터 회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상용 양자 컴퓨터를 개발 중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죠.

[출처] The Quantum Insider

지금까지 양자 컴퓨터의 등장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읽으시면서 제가 놓쳤던 사실이나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양자 컴퓨터를 보게 될 그 날을 기대하며 여러분들의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QC는 상용 양자 알고리즘 및 소프트웨어의 연구/개발을 학계와 업계의 협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물론 양자 컴퓨팅을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https://www.kqchub.com/contactus를 방문하셔서 form을 작성하시거나, info@kqchub.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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